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24일.(토요일)
한반도 중부에는 하얀 눈이 내리면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즐긴다고 야단 법석을 떨고 있는 크리스마스 이브 날, 노가다 일이나 하면서 용돈이나 좀 벌어볼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나의 블로그에 들어와 산행기나 종종 훔쳐보고 살아가는데 취미를 가진 천안에 거주하는 대학교 친구 한명이 추억의 팔공산을 걷고 싶다고, 무조건 안내하라는 명령과 동시에 11시 40분 동대구역 도착한다고 한다.
나의 등산 실력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 친구가 노가다 하루 종일 일해도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시기에 오후 노가다 일을 망칠려고 12시 경에 도착한다고 하니 서둘러 오전 일을 종결하고, 팔공산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동대구역으로 나아가 Pick-up을 한다.
그러고 산이고 머고 다 집어 치우고 Driver나 하면서 막걸리 집에 들어가 주전자 앞에 두고 늙어가는 인생 이야기나 해 볼 요령으로 공산초등학교 옆에 있는 순두부촌으로 먼저 들어가 허기진 배를 충진하고 나서, 팔공산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는지 의사를 타진하니 갓바위 시설지구에서 은해사나 동화사 방향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이 긴 겨울 날씨에 팔공산이 누구네 집 뒤 동산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아니면 다리에 헬리콥터 달고 산행을 다니는지 머리가 조금 비정적인 사람 같이 보인다.
어찌하든 배낭을 지고 먼 곳까지 찾아온 친구를 그냥 돌려 보내기에는 조금 양심적 가책을 느끼므로, 무조건 팔공산 순환도로 따라 운전하면서 잔 머리를 굴린 결과에 의거, 금년들어 3번이나 팔공산 돌아 다녔음으로 이제는 팔공산 중요 부위는 다 돌아 다녔다는 가정하에 마지막 남은 코스 중 제일 단시간으로 갈 수 있는 곳을 선정한다.
팔공산 종주코스(가팔환초 : 가산산성에서 초례봉까지 약 45Km)의 Start 지점이 되는 "가산산성" 이 주마등 같이 머리에 스쳐 지나가므로, 팔공산을 알려면 먼저 가산산성을 보아야 한다고 감언이설로 친구를 설득하여 가산산성 주차장에 이른다.
< "가산산성" 지구의 등산 안내도 >
진작 나는 가산산성을 수 많이 가본 곳이라 겨울철에는 죽어도 가기 싫은 곳이지만, 마침 친구가 한번도 안가본 곳이면서 짧은 시간에 무리하지 않고 산행하기에 최상의 조건이라고 입구에 있는 안내도 보면서 엉터리 설명하기에 바빠진다.
가산산성 초입에는 팔공산 산행 안내도와 더불어 가산산성의 내역을 기술하고 있는데, 가산산성은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산 98-1외 11필지에 위치하는 조선시대의 석축산성으로 사적 제 216호로 지정되고 주변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산성은 해발 901.6m의 천험(天險)의 가산 골짜기를 이용하여 성이 쌓았는데, 내(內)· 중(中)· 외(外) 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 사대문지와 암문, 수구문, 건물지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 "가산산성" 을 알리는 이정표 >
성(城) 내부에는 물이 풍부하여 산성 입보의 시설을 갖추고 있고 내· 중· 외, 성은 각기 시대에 따라 따로 축성되었는데, 이렇게 시대별로 달리 축성한 이유는 "임진왜란" 과 "병자호란" 을 겪은 후 잇따른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가산 요새에 삼중(三重)으로 축성되었다.
한국과 세계에 있는 어느 성도 일중(一重)으로 만들어져 있어, 어느 한 부분만 침투 당하면 성이 함락 되지만, 가산산성은 3중으로 축성되어 1차 외성이 무너져도 2차 내성에서 방어 할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중성에서 까지 방어 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성으로 세계 유일의 3중 산성이라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산성이다.
이곳 가산산성을 품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칠곡군은 "가산산성 지표조사 보고서" 에 따르면 내성의 총 길이는 5.0㎞이며 면적이 약 20만 평이나 되고, 외성의 총 길이는 내성 축조 때 이미 만들어진 동문 좌우 성벽 450m를 제외하고 4.7㎞이며 면적이 약 50만평 된다.
내성을 동서로 가로막아 초축(初築)의 내성 남쪽 1/2을 중성의 공간으로 활용하였는데, 중성 만의 면적이 약 10만 평이고 동문과 중문의 좌우 연결 성벽을 포함한 가산산성 축성 총 길이가 11.01㎞이며 성안의 총 면적이 약 70만 평 된다고 한다.
특히 성의 입구에는 지방자치단체가 되는 칠곡군에서 우리나라 6. 25 격전지로 유명한 "다부동 전투" 에서 희생된 아군의 유골을 발굴 한 내역 등을 설명하고 있으며,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유골이 묻혀있는 뼈 아푼 역사의 현장이라 등산로를 벗어나 걷기에는 다소 부담이 일어나는 산이다.
< 가산산성이 6.25 "유해 발굴" 지역이라고 표시한 안내도 >
산행 초입을 지나면 대구의 또 다른 명산이면서 대구의 남쪽을 장식하고 있는 "비슬산" 암괴류(岩塊流) 만큼이나 유명한 바위 군락지가 산의 정상 부위 부터 흘려내리고 있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 가산산성 정상까지 연결되는 "암괴류" >
산행길은 이 암괴류 따라 단 코스로 올라가는 길과 산의 허리를 빙돌면서 S자 형으로 우회하면서 천천히 여가를 즐기면서 걷는 2개의 길로 형성되지만, 시간의 촉박으로 가능한 지름길을 선택하면서 걷기 시작한다.
몇 번의 암괴류를 넘고 넘어 약 1시간 30분 정도 걷다보면 가산산성의 진가를 나타내는 "동문(東門)" 이 앙상한 나무 사이로 보이기 시작하는데, 거대한 산성이 마치 뱀 같이 산을 휘감고 있다.
나도 대한민국에 유명하다는 산성은 어느 정도 다 가 보았다고 장담 하지만, 대부분의 국내 산성은 새롭게 복원되어 옛날 돌과 새로운 돌로 혼용하여 쌓여 있어 이렇게 이끼가 잔득 낀 원형의 돌로 보존된 산성은 국내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 앙상한 나무 사이로 보이기 시작하는 "동문" >
< 이끼가 낀 "자연석" 으로 석축된 가산산성 모습 >
< 내성 안에서 바라본 "동문" 전경 >
일단 동문을 통과하여 풍족하게 흘려 내려오는 냇물을 가로질러 오솔길 따라 길을 올라서니 거대한 도로를 만나는데, 옛날에는 이렇게 넓은 도로가 없고 오직 숲속으로 길이 만들어져 있어 산성 내부를 걷는데 많는 즐거움이 주는 트레킹 길이 오늘은 기분이 영 반감이 된다.
이곳 가산산성에는 한국에서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눈 속에서 노란꽃을 피우는 세계 최대의 "복수초(福壽草)" 군락지가 있다면서 곳곳에 소개하고 있으나, 이제 겨울로 들어가는 초입이라서 꽃을 피우는 초봄에 오지 못함이 애석하다.
< 세계 최대 "복수초" 군락지가 있다는 표시석 >
문딩 같은 자식아 친구 가산산성에 등산 할려고 계획 했드라면 초봄에 왔으며 가산산성의 명품이면서 꽃말이 "행복(幸福) 및 장수(長壽)" 가 되는 복수초 구경이라도 실컨하면 꽃말과 같이 천수까지 살 것 같는데, 세계 최대의 복수초 군락지가 되는 것이 누구네 집 강아지 이름이며 공짜로 되는 줄 아는지 감기가 걸려 죽을 판에 꽃도 못 보는 이 겨울철에 와서 천수는 고사하고 백수도 못살게 한다고 혼자 궁실궁실 욕하면서 길가에 복수초를 자랑하고 있는 안내문을 읽어본다.
복수초는 봄이 되어 눈이 녹기 시작하면 꽃을 피우는데, 북쪽 지방에서는 눈 사이에 피어난 꽃을 볼 수 있으므로 "눈색이 꽃" 이라고도 부르며 중국에서는 눈 속에 피어 있는 연꽃이라 하여 "설연(雪蓮)"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른 봄에 노랗게 피어나는 꽃이 기쁨을 준다고 해서 복수초라고 하는데, 배수가 잘 되는 부식질 토양에서 잘 자라며 봄에 꽃이 필 때는 해가 잘 비쳐야 하나 꽃이 지고 나면 나무 그늘 밑에서도 잘 자란다고 한다.
넓은 길 따라 조금 걷다 보니 가산산성의 중앙을 알리는 "중문(中門)" 에 이르는데, 중문 인접지역에 중장비의 굉음을 울리면서 여러명의 인부들이 중문 옆으로 산성을 복원 시키고 있으며 석축을 쌓기 위한 새로운 돌을 운반하기 위하여 도로를 넓게 만들어 놓은 것이 여기에서 알게 된다.
<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중문" 모습 >
옛날에는 중문만 남아 있으면 옆으로 이어지는 석축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끼가 낀 고유의 돌로 형성되어 있어 운치가 있는 산성이 새롭게 다듬어진 신형 석축과 혼성하여 축성하고 있는 모습 보고 있으니, 돈 많다고 자랑하면서 돈으로 처 발라 놓은 서울의 대표적 산성이 되는 "북한산성과 남한산성" 이 생각나게 만든다.
< 북한산성 같이 새롭게 쌓려고 갔다 놓은 "돌" 덩어리 >
거지같은 대구와 칠곡군 지자체에서 그렇게 새로운 석축용 돌을 운반 할 형편되는 것 보니, 아직도 대구가 살만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옛 산성 길 따라 한참 걸어가면 가산산성의 백미가 되는 "가산바위" 에 이른다.
< 앙상한 나무 사이로 보이는 "가산바위" >
산행 초입에서 친구에게 가산바위가 약 500평 된다고 뻥 치면서 겨우 설득하여 올라오니, 안내판에 90평이라고 기술되어 있어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을 참고 철제계단 따라 바위 위로 올라가니 새찬 겨울 바람이 빰을 스쳐 지나간다.
< 500평이라고 뻥 치다가 큰코 다친 "가산바위" 안내문 >
< 가산바위로 올라가는 "철제계단" >
그래도 가산산성에서 제일 경치가 좋은 곳이 이곳 가산바위이므로 친구와 함께 합동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 볼려고, 아무리 기다려도 개미 새끼 한마리도 올라오지 않는다.
거대한 바위 위를 거닐면서 주변을 돌아 보니까, 아련하게 보이는 대구시가지의 아파트 숲과 뱀 같이 굽이쳐 흘러가는 낙동강의 흰 물결 및 풍경도 희미한 안개 속에서 가물거리고 있다.
추위에 오돌오돌 떨면서 개인적으로 가산바위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인증샷을 만들고 있으니, 눈 앞에 6.25의 치열한 전쟁사를 기록하여 놓은 "다부동 전적비" 와 더불어 하얀 건물의 "전적 기념관" 도 아련하게 보인다.
< 가산바위에서 바라보는 "유학산" 과 "다부동 전적비" 전경 >
그 뒤편으로 해발 839m "유학산" 이 오뚝 솟아 있는데, 몇년 전 유학산을 산행하기 위하려 올라가면서 산 중터 거대한 암벽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아군과 적군의 점령지가 바뀌어 지면서, 산화되어 죽어간 어린 학도병과 군인들의 영혼을 기리는 "도봉사" 사찰이 아련하게 기억 저편으로 보인다.
추위로 인하여 에둘러 가산바위를 내려 서면서 가산바위 입구에 북쪽으로 600m 만 더 가면 "서문(西門)" 이 있고, 서문에서 700m 만 더 내려가면 "북문(北門)" 이 있다는 이정표 보고, 서문까지 만 방문하기로 하고 오솔길 따라 길을 나선다.
< 가산바위에서 서문으로 가는 "오솔길" >
한 10여 분 정도 걸어가니 다 허물어진 돌 무덤이 나오면서 쓸어져 가는 서문이 세월의 여파 속에서 성문의 흔적을 나타 내고는 있으나, 너무나 자연적으로 방치하고 있어 성문의 기능이 완전히 망실되어 안타갑다.
< "서문" 을 나타내는 안내 표시판 >
이 성문도 한양 근교나 캄보디아에서 태어 낳다면 한가닥 할 정도의 역사적 자연유산으로 등제 되어질 물건인데, 아깝게도 거지같은 대구 근교에 있다보니 정부의 혜택을 전연 받지 못하여 현재는 성곽 위에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앙코르왓트의 유적지 "티프론 사원" 과 비슷하게 나무 뿌리가 성을 휘감고 있다.
< "티프론 사원" 같이 나무 뿌리가 잠식하고 있는 서문 전경 >
여기서 더 전진하여 북문까지 갈려고 생각하였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하여 되돌아 서서 조금 전 통과한 중문으로 나오니 중문 좌우에는 옛날 사람이 거주하면서 생활한 집터와 더불어 거대한 연못 몇 개가 산성 내에 흔적으로 남아 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보존의 가치를 높이면서 개발 보호한다면 정말 좋은 관광지가 되어짐이 자명하여 지는데.....
중문에서 부터 올라올 때 와의 반대 방향이 되는 북쪽 방향 능선 따라 길을 들어서서 걷다 보면 가산의 또 다른 전망이 나타나는 이정표에 이르는데,100m 이내에는 "용바위" 가 있고 200m에는 산성의 망루격이 되는 "유선대" 가 있다는 지시표가 있어 지시 방향 따라 조금 하산하니 거대한 용바위가 나타난다.
< "유선대 및 용바위" 가 근교에 있다는 안내표시 >
안전을 위하여 용바위를 넘어가도록 만들어진 철제 계단으로 올라서면 팔공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팔공산 능선이 환상적으로 펼쳐지는데, 팔공산 비로봉 정상의 통신탑과 군사 시설물이 손에 잡힐듯 아련하게 보이면서 프로 등산객들은 저곳 비로봉까지 당일로 종주가 가능하다고 한다.
< "용바위" 로 올라가는 눈 쌓인 안전 다리 >
< 용바위에서 바라보는 "팔공산 정상" 통신시설과 군시설 >
용바위에서 다시 100m 더 산성 따라 내려서면 산성의 절대적 요새가 되는 "유선대" 즉 돈대(墩臺)가 나타나는데, 이 돈대는 산성에서 지형적으로 돌출된 곳의 수백 메터 암벽 위에 설치되어 있어 적의 동태를 파악하는데 필연적으로 필요한 음폐의 요새이다.
< 거대한 절벽 위에 설치되어 있는 "유선대" 모습 >
우리 선조의 지혜가 묻어나는 곳에 설치된 유선대는 김일성 쫄다구 "김신조" 도 이곳으로 침투하라고 하면 시도도 하기 전 자살로 방향을 선택 할 정도의 절벽으로 형성되어 있어, 영화 "독수리 요새" 보다 더 지독한 천연 요새로 만들어진 돈대이다.
이 요새에서도 한참 머물면서 팔공산 진경을 관람하여 보면 눈 앞에는 한국 최고의 불상이 있는 "제2 석굴암" 을 품고 있는 또 다른 능선의 산맥들이 점점이 수 놓고 있어, 팔공산이 대구 시민에게 휴식과 더불어 여가를 주는 명산 임을 다시 한번더 느껴보는 장소이다.
< 유선대에서 바라보는 "팔공산 종주" 능선 >
되돌아서 원점으로 올라오면 가산산성의 정점이 되는 해발 901.6m "가산(架山)" 정상에 이르고, 이 정상에서 다시 능선따라 남쪽으로 조금 내려서면 가산산성의 산행 초입에서 만난 동문에 이른다.
< 해발 901m "가산 정상 표시판" 을 배경으로 >
여기서 올라 올 때와는 가능한 중복되지 않게 길을 걸어서 1시간 정도 내려서면 주차장에 이르고 주차장 옆에 있는 "혜원정사" 사찰로 들어가 보는데, 옛날에는 무명으로 보잘 것 없는 사찰이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사찰로 변화를 가져와 불거리를 많이 제공하여 준다.
< "혜원정사" 의 전경 >
사찰 입구에는 거대한 돌로써 만들어진 약사여래불과 더불어 사천왕상 부처를 만들어 놓고 있으며, 그 뒤편에 거대한 바위로 "나무아미타불" 과 "나무미륵존불 " 이라는 글로써 사찰의 위용을 표현하고 있다.
< "혜원정사" 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사천왕상 >
내부로 들어가면 아담한 대웅전 건물에서 불경 소리가 은은하게 퍼지는 사찰 내부를 돌아보는데, 사찰 주변에 많은 건물과 조각품이 만들어져 있어 머뭄의 시간이 길어진다.
< 불경 소리가 울려 퍼지는 혜원정사 "대웅전" >
사찰을 나와 사찰 앞으로 내려서면 거대한 성문이 나타나는데, 이 성문이 가산산성의 외성(外城) 문으로 문의 입구에는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 이라는 글씨가 붙어있으며 이 성문이 "진남문(鎭南門)" 이라고 한다.
< 가산산성의 "진남문" 이 되는 영남제일관 >
저녁 노을에 노출된 진남문은 외성의 정문이 되면서 동시에 내성 및 외성 전체의 정문이다.
개구부는 남서향이며1954년 집중 폭우로 유적 대부분이 유실되었는데, 이후 1977-1980년에 걸쳐 남문루 및 남문과 암문, 수구문 등 185m를 복원 중수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설명서가 부착되어 있다.
오늘 친구 덕분으로 가기 싫은 가산산성 등반을 동행 하였지만 그래도 가산산성 곳곳에 새롭게 복원하고 부착하고 있는 역사적 고증의 유례를 읽어보는 계기가 되고, 금년도 팔공산 대부분을 다시 찾아보는 기회의 시간을 가진 반나절이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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