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기계과 행사.(전라도)

몇 번이나 방문하여도 다시 찾아가고 싶은 곳으로 진안군이 자랑하는 "마이산 탑사" 관람.

용암2000 2017. 3. 17. 20:06
2017년 3월 1일. (수요일)
관촉사 주차장에서 서울과 대전 동문과 헤어짐을 가지고 나서 영남지역으로 내려가는 4대의 승용차는 각자 출발하여 마이산 남부주차장에 도착하는데, 포항으로 내려가는 한 동문부부는 고속도로 진입 방향의 잘못으로 바로 포항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함께하고 있는 동문들은 지금 까지 고속도로를 통과하면서 먼 발취에서 마이산 모습을 보았지만 막상 탑사를 구경하지 못하였다고 하지만, 나는 이곳 함미산성에서 광대봉을 지나 암마이봉 까지 종주한 경함과 더불어 탑사를 여러분 방문한 경험이 있는 관광지가 된다.
그래서 현재의 시간으로 산행은 불가능하고 탑사 까지 왕복하기로 하는데, 먼저 마이산 남부주차장에 집결한 7명의 동문은 금당사 일주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조금 들어가면 먼저 매표소를 통과하지만 이곳도 경로(敬老) 혜택으로 무료 입장이 가능하게 한다. 


< 마이산 남부 주차장과 함께 하고 있는 금당사 "일주문" >

 

매표소에서 부터 양쪽으로 고목의 벚나무와 함께 상가 건물이 도열하고 있는데, 각 상가에는 하산하고 있는 많은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산주를 즐기는 모습과 더불어 탑사를 관람하고 내려오는 관광객으로 인하여 다소 번잡한 거리이다.

 

< 매표소에서 부터 도로 양쪽으로 도열하고 있는 "상가" 거리 >

 

상가에서 판매하고 있는 기념품을 구경하면서 조금 올라가면 왼편으로 "금당사(金堂寺)" 라는 사찰을 만나는데, 금당사는 통일신라 시대 현덕왕 6년(814년)에 중국에서 건너온 혜감(惠鑑) 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金山寺)" 의 말사가 된다.

 

< 상가 거리 끝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금당사" 전경 >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금당사는 마이산 계곡에 있는 탑사의 아성에 묻혀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찰이지만, 약 300년 전에 건립한 대웅보전(大雄寶殿) 건물을 중심으로 많은 부속 건물을 신축 및 개축하여 오늘에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사찰이 된다.

 

< 주불을 모시고 있는 금당사 "대웅보전" >

 

마이산을 종주하면 광대봉에서 한참 능선길 따라 암마이봉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한 야산의 봉우리 바로 아래 자연동굴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자연동굴 입구에 법당을 건립하여 고금당(古金堂)이라고 불려지는 금당사 암자가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 건물 전체를 금색으로 도색하므로 먼 곳에서도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 금당사의 암자가 되는 "고금당" >


금당사에서 부터 도로 양쪽으로 심어진 고목의 벚나무가 촘촘하게 도열하고 있는데, 봄철에는 많은 상춘객들이 찾아들면서 여기가 제2의 진해 시가지와 같이 번잡한 거리가 되지만 아직도 삭막한 나무가지를 보면서 동문들과 함께 이야기 꽃을 피우면서 걸어본다.

 

< 고목의 "벚나무" 가 도열하고 있는 탑사 길 >

 

한참을 걸어가면 거대한 호수 가장자리에 도착하여 지는데, 호수의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암마이봉 남쪽사면의 바위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풍경과 호수에 떠 있는 수 많은 오리배들이 봄소식을 기다리면서 새롭게 단장하고 있는 모습도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 호수와 함께 하고 있는 "암마이봉" >

 

문제는 호수에 반사하고 있는 암마이봉의 자태는 마치 거대한 공룡 알이 찍어 누른 것 같이 구멍이 숭숭 박혀 있어 매우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으면서 바위가 마치 콘크리트 더미 처럼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형상을 "타포니 현상" 이라고 한다.

 

< "타포니" 현상을 하고 있는 암마이봉 >

 

이렇게 타포니를 형성하고 있는 바위는 사질역암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모래와 자갈이 섞여 굳은 바위로써 사질역암은 지구상에서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암석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닷 속이 아닌 내륙 지방인 이곳에 어떻게 역암층이 형성되었을까 하는 것이 주목 할 만한 가치가 있는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지금의 탑사 자리가 옛날에는 용궁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실제로 마이산 정상 부근에는 7천만 년 전에 살았다고 하는 쏘가리를 닮은 민물고기와 조개류 화석이 발견 되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화석들이 발굴 되는 것은 지금의 마이산 자리가 먼 옛날에는 호수나 강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백악기에 이르러 지층이 솟아 오름으로써 지금의 고지대가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하는데, 마이산 역암은 기존에 있던 화강암질이 백악기 말 주변의 화강암류 분출에 따라 솟아오른 후 그 전면의 요지에 쇄설물이 퇴적되어 이루어진 것 이라고 본다.

호수를 지나 조금 더 내부로 올라가면 2개의 입석이 서 있는 탑사 입구에 도착하고, 왼편으로 거대한 암마이봉의 수직 절벽을 형성하고 있으며 오른편에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가와 더불어 식당이 자리하고 있다.

 

< "탑사" 를 알리는 입석 >

 

입석의 바로 뒤편 암마이봉 경사면에 약수물이 꽐꽐 흐르고 있는데, 주변에는 많은 조롱박과 더불어 약수물의 검사표가 붙어 있으면서 이곳 약수물이 전국 최고의 알카리성 물이라는 안내문으로 일단 한 바가지 물을 떠서 갈증을 해소시킨다. 

 

< 탑사의 명물이 되는 "약수물" >

 

< 약수물을 홍보하고 있는 "설명문" > 

 

그러고 나서 천천히 탑사(塔寺)를 구경하기 시작하는데, 암마이봉과 숫마이봉을 형성하고 있는 좁은 계곡에서 자리하고 탑사 주변에 저렇게 많은 돌탑들을 누가 쌓았는지 거의 세계 7대 불가사에 속하는 수준의 풍경이 펼쳐지므로 나를 몇 번이나 방문하게 만드는 사찰이 된다.

 

< 다시 대면하여 보는 "탑사" 전경 >

 

마이산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넓은 산맥의 중심지에 자리하면서 그 모양이 마치 말(馬)의 귀(耳) 모양으로 생긴 2개의 봉우리를 말하는데,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산이라 하겠다.

 

< 마이산 탑사를 알리는 "입석" >

 

동쪽에 솟아있는 숫마이봉은 해발 667m가 되고 서쪽에 솟아있는 암마이봉은 673m가 되는 산으로 마이산 전체가 바위로 되어 있으나 관목 및 침엽수, 활엽수 등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으면서 주변으로 화엄굴, 탑군, 은수사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게 하는 마이산 석탑은 1885년 입산하여 솔잎 등으로 생식을 하면서 수도한 "이갑룡(李甲龍)" 처사가 30여 년 동안 혼자서 공을 들어 쌓아 올린 것이라고 한다.

이 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는 1860년 3월 25일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태어난 효령대군의 16대 후손으로써, 수행을 위하여 25세 때 마이산으로 들어와 수도 하던 중 석탑을 쌓아라 하는 신의 계시를 받는다.

이 처사는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전봉준 선생님이 처행되는 등 시대적으로 뒤숭숭하였던 어두운 세속을 한탄하며 백성을 구하겠다는 구국 일념으로 기도로써 밤을 보내고 낮에는 탑을 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곳 탑사에는 당시에 120여 기의 탑들이 세워져 있었지만 현재는 80여 기만 남아 있는데, 대부분 주변의 천연석으로 쌓았지만 천지탑 등 주요 탑들은 전국 팔도의 명산에서 가져온 돌들이 한두개씩 들어가 신묘한 정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 마이산에 사용한 돌은 일반적으로 섬세하게 가공된 돌로 쌓아진 신라 왕조의 탑과는 차별나게 가공되지 않은 천연석 그대로 이용한 돌로 "막돌 허튼식" 이라는 조형 방식으로 음양의 이치와 팔진도법(八陣圖法)이 적용된 탑이라 하겠다.

탑사 내의 탑군을 이루는 탑들은 천지탑, 오방탑, 약사탑, 월광탑, 일광탑, 중앙탑(일명 : 흔들탑)과 이 탑들을 보호하는 주변의 신장탑들 처럼 각자의 이름과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심한 바람에도 약간 흔들릴 뿐 무너지지 않는 탑에서 경이로움을 맛볼 수 있고, 특히 겨울철 탑단에 정화수 한사발을 올려놓고 성심으로 기도하면 역 고드름이 하늘을 향해 자라나는 신묘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탑사 내에 아직도 해석이 전연 불가능한 두권의 서책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당시에는 이갑룡 처사가 산신들에게 계시를 받아 적은 서른권 분량의 서책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책이라고 한다.

이러한 탑사 내력을 읽어 보고 나서 탑사를 구경하기 위하여 입구로 들어가면 먼저 이갑룡 처사의 앉아 있는 동상을 만나고, 그 뒤편으로 이곳이 섬진강의 발원지라는 샘이 자리하고 있다.

 

< 탑사의 탑을 쌓은 "이갑용" 처사 동상 >

 

< 탑사의 중심지에 있으면서 "섬진강" 발원지가 되는 샘 >

 

여기에서 부터 수 많은 탑 사이로 만들어져 있는 사잇길 따라 한계단 한계단 올라서면서 쌓여 있는 탑을 관찰하여 보면 정말 신비로움이 극치에 이루는 공법으로 돌들이 상호 지탱하고 있는데, 큰 돌과 돌 사이에 괸돌들이 본연의 역활을 하고 있는 모습이 극치의 조화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탑 주변으로 다수의 정화수를 담은 물그릇이 놓여 있는데, 지금은 날씨가 풀려서 얼음이 얼지 않으므로 그릇 가득하게 물만 담겨 있지만 추운 겨울에 오면 계곡의 골 바람으로 역 고드름이 형성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왼편으로 이어지는 돌계단 따라 위로 올라가면 좌측에는 영신각(靈神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그 위쪽으로 탑사에서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암마이봉을 배경으로 건립되어 있는 "영신각" >

 

< 돌탑의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는 "대웅전" >

 

 < 대웅전 내에 모시고 있는 "석가모니불" >

 

대웅전 건물에서 다시 왼편으로 나와 뒤편으로 올라가면 천지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천지탑 하부는 경사가 완만하게 하나의 기단부를 형성하다가 중간지점 까지 둘려쌓기 기법으로 기울기를 이루어 지도록 하고 있다.

 

< 대웅전 옆 "천지탑" 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

 

< 신비스러운 공법으로 쌓은 "천지탑" >

 

중간지점 부터 두 개로 나누어 쌓으면서 위로 갈수록 좁아지게 하여 윗부분은 비슷한 크기의 돌을 10개 이상 올려 높이가 13.5m에 달하는데, 이 모든 돌탑을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지탑 왼편에는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공간과 더불어 이 공간에서 내려보는 탑사의 전경은 신비에 가까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데, 어떻게 한 인간이 이렇게 정교한 탑을 완성하였는지 이해가 불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 천지탑에서 내려보는 "탑사" 전경 >

 

탑사에서 내려와 탑사 마당의 오른편 구석으로 "은수사(銀水寺)" 라는 사찰이 있다는 이정표 따라 한 모퉁이의 야산으로 올라가면 탑사 후문 매표소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 매표소에는 숫마이봉 뒤편에 있는 마이산 북부주차장에서 올라와 고개를 넘어 탑사를 관람 할려고 하는 방문객들에게 입장료를 징수하는 장소가 된다. 

 

< 탑사에서 "은수사" 로 올라가는 초입 길 >

 

 < "은수사"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매표소 >

 

< 북부주차장에서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로 넘어오는 "고개길" >

 

매표소를 통과하면 은수사 경내에 도착하는데, 은수사는 이갑룡 처사가 탑사의 탑을 쌓을 동안 기거하였던 사찰 정도로 알려져 있는 절이지만 실제적로 은수사는 역사적 배경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찰이면서 탑사의 그늘에 가려 대부분 관광객은 탑사만 관람하고 돌아가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 숫마이봉 품에 자리하고 있는 "은수사" 전경 >

 

은수사는 고려의 장수 이성계가 왕조의 꿈을 꾸고 나서 기도를 드린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도 중에 마신 샘물(水)이 은(銀) 같이 맑다고 하여 은수사(銀水寺)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탑사는 암마이봉에 기대어 건립되어 있지만 은수사는 숫마이봉이 품고 있는 사찰로 풍경이 매우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경내에는 2가지의 천연기념물을 보유하고 있는데, 두가지 천연기념물은 제386호 "청실배나무" 및 제380호 "줄사철나무" 군락지가 된다.

경내로 진입하면 먼저 넓은 마당 가장자리에 거대한 청실배나무 한그루가 자리하고 있는데, 청실배나무는 높이가 18m에 가슴높이 둘레가 약 3m가 된다.

나무가지는 동서남북 각기 대략 7 - 9m 가량 뻗어 있는데, 몸통 줄기가 도중에 네 갈래로 갈려졌다가 다시 합쳐지는 연리지 나무 모습을 하고 있다. 

청실배는 산 돌배나무의 변종으로 장미과에 속하며 잎은 타원형으로 그 가장자리에 톱니 같이 거칠다고 하지만 현재는 잎이 다 떨어지고 삭막한 가지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도 탑사와 같이 겨울철 역 고드름이 솟아오르는 진 풍경을 보기 위하여 아직도 나무 밑에 정화수를 떠놓은 물 그릇들이 가득하게 자리하고 있다.  

 

< 은수사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청실배나무" >

 

이곳 마당에서 사찰 건물 쪽으로 이동하면 건물의 축대에 기생하고 있는 줄사철나무 약 30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노박덩굴과에 속하는 줄사철나무는 담벼락 등에서 붙어살고 있는 나무이다.

나무의 높이가 약 3 -7m가 되고, 둘레가 6 - 38Cm 정도 되면서 이곳 은수사가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줄사철나무의 최북단이 되어진다고 한다.

 

< 은수사 돌담에 붙어살고 있는 "줄사철나무" >

 

이렇게 천연기념물을 구경하고 나서 경내로 진입하면 먼저 "대적광전(大寂光殿)" 을 만나는데,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신불로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는 건물이라 하겠다.

 

<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는 "대적광전" >

 

< 숫마이봉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는 "대적광전" >

 

대적광전 오른편 일단의 축대 위로 "무량광전(無量光殿)" 이 자리하고 있는데, 무량광전에서 중앙에 모시는 주불은 아미타불이 되고 좌우 협신불로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시고 있는 건물이다.

 

 <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는 "무량광전" >

 

이 밖에 은수사에는 산신당(山神堂), 종각, 마이산신각, 요사채, 약수물 등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경내의 제일 뒤편이 되면서 숫마이봉의 뿌리가 되는 바위 밑으로 올라가면 마이산신제단(馬耳山神祭壇)이 자리하고 있다.

 

< 산신을 모시고 있는 "산신당" 건물 >

 

< 또 다른 법당이 되는 "마이산신각" >

 

이곳 마이산신제단에는 태조 이성계가 창업의 천명을 받은 성스러운 영산(靈山)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태종 임금이 남행하여 제사(祭祀)를 올린 제단이라고 한다.

 

< 숫마이봉 아래에 있는 "마이산신제단" >

 

< "마이산신제단" 을 설명하는 안내문 >

 

이렇게 은수사도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구경을 끝내고 마이산을 떠나기로 하는데, 오늘 동문들은 고속도로를 지나가면서 보았던 마이산에서 속살의 마이산 진면목을 보아 매우 흡족한 관람이 되었다고 자화자찬을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