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트레킹.(대구팔공산)

2012년 고등학교 동창생으로 구성된 백봉회 산행은 "파계사 성전암" 으로 돌아 보고서.

용암2000 2012. 1. 15. 22:31

2012년 1월 14일 (토요일)

 

다사다난 했던 신묘년도 무사히 보내고, 임진년 새해를 맞이 하면서 고등학교 동창생으로 구성된 "백봉회" 신년 첫 산행은 가까운 대구 팔공산 "파계사 시설지구" 에서 왼편 능선 방향으로 올라가 오른편 파계사 방향으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산행으로 시작한다. 

파계사 시설지구 버스 주차장에 10시 정각 까지 개인적으로 도착하라는 신임 총무의 안내 멘트 따라 평소보다 늦게 산행이 시작 되므로, 느근하게 일어나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여 목적지에 도착하니 시간의 조정 실폐로 15분이나 늦게 도착된다.

모두가 출발하고 지각생 몇 명만 총무의 휴대폰 안내를 받으면서 산행 초입에 들어서니 입장료 1.500원을 Saving하기 위하여 파계사 방향으로 직접 들어가지 않고, 산불 예방으로 인하여 출입 금지되어진 좌측 Dog구멍 방향으로 하여 철조망 뚫고 올라오라고 한다.

 

 < 산행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현수막" >

 

새해 첫 산행부터 법(法)을 어기면서 철조망 뚫고 들어 갈려고 하니 양심적 가책이 조금 느껴지는 순간이 되지만, 실업자 호주머니 사정으로 양심적 가책도 나의 육신과 같이 소풍을 떠나고 없는지 도덕적 의식이 반감된다.

수십 년 전에는 대구의 명산인 팔공산을 많이 찾았다가 작금까지 완전히 잊고 지냈던 팔공산에 작년부터 중요 산행코스를 답사하였지만, 이곳 파계사 지구에도 몇 십년 만에 다시 대면하여 보니 새로운 산행 미(美)를 느끼는 순간이다.

산행 초입부터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길이 이어지지만, 산행길이 급경사의 오르막 길로 만들어져 있어 이내 호흡이 턱까지 차 올라오면서 추운 겨울 속에서도 이마에 땀이 송곳송곳 올라오기 시작한다.

 

 < 울창한 "소나무 숲" 속으로 만들어진 산행길 올라가면서 >

 

늦음으로 인하여 혼신의 전력 투구로 산행에 몰입하여, 천천히 가는 앞 일행과 7부 정도의 능선 바위 위에서 조우가 이루어지므로 반갑게 인사로 대면하면서 신년하례도 겸하여 본다.

이어 땀을 식히면서 바위에 올라서서 주변 풍경을 구경하여 보는데, 눈 아래에는 팔공산 순환도로 좌우로 그림과 같은 펜션과 별장 건물들이 점점이 수 놓고 있으며 팔공산의 지맥인 도덕산 뒤편으로는 대구시가지의 아파트 건물이 희미하게 졸고 있다. 

 

 < 팔공산 순환도로 따라 건립 되어진 "별장과 펜션" 건물들 >

 

 < "도덕산" 뒤편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대구시가지 모습 >

 

이곳에서 오늘 참석 인원을 점검하니 총 12명의 단촐한 식구로 이루어지며 산행 초입에서 백봉회 회원이 운영하는 대구 "불로막걸리" 대표가 막걸리 3 Box를 보내 주므로 몇 명이 분산하여 무겁게 지고 가기 싫다며 배 속에 넣어 가자고 하여, 총무의 주 특기가 되는 돼지족발 요리와 더불어 막걸리 잔이 춤추기 시작한다.

 

< "돼지족발과 막걸리" 잔이 오고 가면서 >

 

갈증 해소와 더불어 엄습하여 오는 추위의 몸을 막걸리로 녹이면서 대화의 꽃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산행길로 들어서는데, 이내 3거리 이정표가 나타나면서 오른편 옆 길로는 성철스님이 머물면서 유명하여진 "성전암(聖殿菴)" 이라는 암자가 500m 전방에 있다는 표시가 붙어있어, 나 혼자 그 방향의 길로 들어선다.   

몇 번의 오르내림과 고불고불한 오솔길 따라 돌아가니 먼저 성전암 스님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여 주는 산비탈 다랭이 밭이 을씨년 스럽게 나타나면서, 밭의 위 언덕 길을 돌아서면 5층의 아담한 탑이 성전암 입구를 지키고 있다.

 

< "성전암" 으로 넘어가는 스님과 다랭이 밭 >

 

 < 성전암 입구에 있는 아담한 "5층석탑" >

 

이 탑을 돌아서면 삐죽삐죽한 바위 군락지 속에서 제비집과 같이 둥지를 틀고 있는 건물이 나타는데, 이 건물이 파계사의 암자 중에 으뜸 암자가 되는 성전암이다.

 

< 암벽 밑에 제비집 같이 모여있는 "성전암" 전경 >

 

사찰 입구에 기록된 성전암 유래를 읽어 보면 성전암은 조선 숙종임금의 비(妃)가 되는 "무수리 최씨" 여인의 몸을 빌려 잉태하여 영조대왕으로 환생한 "농산(壟山)스님" 이 머물어 있었던 암자이라고 기술되어 있으며, 불교에서 명성이 자자한 만공선사, 혜월선사, 고봉선사 등 스님들도 이곳에 머물면서 기도 정진한 한국에서 유명한 기도 도량의 암자이라고 한다.

 

 < 성전암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이렇게 성전암은 영남의 3대 선원도량 중에 하나로써 유명한 암자이었지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라는 평범한 진리를 이야기 한 "성철스님" 이 1955년 부터 1964년 가을까지 10년간 암자 주변에 철조망을 치고 아무도 발길을 들지 못하게 하므로 선원도량으로써의 명성이 다소 떨어진 암자이다.

성철스님이 이곳 성전암에 머무는 10년 간 두문불출하여 외부의 출입을 금하게 한 것이 흔히 "10년 동구불출" 이라고 하는데, 이 기간 동안 거의 모든 시간을 불경과 조사어록 등 책을 읽는데 소비하였다고 전하여 진다. 

 

< "성철스님" 이 10년 간 머물고 있었던 성전암 전경 >

 

 < 성전암 왼편 위쪽에 있는 "관음전" >

 

마당을 배회하는 스님 한분에게 성철스님이 이곳에 머물고 있을 때 그분의 가꾸면서 사랑했던 수령 약 300년 된  전나무 한그루, 즉 "승철스님 나무" 가 어디에 있는지 여쭈어 보니, 몇년 전 태풍으로 쓰려져 고사하였다고 하면서 매우 안타까워 한다.

 

 < 성전암 앞을 배회하는 "스님" 과 잠시 대화하여 보면서 >

 

스님과 더 많이 대화하고 싶지만, 성전암 뒤편 산마루 헬기장에서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 위하여 앞서 간 동료를 따라잡기 위하여 암자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는 우물가로 가 약수물 한 바가지로 목을 축이고 나서 산행길을 재촉한다.

출발점인 3거리 지점까지 가기 전 능선으로 바로 올라가는 지름길로 선택하여 급경사 오르막 길로 방향을 잡고 올려 갈려니, 온몸이 땀으로 범벅되면서 발걸음이 한없이 늘어진다. 

진고의 노력으로 능선에 올라서 가뿐 숨을 몰아치면서 한참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몇 명의 등산객들이 지나가면서 주변 경관을 감상하다가 왼편 산의 이름을 묻기에 그 산과 능선은 작년 년말 천안에서 내려온 동문과 함께 거닐었던 가산산성이라고 가르켜 준다.

더불어 가산산성에서 뻗어내리는 능선길로 제2 석굴암으로 넘어가는 "한티재" 고개 휴게소 건물까지 연결되는 팔공산 종주길과 휴게소 주차장에 머물고 있는데, 휴게소 마당에 주차하고 있는 승용차 차량에서 햇빛으로 반사하는 오색 찬란한 빛깔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 앞에 아련하게 머물고 있다.

 

< 제2 석굴암으로 넘어가는 "한티재" 휴게소 모습 >

 

충분한 휴식을 가지고 헬기장이 있는 파계재 방향으로 혼자 너덜너덜 걷고 있으니, 울창한 소나무 숲과 바위 군락들이 무리지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어 산책하는데 다소 마음의 위안도 일어난다.

 

< 능선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바위와 소나무" 군락지 >

 

< 자연의 시련에 못견디고 찌어진 "소나무" 전경 >

 

약 20여 분 동안 몇 개의 능선을 오르내리면서 앞으로 전진하여 넓은 헬기장에 도착하니 몇 무리의 산행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맛 있는 점심식사를 즐기고 있는 한 구석에 우리 일행들이 막걸리를 즐기고 있어 합류하여, 간단한 점심식사와 더불어 각자 부인이 마련하여 준 가지각색의 건강식 반찬과 주류가 만찬에 첨가 된다.

식사 시간내 내 수십년 간 동행한 산악회 모임에 무슨 할 말과 추억의 덕담이 그렇게도 많은지, 세월의 흐름이 완전히 망각되는 시간까지 충분하게 흘려보내고 나서야 비로써 엄습하여 오는 추위로 자리에 일어선다.

팔공산 정상이 있는 비로봉과 동봉 방향으로 조그만 더 앞으로 나아가니, 옛날 파계사에서 바로 올라와 제2 석굴암까지 구경하기 위하여 넘나 들었던, "파계재" 고개에 이른다.

 

 < 파계재 고개에 있는 "4거리 이정표" >

 

이 고개 정상에는 등산객의 길잡이가 되는 4곳 방향을 표시하는 이정표가 길을 안내하고 있는데, 오늘 산행은 원점산행으로 계획되어 있어 이곳에서 출발점이 있는 파계사 방향으로 접어든다.

 

< 파계사 반대 방향 "제2 석굴암" 까지 5Km 거리를 알리는 표시석 >

 

팔공산 뒤편에 살고 있는 군위군 사람들은 한티재 방향에서 고향으로 넘어가는 차량길이 없을 때 파계재를 통하여 대구 서문시장까지 봇짐을 지고 넘나 들고, 대구로 유학 하려온 학생들이 방학 때 마다 부모님 만나려 넘나 들었던 신장로 같이 넓은 산길이다.

이제는 몇몇 등산객들 만 이용하는 오솔길로 변모 되어지다 보니 산행길이 다 허물어지고 험난한 너덜바위 길로 변화가 일어나고, 겨울철 얼다 녹다하는 얼음 덩어리로 하산하는데 매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길로 변화가 오고 있다.

 

 < 바위로 이루어진 급경사의 "너덜바위 길" 로 하산 하면서 >

 

점심식사 때 마신 음주로 최대한으로 낮은 자세로 엉금엄금 기면서 급경사의 바위길에 안전을 우선으로 하여 약 30분 정도 씨름하면서 내려 서니, "파계사(把溪寺)" 사찰 마당에 이른다.

 

 < "파계사" 사찰 입구 마당에서 바라보는 "진동루" 전경 >

 

파계사로 명(名)한 파계(把溪)는 "물줄기를 잡는다는 뜻" 을 가지고 있는데, 파계사 주변에 흐르는 아홉 갈래 계곡에서 흘러드는 물줄기가 모여지는 곳에 지기(地氣)가 흘러오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뜻으로 지어진 사찰 이름이지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사용하는 파계(破戒) "계율을 깨뜨린다는 뜻" 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고 한다.  

파계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가 되는 동화사 말사로써, 신라 애장왕 5년(804년)에 신라 헌덕왕의 아들이 되는 "심지왕사(心地王師)" 가 창건한 절로 그 연혁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 뒤 선조 38년(1605년)에 "계관(戒寬)법사" 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원통전(圓通殿)" 을 중건하고, 1695년(숙종 21년)에 "현응대사(玄應大師)" 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파계사 주불을 모시고 있는 "원통전" 전경 >

 

1976년 6월 원통전에 모시고 있는 "목조 관세음보살좌상" 을 개금(改金) 할 때, 불상 안에 영조대왕의 어의(御衣)가 나와 파계사가 영조와의 인연이 깊은 사찰 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 원통전 내부에 있는 보물 "목조 관세음보살좌상" > 

 

2층 누각 "진동루(鎭洞樓)" 옆으로 경내에 들어서면 법당인 원통전(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이 높은 기단 위에 서 있고, 그 좌우에 "적묵당(寂默堂)" 과 "설선당(說禪堂)" 이 ㅁ자 형태로 빙 돌아 건립되어 있어 경내 마당은 전후 좌우가 완전히 건물로 둘려 쌓여 있어 매우 아늑하고 아담한 느낌이 일어나는 사찰이다.

 

< 사찰 왼편에 있는 팔작 지붕의 "설선당" 전경 >

 

그런데 사찰 마당에 올라서니 마당 전체에 행사용 꽃 등이 가득하게 장식되어 있어 보기는 좋지만, 사찰 본연의 모습을 완전히 감상 할 수 없어 애석함도 다소 일어난다.

 

 < 사찰 마당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꽃 등" >

  

본찰이 되는 원통전 뒤쪽으로 기영각. 산령각. 응향각(凝香閣). 미타전 등이 있는데, 그 중 기영각은 숙종. 영조. 정조의 어필(御筆)을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어필각(御筆閣)" 이라고 했으나 지금은 어필이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 숙종. 영조. 정조의 어필을 보관하고 있었던 "기영각" > 

 

 < 원통전 왼쪽 뒤편에 있는 "산령각" 전경 >

 

중요 문화재로는 원통전에 봉안되어 있는 보물 제992호 "목조 관세음보살좌상" 을 비롯해 "삼장보살도(보물 제1707호)", 팔각석 등의 문화재가 보존하고 있으며, 적묵당 뒤편에는 거대한 "설법전(說法殿)" 건물이 새롭게 건립 되어져 있어 각종 불교 강의 등 행사를 주관하는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 적묵당 뒤편에 있는 "설법전" 전경 >

  

이외에도 사찰 주변에는 새롭게 건립된 지장전(地藏殿), 극락전(極樂殿) 등 메인 사찰과 동 떨어지게 무분별하게 건립되어져 있어, 사찰 배치에 다소 흠집이 되는 것 같다.

 

< 사찰 왼편 구석에 건립된 "지장전" 전경 >

 

진동루 양쪽 옆 돌계단을 이용하여 마당으로 내려서면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를 만나는데, 이 나무가 "영조임금 나무" 라고 하는데 수령이 약 250여 년이 되었다고 한다.

 

< 수령 250여 년이 된 "영조임금 느티나무" 전경 >

 

 < 영조대왕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파계사에서 부터 아스팔트 길 따라 하산하면 사찰 앞에 아담한 인공호수를 만나는데, 이 호수가 파계사 주변에 흘려내리는 9개의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을 잡아주는 인공호수라고 한다.

 

< 파계사 주변 9개 계곡물이 합류하는 "인공호수" 전경 > 

 

이 호수를 통과하여 조금 하산하면 파계사 일주문에 이르며, 일주문 앞으로 흐르는 개울에 걸려있는 피안교 다리를 건너 조금 더 하산하면 파계사로 들어오는 매표소에 이른다.

 

< 파계사 영역을 표시하는 "일주문" 앞에서 >

 

< 파계사로 들어가는 "매표소" 입구 >

 

매표소를 벗어나면 수령 약 250여 년이 되는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를 또 다시 만나는데, 이 나무가 파계사의 원통전을 건립한 "현응대사의 나무" 라고 기술되어 있으나 겨울철 중앙에 있다 보니 활엽수 잎은 다 떨어지고 앙상한 나무가지 사이로 삭풍만 소리없이 지나간다.

 

 < 밑 둘레 약 4.1m "현응대사의 느티나무" 의 을씨년 스러운 모습 >

 

현응대사 나무에서 부터 파계사 위락 시설지구로 들어서면 아침 백봉회 산악인들이 출발한 Dog구멍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데, 정상적으로 입장료를 내지 않고 불법으로 산행한 것에 대한 미안 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신년 첫 산행이 무사히 끝냄으로 인한 기념축하를 하기 위하여 파계사 앞 식당촌에 칼국수로 유명한 "동림식당" 으로 자리를 이동하여, 신년하례도 겸한 막걸리 파티를 열면서 신임 회장과 총무의 소감 및 2012년 산행계획을 간단하게 설명이 하달 되면서 우찌하던 금년에는 건강하게 자주 만남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산행을 연결하자고 다짐한다.

이어 아침 막걸리만 잔뜩 선물하고 업무로 인하여 산행에 동참하지 못한 "불로막걸리" 대표 정철규 회원이 동참하여, 앞으로는 백봉회 산행때 마다 막걸리를 무한정 공급하겠다는 약속이 Plus 됨으로 더욱더 활기찬 산행으로 종결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