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기계과 행사.(전라도)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전남 화순군 도암면에 자리하고 있는 '운주사' 를 다시 방문하면서.(9)

용암2000 2020. 7. 20. 12:16

3. 셋째날 : 7월 5일, (일요일)

 

5) 다시 운주사를 방문하면서.

전라남도 영암군의 명산이 되는 월출산 입구에서 푸짐한 점심식사의 시간을 가지고 다음 여행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일행 중 한명이 화순군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대구로 유학와 고등학교 및 대학교를 졸업한 동문이 되는데, 그 동문은 너무나 일찍 고향을 떠나므로 고향에서 유명한 사찰이 되는 운주사를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반대로 나는 2013년 5월 17일에서 18일 동안 1박2일로 와이프(Wife) 및 작은아들과 함께 전라도 지역 관광을 하였는데, 그 때 첫날이 되는 17일에 먼저 장흥군에 있는 보림사를 구경하고 매우 늦게 인접하게 있는 화순군으로 넘어가 운주사를 관광한 경험이 있는 사찰이다.

또한 나머지 2명의 동문도 운주사를 구경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도 방문한 날짜가 너무나 오래가 되어져 운주사 방향으로 길을 잡아보는데, 영암에서 화순까지 고불고불한 지방도로 따라 1시간 정도 운전하여 운주사 입구에 도착한다.

입구에 있는 넓은 주차장에 주차하고 매표소를 통과하여 경내로 진입을 하면 매표소 바로 뒤편으로 일주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일주문에는 '영귀산 운주사(靈龜山 雲住寺)' 라는 현판이 붙어있지만 구름 '운(雲)' 자가 재미있게 써 있다.

 

< '운주사' 입구에 있는 매표소 >

 

< 매표소 바로 뒤편에 있는 '일주문' >

 

일주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걸어가면 왼편 산의 가장자리에 수 많은 부처님이 일렬로 도열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천태만상의 모양을 하고 있어 과연 이곳 운주사가 천불천탑(千佛千塔)의 사찰이라는 것을 알게 만들어 준다.

 

< 경내 왼편 야산 아래 일렬로 도열하고 있는 '석불' >

 

운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의 말사가 되면서 신라 말 '도선국사(道詵國師)' 가 풍수지리를 근거로 하여 비보(裨補)사찰로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비보사찰이라 함은 '돕고 보호한다' 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도선국사는 영암 출신으로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로 보고, 선복(船腹)에 해당하는 호남 땅이 영남보다 산이 적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 것을 염려한 나머지 이곳에 천불천탑(千佛千塔)을 하루낮 하룻밤 사이에 도력(道力)으로 조성하여 놓았다고 한다.

운주사는 도선스님의 지혜가 담긴 사찰을 의미하는데, 1984년에서 1989년까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금동불 입상을 비롯하여 순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의 파편, 기와편 등 출토된 유물로 볼 때 늦어도 11세기 초인 고려 초기에는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 고려 혜명(惠明)스님이 1,000여 명과 함께 천불천탑을 조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혜명스님은 고려 광종 21년(970년)에 관촉사 대불을 조성한 혜명(慧明)스님과 동일인으로 보고 있어 운주사가 고려 초에 건립되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1984년에 '홍치 8년(弘治八年)' 이라고 새겨진 기와편이 발견되었고, 연산군 1년(1495년)에 4번째 중수가 되었던 기록이 있어 조선 초기까지는 존속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후 정유재란 때 왜적에 의해 폐사되고 말았다.

1800년 경에 설담자우(雪潭自優)스님이 무너진 불상과 불탑을 세우고 약사전 등을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사찰 주변에는 93구의 석불(완형 50구)과 21기의 석탑이 있으면서 운주사의 대표적 유물로는 9층석탑(보물 제796호),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 와불 등 이라 하겠다.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사찰이며 우리나라 불교의 깊은 혼(魂)이 서려 있는데, 어느 사찰에도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불사를 가진 불가사의(不可思議) 하면서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사찰이라고 한다.

현재 운주사에는 석불 93구와 석탑 21기 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1481년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 에 따르면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며 절 좌우 산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개가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 라고 기술하고 있는데, 그 내용으로 보아 정말 그 때까지 석탑과 석불이 천개가 실존(實存)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겠다.

현재 남아 있는 93구의 석불상은 10m의 거구에서 부터 수십 Cm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불상들이 산과 들에 흩어져 있는데, 이들 불상은 대개 비슷한 형식과 비슷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평면적이고 토속적인 얼굴 모양, 돌기둥 모양의 신체,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고 있는 팔과 손, 다소 어색하지만 그래도 규칙적인 옷의 주름 등 둔중한 조각기법으로 만든 불상 등이 운주사에 있는 불상만의 특징이라 하겠다.

이러한 특징은 고려 시대에 지방화된 석불상 양식과 비슷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석인상(石人像)을 제작하던 석공들이 대거 동원되어 만든 고려 불상이라고 하겠다.

21기의 석탑도 산야(山野) 여기저기에 즐비하게 서 있는데, 둥근 원형탑(圓形塔), 원판형탑(圓板形塔)과 같이 특이한 형상의 탑도 있으며 3층, 5층, 7층, 9층 등 층수도 다양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4각형의 탑은 너비가 좁고 높이가 고준(高峻)하며 옥개석(屋蓋石)이 평면적으로 고려 석탑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연꽃 받침석이 많이 보이는 것 또한 고려 석탑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특히 이 석탑에서 눈에 띄이는 것은 기단이나 탑신석의 면석(面石)에 다양한 기하학적인 무늬들이 돋을새김 또는 선새김 등으로 새겨져 있는데, 이렇게 기하학적인 무늬를 사용하는 불상들이 아름다운 주름을 가지므로 운주사 유적의 가장 특징적인 양식이라고 한다.

이처럼 특이한 석불 및 석탑 천여개가 한 절안에 보관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사찰이고 천불천탑에 대한 독특한 신앙을 보여주는 것으로 높게 평가되는데, 더불어 한국 미술사(美術史) 또는 불교사(佛敎史) 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특히 다른 지역에서는 주로 화강암에 불상을 새김하므로 인하여 조각하기가 쉽지만, 이곳 운주사 반경 200m 이내에 흩어져 관리하고 있는 천불천탑의 불상들은 부셔지기 쉬운 화산석으로 조각되어 있다.

그래서 고도의 기술과 돌의 질(質)을 알지 못하고 조금만 실수를 하여도 균열(均熱) 또는 파괴가 발생하므로 인하여, 우수한 석공들만이 작업이 가능하게 하여지는 장소이라고 한다.

 

< '운주사' 의 현황 안내문 >

 

< '운주사' 의 조감도 >

 

운주사 경내로 들어가는 도로 따라 한 5분 정도 올라가면 양쪽으로 흘려내리는 골짜기 사이에 다소 넓은 잔디 광장이 펼쳐지면서 광장 곳곳에 많은 석탑이 안치되어 있는데, 본격적으로 천불첩탑을 직면하게 하면서 제일 먼저 보물 제796호 '9층석탑' 이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의 '전경' >

 

< 처음 만나는 보물 제796호 '9층석탑' >

 

< 석공들이 사용한 도구를 숨기고 간 '연장바위' >

 

<  석불 및 석탑을 만들고 있는 '석재' >

 

이곳 9층석탑에서 부터 다양한 석불과 석탑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어 관광의 동선(動線)을 잘 선택하여야 최대한 많은 불상을 직면할 수 있는데, 그 많은 탑 중에서 세부적으로 모든 석불과 석탑을 관람하기에는 역부족이 발생한다.

 

< 9층석탑 옆에 자리하고 있는 '석불군' >

 

< 다음으로 만나는 '7층석탑' >

 

경내에 있는 대표적인 문화재가 되는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및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만 세부적으로 구경하고, 조금 더 내부로 들어가면 원형다층석탑 뒤편으로 전통찻집이 자리하고 있다.

 

< 석조불감 앞에 있는 또 다른 '7층석탑' >

 

< 보물 제797호 '석조불감' 의 전면 >

 

< '석조불감' 의 후면 >

 

< 석조불감 뒤편 보물 제798호 '원형다층석탑' >

 

< 도로 가장자리에 있는 '전통찻집' >

 

찻집에서 다시 조금 더 내부로 들어가면 경내 입구에 있는 운주문(雲住門)이 자리하고 있는데, 운주문을 통과하면 일단의 축대 위에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大雄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경내 입구에 있는 '운주문' >

 

<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 >

 

< 대웅전 내에 모시고 있는 '부처' >

 

대웅전 오른편으로 지장전(地藏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왼편에는 비구니 승려들이 기거하는 승방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경내 주변 및 승방 입구에도 다양한 탑이 세워져 있다.

 

< 경내 오른편에 있는 '지장전' >

 

< 승방 앞에 있는 '석탑' >

 

< 경내에 있는 '범종각' 건물 >

 

< 많은 석탑과 함께 하는 운주사 '대웅전' 전경 >

 

사찰의 뒤편으로 올라가면 산신각(山神閣) 건물과 더불어 주변으로 다양한 석탑 및 석불이 자리하고 있는데, 석탑으로는 원판형돌탑 및 사층석탑, 구형오층봉발탑(球形五層奉鉢塔)와 더불어 부처들이 자유분망(自由奔放)하게 자리하고 있다.

 

< 대웅전 뒤편에 있는 '산신각' >

 

< 산신각 주변에 있는 '구형오층봉발탑' >

 

< 산신각 뒤편에 있는 '석불군' >

 

산신각 뒤편으로 운주사의 전경이 내려다 보이는 천불산(千佛山)이 솟아 있는데, 옛날 운주사를 방문할 때 천불산으로 올라가 전경을 내려본 경험이 있어 일행을 올려 보내고 나는 밑에서 휴식의 시간을 가진다.

한참 후 다시 동문과 합류하여 이제는 본격적으로 석불과 석탑이 산재하고 있는 경내의 오른편 능선으로 올라가 보는데, 능선으로 조금 올라가면 먼저 거대한 암석 위에 자리하고 있는 5층과 7층의 석탑이 서 있다.

 

< 오른편 능선의 '탐방로' >

 

< 능선 입구에서 만나는 '5층 및 7층석탑' >

 

다른 한편으로 거대한 바위 아래에 또 다른 석불군도 자유분망하게 자리하고 있고 그 뒤편 바위 위에 거대한 석불 한기가 외롭게 서 있는데, 이 석불의 시야를 계곡 아래에 있는 경내를 내려보고 있다,

 

 < 바위 밑에 있는 '석불군' >

 

< 산의 허리 정도에 있는 '석불' >

 

석불을 돌아서 산의 능선으로 올라가면 부부와불(夫婦臥佛)을 만나는데, 이곳 부부와불은 길이가 12m에 너비 10m의 바위에 조각 하였으면서 남녀가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 산의 능선에 있는 '부부와불' >

 

도선국사가 운주사의 천불천탑을 하룻밤 사이에 다 세우려 하였으나 미처 세우지 못해서 누워 있는데, 스님을 보필하고 있는 동자승이 일을 하기가 싫어 거짖으로 닭의 울름소리를 내므로 석불을 세우지 못하고 미완성으로 남겨두었다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이곳 능선에서 조금 내려가면 북두칠성과 같이 7개의 바위로 만들어져 있는 칠성판(七星板)과 더불어 석불 또는 석탑을 만들기 위하여 돌을 채석한 채석장(採石場)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래서 이곳 운주사에서 만들어진 석탑 및 석불의 돌은 자체에서 조달한 흔적을 알게 하여 준다.

 

< 7개의 원형돌판으로 만들어진 '칠성판' >

 

< 석재를 채석한 '채석장' >

  

경내의 반대편이 되는 왼편 능선에도 많은 석불 및 석탑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눈이 들어오고 있는데, 운주사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관광객은 오른편 능선에 있는 석불과 석탑을 구경하는 것으로 종결하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가 된다.

 

< 반대편 능선에 있는 '석불 및 석탑' >

 

경내를 벗어나면 사찰 입구에 운주사의 석불 및 석탑에 대한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 '사진문화관(寫眞文化館)' 이 새롭게 건립되어 있어 관람을 하려 들어갔지만, 이곳도 코로나 바이러스(Corona Virus)로 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관람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셋째날 3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