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전라)

도선국사의 발자취가 서려있는 광양시 옥룡면에 있는 "옥룡사지와 운암사" 를 찾아보며.

용암2000 2014. 3. 20. 19:10

2014년 3월 15일 (토요일)

 

여수시 화정면에 있는 여자도 섬 트레킹을 끝내고,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산악회에서는 회원들에게 한 곳이라도 더 많은 관광지를 관람 시켜주기 위하여 광양 Toll gate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한국에서 최고의 동백꽃 화원으로 유명한 "옥룡사지(玉龍寺址)" 방향으로 안내한다.

광양 Toll gate 입구에서 광양시가지 외곽을 돌아 백운산 방향으로 들어가다가 백운산 초입에서 왼편 골짜기로 조금 올라가면 조그마한 도선교 다리를 만나는데, 이곳 다리에서 부터 옥룡사지로 가기 위해서는 2가지 방법이 있다.

도선교를 지나면서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직진하여 동백숲 군락지를 통과하여 옥룡사지로 올라가는 방법과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는 도선교에서 오른편 골짜기 운암사 방향으로 꺽어서 올라가 운암사 경내를 관람하고, 사찰 뒤편 동백숲을 통과하면서 야산 고개를 넘어 옥룡사지로 들어가는 2가지 방법으로 나누어진다.

나는 2007년 3월 11일 백운산 산행을 위하여 "진틀" 마을에서 백운산 정상과 매봉을 넘어 섬진강 변에 있는 광양시 다압면 고사리 매화마을 까지 종주하여 본 경험이 있었지만, 그 때 백운산 언저리에 이렇게 숨은 비경의 사찰과 사찰 터가 있었는지 몰랐다.

 

2. 운암사 관람.

Guide는 일반적으로 운암사와 옥룡사지를 동시에 관람하는 것이 일석이조(一石二鳥)라고 하면서 운암사 주차장에 하차시키고, 운암사 경내에는 잘 만들어진 화장실이 있다고 하면서 여수시 여자도에서 부터 여기까지 참았던 불순물을 완벽하게 청소하고 관람에 임하는 것이 좋겠다고 강조한다.

옥룡사는 도선국사가 세운 사찰인데, 그 때 수백명의 사문들이 도선국사의 법문을 듣고자 몰려 오므로 많은 인원을 동시에 수용하기 위하여 인근 지역에 "운암사(雲岩寺)" 라는 사찰을 추가로 건립하였다는 설(說)이 있다.

운암사는 1878년 화재로 소실되어 폐찰(廢刹)이 되었으나 1969년에 새롭게 대웅전(大雄殿) 건물을 건립하면서 부터 점진적으로 주변 부속 건물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는데, 현재 구례 화엄사의 말사이라고 한다. 

경내 입구 주차장에 잘 만들어진 변소와 더불어 3층의 공양간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경사면 따라 운암사로 들어가면 한국에서 제일 큰 황동 "약사여래불상" 이 2층 건물을 좌대(座臺)로 하여 동쪽 방향을 바라보고 서 있다.

 

< 운암사 주차장 내에 있는 "공양간과 화장실" 건물 >

 

한국에 있는 입상(立像)의 불상으로 제일 높은 것은 속리산 법주사 마당에 있는 불상(높이가 27m이고 지면에서의 총 높이가 33m) 이지만, 이곳 운암사의 불상(높이가 30m이고 지면에서의 총 높이가 40m)을 건립하고 나서 부터 속리산의 불상을 추월하였다고 한다.

 

< 한국에서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약사여래불상" >

   

이 불상 앞 양면으로 석등과 더불어 코끼리 조각품이 서 있으며 그 앞에 거대한 원형의 연못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 연못에는 수 많은 비단 잉어들이 유영하고 있는 모습이 한가로움이 묻어난다.

 

< 불상 앞에 있는 거대한 원형의 "연못" >

 

이 연못과 약사여래불상 중간에 있는 높은 돌계단으로 올라가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는데, 이 마당의 우측으로 정면 7칸에 측면 4칸의 관음전(觀音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좌측으로는 요사채 건물과 더불어 범종각(梵鐘閣)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 역사여래불상 사이로 올라가는 높은 "돌계단" >

 

< 연못 뒤편 축대 위에 있는 "관음전" > 

 

< 관음전 왼편에 있는 "요사채" 건물 >

 

< 요사채 건물 앞에 있는 "범종각" >

 

또 다시 중앙의 돌계단으로 올라가면 돌계단 끝지점에 명부전(冥府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명부전 건물 우측에 거대한 포대화상(布袋和尙)이 앉아 빙그레 웃음을 머금고 있으며 그 좌측편에는 삼성각(三聖閣) 건물이 자리한다.

 

< 관음전 뒤편 축대 위에 있는 "명부전" >

 

< 명부전 왼편에 있는 "포대화상" >

 

< 포대화상 왼편에 있는 "삼성각" >

 

포대화상 왼편에 있는 또 다른 돌계단으로 올라가면 운암사의 본찰 "대웅전(大雄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 대웅전 건물 왼편으로 비록 단칸의 건물이지만 고색의 조사전(祖師殿) 건물이 무게 감을 주면서 건립되어 있다.

 

< 운암사의 중심 본찰 "대웅전" 건물 >

 

< 대웅전의 왼편에 있는 "조사전" >

 

마지막으로 대웅전 뒤편 언덕 위에 동백나무 숲으로 감쌓고 있는 야산 언저리에 산신각(山神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운암사의 경내에는 입구 공양간에서 부터 마지막 산신각 건물까지 대부분의 건물이 웅장하여 일반인들의 마음을 압도하게 만든다.

 

< 사찰의 제일 뒤편에 있는 "산신각" >

 

이렇게 모든 건축물과 조각품들이 다른 사찰 보다 거대하게 건축되어진 이유는 아마 운암사에 거주하는 스님들이 거구의 풍채를 가진 분인지, 아니면 한국에서 제일 재력(財力)이 풍부한 스님이나 신도분이 운영하는 사찰인 것 같다.

 

< 거대한 건물 사이에 보이는 "약사여래불" >

 

이렇게 사찰의 외형(外形)만 크게한다도 하여 불심(佛心)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은 아닐 것인데... 

   

3. 옥룡사지 관람.

운암사의 제일 뒤편 산신각 건물에서 부터 동백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오솔길 따라 100m 정도 올라가면 동백나무로 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중앙에 2 Set의 부도탑과 비석이 서 있는데, 오른편에 있는 것은 "도선 선각국사(道詵 先覺國師)" 부도탑이고 왼편에 있는 것은 도선 선각국사의 수제자 "동진대사(洞眞大師)" 의 부도탑이라고 한다.

 

< 사찰 뒤편 "동백숲" 사이로 넘어가는 길 >

 

< 동백숲 사이에 있는 2 Set의 "부도탑과 비석" >

 

도선 선각국사는 신라말의 승려로서 서기 827년 영암 구림에서 탄생하였으며 성(姓)은 김씨로 왕가의 후예라는 설이 있으며, 도선은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에서 수행하다가 문성왕 8년(846년)에 곡성 동리산의 혜철을 찾아 "무설설 무법법(無說說 無法法)" 의 법문을 듣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또한 25세에 천도사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운봉산에 동굴을 파고 수도하기도 하였으며, 강원도 태백산에서 움막을 치고 고행하면서 여름 한철을 보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도선은 37세가 되던 해에 이곳 광양 백계산 언저리에 있는 옥룡사에 자리를 잡고 후학들을 지도하였는데, 언제나 수백명의 제자들이 모여들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으며 신라 헌강왕이 궁궐로 초빙하여 법문을 경청 할 정도로 명망이 높았다고 한다.

효공왕은 도선이 옥룡사에서 72세의 나이로 입적하자 이를 슬퍼하면서 "요공선사(了空禪師)" 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을 세웠는데, 그 탑의 이름을 "증성혜등탑((證聖慧燈塔)" 이라 하였다.

 

< 도선 선각국사의 "증성혜등탑" >

 

< 도산국사을 기리는 "비석" >

 

한편 고려의 숙종은 도선을 대선사(大禪師)로 추대하고 왕사(王師)를 추가하였으며 인종은 선각국사(先覺國師)로 추봉하였다고 하는데, 현재의 탑은 1920년 경 일제강점기 때 파손된 부도탑과 비석이 옥룡사지에서 출토한 유물을 토대로 2002년 11월에 복원한 석물이라고 한다.

이 부도탑에서 한 50m 정도 더 올라가면 아담한 능선 고개 마루에 도착하면 나무로 된 마루 휴식처가 만들어져 있는데, 이 휴식처 마루에는 통채로 떨어진 붉은색의 동백꽃이 마루 바닥에 흩들려져 있다.

 

< 부도탑에서 "능선 고개" 로 올라가는 길 >

 

< 능선 마루에 있는 "나무 마루" 휴식처 >

 

< 나무 마루에 떨어진 "동백꽃" >

 

이 고개에서 반대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백운산에서 뻗어내린 지맥이면서 해발 505m "백계산(白鷄山)" 의 능선이 병풍과 같이 감쌓고 있는 중간지점에 거대한 옥룡사지를 만나는데, 이 사찰 터에는 신라 경문왕 4년(서기864년) 도선국사가 세운 "옥룡사(玉龍寺)" 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 고개 마루에 있는 "안내 이정표" >

 

< 고개 마루 아래에 있는 "옥룡사지" >

 

전설에 의하면 이 사찰 터에는 큰 연못이 있었는데, 이 연못에 9 마리의 용이 살면서 수시로 사람을 괴롭게 하므로 이에 도선국사는 용을 몰아냈는데, 유독 백용(白龍) 만이 말을 듣지 않자 지팡이로 용의 눈을 멀게 하고 연못의 물을 끓게 하여 쫓아낸 뒤 숯으로 절터를 다지면서 사찰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고 절을 세울 때 땅의 기운이 약한 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사찰 주위에 동백나무 숲을 가꾸었으며, 아울러 제자들의 심신수련을 위하여 녹차 밭도 함께 일구었다는 일화가 내려오고 있다.

사찰은 조선 후기 화재로 인하여 완전히 소실되므로 터만 남아 있었는데, 광양시는 1996년 부터 5차에 걸쳐 발굴 조사하여 건물 터와 더불어 명문비 조각 등 90여 점의 유물을 찾았고 더불어 도선국사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과 관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 5차의 발굴 때 마다 출토 되어진 "유물" 설명서 >

 

옥룡사지 주변으로 약 7ha 넓이에 3-500년의 수령을 가진 동백나무 7천 여 그루가 군락지를 형성하면서 아름다운 동백꽃을 연속적으로 피우고 있는데, 한국에서 단일 군락지로 최고의 수량이라고 한다.

 

< 약 7천 여 그루 "동백나무" 에서 피고지는 꽃 >                         

 

< 동백나무로 둘려 쌓여 있는 "옥룡사지" 뒤면 >

 

< 동백나무로 둘려 쌓여 있는 "옥룡사지" 앞면 >

 

< "옥룡사지" 를 돌아보는 관광객 >

 

특히 이 옥룡사지에 들어서면 풍수지리(風水地理)에 전연 무지한 사람도 얼마나 포근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는데, 사찰 터 중앙에 머물고 있으며 바람 한점 일어나지 않은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현재 사찰 공터에는 5차에 걸처 발굴한 내역에 대한 안내문과 더불어 고묵의 나무, 감로수가 흘러내리는 우물, 용이 살았다는 작은 연못, 스님이 수도하였다는 작은 토굴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백 숲속으로 거닐 수 있는 "도선국사 참선길" 이 잘 만들어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거닐고 있는 옥룡사지의 동백꽃 터널이 된다.

 

< 옥룡사지 내에 있는 "고목 나무" >

 

< 옥룡사지 내에 있는 "우물" >

 

< 옥룡사지 내에 있는 "연못" >

 

< 스님들이 수도하는 "토굴" >

 

< 옥룡사지 내에 있는 "동백나무" >

 

< 동백나무 사이로 만들어진 "도선국사 참선길" > 

 

< 떨어진 "동백꽃" 을 배경으로 >

 

총 한시간의 주어진 시간으로 인하여 동백 숲속으로 만들어진 힐링(Healing)의 트레킹 길로 걸어보지도 못하고 왔던 길로 되돌서 가야 하는데, 언제 개인적으로 충분한 시간을 만들어 산책하는 여유를 가지고 돌아보겠다는 마음의 결심을 하면서 집으로 달려간다.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