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트레킹.(대구팔공산)

연속하여 다시 찾은 대구시에 있는 팔공산 "갓바위" 에서 "동봉" 까지 종주산행의 도전.

용암2000 2011. 12. 9. 22:53

2011년 12월 4일 (일요일)

 

오늘은 특별하게 나의 불방에 들어와 종종 나의 속을 확 뒤집어 놓고 다니는 유일한 "돌풍" 이라는 동생이 팔공산 산행을 하여 보겠다는 소원에 의거 죽는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어찌 산 사람 소원을 거절 할 수 없어 대구사람이면 심심하며 찾아 산행하는 코스이면서 팔공산의 진미를 느끼보는 갓바위에서 동봉까지의 1/2 종주산행을 선택하여 본다.

몇일 사이 첫번째 산행으로 염불암에서 동봉, 비로봉, 서봉으로 하여 부인사까지 걸어 보았고, 이어 두번째 산행으로는 갓바위에서 은행사까지 종조하여 본 경험이 있다.

이젠 마지막으로 중간지점을 연결하는 갓바위에서 동봉 까지 산행이 이루어지면 팔공산 중요부분 모두를 답습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불방의 동생에게 자랑이나 한번하여 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간략한 산행 계획을 수립하여 통보한다.

이곳 갓바위에서 동봉까지 젊은 시절에는 무리 없이 많이 다녀본 코스이라, 별걱정 없이 막연하게 도전하여 팔공산 진가를 설명하리라는 마음으로 동대구역에 아침 9시까지 도착도록 명령 하달하여 도킹이 이루어진다.

종주를 하기 때문에 승용차 보다 편리한 401번 시내 버스를 이용하여 갓바위 시설지구로 들어가기 위하여 파군재를 통과하여 팔공 터널을 벗어나니, 팔공산 정상 부위에는 간밤에 내린 하얀 눈이 아침 햇살에 반사하여 빤짝이고 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시간은 9시 55분을 지나가고 있어 동봉의 목표지점까지 가는데 시간이 촉박하여 지겠다는 다소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산행 코스가 너무나 선명하게 알고 있어 만약 무리가 따른다면 중간 지점에서 탈출하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산행에 임한다.

 

< 2주 전 이 길을 걸었던 "갓바위" 시설 지구를 지나면서 >

 

갓바위 시설지구에서 올라가는 길은 너무나 익숙하여 그냥 체력 안배를 조절하면서 서서히 걷지만, 돌풍은 싱글벙글 하면서 연신 정신을 놓고 있어 걷는 속도가 억망이 된다.

가능한 빠르게 걸어 갓바위 시설지구 중간 지점에 있는 '관암사" 에 도착하는데, 오늘은 시간 단축을 위하여 왼편의 방향 돌계단 길로 올라가기로 한다.

정말 이 길도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올라가는 길이라 많은 변화를 가지고 왔는데, 가는길 전체가 여러 사람이 교행이 가능토록 넓게 돌계단으로 만들어져 있고 가장자리에는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든 안전 난간대를 잘 만들어 놓아 옛날보다 걷기가 매우 편리하게 된다.

 

< 잘 만들어진 "돌계단" 을 올라가면서 >

 

곳곳에 쉼터를 위한 의자와 정자가 건립되어 있어 힘에 부딛치는 사람에게 휴식처를 제공하여 주는 장소가 산재하고 있지만, 연세가 많은 사람들이 의자를 점유하고 있어 마땅하게 휴식도 변변하게 취하지도 못하고 인파에 밀려 정상으로 올라간다. 

 

< 중간중간에 만들어진 "정자" 와 나무 의자 >

 

역시 갓바위는 참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불(佛) 정토의 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중간 정도 올라가면 옛날과 같은 장소에 변함 없이 커피와 약수차를 판매하는 휴식처에 이른다.

 

< 옛날부터 있었던 "휴식처" 와 쉼을 가지는 사람들 >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갈증을 해소시키는 장소에 나도 긴 휴식에 들어가는데, 갓바위 정상 스피커에서 울러퍼지는 염불 소리가 나는 곳으로 돌풍을 먼저 올려 보내어 빨리 도착하여 기도 끝내고 다음 진행 코스를 위해 기다려라고 하면서 나는 나의 콘디션을 조절하기 위하여 늘어지게 앉자 있어 본다.

그런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나서 천천히 갓바위에 이르어 돌풍을 찾으니 그 때까지 뭘했는지, 아줌마 궁둥이만 처다보고 있었는지 많은 인파 속에서 카메라만 만지작 거리고 있다.

종주시간이 없다는 소리를 아무리 하여도 소귀에 경 읽는 소리로 들리는지 느근하게 구경하다가 신발을 벗고 기도를 들리기 시작하는데, 기도 하나 드릴 것도 없는 만사가 형통한 사람이 무슨 소원이 그렇게 많은지 일어나지지 않고 업드려 있어 남의 애간장 다 녹아 내리게 한다.

 

< 진고의 노력 끝에 올라선 "갓바위" 모습 >

 

한참 후에야 비로써 겨우 일어나 이제는 갓바위를 배경으로 인증 샷까지 부탁하면서 여유 까지 부리므로, 이래서 산행은 혼자 하여야 한다는 것을 잠시 느껴보는 순간이 지나간다.  

 

< 저 많은 인파 속에 오늘 "아는사람" 한명 정도는 있는 것 같은데 >

 

심고의 노력으로 예정 시간보다 약 30분이나 지난 후 갓바위를 벗어나 뒤편에 있는 암자에서 제공하여 주는 무상 공양도 생략하고, 본격적으로 팔공산 종주길로 방향을 잡고 열심히 걸어본다.

 

< 오늘 산행 종점을 잡고 있는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 이 아련하게 보이면서 >

 

< 고개를 들면 하얀 눈으로 덮혀 있는 "동봉" 주변 풍광 >  

 

몇 번의 암릉길을 오르 내리면서 산천 구경에도 잠시 도취하며 약 한시간 정도 걸어 은해사와 동봉으로 가는 3거리 능선재에 이르니, 동봉에서 내려오는 몇 명의 산행인들에게 동봉길 상태를 점검하여 본다.

 

 < 능선재에 있는 이정표에서 오늘은 "동봉" 방향으로 >

 

지금 동봉에는 눈꽃 터널을 형성하고 있어 최상의 설경을 연출하고 있어 꼭 걸어보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하지만, 노면 상태가 좋지 않으므로 안전에 조심이 요구되어지는 길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하여 준다. 

정상까지 가야하나 하는 갈등을 품고서 한발한발 동봉 방향으로 길을 잡고서, 많은 사람들의 뒤꽁무니 따라 팔공산의 매력에 빨려 들어간다.

쉬엄 없는 고비를 넘고 넘으면 헬기장이 나타나면서 3거리 이정표가 나타나지만, 이곳 3거리 이정표 길은 팔공골프 CC에서 차단하므로 동화사 방향의 하산길이 완전히 살아지고 희미한 흔적만 남아있는 듯 하다.

다시 높은 능선길로 올라서면서 한참 걸어가니 해발 920m "삿갓봉" 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나면서 쉼터가 있는데, 여기에서 주변을 돌아보면 앙상한 나무사이로 팔공산 주변 조망이 다소 열린다.

 

< 중주길 거의 중앙지점에 있는 해발 920m "삿갓봉" 표시판 >

 

옆으로는 거대한 바위 군락지가 보이고, 가는길의 끝에는 하얀 눈을 덮어쓰고 있는 동봉의 모습과 뒤편 비로봉 정상에 있는 방송국 안테나 및 거대한 군사시설의 건물 까지 팔공산 위용을 첨가시키고 있다.

 

< 팔공산이 자랑하는 "암릉 바위" 군락지 >

 

< 앙상한 나무 사이로 "설꽃" 이 내리고 있는 동봉 >

 

또 다시 몇 구비 능선을 넘고 넘어서면 4거리 이정표를 만나는데, 여기가 팔공산의 허리를 가로질러 넘고 다니는 "신령재" 이다.

이곳 신령재는 옛날 영천군 신령방면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대구 서문시장까지 장사를 하기 위하여 넘고 다닌 신장로 같은 넓은 길이지만, 현재는 교통의 발달로 걷는 사람이 없어지고 오직 산악인들만이 한번씩 거닐다 보니 영천 방향으로 가는 길이 거의 살아지고 오직 대구 동화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많은 산행들이 움직이다 보니 길이 잘 다듬어져 있다. 

 

< 갓바위에서 동봉까지 중간지점에서 만나는 "신령재" 이정표 >

 

오늘 산행 조건, 몸의 콘디션, 일몰 시간까지의 걷는 속도를 감안하여 여기에서 동화사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로 선택하였다면 금상첨화의 산행이 되겠지만, 돌풍은 옆에 설치하여 놓은 팔공산 산행 전도(全圖)를 열심히 관찰하드니 모처럼 창원에서 새벽 이슬 맞고 온 것이 억울타 하면서 한 Block만 더 올라가 염불봉 밑까지 가서 하산하자는 의견을 제시함으로 순순히 응하여 산행길을 계속 연결한다. 

순간 과욕의 끝에는 크다란 화를 가져 온다는 평범한 진실도 모르고......

 

< 명품의 "소나무" 가 팔공산을 지키고 있으면서 >

 

또 다시 힘든 능선으로 천천히 방향을 잡고서 걸어가고 있으니 아직도 계속적으로 동봉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길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서서히 고도를 상승하니까, 걷는 길에는 이미 눈이 녹아 없어졌지만 길 옆으로는 하얀 눈이 보이기 시작한다.

 

< 아직 갈길이 멀었지만 중간에 만나는 "눈길" 에서 >

 

몇일 전 대관령 방향으로 눈이 많이 왔다고 산악회에서 눈꽃 산행을 동참하자는 문자 메세지를 수 없이 받고도 꼼짝도 하지 않고 거절한 첫눈이 생각치도 않은 이곳 팔공산에서 첫눈을 대면하였다는 기분이 다소 흥분 상태의 산행길이 된다.

내려오는 사람마다 동봉 정상에는 설국의 장관을 이룬다는 한결 같은 예찬만 늘어 놓지만, 길의 상태를 설명하지 않아 무심코 고도만 상승하니 가는 길이 서서히 빙판 길로 변화를 가져온다.

나는 언제나 비상 사태를 대비하여 아이젠을 베낭에 넣고 다니고 있지만, 아직은 아이젠에 의존하는 시가가 아닌 듯하여 미착용 상태에서 길가에 메어 놓은 Rope를 의존하면서 한발한발 올라 설려니 에너지가 무한정 소모된다. 

체력의 한계점이 이르면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될 때까지 걸어 염불봉 밑 3거리에 도착하니 동봉 까지 700m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만나지만, 여기서 부터 동봉까지 순수한 암릉길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는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다면서 오늘은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다른 산행팀과 함께 충분한 휴식을 가지고 하산길로 방향 잡는다.

 

 < 동봉 700m 앞 두고, "정상 정복" 을 포기하고 돌아가게 만드는 이정표 >

 

내려오는 길은 팔공산이 자랑하는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길이 이어지므로 자연이 인간에게 제공하여 주는 피톤치드의 향기 속으로 몸을 의존하면서 약 1시간 정도 내려서면 염불암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포장길을 만난다.

 

<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번개같이 걷고 있는 "돌풍" >

 

여기에서 팔공산 시설지구로 내려가는 오솔길과 동화사로 바로 내려가는 길로 나누어지지만, 오늘은 모처럼 대구까지 방문한 동생을 위하여 "동화사" 방향의 시멘트 길을 선택한다.

포장길로 한참 내려서서 한 모퉁이를 돌아서면 양진암과 내원암으로 올라가는 3거리 이정표를 만나고, 이어 도로변에 있는 부도암 정문을 만나지만 시간의 부족으로 그냥 통과한다.

전일 내린 많은 비로 개울에는 맑은 물이 철철 흘려 내려가고 있는 물소리 따라, 한참 내려서면 "동화사(桐華寺)" 입구에 이른다.

 

< 맑은 물이 풍족하게 흐르고 있는 "동화사" 계곡 >

 

< 동화사 경내 주변을 요약하게 설명하고 있는 "조감도" >

 

본래 동화사 사찰로 들어가는 길은 밑에 있는 "봉황문" 을 통하여 올라오는 것이 정상이지만, 동화사 집단 시설지구가 만들어 짐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동화문" 을 통하여 사찰로 들어가는 길이 양쪽으로 분산되어 있다.

특히 팔공산 정상을 산행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사찰로 들어가는 길은 사천왕문이 되는 "옹호문(擁護門)" 이 밑에 있으므로, 사찰의 처음부터 보기 위하서는 도로 밑으로 내려서서 관람이 시작하여야 한다.

 

< 동화사의 사천왕문 "옹호문" 전경 > 

 

도로 밑으로 내려 서니까 수령 약 500년 정도 고목 느티나무 한 그루가 혹한의 겨울을 보내기 위하여 앙상한 가지에 삭풍만 지나가고 있는데, 이 나무가 "인악대사(仁嶽大士)" 나무라고 기술되어 있다.

 

< 옹호문 밑에 있는 "인악대사" 나무의 전경 >

 

인악대사는 조선 영조 22년(1746년) 대구 인접지역 달성군 화원읍에서 탄생하여 전국 명찰에서 불경을 설파한 스님이며, 저서로는 화엄사기, 금강사기, 기신론사기, 인악집 등 많은 저서를 남긴 고승이라고 한다.

다시 옹호문을 통과하여 넓은 마당에 이르면서 팔공산 암벽을 병풍과 같이 둘려 쌓인 중앙 지점에 고찰의 동화사 전경이 눈에 머물고, 오른편 크다란 "설법전" 이라는 집에는 불경을 공부하는지 많은 신도들의 신발들이 가득하게 놓여 있다.

 

< 사찰 오른편에 있는 "설법전" 전경 >

 

넓은 마당을 가로 질러 내부로 들어가면 "봉서루(鳳捿樓)" 라는 건물이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관문 역활을 하고 있는데, 봉서루 건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는 거대한 바위 한개가 놓여 있으면서 이 바위가 봉황의 꼬리 바위라고 한다.

 

< 팔공산 암벽으로 둘려 쌓인 동화사 "봉서루" 전경 >

 

< 봉서루 앞에 있는 봉황 꼬리 바위 밑에 소원을 들어준다는 "3개의 봉황 알" >

 

동화사 터는 지리상으로 "봉소포란형(봉황이 알을 품는 형상)" 의 지세로써, 신라 흥덕왕 7년(832년)에 "심지대사" 가 절을 중찬 할 때 "오동나무 꽃이 한겨울에 성스럽게 피었다" 하여 "동화사(桐華寺)" 라고 불리워졌다고 한다.

이 봉서루를 지나면서 또 다시 넓은 마당에 이르면 축대 위에 고색 찰란한 보물 제1563호 동화사 "대웅전(大雄殿)" 사찰이 눈 앞에 머물고 있다.

 

< 동화사 "대웅전" 전경 >

                                                                                                                                  

아름다운 사찰 모양을 감상하면서 서서히 계단 따라 대웅전 앞에 이르면, 사찰의 문살 무늬가 매우 아름다운 형태로 조각되어 있어 역시 국보급 문화재는 무엇인가 차이가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옆문으로 돌아가 사찰 내부를 들어보니 많은 불자들이 절을 올리는데 정신이 없다,

 

< 문화적 가치를 부여시키는 "문살의 무늬" 모습 >

 

그런데 사찰에 모시고 있는 3분의 부처님 모양을 한번 바라보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사찰 앞에 기술하여 놓은 "동화사 대웅전" 안내문을 읽어보기 시작한다.

 

< 대웅전에서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및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는 엉터리 같은 "설명문" >

 

아니나 다르까 동화사 본당에 모시는 본존불 3분의 부처님이 가운데에는 석가모니불, 좌우측에는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는데, 좌우 불상의 크기가 중앙의 석가모니불 보다 매우 적다.

내가 아는 지식으로는 "대웅전" 에서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좌우에는 중앙의 석가모니불 보다 1/2 정도의 크기를 가진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을 모시는 것이 원칙이다.

"대웅보전" 에서는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좌우에는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시는데, 석가모니불이나 아미타불이나 약사여래불 모두 동격의 불(佛)이므로 불상 크기가 동일한 Size의 크기를 갖인 불상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다.

그런데 이 놈의 동화사도 몇일 전 들어가 본 은해사와 동일하게 자기 입 맛과 같이 부처님을 모시고 있어, 어리석은 신자를 우롱하고 있다.

그래도 은해사는 정정 할려고 시도는 하여 조금 엉터리가 되었지만, 동화사는 바꿀려고 시도도 하지 않고 엉터리 부처님을 그대로 뻔뻔하게 두고 있는 배짱은 무엇인가?

더욱더 기가찬 일은 이곳 동화사도 한국 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라고 자랑하고 있다니.....

팔공산 사찰은 원칙도 없는 정말 무식(?)한 곳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바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모처럼 먼곳에서 온 동생을 위하여 "통일약사여래대불" 이라도 구경시키겠다는 생각이 일어난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옹호문을 나와 돌 계단을 내려서 "해탈교(피안교)" 를 지나면서 맑은 물을 보고 울분을 좀 식히고 나서, 도로변에 있는 "당간지주" 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 본다.

 

< "피안교" 다리 위에서 마음을 가다듬어 보지만 >

 

대부분 유명한 사찰에는 당간지주가 있지만, 동화사 당간지주는 보물 제254호로 지정 될 정도로 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나, 나의 눈으로는 당간지주의 특색을 발견하지 못하면서 평범한 당간지주 인 것 같다.

 

< 별다른 특색을 응급하지 않고 무미 건조한 보물 제254호 "당긴지주" >

 

여기서 다시 개울을 건너면 동양에서 제일 크다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유일한 작품 높이 33m "통일약사여래대불(統一藥師如來大佛)" 돌계단 입구에 도착한다.

 

< 동화사가 자랑하는 높이 33m "통일약사여래대불" 앞에서 >

 

이곳 대불도 몇 번 방문한 곳이라 큰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여 동생과 함께 주변을 한번 선회하면서 돌아보고, 나의 관심사가 되는 성보박물관이라도 한번 보고자 입구에 들어가니 벌써 퇴근시간이 경과되어 그런지 출입문이 굳게 닿혀있어 실망이 크다.

 

< 문이 굳게 닫혀있는 "성보박물관" 전경 >

 

오늘 먼곳에서 찾아 온 동생에게 팔공산의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나름되로 노력 하였지만, 동봉도 올라가지 못하고 또한 엉터리 같은 동화사를 보여 줌으로써 나 자신이 너무나 미워진다.

 

< 어둠이 내리는 "동화사 시설지구" 를 떠나면서 >

 

대구로 가는 버스 타기가 조금 수월하겠다는 생각으로 보기 싫은 동화사 방향으로 다시 올라가 동화사 집단 시설지구로 돌아와 직행버스를 타고 동대구역에 내린다.

역의 주변에서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고 창원행 기차에 오르는 동생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집구석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오늘 너무 무리해서 그런지 아니면 사찰에 많은 욕을 해서 그런지 바로 감기와 몸살이 엄습하여 죄값을 톡톡히 치루고 한다.

이제부터 남의 집(절)에 죽을 놓든 밥을 놓든 내가 알바도 상관 할 바도 아니므로, 마음을 비우고 살겠다고 다짐하여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