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행의 개요 : 2009년 7월 31일에서 8월 2일 까지,(2박3일)
우암회는 전국 구석구석에서 살아가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생들로 구성된 작은 모임인데, 분기별 1회 만남도 어인 30여년 세월이 지나가도 회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인하여 큰 문제없이 유지됨을 감사 드린다.
올봄 1/4분기 "안면도 꽃박람회" 때 모임을 가지면서 회의 결과 2/4분기 모임은 "무주구천동" 에서 삼복더위 지내보자는 의견일치로 실시하기로 하는데, 모임의 장소는 사전 예약이 되어있는 무주구천동 매표소 입구에 있는 개울가에 있는 한 민박집에서 집결하기로 한다.
1, 첫째날 : 2009년 7월 31일
오전 까지 모임의 약속하였으나 사업 및 거리상의 문제로 인하여 회원들 중 오후 늦게 도착할 동문도 있지만, 즐거운 하기휴가를 시작하기 위하여 민박집 마당 한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경비 절약의 일환으로 손수 준비하여 온 음식물과 재료를 활용하여 모처럼 남자들이 솔선수범하여 밥도 짖어 보고, 반찬도 만들어 가면서 술과 더불어 깊어가는 여름밤은 깊어간다.
덕유산에서 내려오는 풍족하게 흘려가는 냇물 속에는 어린아이들의 천국으로 변화고 있고. 어른들은 나무 그늘 밑에는 삼삼오오 모여앉자 동양화로 저마다 타고난 끼를 뽐내고 있다.
하늘에는 도시에서는 거의 불 수 없는 수 많은 별들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으며, 솦속에서 이름 모를 벌레와 매미의 울음소리가 고요한 무주구천동계곡을 찟어 놓고있다.
개울가 넓은 공터와 야영장에는 수 많은 텐트들이 자라하고 있는데, 한적한 구천동 골짝기가 대도시를 옮겨놓은 듯 분주하게 돌아간다.
늦게 까지 여흥을 즐기다가 민박집의 방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하여 보니 한밤 중에는 너무나 추위가 엄습하여 주인집에 구입하여 놓은 장작나무를 몰래 훔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을 지새우자니 여간 고충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은 덕유산 골짝기에는 여름철 불청객이 되는 모기는 사람과 정반대로 대도시로 소풍을 가므로 안심하고 잠은 청할 수 있겠지만 모기는 구경 못 해도 추위는 실컨 구경하게 만든다.
늦잠 자기로 정평이 난 회원들도 추위로 비몽사몽(非夢似夢) 간 시간만 보내다가 여명도 열기 전에 모두가 일어나 부산을 떨어본다.
2. 둘째날 : 2009년 8월 1일.
아침과 더불어 따뜻한 커피로 몸을 추수리고 나서 덕유산 풍광의 감상과 더불어 등산을 하기 위하여 곤돌라가 운행하는 "무주리조트" 로 달려간다.
운행시간을 Check 하지 못하여 많은 기다림 가진 후 곤돌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가니 산 주위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앉아 있어 곤돌라 앞쪽 Car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흐려 오직 Rope 한 줄만 달랑 보이는데, 이 Rope 끝은 바로 하늘나라로 가는듯 무작정 공중으로 치솟고 있다.
상부휴게소가 있는 해발 1520m의 덕유산 "설천봉" 에 도착하니, 너무나 짖은 안개로 인하여 주변의 시야가 30m 정도만 열리는 깜깜이 산이 된다.
< "무주리조트" 상부 휴게소에서 >
나는 몇 번의 경험으로 이곳 설천봉에서 덕유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登山路)를 잘 알고 있어, 일행을 인솔하면서 덕유산의 정상이 되는 향적봉 방향으로 올라간다.
가는 길은 천년고목이 되는 "주목과 구상나무" 가 곳곳에 산재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이름모를 야생화 꽃이 아침 이슬 함박 머금고 있는데, 한 30분 정도 오솔길 따라 걸으면 덕유산 정상인 해발 1614m 덕유산 "향적봉" 에 이른다.
"덕유산" 은 덕(德)이 어머니 같이 많이 후덕하다고 하여 덕유산이라고 불려지는 산인데, 남한에서 4번째로 높은 산이 된다.
< 덕유산 정상 "향적봉" 에서 >
< 덕유산 정상 "향적봉" 에서 >
설천봉에서 덕유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높이는 94m 밖에 되지않아 거의 평지를 걷는 것과 똑 같다고 보는데, 곤돌라는 문명의 혜택으로 누구나 다 높은 덕유산에 올라와서 웅장함을 느껴볼 수가 있으며 특히 겨울철 덕유산 설경은 볼 수 있는 특혜를 가진 산이다.
정상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안개가 걷힘이 되지 않아 등산을 싫어하는 일부 회원은 다시 되돌아서 곤돌라를 이용하여 하산하게 하고, 등산을 원하는 일부 사람만 33경을 품고 있는 무주 "구천동계곡" 방향으로 길을 잡아 아름다운 덕유산 경치에 묻혀보기로 한다.
이곳 하산길도 주목과 구상나무 숲을 형성하고 있어 시각의 즐거움 만끼하면서, 약 1시간 정도 내려오면 덕유산에서 유명한 사찰이 되는 "백련사" 의 지붕이 보인다.
나는 약 17년 전 모 처에 있는 회사에서 근무 할 때 부서 회의와 더불어 극기훈련을 하기 위하여 하루밤 지내본 백련사에 도착을 하니 그 때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는데, 새벽에 일어나 덕유산 정상까지 누가 먼저 갔다오는가 하는 어리석은 게임도 하여 본 산인데.....
백련사 대웅전 현판이 유명한 "한석봉(韓石峯)" 선생님이 쓴 글씨가 선명하게 표시 되어 있는데, 그 분이 글씨 하나로 우리나라 방방곳곳에 많은 족적을 남긴 분이구나 하는 생각에 젖어본다.
< "백련사" 대웅전을 배경으로 >
< 한석봉 선생님이 썻다는 "백련사 현판" >
일부 여회원은 사찰 법당에 들러가 부처님게 소원성취 기도를 올리는 시간도 가져보면서 장시간 머물다가 사찰을 벗어나 일주문 통과하여 내려오니까, 산길은 아름다운 구천동계곡 따라 만들어져 있어 환상적인 길이 펼쳐진다.
곳곳에 만나는 구천동의 33경과 그것의 내용을 설명한 안내판을 읽고 내려가는데, 반대로 개울가 물속에는 알탕을 즐기는 사람들의 나신(裸身)들이 인산인해가 이루어져 있어 늙어가는 우리 일행들의 눈요기를 하는 즐거움을 만끼한다.
곤돌라를 타고 먼지 도착한 일행과 함께 민박집 마당에 펼쳐 놓은 평상을 점령하여 곰과 같이 체력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준비된 요리를 펴고 숟가락과 젓가락 운동에 열중한다.
아래 배살이 나오도록 충분하게 음식을 보충하고 나서 잠자리에 들어가는데, 금일 밤에는 주인에게 강력하게 항의하여 민박방에 군불을 충분하게 지피면서 따뜻한 여름 밤을 지낸다.
3. 세째날 : 2009년 8월 2일.
마지막 날 여정계획에 의거 일찍 짐을 챙겨서 민박집을 떠나 덕유산 옆에 있는 "적상산" 관광을 하여보기로 하는데, 적상산은 덕유산국립공원에 속한 산이지만 덕유산과는 완전히 별도로 솟아 있는 산이다.
적상산에는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하고 있어 관광지가 되므로 수 많은 승용차와 관광버스가 수시로 움직이고 있는데, 많은 관광객이 여행의 즐겨움을 제공하는 무주군의 보고 중에 보고의 산이다.
고개를 넘어가는 길가에 무주군에서 생산하는 여름철의 특산품으로 유명한 "박사 옥수수" 를 판매하고 있어 차량을 세우고 옥수수를 구입 함과 동시에 입에 잔뜩 물고서, 성산 수력발전소내에 내려오는 물을 저장하는 "하부댐" 으로 들어가 본다.
먼자 하부댐의 옆에 있는 "발전 전시관" 에 들어가서 전기의 발생 원리(原理)를 공부하여 보는데, 이젠 늙어서 돌아가지 않은 손가락 비비꼬면서 고등학교 때 배운 플레밍의 "오른손 및 왼손 법칙" 기억하여 본다.
플레밍 박사는 없는 원리도 만들어 돈을 무척이나 벌었는데, 나는 그가 만든 원리도 이해를 못하고 살고 있으니 정말 한심하고 앞으로도 요렇게 살아가라는 팔자인것 같다.
하부댐을 돌아서 승용차는 구비구비 산길 따라 "상부댐" 전망대로 올라가 보는데, 상부댐 전망대에서 보는 풍광은 어제 곤돌라 타고 올라간 덕유산 향적봉이 아련하게 보이고 있으며 앞에는 상부댐의 푸른물에 가득 담겨 있으면서 그 너머로 해발 1029m 적상산 "향로봉" 이 손에 잡힐 듯 자리하고 있다.
적상산 가을에 산 전체가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어져 여인의 붉은 치마폭와 같다고 하여 "적상산" 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나는 한 때 적상산을 등산을 한 경험이 있는 산으로 대부분 산행 들머리가 되는 "서창" 이라는 마을에서 출발하여 올라오는데, 오는 길에는 유명한 "최영장군" 이 크다란 바위를 칼로 배여 통로를 만들었다는 비좁은 길을 만나면서 여기가 적상산의 암문(巖門)이 된다.
적상산은 산의 정상부위 둘레에 전체가 산성으로 쌓여 있는데, 자연적으로 바위를 이용하여 쌓아 만든 산성은 아직도 원형 가깝게 보전되어 있어 가을 단풍과 함께 많은 등산객이 찾는 산이다.
< 작년 가을에 찍은 "적상산 단풍" 풍경 >
전망대에서 내려와 "안국사" 사찰로 향하는데, 안국사는 적상산의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절로서 아담하고 절의 좌측에 있는 "불상박물관" 이 유명하다.
< 적상산이 품고 있는 안국사 "극락전" 전경 >
박물관 내뷰에는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상의 불상을 진열하여 놓았는데, 그 형상을 젖어보면 석가모니상의 모습이 이렇게도 다양하게 표현하고 나라마다 다른 예술성과 만드는 기법 차이를 감상하다 보면 시간이 잊어버리게 만든다.
되돌아 내려오는 길 옆 좌측 한 모서리에 아름다운 건물 2동이 서 있는데, 그 건물이 유명한 무주 "적상산사고(赤赤裳山史庫)" 이다.
사고에는 "조선왕조실록" 보관하기 위해 안전한 곳을 찿아 만들어 졌으며, 온도와 습도를 조절 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기에 최선을 다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적상산사고의 건축 형태 돌아보면 놀랍기만 하다.
통풍이 어찌나 시원스럽게 잘 되는 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사고의 건물 어디에 앉아도 시원한 자연 바람이 불어주는데, 정면에는 아름다운 상부댐의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 사고에 들어가면 문화 해설자가 사고의 내역을 잘 설명하여 주고 있는데, 또한 비디오 영상을 통하여 재차 이야기를 첨언하여 주고있다.
사고(史庫)는 "조선왕조실록" 을 보관하는 건물로써 "태조부터 철종" 까지 25대 472년 간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그 분량이 자그만치 888책(1.893권)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책이다.
이 실록은 조선의 역사, 경제, 사회, 문화 등 당대 사회의 제반 사항이 총 망라되어 있는 세계사적으로 그 유례가 드문 우리 민족의 위대한 유산으로써 세계유네스코에 등제된 "기록유산" 이다.
세계유네스코는 각국 국가가 가지고 있는 인류문명과 자연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산을 전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고, 이를 후손에게 전수해야 할 세계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진 유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지정 및 관리하는 기구로서 "문화유산", "기록유산", "무형유산", "자연유산" 으로 분류하여 지정하고 있다.
한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문화유산" 은 창덕궁 외 8개, "기록유산" 은 훈민정음 외 3개, "무형유산" 은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외 2개, "자연유산" 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지정되어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2009년도 지정된 문화유산으로 "조선시대왕릉 40기" 이며, 세계적으로는 스페인, 이탈리아, 중국에서 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3대 국가이다.
이 조선왕조실록을 처음에는 "춘추관사고" 와 "충주사고" 2군데 보관하고 왔으나, 화재 위험으로 인하여 "세종대왕" 이 2부를 추가로 더 만들어서 "성주사고" 와 "전주사고" 로 분산 보관하였다.
그런데 임진왜란으로 춘추관사고, 충주사고, 성주사고 등 3곳의 사고가 소실됨으로써, 오직 "전주사고" 만 남는다.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는 수십 명의 사람을 동원하여 전주에서 정읍, 아산, 해주, 강화도, 또 묘향산으로 이동하면서 왜란을 피하여 보관되어 진다.
그 후 임진왜란의 주인공이 되는 "선조" 는 소실된 사고를 보존하기 위하여 3부를 더 작성하고, 묘향산에 보관하고 있는 전주사고 1부를 복사하여 총 5부를 만들어 실록을 다시 서울 춘추관, 강화도 마니산, 경북 태백산, 평창 오대산, 영변 묘향산 등 5곳으로 분산 보관한다.
그런데 광해군 "이괄의 난" 때 춘추관사고가 소실되고, 병자호란 등 나라의 혼란이 발생되어 마니산사고를 인접한 "정족산사고" 로, 묘향산사고를 이곳 무주 "적상산사고" 로 옮겨와, 4곳(정족산, 태백산, 오대산, 적상산)에 보관하여 조선말까지 관리된다.
주권이 상실된 일제시대 때, "정족산사고 및 태백산사고" 는 조선총독부로 옮기고, "오대산사고" 는 일본 동경대학교로 가져 갔으나 관동대지진 때 불타 소실되고, 이곳 "적상산사고" 는 북한 김일성대학교로 가져가 그곳에 소장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총독부에 보관한 "정족산사고와 태백산사고" 만 남아있어, 그것이 현재 서울대학교에 보관되어 오면서, 세계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제된 한국 "기록유산" 중에 보고이다.
이 적상산 주위에는 "김일성" 이라는 놈이 가져간 "적상산사고" 돌려 달려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있는데, 그 아들이 되는 "김정일" 가 말을 듣겠나????
내가 걱정 하여도 반납되어 돌아오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겠지만, 김일성대학교에서 나마 잘 보관되기를 기원하여 본다.
승용차는 상부댐 옆으로 만들어져 있는 급경사의 내리막 길로 내려오니, 자동차 브레이크의 열을 식히기 위하여 도로 옆 공터에 주차하고 약 30m의 높이를 가지고 있는 "천일폭포" 로 올라가 본다.
< 하늘아래 하나 밖에 없다는 "천일 폭포" 안내문 >
천일폭포는 상부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풍족한 수량으로 하늘아래 제일 좋은 폭포인데, 현재는 상부댐 물을 발전용으로 쓰기 위하여 물길을 돌리다 보니 폭포 쪽으로는 적은 물만 내려 보내주므로 명맥만 유지하는 폭포이지만 막상 올라가 직접 대면하여 보면 위용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다.
다시 조금 더 내려오면 발전소를 만들 때, 상부댐에서 하부댐으로 내려가는 통로의 굴을 굴착할 때 발생하는 흙을 운반하기 위한 허리 동굴을 만들었는데, 무주군에서는 이 허리의 폐 동굴 이용하여 덕유산 주위에서 생산되는 "산머루" 를 이용하여 와인을 만드는 공장으로 개조하여 활용하고 있다.
< "산머루 와인" 를 만드는 허리 동굴 입구 >
이 동굴 속에 들어가면 머루와인을 무한정으로 시음하도록 하는데, 술을 따라주는 주모 눈치가 보여 무한정으로 마시는 것은 좀 곤란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동굴 속에 진열하여 놓은 와인을 구입하고 있어 무주군에서 세금을 징수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이렇게 조그만한 것도 관광사업의 밸트화를 추진하여 사시사철 많은 사람들 방문하는 지혜의 장소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무주군에 비하여, 경상북도에 있는 청도군은 같은 폐(閉) 철도 동굴을 이용하여 감식초와 감와인 만들고 있다.
하지만 주변의 풍경과 연계하여 관광사업의 밸트화를 하지 않고 달랑 와인만 생산하는 장소로 만들어 홍보하고 있는데, 혹시 한번은 찾아볼지는 모르겠으나 반복적으로 누가 찾겠나?
< "머루 와인" 시음장 내부 >
알다시피 이곳 전라도 주민은 경상도 주민보다 반 밖에도 안되는 적은 인구를 가지고 있지만, 매년 국가 예산은 경상도 보다 3배나 더 배당 받아 복지지역을 만들고 있으면서 더불어 공무원은 능동적으로 일하고 있는데 반하여 대구 및 경북 공무원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구와 경북의 전체 세수가 전라도 여수시 한 곳보다 적다고 하니 할 말이 없게 만드는데, 경상북도에는 적상산도 없고, 산머루도 안나오고, 공장도 없어 세수받을 곳 없고, 중앙에서 예산도 적게주는 것 다 조상 탓이지 현직 공무원 탓인가 뭐.
안 그래도 세금받을 곳이 없어 조그마한 식당과 목욕탕 찾아 다니면서 세금이나 거출하려고 공무원 체면도 말이 아니고, 신발 값도 안나오고 죽을 지경인 도시가 대구인가 보다.
청년들 마져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다 보니 돌아가는 식당마져 폐업이 많아 더욱더 세금이 줄어짐으로 공무원 속도 모르고 불난집 부채질이나 하나, 잘하는 니가 해보지 라고 말하고 싶지?
무주읍에 약간 벗어나 있는 "금강" 가 나룻터에 있는 한적한 매운탕 집을 찾아서 어죽과 도리 뱅뱅이로 늦은 점심식사하여 본다.
< 무주군에 있는 "라제통문" 을 통과 하면서 >
몇 일 동안 한 이블을 덮고 직접 몸으로 비비면서 짧지 않는 우정을 돈독하게 만든 하기휴가를 추억의 한 Page로 넘기면서, 다음 또 다시 즐거운 만남을 가져 보자는 인사와 더불어 각자의 보금자리로 떠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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