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5일.(목요일)
1. 이상화 기념관으로 가는길.
대구광역시에는 '빼앗간 들에도 봄은 오는가' 또는 '백조(白潮)' 등 시(詩)로 유명한 '이상화(李相和)' 선생님의 흔적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상화 선생님이 탄생한 생가(生家 : 대구 서문로 2가 11번지)를 비롯하여 마지막 삶을 가진 고택(古宅 : 대구 반월당) 및 기념관(記念館 : 대구 달서구), 시비(詩碑 : 달성공원 및 수성못)가 자리하고 있다.
오늘 많은 이상화 선생님의 발자취 중에서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에 자리하고 있는 이상화 기념관을 방문하여 보기로 한다.
이상화 기념관은 대구 지하철 1호선 대곡역 2번 및 3번 출구의 중앙에서 남쪽 방향으로 300m 정도 걸어가면 한 야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2. 이장가 및 이상화 기념관을 돌아보면서.
먼저 야산 기슭에 도착 하면 '나의 침실로' 라는 시(詩)를 새긴 거대한 바위와 더불어 야산에서 흘려내리는 토사(土沙) 방지용 웅벽이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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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화 선생님의 시 '나의 침실로' 를 새긴 바위 >
그 웅벽에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 라는 시와 더불어 이상화 가족사(家族史)를 그린 그림이 자리하고 있어 이상화 기념관이 인근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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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벽에 새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의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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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벽에 새겨진 '이상화' 가족사를 그린 그림 >
이곳 웅벽을 지나면 '이상화 기념관 및 이장가 문화관' 이라고 새긴 입간판이 서 있으면서 입간판이 가르키는 방향 야산의 언덕 위로 5층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의 1층에는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어 옆에 있는 계단을 이용하여 2층으로 올라가면 2층에는 기념관과 더불어 백아(白亞)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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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가 문화관 및 이상화 기념관' 의 건물 전경 >
< 건물 외벽에 기술하고 있는 '시와 매화꽃' >
< 전시실 건물 담장에 새겨져 있는 '시' >
건물 전면에 '이상화 기념관 및 이장가 문화관' 이라는 간판에 붙어있는 건물의 자동문을 통과하면서 전시실 내부로 입실하여 본다.
전시실은 무인(無人)으로 운영하므로 다소 깜깜하여 전기 스위치를 올려보는데, 전시실 내부는 1층과 2층의 복층(復層)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 기념관 내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
1) 1층의 관람.
먼저 1층 내부를 관람하여 보는데, 전시실 입구에는 방명록을 비롯하여 이장록(李庄錄)에 관련되는 책과 더불어 엽전(葉錢) 등 다양한 문서들을 진열하고 있고 반대편 벽면에는 '이상화 가계도(李相和 家系圖)' 를 비롯하여 '이장서역문(李庄序譯文)' 이 기술하고 있다.
< 1층 '전시실' 의 전경 >
< 또 다른 방향의 1층 '전시실' 전경 >
< 전시실 입구에 전시하고 있는 '이장록' >
이장서역문에 따르면 이상화 선생님의 할아버지가 되시는 이동진 선생님은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배움도 없이 성장하였다.
단돈 200량을 가지고 경산에서 대구서문시장 까지 걸어 다니면서 장사를 한 결과 7년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수천량으로 불어나 그 돈을 미천으로 하여 방직과 농사를 지어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돈으로 농지를 구입하여 가족 및 일가친척, 종족들을 위하여 나누어 주므로 의식주(衣食住) 걱정을 없게 하므로 이러한 선행(善行)의 나눔을 '이장(李庄)' 이라고 하였는데, 그래서 이상화의 가문을 '이장가(李庄家)' 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 벽면에 기술하고 있는 '이장서역문' >
가계도에 따르면 이상화 선생님의 할아버지가 되시는 이동진(李東珍) 선생님에게는 2명의 아들을 두고 있는데, 첫째아들이 되시는 이일우(李一雨) 선생님에게는 5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둘째아들이 되시는 이시우(李時雨) 선생님에게는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 '이상화' 선생님의 가계도 >
이동진 선생님의 둘째아들이 되시는 이시우 선생님 4명의 자녀 이름은 이상정(李相定), 이상화(李相和), 이상백(李相佰), 이상오(李相旿)가 되는데, 이시우 선생님 4명의 자녀 중에서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이상화 선생님은 이시우 선생님의 둘째아들이 된다.
가계도 안쪽 벽면으로 이상화 선생님의 내력(來歷)을 기술하고 있는데, 이상화 선생님은 1901년에 출생하였지만 7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므로 큰 아버지가 되시는 이일우 선생님의 보살핌으로 살았으며 그 또한 42세가 되는 1943년에 사망하므로 매우 단명의 삶을 살았던 시인이 되었다.
둘째아들이 되시는 이상화 선생님은 민족저항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및 대구 대륜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교육자로써, 수 많은 시를 썻다.
백조 및 개벽이라는 신간지를 통하여 나의 침실로, 마음의 꽃,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비갠 아침 등 주옥 같은 시를 많이 발표 하였다.
< '이상화' 선생님의 내력 >
셋째아들이 되시는 이상백 선생님은 학자이자 스포츠맨으로 와세다 대학 유학시절 부터 적극적인 스포츠 활동을 펼쳐 현재 일본에서도 많은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광복 이후 서울대학교 교수이자 국제 울림픽위원회(IOC) 위원 등을 엮임하였는데, 한국 사회학, 사학, 체육계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 '이상백' 선생님의 내력 >
넷째아들이 되시는 이상오 선생님은 수렵가(狩獵家)이자 저술가(著述家)로써 수렵협회 회장을 지내면서 출판 및 저술 활동에 주력하였으며 식민지 시대의 아품을 호쾌한 글로써 달래어 주었는데, 그의 저서로는 '수렵비화(狩獵秘話)' 등이 있다고 한다.
< '이상오' 선생님의 내력 >
2) 2층의 관람.
전시실 내부 계단을 이용하여 2층으로 올라가면 2층 벽면에는 큰 아버지가 되시는 이일우(李一雨) 선생님 및 이상화 선생님의 맏형이 되시는 이상정 선생님의 내력을 기술하고 있는데, 두분은 대한민국에서 독립운동 등 다방면으로 크게 기여하므로 대구를 빛낸 인물이라 하겠다.
< 2층 '전시실' 의 전경 >
< '이장가' 가계에서 저술한 서적 >
벽면 입구에는 큰 아버지가 되시는 이일우 선생님은 '우헌서루(友弦書樓)' 로 민족계몽을 꿈꾸었던 사회사업가로 크게 성공 하였다.
대구국체보상 운동의 일환으로 모금운동을 주도하였고, 대구 상공회의소 및 대구은행 등 설립에 참여하므로 대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라 하겠다.
< 큰 아버지 '이일우' 선생님의 내력 >
< 이일우 선생님의 좌우명 '우현서루' >
맏형이 되시는 이상정 선생님은 중국에서 독립군을 이끌었던 장군으로 1923년 중국 만주로 망명한 뒤 중국군 고위 장교와 임시정부 의원을 엮임하는 등 평생 독립운동에 매진한 군인이었는데, 특히 서각(書刻)에 뛰어난 예술가로 살면서 유고집으로 '중국유가' 를 남겨두고 있다고 한다.
< 맏형이 되시는 '이상정' 선생님의 내력 >
이 밖에도 많은 유품 또는 기념품을 전시하고 있지만 이상화의 아버지가 되시는 이시우 선생님 일대기는 기술되어 있지 않고 단지 아버지와 어머니 김화수 여사의 사진만 전시하고 있는데, 아마 이상화의 아버지 이시우 선생님은 일찍 작고하므로 큰 업적이 없는 것 같다.
< 이상화 선생님의 '아버지 및 어머니' 사진 >
3. 이상화의 무덤을 돌아보면서.
이상화 기념관 뒤편에 있는 야산으로 올라가면 재실(齋室)과 제각(祭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재실 입구에는 '이장가(李庄家)'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솟을대문이 자리하면서 대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남재(南齋)'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 재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솟을대문' >
< '남재'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재실 >
재실에서 안쪽으로 조금 더 내부로 들어가면 제각(祭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곳 제각 건물에서 제사(祭祀)를 올리는 건물이 되는데, 재실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고 제사를 끝내고 나서 회의(會義)나 담소를 나누는 건물이라고 한다.
< 제사를 올리는 '제각' 건물 >
이 제각의 건물 뒤편 야산으로 올라가면 이장가의 무덤 군락지가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상화 선생님의 무덤은 많은 무덤 중에서 제일 상부 오른편 구석에 안치되어져 있는데, 이상화 선생님과 부인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 '이장가' 의 무덤 군락지 >
< 부인과 함께 안장되어 있는 '이상화' 선생님의 무덤 >
우리부부는 대구 반월당에 있는 고택은 수시로 방문한 기회를 가졌지만 오늘 이상화 선생님의 유품 및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기념관 및 무덤은 처음 방문하였는데, 어느 시점에 이상화 선생님이 탄생한 생가(生家)도 방문하여 보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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