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기계과 행사.(전라도)

2박3일 동안 경북대학교 기계과 동문과 함께 "전라도 지역" 에 있는 관광지를 돌아보며.(3)

용암2000 2016. 7. 13. 21:19

2. 둘째날.(7월 2일 : 토요일 오후)

 

4). 조계산이 품고 있는 선암사 관람.

둘째날 오전 동안 구례 지역에 있는 관광지를 관람하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구례읍 중심지에 있으면서 육회 비빔밥으로 유명한 "평화식당" 을 찾아간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으므로 구례군의 인접지역이 되는 화순군으로 들어가 화순군의 대표적 관광지가 되는 "화순적벽(和順赤壁)" 을 구경하기로 한다.

승용차는 구레읍을 관통하면서 흘려내리는 섬진강 상류의 강변 따라 만들어져 있는 17번 국도를 이용하여 달려 가다가 적당한 곳으로 들어가 점심식사 시간을 가지도록 하는데, 아무리 운전하면서 가도 재첩국 식당을 제외하고 적당한 식당을 만나지 못한다.

계속하여 식당을 찾아 운전하면서 구례군에서 순천시로 넘어가 다시 화순군으로 들어가는 22번 국도와의 만나는 학구3거리 지점에 도착하고, 3거리 코너에 있는 삼거리가든 식당으로 들어가 한마리의 오리 불고기와 더불어 맛 있는 점심식사 시간을 가진다.

이곳 학구3거리는 전라남도에서 교통사고가 제일 많이 발생하는 지역인데, 이 지역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많은 사연을 남기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 세모그룹의 전회장이면서 구원파 교주가 되는 "유병언" 씨 시신이 발견되어진 장소이라고도 한다.

그러고 화순방향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 되는 22번 국도를 이용하여 한 20분 정도 달려가면 승주읍에 도착하면서 읍의 중심지에는 3거리 방향으로 나누어지는 로타리가 자리하고 있는데, 로타리 중앙에 있는 이정표에는 "선암사(仙巖寺)" 가 8Km 전방에 있다는 거리를 표시하고 있다.

오늘 운전기사는 다른 동문들과 이야기 함과 동시에 선암사 방향으로 운전하면서 들어가는데, 오직 나는 조계산 종주산행과 더불어 몇 차례 사찰을 방문한 경험에 의거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지만 중과부족 현상으로 선암사로 들어가기로 한다.

선암사 입구에 있는 상사호를 끼면서 한 10여 분 정도 달려가면 선암사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입구에서 주차비를 정산 함과 동시에 주차장으로 이동하여 주차한다.

주차장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는 매표소로 들어가 보는데, 사찰에서는 경로인에게는 신분증의 제시로 무료 입장이 가능하게 한다.

매표소를 지나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오솔길 따라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이곳 선암사도 2009년 12월 23일 조계산 종주를 위하여 선암사에서 부터 송광사 까지 산행을 통하여 기록한 탐방기로 대신하고자 한다. 

 

< "선암사" 의 조감도 >

 

< "선암사" 로 들어가는 길 >

 

< 선암사로 들어가는 길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는 "부도탑" >

 

< 선암사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처음 만나는 "승선교" >

 

< 두번째로 만나는 보물 제400호 "승선교" >

 

< 승선교를 지나면서 만나는 "강선루" >

 

< 선암사 경내 입구에 있는 찻집 "선각당" >

 

< 선각당 앞에 있는 작은 "연못" >

 

< 선암사의 첫관문이 되는 "일주문" >

 

< 선암사 두번째 관문이 되는 "범종루" >

 

< 선암사의 "성보박물관" >

 

< 선암사 재래식 화장실이 되는 "뒤깐" >

 

< 선암사의 "만세루" >

 

<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 >

 

< 대웅전 앞 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3층석탑" >

 

< 대웅전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종무소" >

 

< 종무소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무량수전" >

 

< 무량수전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삼성각" >

 

< 대웅전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팔상전" >

 

< 사찰 제일 뒤편 "조계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길 >

 

5). 화순의 명소가 되는 물염적벽을 구경하면서.

비가 내리는 선암사를 뒤로 하고 승용차는 다시 승주읍으로 나와 화순으로 가는 22번 국도 따라 조금 가다가 승용차 네비게이션은 호남고속도로 승주 Toll gate로 진입하라는 명령으로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다음 Toll gate가 되는 주암 IC에서 내려 다시 22번 국도를 달리게 한다.

22번 국도에서 한 20분 정도 달려가면 화순군 동복면사무소에 도착하고, 동복면사무소에서 다시 국도15번과 더불어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조금 달려가면 광주광역시의 상수도 보호구역이 되는 "동복호" 상류지역에 도착한다.

호수 따라 고불고불한 길을 넘어서 가면 화순군의 또 다른 면사무소가 되는 이서면에 도착하는데, 이서면에 있는 우체국 3거리에서 규남박물관 방향으로 들어가면 폐교가 되어진 초등학교 건물에 "이서커뮤니티센터" 라는 국악 연구소로 사용하고 있다.

이서커뮤니티센터 건물 정문 앞에 동복호 주변에 펼쳐지고 있는 적벽의 관광을 위하여 마이크로 버스가 출발하는 장소이다.

화순군이 자랑하면서 조선의 10경 중 하나가 되는 적벽은 동복호로 인하여 4곳(보산적벽, 노루목적벽, 물염적벽, 창랑적벽)으로 나누어지면서 관광이 가능하게 한다.

적벽의 관광은 광주시민들이 사용하는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인하여 거의 30년 동안 출입이 통제 되었다가 2014년 10월 23일 부터 부분 개통이 되어졌다고 한다.

그 중에서 물염적벽과 창랑적벽은 상시 개방이 되지만, 나머지 2개가 되는 보산적벽과 노루목 적벽은 2주일 전 인터넷 예약자만 출입이 가능하게 한다.

인터넷 예약자도 1주일에 3회(수, 토, 일)의 출입과 동시에 출입 회수 마다 오전 1회 및 오후 2회 등 일일 3회만 방문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서커뮤니티센터에서 어느 방향으로 적벽이 있는지 물어볼려고 하여도 내리는 비로 인하여 움직이는 사람이 한명도 없어 적벽 관광은 포기 함과 동시에 무작정 화순온천 방향으로 달려간다.

호수를 끼고 돌아가는 길의 언덕 위에 한개의 정자가 보이므로 그 정자로 올라가 동복호를 내려보는데, 우리가 찾는 적벽이 아닌 것 같다.

 

< 정자에서 내려보는 "동복호" >

 

어찌하던 오늘 밤 숙소는 화순온천 인근에 있는 콘도나 모텔을 이용하겠다는 심정으로 온천 방향으로 한참을 달려가니 물염적벽이 있다는 이정표가 보이고, 이정표 따라 소로(小路)의 길 따라 조금 들어가면 물염적벽을 구경하기 위한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언덕 위로 올라가면 잘 조성하고 있는 공원이 나타나는데, 공원의 최상부에는 "물염정(勿染亭)" 이라는 정자가 자리하고 있으면서 주변으로 김삿갓 석상과 더불어 많은 시비가 만들어져 있다.

 

< 주차장에서 "물염정" 으로 올라가는 길 >

 

< 동산의 정점에 자리하고 있는 "물염정" >

 

< 물염정 주변 동산에 자리하고 있는 "김삿갓" 시비 >

 

< 난고 "김삿갓" 의 석상 >

 

< "김삿갓" 이 쓴 시비 >

 

이 시비 앞에 동복호의 상부가 되는 호수와 더불어 물의 반대편에 물염적벽이 펼쳐지고 있는데, 이 물염적벽을 감상할 수 있는 가장자리에 물염적벽에 대한 설명문이 붙어있다.

그 설명문을 기술하여 보면,

"적벽은 장동 응회암과 적벽 응회암의 백악기 퇴적층이 층리를 이루고, 이를 조화롭게 덮고 있는 식생들로 인하여 그 풍경이 중국 양쯔강 상류의 적벽과 비슷하다고 하여 이름을 지였다고 한다.

퇴적암 층은 세립사암, 실트스톤, 이암 또는 응회질 사암이 시루떡 처럼 얇게 교대로 쌓여 형성 되었으며 이곳에서는 정단층에 의해 지층의 어긋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1982년 10월 15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되었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 물염정 가장자리에서 바라보는 "물염적벽" >

 

< 확대하여 보는 "물염적벽" >

 

이곳 화순적벽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방랑시인 김삿갓이 화순적벽의 아름다운 절경에 감탄하여 세번이나 방문하였고, 또한 이곳에서 13년 간 머무르다가 물염적벽 인접지역에 있는 동복면 구암마을에서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김삿갓 본명은 김병연으로 그의 나이 23세가 되던 해 강원도 영월군 동헌에서 백일장이 열리므로 그 때 장원으로 급제를 하였는데, 장원의 기쁨을 어머니에게 빨리 알리고자 집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그러고 시제(詩題)에 나오는 내용을 이야기 하였는데, 어머니는 묵묵부답으로 눈물만 흘리고 있어 그 내용을 알고 보니 김병연이 쓴 시제로 추상같이 꾸짖었던 김익순씨가 김병연 자신의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한다.

선천부사 이었던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항복을 하였으므로 난(亂)이 평정되고 나서 국문으로 처형이 되면서 집안은 몰락하고, 그의 식솔들은 안동김씨 라는 세도의 덕분으로 목숨을 연명하여 타지에서 숨어 살아가야 하는 꼴이 되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김병연은 그날 부터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의 길로 들어가는데, "술 한잔에 시(詩)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이라는 일생으로 살아가다가 이곳 화순적벽에서 이름도 버리고 김삿갓이라는 이름으로 생을 마감한다.

이렇게 슬픈 사연이 있는 물염적벽 앞에 있는 동산에 "금성나씨(錦城羅氏)" 들이 김삿갓의 동상과 함께 많은 시비(詩碑)를 만들어서 그분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고 하는데, 나주에서 물염정을 찾아왔던 후손 한명이 그 사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6). 곡성의 명소 기차마을 지나면서.

물염적벽을 관람하고 나서 숙소를 찾기 위하여 물염적벽에서 한 5분 거리에 있는 화순온천 지구로 들어가 보는데, 온천지구 내에는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비싼 거대한 아쿠아나와 더불어 금호 화순리조트가 자리하면서 다소 저럼한 숙소는 하나도 없어 실업자 주머니 사정으로 다른 장소를 찾기로 한다. 

이제는 숙소를 찾아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서리다가 남원시로 들어가는 것이 내일 집으로 가는 것에 대비하여 다소 운전의 부담이 적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호남고속도로 옥과 Toll gate를 진입한다.

이내 승용차는 곡성 Toll gate를 벗어나 곡성읍 방향으로 달려가는데, 곡성시가지를 통과하면서 2014년 9월 10일 추석 년휴 마지막 날 가족과 함께 방문한 곡성 기차마을이 생각이 난다.

아울러 최근 기차마을 축제를 위하여 밤 늦게 까지 야간 업무를 하다가 광주광역시에 있는 아파트 정문에 도착한 곡성군의 한 공무원이 집에서 마중나온 아내과 자녀에게 달려갔다.

미침 자살 할려고 옥상에서 뛰어 내리는 학생과 충돌하여 날벼락으로 사망한 지방 공무원의 애환이 서려있는 기차마을 정원이 더욱더 생각나게 만든다. 

그래서 다소 늦은 시간이지만 기차마을 안에 있는 기차의 열차를 연결하여 만든 레일 폔션에서 하루밤 유숙하는 것도 운치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옛 곡성역으로 달려가 입장을 할려고 하니, 벌써 입장이 종료가 되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출입문을 지키는 아저씨에게 사정하여 폔션 사무실 까지 갔다 오겠다는 억지를 쓰면서 사잇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 받아 공원으로 들어가 본다.

나는 벌써 장미정원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구경한 경험이 있으므로, 동문들에게 오솔길을 이탈하여 장미정원 내부로 관람하라고 하면서 나는 레일 폔션을 운영하는 사무실로 들어가 본다.

폔션을 관리하는 아저씨 한분이 이곳 기차마을 레일 폔션의 주말 숙박은 적어도 한달 전 예약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금일은 장마비가 내리는 날이라 취소한 팀이 없는지 확인 부탁하니 단체로 예약이 이루어지면서 전원 참석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으로 기차마을을 떠나기로 하는데, 이곳 곡성의 대표적 기차마을 기행문도 나의 블로그에 그 내용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탐방기를 대신하고자 한다.

 

< 곡성군에 자리하고 있는 "관광지" 전도 >

 

< 곡성의 옛 기차역으로 만들어져 있는 "기차마을" 조감도 > 

 

< 구 "곡성역" 의 입구 >

 

< 구 곡성역 내에 있는 열차 "레일 폔션" >

 

7). 남원에 있는 새집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즐기면서,

아무래도 큰 도시로 가서 숙소를 정하는 것이 다소 수월하겠다는 생각으로 곡성군과 인접하게 있는 17번 국도를 이용하여 남원시에 도착하는데, 먼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하여 남원의 명품이 되는 추어탕을 먹어보기로 한다.

한 동문이 카톡으로 칭찬하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광한루원 서문 앞에 있는 식당을 찾아 갔으나 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크게 실망을 가지고, 남원을 방문할 때 마다 내가 단골로 찾아가는 "새집" 식당으로 안내한다. 

 

< 남원에서 추어탕의 원조가 되는 "새집" 식당 >

 

새집은 남원에서 유명한 식당이면서 1959년 부터 50여 년의 전통을 가지면서 남원 추어탕의 원조가 되는 전문집인데, 집의 이름을 새집으로 하는 것은 "억새풀집" 의 순수한 우리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나 식당을 이전하면서 새롭게 건축한 건물의 이름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금일 저녁식사는 평소에 먹었던 남원식 추어탕 보다 4명이 반주와 함께 식사가 가능하게 하는 "새집정식" 을 주문하기로 하는데, 새집정식 한 Set에 100.000원 가격을 가지는 식사가 된다.

 

< "새집정식" 으로 먼저 나온 추어숙회 Set 메뉴 >

 

< "새집정식" 을 즐기는 동문 >

 

< 마지막으로 나오는 "추어탕" >

 

8). 숙소를 찾아서.

부른 배를 앉고 숙소를 찾아 나서는데, 아무래도 숙소는 새롭게 도시가 형성하고 있는 신도시 주변에 있는 숙소가 저렴하면서 다소 깨끗하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그래서 남원시가지를 가로 질려 관통하고 있는 요천(蓼川)의 춘향교를 지나 춘향테마파크 입구에서 강변 따라 조금 올라가면 리버호텔 옆에 있는 "메이드모텔" 에서 하룻밤 유숙하기로 한다. - 둘째날 오후 관광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