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트레킹.(전라남북도)

인생 60여 년 만에 처음 찾아보는 전라남도 곡성군의 명산 "동악산" 비경에 빠지면서.

용암2000 2011. 3. 7. 20:32

2011년 3월 5일 (토요일)

 

오늘도 일상과 동일하게 배낭을 메고 전라남도 곡성군이 품고 있는 "동악산(動樂山)" 산행길을 동참하여 보는데, 대구에서 출발하는 시간이 아침 8시로 되어 머리가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주말 산행으로써 대구 경북을 벗어나는 산행이 이렇게 늦게 출발하는 역사가 없는 것 같이 느근하게 산행을 시작한다는 것 생각하니까, 아마 산행 길이가 많이 짧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버스에 올라선다.

빈틈없는 자리를 꽉 채운 버스는 88고속도로 따라 한참 달리다가 중간 지점이 되는 거창휴게소에서 잠시 머뭄을 가지고 나서, 남원 Toll gate를 벗어나 춘향전의 무대가 되는 남원 "광한루" 옆을 돌아 한적한 시골길 따라 서쪽으로 달려 전라남도 곡성군의 심장부 곡성읍 시가지를 통과하자 마자 동악산 들머리에 11시 정각 도착한다.

Guide는 일반적으로 행락객과 산악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도림사" 매표소를 지나 청류동계곡(일명: 도림사계곡) 방향으로 산행하는 완만한 코스의 산행길을 배척하고, 매표소 조금 못 미쳐 왼편 능선길로 올라가 청류동계곡으로 내려오는 반대 방향으로 길을 인도한다.

 

< 도림사 매표소 방향으로 가지않고 "야외 공연장" 방향으로 들어가는 산행 초입 길 >

 

이렇게 능선길을 선택하는 주 이유는 계곡 위쪽에 자리잡고 있는 유명한 도림사 사찰로 들어가는 입장료 1.500원 절감하는 뜻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동악산의 일품 조망을 가진 능선길로 먼저 산행이 이루어지면서 산의 전체 윤곽과 더불어 주위 풍광 구경하면서 걷는 것이 산행 묘미를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매표소 아래에서 버스를 정차시키고 일행을 하차시켜 왼편 야외 공연장 옆으로 만들어진 능선길로 리드하는데, 45명 전원이 어미닭 꽁무니 따라가는 병아리와 같이 일렬로 도열하여 울창한 소나무 숲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능선길로 조금 올라가니 1997년도 부터 곡성군에 상주하고 있는 지역 "곡성서편산악회" 에서 만들어 놓은 돌탑들이 산행길 곳곳에 수 없이 만들어져 있어, 돌탑 감상하기가 바빠지는 산행이다.

 

< "곡성서편산악회" 에서 만든 돌탑 사이로 걷는 등산객 모습 >

 

동악산은 곡성이 자랑하는 "군립공원" 으로 지정 될 정도로 매우 아름다운 산세를 형성하고 있는데, 왼편 능선길 끝에 있는 해발 750m "형제봉" 으로 부터 오른쪽으로 빙돌아 해발 735m 동악산 까지 부채모양 같이 펼쳐져 있다.

산의 곳곳에 거대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바위들이 숲속 곳곳에 산재하고 있어 조화의 풍광을 보유하고 있는 산으로써 원점회귀하면서 산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의 산이다. 

특히 동악산은 남쪽 산기슭에 "도림사" 라는 천년고찰을 품고 있는 산으로써, 사찰을 창건하는 당시 풍악소리가 온 산을 진동하였다고 하여 산 이름을 "즐거울 낙(樂)" 자를 쓰지않고 "풍류의 악(樂)" 자를 써서 "동악산(動樂山)" 이라고 하였으며 그 때 도인들이 숲과 같이 많이 모여 들었다고 하여 "도림사(道林寺)" 라고 지었다고 한다.

오늘 이렇게 숨은 비경을 간직한 산을 찾았다는 기분이 앞서 산행 초입부터 발걸음도 가벼운 듯, 선두와의 크게 뒤처짐도 없이 무리지어 일렬로 올라가는 모습이 한폭의 군사 행진과 같이 펼쳐진다.

숨이 가슴까지 차 오르는 낮은 능선에 올라서니까 한무리의 돌탑 군락과 더불어 휴식 장소를 만들어 놓아, 배낭을 내려놓고 심호흡으로 산의 정기를 충전하여 본다. 

각종 모양으로 만들어진 돌탑 사이에 이곳 곡성서편산악회 회원들이 돌탑을 만든 일정과 더불어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의 명폐가 새겨져 있다.

 

<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 "돌탑" 및 휴식처 > 

 

이곳 형제봉 주변에는 돌탑을 쌓기 위한 잔돌이 그렇게 많은 산이 아닌것 같은데, 그 많은 돌을 어떻게 조달하었는지 생각하여 보고 또한 돌을 운반하여 오는 힘든 육체 노동을 한 흔적의 결실과 산 속에 굴려 다니는 쓸모없는 잔돌이 결합하여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거듭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먼곳에서 이곳까지 방문한 등산객들 가슴가슴마다 명품을 감상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서편산악인의 노고에 대하여, 한분한분 이름을 읽어보면서 무언의 감사를 표현하여 본다.

조금 더 고도를 상승하니까 지금까지 올라온 길을 뒤돌아 보면 먼 발치에 뿌연 연기 속에서 지리산 반야봉과 노고단 방향의 높은 산맥이 병풍과 같이 둘려쳐 있고, 그 앞에는 곡성군청 소재지가 넓은 들녘을 품고 있으며 그 들녘의 중앙을 휘감아 돌아가는 섬진강의 파란물이 뱀과 같이 굽여치고 있는 조망이 발 아래 머물고 있다. 

 

< 병풍같이 둘려있는 지리산 아래에 자라잡고 있는 "곡성읍" 전경 > 

 

< 곡성 들녘을 휘감고 돌아가는 "섬진강" 모습 >

 

아직까지 얼어붙은 눈과 얼음이 가는 길 곳곳에 산재하고 있어,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안전을 우선으로 하여 산행길을 재촉하면서 철제 계단과 Rope를 의존하여 힘들게 고도를 상승하니가 온몸에서 땀으로 번벅이 된다.

 

< 철제 계단을 올라가는 "산행인" >

 

약 1시간 30분 정도 씨름하니까 해발 750m 의 "형제봉" 정상에 이르는데, 이곳 정점에는 도림사 사찰 방향에서 바로 올라오는 공룡능선과 길상암 방향의 길이 만나는 3거리가 된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 해발 750m "형제봉" 정상에 있는 3거리 이정표 >

 

동악산 공룡능선은 설악산 공룡능선과는 대비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적지만 그래도 아기자기하게 바위를 타는 재미가 일품이라고 하지만, 오늘은 그 방향으로 진행하지 못함이 아쉽다.

그 공룡능선 뒤편에는 동악산이 만들어 내는 깊은 계곡과 더불어 동악산 정상이 손이 잡힐 듯 저 멀리서 손짖하고 있는 풍경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 중앙의 "공룡능선" 과 뒤편의 "동악산" 정상 능선 >

 

3거리에서 충분한 휴식과 더불어 과일로 허기진 배를 조금 보충시키고 또한 충분한 호흡을 가다듬과 나서 조금만 옆으로 나아가면 제2 형제봉을 만나지만, 산의 고도 차이가 거의 없는 2개의 봉우리로 형성하고 있어 형제봉이라고 불려지나 보다.

형제봉 주변에서 능선길로 조금 걷다가 양지 바른 곳에 자리 잡고서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는데, 오늘도 산행 때 종종 만나 함께 산행하여 본 몇 명의 산행인과 함께 즐겁게 식사를 하면서 그분들이 무겁게 지고온 소주 몇 잔을 얻어 먹으니 산행의 즐거움이 배가되는 황홀경에 젖어든다.

충분한 휴식과 더불어 간단한 식사를 끝내고 조금 내리막 길로 내려가면 헬기장에 도달하고, 여기서 부터 또 다시 오르막 길로 한참 올라가니까 해발 751m "대장봉(또는 서봉)" 정상에 이른다.

이곳 정상에서는 마루금의 정점으로써 3거리 이정표와 함께 아름다운 조망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특히 남쪽 방향으로 광주시가지를 품고 있는 무등산이 아련하게 눈에 들어온다.

 

< 해발 751m "대장봉"(일명 : 서봉) 3거리 안내판을 배경으로 >

 

대장봉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90도 꺽어 급경사의 내리막 길로 조금 내려가면 산의 능선 마루금 따라 길이 이어지는데, 그 능선 길에는 거대한 소나무 숲으로 형성되어 최상의 산행길이 된다.

아울러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많은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과 교차하는 산악인의 분빔으로 인하여 걷는 길이 많이 단속 되는데, 또한 그분들과 반갑게 인사하기가 바빠진다.

울창한 소나무에서 뿜어내고 있는 피톤치드의 향기 속에 완만하게 내려가는 길로 이루어진 오솔길 따라 약 30분 정도 걷다보면 해발 548m "배넘어재" 에 이른다.

 

< 해발 548m "배넘이재" 4거리 안내 표시도 >

 

이 배넘어재는 4거리 안부로써 옛날에는 이곳까지 바다물이 올라와 배가 넘어다니는 길목이라서 배넘어재라고 불려졌다는 고개인데, 지금도 이곳 주위에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 왕래하는 고개마루이다.

여기서 몸의 Condition 좋지 않은 사람들이나 동악산 전체 종주보다는 산행의 묘미를 느끼면서 천천히 걷고 싶은 사람들은 오른편 방향이 되는 도림사 사찰로 바로 내려가면 시간적으로 많이 Saving되면서 동악산 청류동계곡의 아름다운 경치에 빠질 수 있다.

꼴치를 걷고있는 일행도 언제 다시 동악산을 찾겠는가 하는 막연한 생각과 더불어 끝까지 종주 산행을 하여 보자는 의견 일치로, 다시 능선길로 직진하여 동악산 방향으로 길을 잡아본다.

또 다시 부드러운 낙옆길 따라 약 30분 정도 걷고 걸어 능선길로 올라서면 넓은 조망 바위에 이르는데, 여기서 동악산 정상을 바라보면 바위로 형성된 평평한 정상과 더불어 돌탑이 서 있고 그 앞에 통신시설 및 암벽에 올라가는 철제 사다리가 아련하게 보인다.  

 

< 멀리 보이는 "동악산" 정상과 통신탑 모습 >

  

선두 일행들이 낭터리지에 걸쳐있는 철제 사다리를 타고 개미와 같이 올라가는 작은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언제 저곳까지 가서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도달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니까 한숨만 나온다. 

어찌하든 내가 자청한 산행길이고 누가 나를 업고 갔다주는 것도 아니라 묵묵 부답으로 한발한발 능선길 타고 걷다보니, 곳곳에 걸쳐있는 거대한 암벽들이 가는 길을 막고 서서 전진을 방해하면서 우회길로 돌아가도록 강요 함으로, 걷는 시간이 무한정 늘어진다. 

반복되는 휴식과 더불어 최후의 힘까지 소모하면서 먼 발치에서 바라본 거대한 철제 사다리를 타고 올라서면, 통신시설 밑으로 이어지는 길 따라 조금 앞으로 전진하니 최후에 정점이 되는 해발 735m "동악산" 정상에 이른다.   

 

< 동악산 정상을 올라가기 위하여 암벽 낭터리지에 만들어 놓은 "철제 사다리" >

 

정상에 머물면서 주위 조망을 구경하고 있는데, 코끝을 스쳐 지나가는 산들 바람이 완연한 봄의 문턱으로 들어섰는지 이젠 훈풍의 바람을 느끼는 봄의 계절이 만연하듯 산을 찾는 산행인들에게 자연의 품으로 불려들이는 계절이 산 아래 부터 펼쳐지는 듯 오늘 참 좋은 날씨에 좋은 산에 머물게하여 주는 조물주에게 감사의 뜻을 품어본다.

 

< 동악산 정상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형제봉과 대장봉" 전경을 바라 보면서 >

 

< 깊은 골을 형성하고 있는 "청류동계곡" 전경도 보고 > 

 

이곳 정상에도 곡성 서편산악인들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돌탑 한기가 산행인들이 정상까지 올라온 기념사진의 배경이 되면서 고고한 자태의 모습으로 서 있어 정겹다.

 

< 해발 735m 동악산 정상에 만들어진 "돌탑" 을 배경으로 >

 

동악산의 경치에 너무 도취되는 걸음으로 걷다보니 우리 일행이 제일 끝에서 산행이 이루어짐으로, 하산시간을 지키기 위하여 정상에 오래 머물면서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이 에둘러 자리를 털고서 하산길로 접어든다.

급경사 하산길 따라 약 10여 분 내려오니 도림사로 바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있지만 금일 Guide는 도림사 방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직진방향의 능선길로 약간 더 나아가 걷도록 길바닥에 안내표시 종이가 적혀 있는데, 그렇게 약간 돌아서 가는 이유는 동악산이 품고있는 거대한 "신선바위" 를 보기 위함이다.

 

< 넓은 평면을 유지하고 있는 "신선바위" 전경 >

 

신선바위에 올라가니 바위 위에 약 10평의 넓은 평지를 유지하고 있어 그곳에서 신선들이 모여 앉자 Go stop 공부하기가 최적의 장소를 제공하고 있으며, 바위 가장자리로 접근하면 직벽의 낭터리지로 되어있어 그 높이가 김해 봉화마을에서 누군가 세상 보기싫다고 떨어진 부엉이 바위 만큼이나 높는 것 같아 밑으로 내려 볼려니 머리가 아파온다.

이 신선바위를 돌아 급경사의 너들바위 길로 한 30여 분 정도 더 내려가면 배넘어재에서 바로 내려오는 길과 만나고, 이내 풍족한 물이 흘려내리는 "청류동계곡" 옆으로 길이 이어진다.

 

< "청류동계곡" 에서 만나는 나비모양의 기암괴석 >

 

이곳에서 부터 시작되는 청류동계곡은 깊이가 약 1Km 넘으며, 대부분 넓은 암반과 더불어 층층이 깔려있는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제일 위쪽의 제1반석에서 부터 제9반석까지 독특한 바위를 형성하고 있다.

각 반석마다 선인들과 풍류객들이 머물고 갔다는 표시로 "시 또는 문구" 로 절경마다 각인하여 놓은 글씨가 곳곳에 산재하고 있어, 청류동계곡이 얼마나 좋은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지 표현하기가 난이하게 만든다.

 

< 넓은 반석 위에 새겨진 "시 또는 문구" 를 보면서 > 

 

곳곳에 용소와 작은 폭포로 형성되어 있으며 기암괴석 사이로 돌아가는 냇물을 보고 있으니 완전히 봄이 가깝게 오고 있는 소리가 귀청을 울리고 있는데, 청류동계곡은 정말로 신선들도 머물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암반과 계곡을 간직한 산이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01호로 지정하여 보호 관리하고 있다.

 

<계곡을 건너는 "철제다리" 와 풍족하게 흐르는 맑은 물 >

 

계곡을 가로 질러 만들어진 수 많은 철제다리를 건너고 건너면서 한 30분 정도 더 내려가면 천년고찰 "도림사" 사찰에 이른다.   

도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본사 구례 화엄사의 말사로써 원효대사(617-686년)가 창건한 사찰이고, 신라 헌강왕 2년(876년)에 도선국사가 중창한 사찰이다.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보제루와 오도문을 통과하면 예불 공간이 되는 "보광전" 이 높은 돌계단 위에 고즈늑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보광전 내부에는 보물 제1341호 "쾌불탱" 과 유형문화재 제271호인"목조아미타 삼존불" 등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이다.

 

< 천년고찰의 "도림사" 전경과 아미타 삼존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는 "보광전" >

 

< 도림사 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범종각" 건물 >

 

보광전 올라가는 돌계단 옆에 봄을 기다리고 있는 키가 적은 아담한 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나무 밑 둥치가 상호 결합되어져 있는 "연리지" 형상을 하면서 아름다운 모습하고 있으면서 나무 앞에 연리지에 대한 내력을 설명하고 있다.

 

< 보광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있는 "연리지" 나무 >

 

평소 이산 저산 다니면서 많은 연리지와 연리목 나무를 만났지만 연리지 말의 어원에 대하여 크게 신경쓰지 않고 건성으로 보았는데, 오늘 이곳 도림사 사찰에서 연리지 나무에 대하여 기술된 연리지 뜻이 적혀 있어 그 내용을 옮겨본다.

연리지(連理枝)는 중국의 시인 "백거이(白居易)" 가 지은 장한가(長恨歌)에서 인용한 글로써 남녀간 변함없는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서기 736년 당나라 "헌종" 왕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절대왕권의 힘으로 아들의 아내가 되는 "양귀비" 와 불륜의 사랑에 빠지고 또한 그 사랑의 결과로 며느리와의 인연이 비극적으로 종결된다.

양귀비가 타살되고 난 후 서기 806년도 백거이(백낙천)가 장한가를 통하여 헌종이 칠월 칠일날 장생전에서 깊은 밤 양귀비 무릎에 누워 별을 보면서 두사람이 나눈 밀어의 이야기 중 "우리가 다시 태어나 하늘에서 만나면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이승에서 다시 만나면 연리지(連理枝)가 되어서...." 라고 하는 장한가에서 나오는 말을 인용한 것에서 따온 어원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이렇게도 오래 살면서 유명한 장한가 한 대목도 읽지 않아 연리지 뜻도 모르고 연리지 나무만 좋다고 찾아다닌 나의 삶에 대하여 너무나 부끄러움이 일어나 얼른 자리를 떠나는데, 건성적으로 사찰만 돌아보고 아스팔트 길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아스팔트 길은 거대한 암반으로 이루어진 계곡 옆으로 이어지는데, 그 암반 위에는 거울과 같이 투명한 물이 각종 소(沼)를 형성하면서 잠시 맴돌다가 다시 하류로 흘러 내려가는 반석(磐石)으로 이루어져 있어 여름철에는 많은 행락객들이 머물면서 물놀이를 즐기는 천국의 장소가 되는 최적의 조건을 구비한 반석이다.

 

< 도림사에서 내려오면서 만나는 "청류동계곡" 및 반석 모습 > 

 

정말로 선선들도 떠나가기 싫어 할 정도의 숨은 비경과 계곡을 간직한 "동악산' 에서 산행을 하여 보니, 지금까지 풍광이 좋은 산도 잘 모르면서 엉뚱한 곳만 열심히 다닌 것이 나의 불찰인 것을 느껴지는 산이다.

금일은 주차장에 도착하니까 주어진 6시간 산행을 다 소모할 정도로 빡빡한 산행길이 되는 원점회귀 산행이지만, 동악산의 넓은 산세와 숨은 비경을 감상 할려면 아침 더 일찍 서둘고 2회로 나누어 산행하는 것이 정석인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