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31일에서 8월 3일까지.(3박4일)
2. 첫째날.(7월 31일 : 수요일)1. 여행의 개요. 대구에 있는 여행사 콩고드 및 (주)대아투어에서 몽골의 수도가 되는 '울란바토르 및 테를지' 에 대한 3박4일 일정으로 관광객을 모집하겠다는 연락이 도착하므로 한번 동행하여 보기로 한다. 여름 동안 한시적으로 대구국제공항에서는 몽골 칭기즈칸국제공항 까지 전세기(傳貰機)를 운행하고 있어 여행사는 매우 경제적인 여행을 추진하는데, 나와 같은 빈털털이에게는 안성맞춤의 관광이라 하겠다. 몽골의 여행에서는 봄철이 되는 5월에서 6월 까지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황사로 인하여 여행에는 부적합한 시기이고, 겨울철이 되는 10월에서 4월 까지 평균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므로 거의 여행이 불가능한 기간이 된다. 그래서 몽골의 여행은 여름철이 되는 7월에서 9월까지 최적의 여행 기간이 되는데, 평균 기온이 30도 이내의 쾌적한 여행 기간이 되지만 가끔씩 소나기를 만나는 것이 단점이 된다. 여행사에서 아침 9시 까지 대구국제공항 대합실에서 집결을 요청하는데, 집결지에 도착을 하니까 여행사에서 파견되어진 직원이 몽골로 들어가는 비자(visa)를 획득한 여권과 더불어 점심식사로 대용할 수 있는 도시락을 나누어 준다. < '대구국제공항' 내에 있는 집결지의 대합실 > 대구국제공항에서 몽골의 수도가 되는 울란바토르 칭기즈칸국제공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는 11시 15분에 이륙을 하므로 개인적으로 짐을 부치면서 비행기 티켓을 발권하도록 하는데, 가능한 빠르게 발권을 하면 비행기의 앞쪽 또는 통로측 좌석을 요구할 수 있다고 한다. 금일 우리와 함께 하는 일행은 총 17명이 되면서 그 중 고모 한분을 모시고 5살 및 7살의 어린이 2명과 동행을 하고 있는 부부와 함께 여행이 추진 되어지는데, 어찌하던 우리부부가 제일 연장자가 되어져 인생에 있어 너무 늙게 해외 여행을 추진하므로 다소 외톨이 신세를 느끼게 만든다. 주어진 시간 보다 약간 늦게 이륙하는 비행기는 맑은 시야를 확보하고 있는 대구시가지 외곽을 통과하여 울란바토르로 날아가는데, 대구에서 울란바토르 까지 3시간 20분에 소요되어져 15시 경 징기스칸국제공항에 도착을 하지만 울란바토르와의 시차 1시간으로 현지 시간은 오후 2시가 된다. 1). 가이드와 미팅. 공항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현지 가이드와 만남을 가지고 나서 가이드의 인솔에 따라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45인승 버스에 승차를 하는데, 일행 모두가 17명이 되므로 풍족한 좌석을 가지면서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시가지로 달려간다.
< 몽골 울란바토르의 '칭기즈칸국제공항' 전경 > < '칭기즈칸국제공항' 앞에 있는 주차장 > 올란바토르 시가지로 달려가면서 가이드 이름(이흐달검)과 더불어 간단하게 본인의 신상을 설명하는데, 가이드는 몽골대학교에서 한국어과를 졸업하였고 서울에 있는 한양대학교 어학연수원에서 3년간 머물면서 한국어를 배웠지만 아직도 서툰 언어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몽골에서는 한국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지 않으면서 가이드의 안내도 여름철 3개월 정도로 국한 되다 보니 지속적 언어의 연습이 부족하게 만드는데, 다소 어둔함을 이해하여 달려고 하면서 몽골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를 한다.
몽골은 동북아시아 서북부에 위치한 내륙국가로 동서의 길이가 2.394Km 이며 남북의 길이가 1.259Km 이고 국토의 면적은 1.567.000Km2 가 되고,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남쪽으로 중국과 접하고 있으며 국경의 총 길이는 8.162Km 가 된다. 특히 몽골은 고원 국가로서 전 국토의 40%가 잔풀이 자라고 있는 황무지(荒蕪地)이며 서북지역은 산악지역으로 알타이산맥이 자리하고 있고, 북부지역은 밀림과 함께 동토의 땅으로 구성하며 동남부는 평원 및 사막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몽골은 한반도의 땅 보다 7.4배 정도가 크지만 전체의 인구는 약 3백2십만명 정도가 살고 있으면서 전 국토에 대비하여 인구 밀도가 1.7명/Km2 밖에 되지 않고, 그 중에서 인구의 반이 되는 약 1백5십만명 정도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몽골의 경제적 수준은 1970년 대 한국의 수준 밖에 되지 않으면서 교통의 인프라가 매우 열악한 상태인데, 몽골에는 전체 약 100만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그 중에서 60만대 이상이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운행하고 있어 교통 지옥의 도시가 된다. 거리를 채우고 있는 승용차는 대부분 운전석이 오른편에 있는 일본산 중고차량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버스 또는 승합차는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사막 또는 고산(高山)에 다닐 수 있는 4륜 구동차량은 러시아에서 생산하는 푸르공이 우수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교통 시스템은 한국과 같이 오른편으로 차량이 움직이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러므로 일본에서 수입한 중고차량을 몰고 있는 운전자는 차량을 도로변으로 주차하면서 하차에는 다소 수월하겠지만 운전석 옆과 뒷 좌석에 있는 승객은 중앙선 방향으로 하차를 하여야 하는 불편을 꺽어야 하는 운전방식을 가진다. 2). 자이승 전승탑의 관람. 공항에서 약 4Km 정도 떨어져 있는 울란바토르 시가지로 진입을 하는데, 왕복 2차선 도로에서 무한정 기다림을 가지고 나서야 비로써 시가지 남쪽에 있는 '자이승 전승탑'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자이승 전승탑은 아담한 동산의 꼭지점이 자리하고 있지만 동산 주변에는 나무 한 그루도 없는 민둥산이 되는데, 주차장에서 수백개 계단으로 올라가면 탑이 자리하고 있는 동산의 정점(頂点)에 도착이 된다. < '자이승 전승탑' 으로 올라가는 수백개의 계단 > 이곳 자이승 전승탑은 세계 제2차 대전 당시에 몽골과 러시아가 연합하여 일본을 물리치면서 승전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탑이 되어지는데, 혁명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러시아와 함께 세운 탑이라고 한다. 탑의 입구에는 한명의 용사가 높은 국기를 들고 있으면서 탑은 펄력이는 국기가 원형의 벽면을 만들고 있는데, 원형의 벽면 내부로 들어가면 작은 광장을 형성하면서 광장의 중앙에는 향(香)을 피우는 제단(祭壇)과 함께 원형의 벽면에는 전쟁의 그림이 조각되어 있다. < 탑의 입구 국기를 들고 있는 '용사' > < 기념탑 중앙에 있는 '제단' 을 배경으로 > 원형 벽면 따라 그려져 있는 조각품을 감상하여 보는데, 일본의 일장기를 발로 부수면서 승전을 축하(祝賀) 하는 그림과 함께 다양한 전투 장면이 그려져 있어 치열한 전쟁을 상기시키고 있다. < 벽면 따라 조각한 '전승' 그림 > 전승탑 주변으로 울란바토르 시가지가 펼쳐지고 있으면서 울란바토르는 '붉은 영웅'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시가지의 평균 고도가 1.350m가 되면서 시가지는 한국의 서울과 비슷하게 도심의 중앙으로 '톨(Tuul)' 이라는 강(江)이 흘려가고 있으면서 도시가 강남과 강북으로 나누어진다. < 중간지점 '톨강' 으로 구획하고 있는 강북과 강남 > 톨강은 내일 방문을 계획하고 있는 테를지 국립공원을 품고 있는 해발 2.085m '엉거츠' 산에서 발원하여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로 흘려 들어가는 강이 되는데, 강의 폭이 매우 좁아 강으로 불려지기에 다소 미흡한 강이다. 전승탑 뒤편으로 민둥산이 자리하면서 산의 기슭 따라 아파트 또는 고급 주택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울란바토르 강남에도 한국과 비슷하게 권세를 누리는 공무원 또는 부자들이 살고 있으면서 33평 아파트 한채가 10억 투그릭(한국화폐 : 약5억) 정도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 야산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울란바토르 '강남' 의 아파트 > < 강남에 자리하고 있는 '고급 주택' > 전승탑 전면의 바로 아래에는 한국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건립하고 있는 사찰이 자리하고 있는데, 사찰의 중앙에 높은 불상이 세워져 있지만 사찰의 주변으로 대웅전 건물이나 다른 부속 건물은 아직도 건립되지 않은 상태로 방치하고 있다. < 전승탑 앞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건립한 '불상' > 더불어 톨강의 건너편으로 울란바토르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오고 있으면서 많은 건물 중에서 둥근 탑 모양의 2개의 기둥이 서 있는데, 이 기둥은 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석탄의 매연을 배출하는 굴뚝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 화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연료가 석탄이 되어져 많은 매연을 배출하고 있어 시가지 전체를 매우 흐리게 만들고 있는데, 현재 화력발전소를 외곽 지역으로 이전하기 위하여 새로운 발전소를 건립을 하고는 있지만 몽골은 시작은 있어도 완공은 언제가 될 지 모르겠다고 한다. 울란바토르 시가지에서 발생시키는 매연의 비율은 이곳 화력발전소에서 뿜어내는 매연이 20%,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매연이 20%,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난방용 연료로 사용하는 석탄의 매연이 60%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 톨강 건너편 매연 속에 머물고 있는 '화력발전소' > 여름철에는 가정집에서 석탄의 연료를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데로 적은 매연을 보이고 있지만, 겨울철에는 매우 심한 매연으로 많은 기관지 환자들이 발생하고 있어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고 한다. 3).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 방문. 자이승 전승탑에서 내려온 일행은 버스를 이용하여 인접하게 있는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 앞에 잠시 정차하면서 일행을 하차 시키는데, 정문의 옆에 있는 쪽문을 통과하여 기념공원 내부로 들어가면 입구에 이태준 선생에 대한 약력을 기술하고 있는 안내문이 서 있다. < '이태준 선생 기념관' 으로 들어가는 정문 > 이태준 선생은 1883년 경남 함안군 군복면 명관리 1149번지에 출생을 하는데,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인하여 조국이 반 식민지 상태가 되고 다음 해에 부인 마져 돌아가자 서울로 상경하여 세브란스병원 의학교에 입학을 한다. 스승이자 동지가 되는 김필순 선생은 안창호와 의형제를 맺은 사이로 1908년 6월에 졸업을 하여 한국 최초의 의사 7인 중에 한명이 되는데, 김필순 선생은 모교에 남아 후학을 가르키면서 독립운동에 가담을 한다. 이태준은 안창호 선생의 권유로 신민회의 자매 단체가 되는 '청년학우회' 에 가입을 하는데, 1910년 한일합병이 되면서 이듬해가 되는 1911년 6월에 세브란스병원 의학교를 제2회로 졸업을 한다. 1911년 말 일제는 대량으로 애국지사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김필순 선생이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래서 김필순 선생은 이태준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된다. 중국에서 의술을 펼치고 있었던 이태준 선생은 한 친척의 권유로 몽골 울란바토르로 활동의 무대를 옮겨와 병원을 개설하는데, 이태준 선생은 그 시절 몽골에서 유행하였던 전염병을 퇴치하므로 국민적 영웅이 된다. 특히 몽골의 마지막 왕이 되는 '보그드칸 8세' 의 어의(御醫)가 되는데, 그는 1919년 몽골에서 '에르데닌 오치르' 이라는 높은 등급의 훈장도 받을 정도의 몽골 사회에서 두터운 신뢰를 쌓으므로 막대한 독립자금도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1921년 2월 러시아에서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은 '운게른 스테른베르그(Roman von Ungern-Sternberg)' 부대가 몽골을 점령하면서 운게른 부하들은 이태준과 더불어 많은 외국인들을 처형하였는데, 이태준 선생은 그 때의 나이가 38세이면서 비운의 애국지사가 된다. < '이태준 선생' 의 약력을 기술하고 있는 안내문 > 한국과 몽골은 1990년 3월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1991년 10월에 오치르바트 대통령의 방한을 시작으로 1999년 5월 김대중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하여 친교를 수립하였고, 한국에서는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이태준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한다. 안내문을 읽고 나서 내부로 들어가면 이태준 선생의 기념공원을 알리는 입석과 함께 공원의 왼편으로 이태준 선생의 가묘가 자리하고 있고, 오른편으로 조금 걸어가면 매우 적은 기념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이태준' 선생의 기념공원을 표시하고 있는 입석 > < 공원의 왼편 이태준 선생의 '가묘' > 기념관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면 왼편 벽면의 한 코너에 이태준 선생의 얼굴을 형상화한 동상이 붙어있고. 전시실 내부에는 이태준 선생님의 업적을 기술하고 있는 설명문이 벽면 따라 부착이 되어있다. < '이태준' 선생의 업적을 전시하고 있는 기념관 > < 이태준 선생의 '얼굴' 동상 > < 몽골의 슈바이처로 알려진 '이태준' 선생 > < '전시실' 내부를 돌아보고 있는 일행 > < '이태준' 선생의 업적을 기술한 일대기 > < '노태우' 전 대통령이 추서한 훈장 > 주어진 시간으로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기념관을 돌아보고 나서 정원으로 나와 걸어보면 정원에는 팔각정과 함께 한채의 '게르(Ger)' 가 자리하고 있는데, 게르의 내부에는 사진을 찍기 위한 의자가 놓여있다. < 정원 내에 자리하고 있는 '팔각정' > < 정원 가장자리에 만들어져 있는 '게르' > < '게르' 속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 간단하게 한장의 기념사진을 남기고 이태준 기념공원 앞에 있는 도로 건너편에 주차장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사이 가사분은 버스를 주차장으로 이동시켜 주차하고 있어 무섭게 운행하고 있는 도로를 조심하면서 건너 버스에 오른다. 4). 몽골전통 민속공연 관람. 주차장에서 인접하게 있는 톨강을 건너 울란바토르 강북 시가지로 진입을 하는데, 가이드는 정상적으로 운행을 하면 공연장 까지 10여 분이면 도착이 가능한 거리가 되지만 매우 짧은 다리 하나를 건너는 시간도 15분 정도 소요되므로 공연장 까지 30분 이상이 걸리겠다고 하면서 6시 공연 예약을 취소하고 한시간 지연시켜 7시 공연을 관람하겠다고 한다. < 울란바토르의 시가지 남쪽과 북쪽으로 구획하고 있는 '톨강' > 시가지로 들어가는 길의 주변으로 대부분 신규 아파트 또는 상가 건축물을 건립하고 있는데, 현재에도 많은 차량으로 인하여 교통의 마비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지만 몇년 후에는 늘어나는 차량으로 꼼짝도 못 할 정도의 교통지옥을 꺽을 것이라고 걱정을 한다. 현재 몽골은 지방에서 거주하면서 목축업을 하는 부유층과 더불어 반대로 기나긴 겨울철 동안 일거리가 없는 빈민촌 사람들이 수도가 되는 울란바토르로 급격하게 이주(移住) 하므로 도시가 급속하게 팽창하여, 아무리 많은 아파트를 건립하여도 중과부족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더불어 일을 하기 싫어하는 청년들도 무작정 울란바토르로 흡수되지만, 예산의 부족으로 교통의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하여 더욱더 심각한 교통의 체증을 유발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중장기 프로젝트에 따라 울란바토르에도 지하철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은 수립하였지만, 1990년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환이 되면서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회의원과 공무원들의 비리가 만연하여 수 없는 세월이 지나가도 착공이 이루어질까 의심을 가져본다고 한다. 많은 시간이 경과하고 나서야 비로써 공연장으로 들어가는데, 한시간을 지연시키므로 다소의 시간이 남아 공연장 1층에 있는 기념품 가게 또는 공연장 주변에 있는 게르로 들어가 몽골에서 유명한 양모(羊毛)로 만든 모피 제품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한다. < '몽골전통 민속공연' 을 하는 공연장 전경 > < 공연장 1층에 전시하고 있는 '기념품' > < 많은 '낙타' 의 인형도 함께 > 공연장 앞에 있는 게르로 들어가 양모로 만든 케시미어(Cashmere)를 구경하여 보는데, 이곳 몽골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상품의 케시미어가 되므로 여행의 세째날 또는 네째날에 전용 케시미어 매장을 방문하겠다고 하면서 가이드는 구경만 하라고 눈치를 준다. < 공연장 입구에 있는 '케시미어' 판매점 > < 전시실 내에 진열하고 있는 '케시미어' > 공연시간 7시 부터 30분 전에 공연장으로 입장을 하도록 하는데, 2층으로 올라가면 작은 무대를 중심으로 전면 또는 좌우측면으로 관중석이 마련되어 있으면서 이내 만석의 자리가 된다. < 2층에 있는 '공연장' 무대 > < 많은 '관광객' 이 앉아 공연을 기다리는 관중석 > 주어진 7시 정각 공연을 시작하기로 하는데, 문제는 이곳 몽골에서는 사찰 또는 박물관, 전통 민속공영장에서는 기념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만약 사진을 찍다가 발각이 되면 스마트 폰 또는 카메라에 있는 내용 전체를 삭제하든지 아니면 벌금 2만 투그릭(한국화폐 : 약1만원)를 지불하여야 한다고 한다. 공연 내용은 전통적인 몽골의 풍속을 비롯하여 칭기즈칸의 활약상을 주제로 하는 내용들로 구성하고 있는데, 특히 사람의 목과 배에서 울려 나오는 2가지의 소리가 되는 '흐미' 소리가 정말 이색적이 화음(和音)이 되어진다. 흐미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된 목소리의 공연으로 높은 음과 낮은 음이 동시에 표현하여 자연에서 표출하고 있는 산이나 강과 바람 및 동물들의 소리를 표현하는 음악인데, 흐미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가수는 일천명 당 한명이 나올까 말까 하는 어려운 발성을 가진 사람이라 한다. 또한 몽골의 전통 악기가 되는 '마두금(馬頭琴)' 이라는 악기를 많이 연주 하는데, 이 마두금은 우리나라 해금과 같은 모양을 가진 악기이지만 단지 2개의 현(絃)에서 어찌 그렇게 다양한 음이 발생하는지 상상을 초월하게 만든다. < 중앙 '마두금' 악기를 연주하는 공연자 > 약 1시간 동안 다양한 공연이 이어지는데, 한국의 관광객이 다수의 비중을 찾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외국인(미국 또는 러시아)들도 많이 관람하므로 아리랑 연주와 함께 러시아(?) 음악을 연주하므로 많은 박수를 유도하게 만든다.
5). 저녁식사와 함께 호텔숙소 배정. 다소 늦은 시간 까지 공연을 관람하고 나서 숙소가 되는 호텔로 이동하기로 하는데, 9시가 훨씬 지나가도 북반구에 자리하고 있는 몽골에서는 아직도 어둠이 내리지 않고 밝은 날씨 속에서 30분 정도 달려가 첫날 밤을 지내기 위한 '그랜드 힐(Grand hill)' 호텔에 도착을 한다. < 18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그랜드 힐 호텔' 전경 > < '그랜드 힐' 호텔로 들어가는 입구 > 그랜드 힐 호텔은 울란바토르 시가지의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자리하고 있는 18층 짜리 건물로써 4성급 호텔이 되는데, 호텔에는 각종 위락시설과 더불어 15층에 한식당 '소담' 이 같이 자리하고 있다. < 그랜드 힐 호텔과 함께 하는 '위락시설' > < 그랜드 힐 호텔 15층에 있는 '소담' 식당 > 금일 점심식사는 여행사에서 제공한 도시락을 12시 경 비행기 내에서 먹었는데, 도시락 내용은 햄버그 한개와 함께 2개의 김밥으로 구성되어 있어 매우 적은 식사로 허기를 느끼는 시간과 더불어 울란바토르의 시차 1시간 까지 겹치므로 모두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방을 배정 받기 전 15층에 있는 식당으로 직행하게 한다. 식당에는 일행의 사정을 알고 있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식사가 바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금일 첫 저녁식사는 몽골에서 제일 많이 사육하고 있는 양(羊)으로 만든 불고기가 되는데, 양 요리를 많이 하여서 그런지 양의 냄새가 전연 나지 않은 음식이다. < 열쇠를 수령하기 위한 호텔 '프런트' > 풍족하게 식사를 끝내고 호텔의 1층 프런트(front)로 내려가 룸(Room)의 열쇠를 수령하고, 엘리베이트를 이용하여 9층에 있는 룸으로 올라가 간단하게 샤워를 끝내고 나서 깊은 숙면의 시간을 가진다. - 첫째날 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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