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문화와 산행.

세계문화유산의 산실인 경주 소금강산이 품고 있는 "백률사 및 국립 경주박물관" 의 관람.(하편)

용암2000 2012. 12. 28. 21:26

2012년 12월 25일 (화요일)

 

1. 백률사 방문

국립공원 경주시는 고을 전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지 않고 부분적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지정 구역이 토함산, 남산, 소금강산, 단석산, 서악, 대본, 화랑, 구미산 등 8곳으로 나누어진다.

오전 경주 국립공원의 대표적 산이 되는 토함산 지구에 있는 토함산 정상 산행을 끝내고, 여분의 시간을 이용하여 소금강 지구로 이동하여 "백률사(柏栗寺)" 산책길로 들어가 본다.

소금강 지구를 대표하는 소금강산은 경주시가지에서 포항으로 가는 7번국도 오른편 동쪽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해발 100m 정도의 매우 낮은 산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북한 금강산과 같이 아름다운 풍경과 기암괴석, 암릉, 깊은 계곡 등 명소를 간직한 명산도 아닌 매우 평범한 산이지만, 그래도 소금강산이라고 불려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국도따라 포항 방향으로 조금 돌아가면 경주시청 바로 뒤편 도로변에 "석탈해" 왕릉이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고, 그 다음 신호등에서 백률사로 들어가는 이정표를 만나면서 오른편 산기슭로 조금 들어가면 백률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에는 몇 대의 승용차가 주차하고 있는 매우 한적한 주차장이 되고, 이곳도 산행 입구에 산불예방 홍보를 하기 위한 "국립공원지킴이" 간이용 건물이 자라잡고 있다.

내부에 있는 아저씨에게 소금강 지구에 관련된 안내 팜플릿이 있는지 물어보니 소금강산에 대한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하여 그냥 산행 초입으로 들어서는데, 소금강산 지구의 안내도 그림이 붙어있어 안내도 그림을 구석구석 살펴 본다,

 

< 국립공원 경주 "소금강산 지구" 안내도 >

 

이곳 소금강 지구는 해발 143m "소금강산(小金剛山)" 과 해발 297m "금학산" 을 중심적 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소금강산과 금학산 능선을 돌아서 오는 종주 산행길이 약 2시간 정도 소요되는 매우 작고 낮은 산으로 이루어진 지구이다.

최초 경주는 토함산을 동악(東岳), 선도산을 서악(西岳), 남산을 남악(南岳), 낭산을 중악(中岳), 그리고 이 소금강산이 북악(北岳) 이라면서 오악(五岳)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오악이 서라벌을 지키는 전초기지 역할을 해온 산들이라고 한다.

소금강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왼편으로 이어지는 넓은 포장 도로 따라 조금 올라가면 개울가에 약수물이 솟어나는 샘 한개가 있으며, 그 샘 위로 조그마한 돌다리를 건너면 4면에 부처님이 새겨진 바위에 도착한다.

 

< 조그마한 돌다리를 건너면 만나는 "석조사면" 불상 바위 >

 

이 바위는 주민들과 방문객들이 소망을 빌고 기도하기 위해 많이 찾는 보물 제121호 "굴불사지(掘佛寺址)" 석조사면(石造四面) 불상이라고 한다.

이곳 불상 바위는 높이 약 3m의 거대한 바위로써 동서남북 사면(四面)에 부처님이 새겨져 있는데, 서쪽 면에 1명과 함께 북쪽 면에 2명, 동쪽 면에 1명, 남쪽 면에 3명 등 총 7명의 부처님과 보살님이 조각한 경주 남산 칠불암 바위와 같이 "사방불(四方佛)" 형태의 바위이다.

바위 전(前) 면에 해당하는 서쪽 면에는 아미타여래불 한분이 있는데, 그 아미타여래불 좌우로 별도 2분의 입상 아미타여래불이 서 있지만 왼편에 있는 부처님은 많이 파손되어 머리 부분은 알 수 없고 파손된 오른손에 정병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매우 애초로움이 일어나는 모습이다.

 

< 서쪽 면의 "아미타여래 삼존불" 모습 >

 

< 왼편 아미타여래불이 들고 있는 "정병" >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북쪽 면에는 보살상 두 분이 새겨져 있는데, 좌측에 있는 보살상은 선각으로 그려진 보살로써 얼굴이 11개이며 팔이 6개 달린 관세음보살 입상으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것이지만 마멸이 심하게 일어나 거의 불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어 매우 안타까움이 일어난다.

 

< 북쪽 면에 있는 2명의 "보살" 중 왼편 선각 보살상은 거의 마멸되고 있는 11개의 얼굴을 가진 보살 >

 

바위 뒤면에 해당하는 동쪽 면에는 약사여래좌상 한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약사여래좌상 좌우 끝지점에 서쪽 면과 동일하게 2분의 입상 부처님이 살아지고 없다.

 

< 동쪽 면에 새겨진 "약사여래좌상" 과 양쪽 입상 부처님이 살아진 상태 >

 

남쪽 면에는 3존불 입상 부처님이 서 있는데, 여기에서도 왼편 입상 부처님은 완전히 파괴되어 완벽하게 자연으로 들아가 버렸고 가운데 부처님도 머리부분이 파손되어 매우 애절함이 묻어나고 오른편 부처님은 그런되로 원형으로 보존되어 있는 3존불 입상이다.

 

< 남쪽 면에 있는 3존불 "입상 부처님" 중 왼편 부처님은 완전 파손된 모습 >

 

그래서 이 석조사면 불상은 총 11명의 불상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동쪽 면 좌우 입석 부처님 2분이 없어지므로 총 9명의 불상이 된다.

이 부처님 바위는 "삼국유사" 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 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하여, 땅을 파 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掘佛寺)" 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 사찰이 완전 소실되어 없이지고, 이 4방불 주변에는 옛날 사찰이 있었다는 흔적의 주축돌이 많이 발굴되어 "굴불사지" 터 라고 칭한다.

이 굴불사지 터를 지나 사면석조 바위 뒤편으로 올라가면 2개의 길로 나누어지는데, 하나의 길은 차량이 올라갈 수 있는 포장 도로이고 다른 하나의 길은 옛길을 보완하여 돌계단 길로 만들어져 있어 오늘 걷는 길은 다소 편리한 포장길 따라 올라가면 길은 울창한 대나무 숲을 통과하므로 자연을 파괴하면서 만든 도로가 되므로 많은 실망감이 일어난다.

 

< "대나무 숲" 을 파괴하면서 만든 포장 도로 >

 

몇개의 커브를 돌아서 약 2-300m 정도 올라가면 이내 소금강산 8분 능선 근교에 자리잡고 있는 "백률사(柏栗寺)" 요사채 건물 뒤편에 도착한다.

 

< "백률사" 요사채와 범종각 건물 일부 >

 

백률사는 "삼국유사" 등 역사적 기록에 나오는 "자추사(刺楸寺)" 일 것이라 추정하는데, 자추사는 신라 법흥왕 14년(527년)에 불교를 나라의 종교로 삼도록 순교(殉敎)한 "이차돈(異次頓)" 선사를 기리기 위한 절로써 이차돈이 새 남터에서 참수당하여 머리가 날아가 떨어진 곳에 사찰을 건립한 장소라고 한다.

사찰에는 대웅전과 더불어 산성각, 종각, 스님이 기거하는 요사채 건물로 이루어진 매우 단촐한 사찰로써, 대웅전(大雄殿)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 타고 그 후 다시 지었다고 한다.

 

< 임진왜란 후 새롭게 건축한 백률사 "대웅전" 모습 >

 

백률사 대웅전 건물은 단층의 목조 기와집으로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고, 정면 3칸의 다포(多包)식 집으로 좌우 협칸에 쌍여닫이 문을 두고 있다.

오늘 이곳 백률사를 찾은 이유는 백률사 대웅전에는 한 때 "금동약사여래입상" 을 모신 사찰로써 이 금동약사여래입상은 현재 국보 제28호로 경주 국립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데, 이 입상은 불국사 극락전에 모시고 있는 국보 제27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과 불국사 비로전에 모시고 있는 국보 제26호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 국립 경주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국보 제28호 "금동약사여래입상" >

 

또한 사찰 주변에 이차돈 선사가 참수당한 모습과 내용을 조각한 6각 석당의 순교비(殉敎碑)가 발굴되어 금동약사여래입상과 함께 경주 국립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어, 국보급 문화재 2점이 국립박물관으로 이관되므로 현재 거의 인적이 찾지 않고 완전히 세인(世人)의 머리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외로운 사찰이다.

 

< 국립 경주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6각 석당의 이차돈 "순교비" >

 

2. 국립 경주박물관 관람.

백률사에서 옛길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와서 대구로 오는길에 국립 경주박물관으로 잠시 들어가보는데, 현재 박물관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하는 차원에서 입장료를 징수하지 않고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여 진다고 한다.

국립 경주박물관은 크게 고고관, 특별전시관. 미술관, 월지관, 야외 전시관으로 구분되어 지는데, 현재 고고관은 내진 설계로 인하여 전면 보수하고 있으므로 전시품을 전부 특별전시관으로 이관하여 관람이 가능토록 하고 있다.

 

< 내부 수리중 인 국립 경주박물관 "고고관" 전경 >

 

오늘, 국립 경주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문화재 중에서 국보 12점, 보물 25점이 진열하고 있으며, 파손 또는 탈색으로 인하여 원형 변화를 초래하기 쉬운 "천마도" 등 일부 국보와 보물은 수장 보관하고 있다가, 특별 전시기간을 통하여 대중에게 공개된다고 한다.    

 

1) 고고관

본 고고관은 제1 전시실, 제2 전시실, 제3 전시길, 국은 기념실 등 4개의 전시실로 구획되어 있었는데, 많은 문화재를 규모가 훨씬 적은 특별전시관으로 이관하여 진열하다 보니,  전시물 전체 진열이 뷸가능하여 일부 수장 보관하고 있으며, 다수의 유물만 전시하고 있다.

 

< 고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문화재를 임시 전시하고 있는 "특별전시관" >

 

고고관 전시물은 경주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출토된 선사 시대에서 부터 신라 건국 초기까지의 석기, 청동기, 철기, 토기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신라를 상징하는 금관, 금제 허리띠, 금제 목걸이, 금제 귀걸이, 반지 등 황금의 문화재와 유리그릇, 청동그릇 등 궁중 생활용품 및 갑옷, 무기, 말갖춤, 토용, 십이지상, 토기, 보검 등 전쟁과 사냥에 사용하는 도구 등 다양한 전시물이 진열되고 있다.

 

< 문화재를 관람하고 있는 "전시실" 내부 >

 

< "석기시대" 의 문화재 전시품 >

 

< 보물 제636호 "서수모양 주전자" >

 

< 국보 제189호 "금제관모" >

 

< 국보 제188호 "금관" 과 국보 제 190호 "허리띠" >

 

< 국보 제 87호 "금관" 과 국보 제 88호 "허리띠" >

 

< 국보 제88호 "금제 새날개 모양 금관 장식" >

 

< 보물 제 619호 "가슴걸이" >

 

< 전시하고 있는 "신라 토기" >

 

< 보물 제633호 "드리개" >

 

< 보물 제632호 "팔뚝 가리개" >

 

< 보물 제 635호 "장식보검" >

 

< 보물 제 634호 "상감유리목걸이" >

 

< 보물 제1151호 "웃칠 발걸이" >

 

2) 미술관

신라 불교문화의 각 시기를 대표하는 불교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영모사터에서 발굴한 얼굴무늬 수막새, 분황사 탑, 미륵 삼존불, 백률사 약사불, 금속문, 문무왕릉비, 이차돈 순교비, 망새, 기와 등 여려 문화에 관련된 전시물을 진열하고 있다.

 

< 토함산 "석굴암" 부처님 주변에 있는 보살 >

 

< 진열하고 있는 각종 "부처님" >

 

< 국보 제195호 "토우장식 항아리" >

 

< 국보 제275호 "기마인물형토기" >

 

 < 전시하고 있는 "석불" >

 

 < 국보 제 28호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

 

< 백률사 "이차돈 순교비" > 

 

< 보물 제1411호 "임신서기석" >

 

< 파손된 "반가유상" >

 

3) 월지관

월지(안압지)에서 발굴한 제품을 전시하고 있는 장소으로 무덤에서 출토된 문화재와 달리 통일 신라시대 궁중 생활의 변모를 보여주는 다양한 종류의 생활용품을 전시하고 있다.

 

< "월지(안압지)" 에서 발굴한 유물 설명서 >

 

1층과 2층에는 토기, 건축 부재, 문자 재료, 금속 공예품, 불교 조각품 등을 주제별로 전시하여 통일신라의 문화, 특히 황실의 생활문화 전반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져 있다고 한다.

 

< "월지관" 전시실 내부 모습 >

 

 

                                                                                            < 안압지에서 발굴된 보물 제 1475호 인 "삼존불" >

 

< 월지 궁궐에 사용한 "건축 자재" >

 

4) 야외 전시관

성덕대왕 신종과 덕동댐으로 인하여 수몰된 고선사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경주 일대의 옛 절터와 궁궐터에서 옮겨 온 석탑, 석불, 석등, 석조 등 다양한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다.

 

< 국보 제 29호 "성덕대왕신종" 으로 일명 에밀레 종 >

 

< 국보 제 38호 "고견사 3층 석탑" >

 

< 야외에 전시하고 있는 "석등" >

 

< 많은 석조물을 전시하고 있는 "야외 전시관" >

 

짧은 겨울 날씨로 늦게 박물관을 방문하므로 인하여 충분하게 관람이 불가능 하여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구경하고 나서, 대구로 떠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