경주시 문화와 산행.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경주 "남산" 에 문화유산 탐방팀 따라 해설을 듣는다.

용암2000 2012. 8. 17. 18:01

2012년 8월 15일 (수요일)

 

오늘은 광복절 공휴일로써 전국적으로 기습적인 폭우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내리지만, 그래도 경북 동해안 일원에서는 비는 오지 않겠다는 기상청 일기예보가 발하므로 대학동문 2명과 함께 간단하게 경주 남산에 있는 용장 마을에서 고위봉으로 올라 칠불암 까지 왕복하는 산행이나 다녀오자는 긴급 협의로 길을 나선다.

9시 20분 경 경주 남산 서쪽에 있는 "서남산 안내소" 에 도착하여 산행 안내도를 얻기 위하여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곧 9시 30분 부터 경주 남산이 보유하고 있는 문화유산에 대한 무료 해설이 있다고 하면서 동참 여부를 결정하라고 안내하여 준다.

 

< "서남산 안내소" 에서 삼릉으로 들어가는 길 > 

 

일반적으로 남산에 대한 문화재 탐방에 따른 해설은 사례비를 받고 해설이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특별하게 여름 방학기간과 평월의 공휴일(토요일, 일요일, 법정공휴일)에 한해서 인터넷이나 전화를 통하여 사전 신청이 이루어진 사람에게 한하여 무료의 해설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은 비가 오락가락하므로 사전 신청인의 감소로 즉석에서 추가 신청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또한 탐방 시간도 기다림 없이 바로 연결되므로  꿩먹고 알먹은 1조2석의 시간이라고 한다.

9시 30분 정각 탐방안내소 소속의 한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알송달송한 연세의 한 미녀(美女) 문화 해설사가 마이크를 잡고 나와서, 금일 문화해설을 담당 할 "박OO" 라고 소개하면서 탐방에 대한 주의사항을 설명한다.

경주 남산의 문화탐방 코스는 크게 6개의 코스로 이루어지지만, 오늘 탐방하는 코스가 경주 남산에서 최고로 많은 문화재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탐방거리와 시간이 약 2.5Km에 2시간 30분 정도 걸리고 해설 종료시간은 오후 1시 경에 끝난다고 한다.

 

< 삼릉 입구에 있는 "삼릉가는 길" 트레킹 길 안내도 > 

 

인터넷으로 예약한 약 30명의 단체 학생들의 도착시간이 다소 지연되므로 도로 건너편에 있는 "삼릉(三陵)" 입구 앞에 있는 탐방 안내도로 이동하여 지도를 보면서 개략적인 설명이 이어진다.

 

< "탐방 안내도" 를 보면서 개략적인 설명을 듣고 >

 

경주에는 토함산, 남산, 단석산, 서악, 대본, 화랑, 소금강, 구미산 등 크게 8개의 지구로 나누어지는데, 그 중에서 남산 지구에는 1점의 국보와 12점의 보물을 포함하여 총 694개의 유적 및 유물이 존재하고 있어 남산 전체가 하나의 움직이는 자연사 박물관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전체적인 Schedule을 설명하고 나서 삼릉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시내 방향의 도로 따라 한 200m 정도 걸어가다가 오른편 오솔길로 조금 들어가면 울창한 숲을 만나는데, 그 숲속에 넓은 주차장 뒤편에 "망월사(望月寺)" 라는 사찰 출입문에 도착한다.

 

< 탐방길 중 처음 만나는 "망월사" 풀입문 >

 

이 사찰의 담장 따라 왼편으로 돌아서 들어가면 남산의 유물 중 하나가 되는 "배리 삼존불" 이 안치되어 있는 아담한 건물 한채를 만나는데, 건물 내부에는 3존불의 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며 가운데 모시고 있는 본존불은 '아미타여래불" 로써 얼굴에는 다소 찡그린 인상을 하고 있다.

 

< "배리 삼존불" 을 모시고 있는 건물 >

 

본존불 좌우에 모시고 있는 협시불로는 오른편에 관음보살상으로써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으면서 머리에 쓴 보관에 화불이 있어 관음보살상으로 추정하고, 왼편에 있는 대세지보살상은 구슬과 꽃송이로 된 긴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고 옷의 주름 융곽이 삼존불 중에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다.

 

< 아름다운 모습하고 있는 "배리 삼존불" 모습 >

 

이 배리 삼존불은 경주 남산 기슭에 흩어져 땅 속에 묻혀 있었던 불상들을 발굴하여 1923년 이곳을 이동하여 세웠으나 울창한 숲으로 인한 햇빛이 들지 않고 비바람으로 인한 마멸 및 습기로 불상 얼굴에 이끼가 끼기 시작하였는데, 문화재청에서는 삼존불 주변을 정리하고 건물을 지었지만 반대로 불상의 얼굴 형상이 찡그러지는 모습으로 달라졌다고 한다.

아마 본존불은 주변의 기후와 기온, 습도, 조명에 따라 얼굴이 이그러지게 되었는데, 달빛이 비치는 밤에 보면 화사하게 웃는 모습으로 변경되므로 한번 확인 할 수 있는 음력 보름 전 주에 실시하는 특별 행사가 되는 "달빛 탐방" 에 참관하여 직접 체험하여 보라고 설명이 이어진다.

이후 부처님 형상과 역사에 관련된 많은 내용을 설명하지만, 기록하는 도구가 없어 멍청하게 듣고만 있으니 나쁜 머리로 한개도 암기가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냥 해설사 뒤 꽁무니만 졸졸 따라 다닐려고 하니 사전 예약한 30명의 학생들이 배리 삼존불에서 바로 합류하므로 순간적으로 해설을 경청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지다 보니, 해설사 목소리 듣기가 하늘에 별 따기가 된다.

그래서 역시 꽁짜로 듣는 해설의 한계를 느껴 해설에 따른 가장 효율적인 인원이 몇 명이나고 물어보니, 한 20- 30명 정도가 최고의 효과를 본다고 하면서 1회 해설에 따른 비용이 15만원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어 망월사 사찰 앞으로 다시 돌아나와 허리길로 돌아서 삼릉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오솔길은 공동묘지의 중앙을 통과하는데, 공동묘지 관리가 잘되지 않아 국립공원의 위상을 많이 손상시키고 있어 다소 불쾌감이 일어난다.

이곳의 무덤은 이씨들의 묘소로써, 현 시대에 적합한 묘지로 변경하여 한국인들과 장례문화가 다른 외국인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부여주는 장소로 변경 되었으며 좋겠는데....

삼릉 입구에서 올라오는 산책로와 만나면서 이내 삼릉에 도착 되면서 신라는 56대의 왕이 통치하면서 세계 유일하게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국가이므로 경주 인근에는 많은 왕릉이 존재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이 삼릉에는 제8대 아달라왕,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을 모신 3개의 릉(陵)이 있는 장소이다.

 

< 3분의 왕이 묻어있는 "삼릉" 모습 >

 

묘소 주변에는 크고 작은 소나무가 제 멋대로 구불령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도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이렇게 못 생긴 나무만 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신라 번성기 경주 주변에는 약 17만호의 가옥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대도시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목재가 필요하므로 좋은 나무는 다 절단하여 집을 짖고, 작고 휘어진 나무만 남아 그 나무가 성장하여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 울창하고 고불고불한 "소나무" 밑에서 >

 

왕릉의 크기는 지름 18m에 높이 약 5.8m로써 주변에 있는 동서남북 모든 나무가지가 왕릉을 향하고 있는데, 그렇게 된 이유는 명당이라는 이유보다 묘소가 있는 중앙으로 햇빛이 잘 들기 때문에 햇빛을 많이 쏘이기 위하여 나무 가지가 안으로 뻗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어 메인 산행길로 들어서 잘 만들어진 나무테크 길 따라 천천히 남산 깊숙하게 올라가면, 산책로 가에는 계곡에서 발굴한 머리가 없는 부처님 또는 탑신이 없는 탑들을 모아 놓은 유물이 진열하고 있어 과연 경주 남산에는 유물 및 유적의 산실이라는 것을 느껴지는 산이다.

 

< 잘 만들어진 "나무테크" 길을 걸으면서 >

 

< 산행길 가에서 만나는 "파손된 유물" >

 

여기서 조금 만 더 울라가면 머리가 없는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三陵溪谷 石造如來坐像)" 을 만나는데, 이 좌상은 1964년 동국대학교 학생들이 남산의 한 계곡에서 발굴된 불신을 이곳으로 옮겨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 머리가 없는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을 설명하면서 >

 

경주 남산에는 불두(佛頭)가 없는 석불을 종종 만나는데 이렇게 불두가 없는 이유는 크게 2가지로 추정하는데, 하나는 오랜 세월에 따른 지각변동으로 인하여 불상이 넘어지면서 가장 취약 부분의 목이나 팔이 절단된 상태이다.

둘째로는 조선시대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인위적으로 목을 쳐 불상을 파괴시켜는 것으로써,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불상은 목의 파괴된 단면을 보면 인위적으로 파손시킨 불상이라고 한다.

 

< 인위적으로 파손시킨 "불상의 파단면" 을 보면서 >

 

이 불상 옆으로 나 있는 야산 따라 한 30m 정도 더 올라가면 아담한 바위에 새긴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三陵溪谷 磨崖觀音菩薩像)" 을 만난다.

이 마애관음보살상은 우리나라에서 돌에 새겨진 마애불 중에서 가장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미(美)의 표준인데, 키가 1m 55cm이면서 입술에는 루즈를 칠하여 아직도 붉은색을 하고 있는 입술을 가지고 있으며 머리에는 작은 불상이 조각된 보관을 쓰고 있어 전형적인 한국 미스코리아의 기본형이라고 한다.

특히 방금 하늘에서 내려온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추정하는 이유는 땅의 지면에 발 도듬하고 있는 발의 모양에서 그렇게 추정한다고 한다.

 

< 붉은 입술을 가진 "마애관음보살상" >

 

다시 정규 산행길로 내려와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면서 또 다시 왼편 계곡으로 내려가서 작은 도랑을 건너 200m 정도 올라가면 거대한 검은 바위가 나타나면서 가는 길을 가로 막는다.

 

< "선각육존불" 이 있는 곳을 알리는 이정표 >

 

이 바위을 자세히 들어다 보면 어느 작은 꼬마 아이가 연필로 종이에 작난을 친 모양의 선각이 보여 한참 선각을 들어다 보면 거대한 불상의 그림으로 나타나는데, 앞에 있는 바위에 3개의 불상과 조금 뒤면으로 들어간 바위에 3개의 불상이 새겨져 있으므로 "삼릉계곡 선각육존불(三陵溪谷 線刻六尊佛)" 이라고 한다.

 

< 거대한 바위에 그려진 "선각육존불" 바위 >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시고 나서 처음으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모시는 사찰에는 1. 3, 5, 등 홀수의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 곳 부처님을 육존불이라고 하는 짝수 육(六)을 사용하지만 원칙으로는 3분의 삼존불과 3분의 삼존불이 합친 바위이다.     

일반적으로 불교에서는 5분의 부처님과 10분 보살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5분의 부처님으로써는 현세(現世)에 내려와 직접 중생을 구제한 석가모니불과 더불어 극락 세계를 관장하시는 4명의 부처님인 노사나불, 아미타여래불, 비로자나불, 약사여래불로 구성되어 있다.

보살로써는 대세지보살, 미륵보살,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월광보살, 일광보살, 약광보살, 약상보살 등 10명의 보살님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각 사찰마다 중앙에 모시는 부처님과 좌우 옆으로 거닐고 있는 협시불의 배치 방법에 따라 대웅전, 대웅보전, 대광전, 보광전 등 사찰의 명칭과 형태가 달려진다고 하면서, 이 선각육존불 앞에서 많은 불교상식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 불교상식을 설명하고 있는 "문화해설사" >

 

특히 좌측 앞에 있는 삼존불 중에 중앙에는 아미타여래불을 두고 좌우의 협시불로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조금 뒤편에 있는 오른편 바위에는 중앙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며 좌우에는 문수보살과 지혜의 보살인 보현보살이 그려져 있다.  

이 두개의 그림 중앙에 있는 아미타여래불과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미 성불의 경지에 들어 갔으므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고민과 번민으로 다소 심각한 얼굴을 하고 계시지만, 옆에 있는 협시불은 아직도 미완성의 성불로써 부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여 화려한 옷과 아름다운 목걸이 등 귀금속으로 취장하여 누구보다 아름답게 노력 할려고 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 거대한 바위 옆을 통하여 바위 위로 올라가면 바위 가장자리에 부처님 얼굴에 직접적으로 낙수물이 흘려 내려가지 않도록 물받이 홈통을 파 놓고 있으며, 곳곳에 법당의 기둥을 세우기 위한 홈도 같이 파여 있어 옛 선인들의 불교 사랑이 얼마나 돈독한지 알 수 있다고 한다.

 

< 선각육존불에 낙수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판 "물받이 홈통" >    

 

여기에서 부터 경사진 암벽을 타고 조금 더 올라가면 남산의 진면모를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눈 앞에는 지금까지 올라온 산세와 더불어 경부고속도로 및 국도가 이어져 달리는 도로와 농촌의 들판이 펼쳐진다.

반대의 산 쪽으로 바라보면 산의 마루금 아래의 넓은 계곡에는 많은 바위들이 산재하고 있는데, 그 바위 중에 거대한 거북이 형상하고 있는 바위가 인상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 "서남산 안내소" 출발지점과 고속도로 시야가 열리면서 >

 

< 남산 계곡에서 나타내는 "거북바위" 모습 >

 

또 다시 위쪽으로 올라가면 약 10m의 거대한 바위에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三陵溪谷 線刻如來坐像)" 이 나타나는데, 이 바위의 중간 쯤에 가로로 홈이 파여 있으면서 상부 바위에는 부처님의 얼굴과 몸을 새겨져 있으며 하부 바위에는 연꽃 대좌가 그려져 있지만 아직도 미완성의 불상이다.

 

< 미완성의 "선각여래좌상" 을 설명하는 해설사 >

    

이 선각여래좌상 앞으로 산의 허리길로 넘어가면서 몇 개의 바위를 곡예하듯 앞으로 전진하면 또 다른 거북이 형상의 바위 몇 개가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나의 보는 시각과 예술적인 감각이 깡통이라서 그런지 원만하여 거북이 형상을 그려지지 않는다.  

 

< 2마리가 업혀있는 "거북바위" 라고 설명 하지만 >

 

다시 정규 산행길 방향으로 조금 내려서면 또 다른 부처바위를 만나는데, 이 부처님은 보물 제666호가 되는 "삼릉계석불좌상( 三陵溪石佛坐像)" 이라고 한다.

이 석불좌상은 8-9세기에 조성된 불상이지만 발견 당시 얼굴과 좌대 및 광배가 너무나 많이 파손 되므로 새로운 돌을 덧붙어 복원시켜서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문화재는 새롭게 복원한 돌과 원형의 돌과 차별화를 시켜서 구별되게 한다고 한다.

 

< 많이 파손되어 복원한 보물 제666호 "삼릉계석불좌상" >

 

그런데 신라 때 만든 석불은 일반적으로 팔이 몸통에 부착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 석불좌상의 특징은 그 시대에 석공들의 취급하는 기술과 공법으로 팔과 몸통을 분리하는 기술이 매우 난이한데, 이 부처님은 팔과 겨드랑이를 떨어지게 조각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다시 정규 산행길에 이르면서 울창한 숲속으로 올라가면 왼편 산 능선에 있는 거대한 바위에 선각 부처님이 있다고 하여 찾아 보았지만, 망원경이 없어 투렸하게 관찰이 불가능함이 아쉽다.

 

< 능선 위 바위에 "선각 부처님" 이 있다고 하지만 >

 

이 선각 부처님 바로 위 또 다른 방향의 바위 밑에 거대한 천년송 소나무 한그루가 성장하고 있는데, 그 소나무 옆에 한 분의 부처님이 있었던 자리라고 하면서 그 부처님의 모양이 너무나 아름다워 일제시대 때 일본 놈이 도굴하여 밀반출을 시도하여 한양까지 운반하였다가 일본으로 운반하지 못했다고 한다.

 

< 밀반출 된 부처님 자리를 지키는 "천년송" >

 

그래서 현재 서울 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고 하면서 사진을 통하여 설명하는데, 그렇게 큰 부처님을 어떻게 하여 저 높은 산꼭지에서 평지까지 운반이 되었는지 상상이 되지않는 곳이라 공학을 전공한 나에게도 할 말이 없어진다.  

여기서 부터 한 20분 간 본격적으로 산행을 하면 남산의 8부 능선 쯤 "상선암" 이라는 암자에 이르는데, 이 암자 마당에는 맑은 물이 많이 솟아나는 샘이 있으므로 휴식과 더불어 갈증을 해소시키는데 최적의 장소이다.

 

< 갈증과 휴식를 제공하여 주는 "상선암" >

 

이 상선암에서 10분 정도 땀을 흘리면서 올라가면 "상선암 마애대불" 이 있다는 안내판과 더불어 주변 암석의 붕괴로 금년 말까지 출입을 통제한다는 내용이 기술되면서 입산을 통제하고 있는데, 그냥 산행길 따라 5분 정도 더 올라가면 넓은 바위가 나타나면서 전망대에 이른다.

 

< 전망 좋은 "바둑바위" 올라오면서 >

 

이 전망대는 옛날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즐긴 바둑바위가 있다고 하나 현재는 보이지 않고, 전망대 끝으로 나아가면 경주시가지가 한폭의 그림으로 발 아래에 머물고 있어 해설사는 아름다운 경주의 풍경을 설명하면서 입에 침이 마른다.

 

<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주시가지" 전경 >

 

바위 가장자리 그늘에 앉자서 서라벌 들판을 휘감고 돌아가는 서강과 북강이 합수하여 형성강을 형성하면서 안강지역을 지나 포항 앞바다로 흘려가는 지형과 더불어, 경주 반월성 앞에 있는 남산과 망산의 전설, 낭산의 유래, 한국최초의 한문소설을 쓴 김시습씨의 금오신화 등 일화 등을 설명하면서 여러가지 야화 등을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유수같이 흘러간다. 

 

< 바둑바위 가장자리에서 "퀴즈" 도 풀어보면서 >

 

< 경주 "남산과 망산" 을 탄생시킨 설화 안내서 >

 

더불어 지금까지 해설한 중요 Point 마다 퀴즈를 내면서 정답을 맞춘 사람에게 선물도 주는 즐거운 시간도 가지지만 다른 사람들은 정답도 꼭꼭 집어내면서 잘도 맞추어 선물도 받아가는데, 꼭 공부 못하는 나에게는 한개도 못 맞추어 빈손으로 일어서야 한다.

이제는 문화 해설도 종착역으로 달려가면서 마지막 능선 따라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면 밑에서 출입이 불가능하다는 "상선암 마애대불" 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도착하여, 대불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 위쪽에서 바라보는 "상선암 마애대불" 모습 >

 

이 상선암 마애대불은 자연 암반에 새긴 불상으로 높이가 6m 정도이며 남산에서 2번째로 큰 불상으로써, 남산의 명소인 금오산을 바라보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불상이라고 한다.

직접 불상 앞에 서서 설명이 되지 못하고 먼곳에서 설명이 이루어지므로 눈으로 세심하게 보면서, 세부적인 설명이 되지 못함이 아쉽다고 한다.

 

< "상선암 마애대불" 을 당겨서 본 모습 >

 

이어 거대한 바위 옆으로 만들어진 길 따라 넘어가는데, 이 바위가 상사바위(想思岩)로써 남쪽 방향에는 거대한 바위 사이에 남근석과 비슷한 바위가 서 있다.

그 바위에는 산아당(産兒堂) 이라는 글씨와 더불어 가위와 칼자국을 남아있는데, 옛 신라 여인들이 이곳까지 올라와 아이를 잉태하게 하여 달라고 소원을 빈 장소라고 한다.

 

< 상사바위 남쪽에 있는 "산아당" 바위 모습 >

 

이 바위를 돌아서 동쪽면으로 돌아가면 거대한 상사바위의 뿌리에 도착하여 지는데, 이 바위의 크기가 높이 13m에 길이가 25m가 되는 거대한 바위로써 상사병이 걸린 사람이 이 바위에 와서 빌면 상사병이 치유되었다고 한다.  

이 상사바위 중간에 4각의 홈이 파여 있는데 이 바위 구멍으로 돌을 던져 넣으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하며, 그 홈 옆에 파손된 돌부처님 한 분이 놓여 있는데 이 부처님이 남산에서 제일 적은 석불이라고 한다.

 

< 마지막으로 "상사바위" 를 설명하는 해설사 > 

 

오후 1시 경 이 상사바위에 대한 해설을 끝으로 모든 탐방이 종결되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면서 지금까지 찍은 사진과 더불어 탐방 후기를 경주남산연구소 인터넷으로 올려주면 좋은 선물을 보내주겠다는 약속과 더불어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를 통하여 함께 찾아주는 경주 남산이 되어주기를 기원한다고 해설을 끝낸다.

최종적으로 소감이나 건의사항을 이야기 하라고 하여 내가 지금까지 올라오면서 자연사 변소가 너무나 잘 만들어져 있어, 국립공원 남산이 자연사 문화재 만큼 자연사 화장실 문화가 잘 꾸며져 있어 적당한 소나무 밑에 가서 알라서 해결하면 되므로 최상의 기분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소감을 Plus 시켜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화 해설사와 함께 출발 지점인 주차장으로 복귀하지만 우리 일행 3명은 남산 끝지점에 있는 "칠불암과 고위봉" 까지 종주하기 위하여 능선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데, 20여 분 정도 더 걸어가면 해발 468m "금오산(金鰲山)" 정상에 이른다.

 

< "금오산" 정상으로 가는 오솔길 >

 

< 경주 남산 "금오산" 정상석을 배경으로 >

 

금오산 정상에는 여러방향에서 올라온 많은 사람들이 머물면서 주위 조망을 구경하면 휴식 취하고 있으며, 일부 산행들은 그늘진 나무 아래서 점심을 먹고 있어 일행도 한 곳에 자리 잡고서 간단한 점심식사 시간을 가져본다.

다음 코스로 가기 위하여 에둘러 자리를 틀고 일어나 길을 제촉하지만 가는 길은 이내 임도로 들어서는데, 이 임도길은 산불예방 등 남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박정희대통령 시절 전국에 기생하는 깡패를 강제 동원하여 만든 도로라고 하는 조금 전 해설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임도길 따라 한참 걸어서 내려가면 도로의 커브길에 "용장사지" 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웅장사지 방향으로 들어가 조금 걸어가니 눈 앞에는 급경사의 내리막 길과 깊은 계곡을 형성하고 있으며 계곡 건너편 높은 봉우리가 보이고 있다.

산행 초입에서 받는 지도를 살펴보니 이 길은 "옹장골" 로 하여 바로 하산하는 길이라고 표시하고 있어, 더 많은 문화재를 탐방하기 위하여 다시 되돌아 와서 임도길로 계속하여 걷기로 한다.

 

< "용장골" 을 설명하는 안내문 >

 

임도길 따라 계속하여 걸어가면 이내 삼화령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는데, 이 삼화령의 거대한 바위 위에는 미륵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유실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미륵불이 있었다는 "삼화령" 바위 >

 

한편 도로 반대편에는 용장계곡을 나타내는 안내도가 붙어있으며 깊고 넓은 용장계곡과 고위봉 능선이 파노라마 같이 펼쳐지는데, 정말 가슴이 뻥 뚫리게 하는 용장계곡을 바라보고 있으니 기분이 매우 상쾌하여 진다.

전전일 지리산 구룡계곡을 산행한 후유증으로 인하여, 아파오는 다리로 저 머나먼 산맥까지 단숨에 산행이 가능하여 질까 하는 다소 걱정도 일어난다.

 

< 거대한 "용장계곡" 을 품고 있는 고위봉 능선 >

 

친구의 응원으로 한 커브의 길을 돌아가니 칠불암으로 가는 이정표가 나타나면서 오솔길로 길이 이어지는데, 칠불암 1.8Km 라는 거리만 생각하면서 한발 한발 앞으로 전진 하니까, 한 부부가 산을 내려오면서 여기서 칠불암 까지 약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리겠다고 한다.

 

< 임도에서 "칠불암" 으로 가는 이정표 >

 

심호흡을 하면서 천천히 고도를 상승하니 주변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이루어지면서 나무에서 뿜어나는 피톤치드가 가슴을 상쾌하게 하므로, 친구들과 많은 거리를 두고서 제일 뒤편에서 천천히 무아지경으로 걸어간다.

 

<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소나무 숲길" 을 걸으면서 >

 

한참 걸어가니 조망이 탁월한 한 능선에서 친구들과 다시 합류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몇 명의 젊은 친구들이 지나가므로 수인사와 함께 친구들과 합동 기념사진 한장을 부탁하여 본다.

 

< 처음으로 "합동" 사진을 찍으면서 >

 

30분 정도 더 앞으로 전진하면 또 다른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이 이정표에는 칠불암 0.35Km와 고위봉 1.5Km라는 표시가 붙어있으며, 주변에는 시야가 확 열리는 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 "칠불암" 3거리를 알리는 이정표 >

 

이 전망대에 올라서서 앞으로 내려다 보며는 계곡 건너편에는 칠불암을 품고 있는 암벽의 산맥이 흘려내리고 있으며, 그 뒤편에는 경주에서 울산으로 내려가는 국도와 더불어 토함산을 품고 있는 경주 불국사 주변의 아파트와 건물들이 희미하게 눈앞에 머문다.

 

< 칠불암 뒤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토함산과 불국사" 전경 >

 

오늘 경주로 출발 할 때 내가 나의 콘디션을 잘 알기 때문에 용장 마을에서 출발하여 이무기 능선을 이용하여 남산의 최고봉인 고위봉으로 울라가 칠불암까지 왕복하는 것으로 짧은 코스의 산행계획을 하면서 출발했던 것이, 중간에서 계획이 변경되어 다소 많이 돌아서 걸으므로 너무나 피곤이 누적된다.

막상 여기까지 와서 칠불암 관람을 포기하고 돌아서기에 너무 억울한 것 같지만, 막상 추가 350m 급경사의 언덕길을 내려 갈려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현재 시간이 오후 3시가 되어 칠불암을 왕복하는데 약 3-40분이 소요된다는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일몰 전 하산 종점인 용장 마을까지 충분하게 도착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동행하는 2명의 친구가 먼저 칠봉암으로 내려 가버린다.

비록 몸은 지쳐오지만 40분 정도 더 투자하자는 생각으로 천천히 암벽을 타고 내려가지만, 오직 다시 올라오는 생각이 머리 속에 맴돌아서 골치가 아파진다.

한번 생각한 것을 반복하지 못하는 나의 고집으로 한 10여 분 정도 내려서니 중간지점에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神仙岩 磨崖菩薩半跏像)" 이 있다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 천길 낭터리지 위에 있는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

 

낭터리지 바위틈을 돌아서 가면 절벽의 끝지점에 마애불이 나타나는데, 이곳의 마애불 앞에 불전함과 기도처를 놓지 못하여 마애불이 없는 안쪽 구석에 기도처가 만들어져 있어 한여인이 열심이 불공을 드리고 았다.

이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보물 제199호로써 칠불암 뒤편에서 곧 바로선 절벽 위에 새겨져 있는데, 마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곳에서 부처님이 반가상을 하고 있어 시야가 너무나 좋은 곳이다.

 

< 아주 넓은 시야를 보유하고 있는 "반가상" 모습 >

 

반가상을 돌아서 나와 다시 칠불암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여기에서도 계속적으로 급경사의 언덕길에 Rope를 의존하면서 10여분 정도 더 내려가면 "칠불암(七佛庵)" 마당에 도착한다.

마당 뒤편에 "칠불암 마애불상군(七佛庵 磨崖佛像群)" 이 나타나는데, 이 불상군은 2009년 9월 2일 보물 제200호에서 국보 제312호 승격되므로 한국에 있는 국보 중에 최근의 등제된 국보 중에 하나이다.

 

< 국보 제312호로 지정된 칠불암 "마애불상군" >

 

오늘 내가 기필코 칠불암을 찾은 이유는 칠불암의 자랑인 국보 제312호 칠불암 마애불상군을 구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심이 강한 대구 Y대학교 OO교수님이 종종 찾으면서 참선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한번 같이 템플 스테이(Tample stay)하여 보자고 하여도 아직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암자 마당 뒤편에 있는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경주 남산 봉화골 정상 가까이 있는 바위에 새긴 마애삼존불과 삼존불 앞에 있는 4각 바위의 각면에 새겨진 4방불을 합하여, 모두 7명의 불상이 새겨져 있어 칠불암 마애불상군이라고 한다. 

 

< 오른편에 바라보는 "3존불과 4방불" 모습 >

 

삼존불의 중앙에 있는 부처님은 미소가 가득 담긴 양감 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는 불상으로써 2중 연꽃 좌대에 앉아 있으나 좌우 협시불은 서서 있고, 앞에 있는 4각 바위에 새겨진 4방불 모두는 각자 연좌대에 앉은 형태의 자세로써 매우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 왼편에서 바라보는 "3존불과 4방불" 모습 >

 

마당을 돌아서 암자에 이르니 암자 방에서는 한국인의 주지 여성 한명이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고 있으며 그 옆에 백안의 외국인 여승 한명이 함께 시중들고 있는 모습 보고 있으니, 이제는 불교도 서양까지 전파하는 전세계의 종교로 부상되어지고 있다.

 

<단촐한 모습의 "칠불암" 암자 전경 >

 

마당끝 뜰 아래에 있는 샘으로 내려가 충분한 물을 마시고 나서 조금 전에 내려온 바위길로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이내 땀으로 번벅이 되어지면서 몇 번의 휴식을 가지면서 겨우 칠불암 3거리에 도착하여 심호흡하여 본다.

다시 원기를 찾으면서 천천히 걸어 1.5km 떨어진 고위봉 정상으로 향하는데, 여기서 고위봉 정상까지 가는 길을 거의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크게 힘이 들지 않아 걷기가 많이 수월하여 진다.    

약 3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되어 4시 정각 경주 남산의 최고봉인 해발 494m "고위봉" 정상에 도착하는데, 정상에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무덤 한기가 허물어져 가고 있으며 정상을 표시하는 정상석은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

 

< 고위봉 정상 한쪽 모서리에 서 있는 "정상석" >

 

정상에서 휴식을 가지면서 마지막 남은 물을 전부 소비하고 나서 천천히 하산길로 접어드는데, 하산길 입구에 "공원지킴터" 라는 건물이 잘 지어져 있지만 건물 내부에는 아무도 지키지 않는 빈집으로 남아있다.

 

< 고위봉 정상 언저리에 있는 "공원지킴이" 건물 >

 

잘 만들어진 나무테크 길 따라 한참 내려서면 "열반재" 에 도착되고, 이 고개에서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면 하산길은 더욱더 급경사의 내리막 길로 들어선다.

한 30분 정도 더 씨름하면 계곡에 이르면서 계곡의 끝자락에 거대한 바위가 나타나는데, 그 바위 앞에 새롭게 건축된 아담한 사찰 하나가 지어져 있으면서 이 사찰이 "관음사" 이라고 한다.

 

< 새롭게 건축한 "관음사" 전경 >

 

관음사에서 부터 아스팔트 길 따라 40분 정도 더 내려오면 산행의 종착 지점이 되는 용장 마을에 오후 5시 경에 도착되어 지면서 산행이 종결하지는데, 차량이 있는 삼릉 주차장까지 다시 걸어가는 것이 문제가 된다. 

 

< 산행의 종점에 있는 "용장 휴게소" > 

 

길 건너편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로 들어가 아이스케키를 구입하여 무더위를 식히고 있으니 한무리의 학생과 선생님이 도착하면서 우리와 같이 얼음과자를 사 먹으면서 관광버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 학생들은 진해고등학교 학생으로써 방학을 이용하여 문화재 탐방길에 나섰다고 한다.

인솔 선생님에게 삼릉주차장 까지 동승을 부탁하니 쾌히 승락하므로 차량을 이용하여 무사히 목적지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인솔 선생님 감사드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