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6일 (월요일)
현충일을 포함하여 3일간의 연휴로 인하여 한양 사람들이 남도로 관광 떠나는 차량의 물결로 고속도로 정체가 곳곳에 발생한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외출을 삼가하고 있다가 휴일 마지막 날 대부분 일찍 귀가를 서두르고 있는 한양 관광객과 역행으로 움직이면 다소 월할한 나들이가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가족과 함께 단종의 역사가 숨쉬고 있는 강원도 영월로 애마를 달린다.
1. 청령포를 들어가면.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제천 Toll gate 벗어나 국도를 이용하여 영월로 들어가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 매표소에 10시 경 도착하여 인당 2.000원 입장료를 지불하고 나서 청령포를 휘돌아 흘러가고 있는 강가에 들어서는데, 수 없이 많은 인파들이 배를 타기 위하여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청령포는 "남한강" 을 가로 질러 건너는 2대의 무동력 배에는 짧은 거리로 인하여 매우 빠르게 오고가고 있지만, 밀려드는 인파로 인하여 몇차례 기다림 후 승선하여 강을 건넌다.
< "청령포" 로 들어가는 배길 >
조약돌로 널려있는 약 70-80m 정도 모래 밭을 건너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 "단종" 의 유배지가 되는 청령포 수림지 숲속으로 들어선다.
입구에 적혀 있는 안내표를 보면서 청령포 유래를 읽어 보는데, 청령포는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차탈 당하고 머나먼 영월까지 유배되어진 과정과 이 쳥령포에서 2개월 간 머물었던 사연을 기술하여 놓고 있다.
청령포는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2008년 12월 국가지정 명승 제50호로 지정 되었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그 다음해가 되는 1457년 성삼문 등 사육신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 누설 됨으로써, 상왕을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첨지 중추원사 "이득해" 가 거느리는 군졸 50여 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된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려 쌓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 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의 산이 높이 솟아 있어 통행이 불가능하고, 오직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섬과 같은 곳이다.
< 서쪽으로는 첩첩 산으로 둘려 쌓여있는 "육육봉" 산맥 >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당시에는 이곳에 거쳐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홍도" 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 찾아 문안 인사 드렸다고 전한다.
그 해 뜻밖에 큰 홍수로 인하여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니, 유배 생활 2개월 만에 영월 동헌의 객사가 되는 "관풍헌" 으로 처소를 옮긴다.
지금, 청령포에는 영조 2년(1726년)에 세운 "금표비" 와 영조 39년(1763년)에 세운 "단묘재본부시유지" 가 서 있어 옛 일을 전하고 있다.
이렇게 안내표를 건성으로 읽어 보고 나서 나무 테크로 만들어진 길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청령포를 안내하는 관광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관광객들이 청령포 구석구석 구경하는데 빠짐이 없도록 섬세하게 거리와 함께 코스 길을 설명하고 있다.
< 청령포를 돌아보기 싶도록 그려진 "관광지도" >
숲속을 통하여 조금만 내부로 들어가서 좁은 돌담 문을 통과하면 2000년 4월 관광지로 조성된 초가 건물이 나오는데, 이곳은 단종의 하인과 몸종들이 거처하던 곳으로 정면 5칸에 측면 1칸 반의 규모로 홑처마에 우진각 지붕 형상의 집으로 건립되어 있으며 건물 내부에는 하인들이 거주하는 모습을 밀랍으로 만들어 관광객에게 그 당시의 풍속을 재현하고 있다.
< 하인과 몸종이 기거하는 "초가집" >
이 초가집에서 미로의 담장과 사립문을 통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단종이 거처하던 곳 "단종어소" 의 건물을 만나는데, 이 건물은 정면 5칸에 측면 2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겹처마 형식으로 복원되어 있다.
< "단종어소" 앞에서 한 컷 >
이 단종어소는 "승정원일기" 에 기록된 내용되로 재현한 건물로써, 집 마루 위에는 단종을 기리는 "어제시(御製詩)" 가 나그네의 심금을 울리고 있으며 건물내부에는 여러 시녀와 신하들이 단종을 위하여 시종드는 모습과 책을 보고 있는 단종도 밀랍으로 만들어져 있어 그 시대의 단종의 비애를 느끼는 순간이다.
< 건물의 정면 중앙에 있는 "어제시" >
< 책을 보고있는 "단종" 의 모습 >
특히 수 많은 사람들이 마루에 앉자 청령포 문화 해설가의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해설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하나의 내용이라도 더 이해하기 위한 진지하게 듣고 있는 관광객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데 정신이 없다.
< 단종어소 마루에서 문화 해설을 듣고 있는 "관광객" >
< 청령포를 설명하고 있는 "문화 해설가" >
이러니까 어디가도 역사 이야기 한 토막도 모르고, 설명도 하지 못하는 멍통으로 살아가지....
이 단종어소 건물 앞에는 비각 건물이 하나 있는데, 내부에는 영조 39년에 세운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 라는 글씨가 쓰여진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그 내용은 "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 터이다" 이라고 영조의 친필로 쓴 글이다.
< 영조가 직접 쓴 "단묘재본부시유지" 비 >
또한 단종어소 건물 주변에는 4각으로 돌담을 쌓아서 건물의 영역을 표시하고 있는데, 이 돌담을 넘어 2그루의 소나무가 단종어소까지 길게 엎드려 왕에게 예를 표시하고 있어 말못하는 소나무도 어린 단종의 애환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 돌담을 넘어 단종에게 예를 드리는 "소나무"(밖에서 본 모양) >
< 돌담 안에서 본 모양 "소나무" >
< 돌담을 넘고 있는 또 다른 "소나무" >
돌담 대문을 나와 울창한 소나무 숲을 형성하고 하고 있는 수림지 속을 거닐다 보면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나는데, 이 소나무가 "관음송(觀音松)" 이라고 한다.
< 울창한 수림지에서 자라고 있는 "관음송" 전경 >
이 관음송은 수령이 약 600년이 되어진 나무로써, 우리나라 소나무 중에 제일 키가 큰 높이가 30m에 둘레가 5m로써 지상에서 1m 정도 높이에서 2 갈래로 갈려져 있다.
단종이 유배 생활 할 때 두 갈래로 갈려진 나무 사이에 걸터 앉아 쉬엇다는 나무이고, 또한 단종의 유배 당시 생활을 보았다는 "볼관(觀)" 자,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소리음(音)" 자의 뜻이 합성하여 관음송이라고 불려져 왔다고 한다.
< 2개의 가지로 갈려져 있는 "관음송" >
이 관음송 지나 잘 만들어진 나무 테크를 이용하여 육육봉 능선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층암 절벽 위에 한기의 돌무덤이 나타나는데, 이 돌무덤이 "망향탑" 이라고 한다.
< 잘 만들어진 "나무테크" 길 >
이 망향탑은 단종이 유배 생활 할 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 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 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라고 한다.
< 한양을 바라 보면서 쌓았다는 "망향탑" >
망향탑에서 다시 조금 하산하다가 강 기슭 언덕으로 올라가면 또 하나의 거대한 바위가 나타나는데, 이 바위가 "노산대" 라고 한다.
<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노산대" >
이곳은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청령포로 유배되고 나서 헤질 무렵이면 노산대에 올라와 한양을 바라 보면서 시름에 잠겼다는 장소로써, 바위에 올라서서 남한강의 휘몰아치는 고고한 물결을 보고 있으니 단종의 비운이 절로 느껴진다.
< 노산대에서 바라보는 "남한강" >
나무 계단을 내려와 또 다시 숲속으로 돌어서면 "금표비(禁標碑)" 를 만나는데, 이 금표비는 단종이 유배되어 있는 청령포 지역에 일반 백성의 출입과 행동을 제한하기 위하여 영조 2년(1726년)에 세운 비석이다.
< 출입을 통제한다는 "금표비" >
이렇게 단종이 잠시 머문 청령포를 돌아보면서 천천히 걸어 나오면, 들어갈 때 처음으로 만난 청령포 안내지도 뒷면에 2000년 4월 영월군수 "김태수" 씨가 쓴 "단종어가 낙성고유 축문(端宗御家 落成告由 祝文)" 의 글로 단종에게 고(告) 하는 글을 읽고 있으니 어쩐지 가슴에서 허전함이 묻어난다.
< 영월군수 "김태수" 씨가 쓴 축문의 내용 >
물을 건너면서 고등학교 때 배운 금부도사인 "왕방연" 의 시조가 입가에 맴돈다.
- 천마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야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 -
2. 장릉의 관람.
청령포에서 영월읍 시내 방향으로 약 10여 분간 이동하면 단종의 무덤이 있는 "장릉(莊陵)" 에 이르는데, 이 장릉은 사적 제 196호를 지정 되었으며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42기에 속하는 릉 중에 하나이며 남한에 40기의 릉과 이북에 2기의 릉이 있다.
<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조선왕릉" >
장릉은 1457년 단종을 노산군으로 감등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 되었다가 그해 여름 홍수로 범람하여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그해 10월 24일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17세의 어린 나이로 승하 하였다.
장릉의 위치는 시신을 수습하면 3족을 멸하게 한다는 어명으로 인하여 아무도 수습하지 않은 것을 영월군 호장 "엄홍도" 씨가 아들과 함께 몰래 밤에 지게로 시신을 지고 선산으로 가다가 잠깐 쉬어가기 위하여 머물었던 장소이다.
매장하기 위하여 더 깊숙하게 산속으로 들어갈려고 아무리 움직이도 시신이 더 이상 꼼짝하지 않아, 그 자리에 묻은 장소가 현재 장릉의 위치라고 한다.
입장료 1.400원을 지불하고 내부로 들어가면 입구에 "단종 역사관" 이 먼저 만나는데, 역사관 내부에 들어가면 조선 왕들의 계통과 함께 단종의 생활 내역이 년도별로 잘 요약되어 있으며 조금 더 내부로 들어가면 관혼상제에서 부터 옛 조상의 풍속을 잘 정리되어 있다.
< 장릉 입구에 있는 "단종 역사관" >
< 역사관 내부에 진열하여 놓은 모형 "전시품" >
건성으로 한번씩 돌아 보고 오른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울창한 숲속으로 길이 이어지므로 한 10여 분 정도 씨름하면 잘 관리된 무덤 한기를 만나는데, 이곳이 단종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장릉이다.
< 아담한 능선에 자리잡고 있는 "장릉" 전경 >
< 장릉 앞을 지키고 있는 "문인석상" >
마침 영월 군청 문화 해설가로 일하고 있는 "김삿갓" 복장을 한 해설가가 구수한 재담으로 장릉에 대한 내역을 솔깃하고 짧게 설명이 이어진다.
길게 설명하면 듣는것 보다 사진이니 찍으면서 엉퉁한 짖거리나 하면서 귀의 기울림도 소흘하여 진다면서, 장릉 앞에서 한가지 소원을 빌면 반듯이 그 소원이 성취되어 진다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함께 1분간 소원을 비는 묵념을 제의한다.
< 장릉을 설명하고 있는 "김삿갓" 문화 해설가 >
정말 재치있는 이야기로 함께 걸으며 산 아래로 내려오면 잘 만들어진 잔뒤 밭 주변에 여러개의 사당 건물을 만나는데, 사당 마다 설명서가 잘 만들어져 있어 다 읽고 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건성으로 읽어보고 돌아선다.
특히 언덕 위에 단종 묘소를 바라보는 곳에 매년 제(祭)를 지내는 제단 건물이 있는데, 이 제단은 영조 9년(1733년)에 건축한 건물로써 "배위청(排位廳)" 이라고 하면서 또한 한자의 정자와 닮아 "정자각(丁字閣)" 이라고도 한다.
< 장릉을 바라보면서 제를 지내는 "정자각" >
이 밖에도 사육신과 생육신을 모시는 제단, 맑은 물이 솟은 영천, 엄홍도의 기념비, 여러가지 건축물이 질서 정렬하게 잘 꾸며져 있는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찬찬히 관람이 요구되는 장소이다.
< 맑은 물이 솟고 있는 "영천" 샘 >
< 장릉 내부에 있는 "건물과 조경" >
< 해설을 하면서 걷는 "김삿갓" 의 뒷 모습 >
간결하게 장릉을 구경하고 나서, 다음 목적지를 위하여 정문을 나서기로 한다.
3. 청산회관에서 식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영월 까지 와서 이곳의 별식이 되는 "곤드레 나물밥" 먹어보기 위하여 장릉 정문에 수 많은 곤들레밥 식당이 있지만 장사하는 아저씨에게 영월에서 최고로 곤드레 나물밥을 잘하는 식당을 추천하여 달라고 부탁하니까, 상 도덕으로 곤란하지만 먼 곳에서 왔으므로 시내 군농협 앞에 있는 "청산회관" 으로 꼭 가보라는 말로 귀떰하여 준다.
< 곤드레 나물밥 원조가 되는 "청산회관" 건물 >
시내로 들어가 몇 번의 길을 묻고 물어서 찾아가니, 세상에서 이 만큼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 왔는지 식당 앞에 대형버스도 정차하면서 인산인해(人山人海)가 된다.
좁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는 한국에서 한가닥 한다는 유명 인사들의 방문 글씨가 온 벽을 장식하고 있는데, 내부에는 약 300석 자리에는 만원의 식객이 점심식사 즐기고 있으며 반면에 자리를 기다리는 사람도 입구에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2층 계단으로 올라가는 곳에 붙어있는 유명인사의 "방문기념" 글 >
한참 기다림 후 자리를 잡고서 곤드레 나물밥 주문하는데, 정말 맛 깔스러운 식사가 제공되어 마파람에 게눈 감추는 듯 한그릇 뚝딱 비우고 추가를 요청하니 한그릇 더 준다.
< 맛 깔스럽게 만드는 "곤드레 나물밥" >
배를 두두리면서 계산하기 위하여 카드를 내미니까 정가가 되는 8.000원으로 계산하므로, 바로 취소하고 현금을 지불하니까 1.000원 삭감하여 준다.
아마 하루 매출액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정도가 될 것 같고 주인 아줌마의 후덕한 인심이 너무나 좋아 나오면서 명함 한장을 가지고 왔는데, 성명이 "최향자" 이며 전화번호가 033)374-2141 가 되어 오늘 내가 식당 "청산회관" 의 일일 홍보대사가 되어본다. -상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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