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트레킹.(대구팔공산)

이목회 3월 정기모임은 팔공산 "파계사 및 성전암" 산행과 더불어 저녁식사를 겸하면서.

용암2000 2014. 3. 12. 20:14

2014년 3월 8일 (토요일)

 

이목회 정기모임은 매년 격월의 홀수 달 2번째 목요일 모임을 가졌지만, 2013년 부터 회원 중 몇명이 근무 여건의 변화로 인하여 당분 간 날짜를 고정하지 못하고, 탈력적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금년 3월 모임은 토요일 오후 팔공산에 있는 파계사 방향으로 간단한게 산행을 즐기고 나서, 인접하게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저녁식사를 가지는 방향으로 추진하도록 계획 되어진다.

 

1. 성전암까지의 산행.

오전, 고등학교 동문으로 구성되어 있는 백봉회 산행을 가산산성에서 실시하고 나서 오후 2시 부터 이목회 산행을 위하여 파계사 주차장으로 넘어가는데, 다소 늦음으로 인하여 먼저 도착한 4명은 승용차를 이용하여 성전암 주차장으로 올라간다는 메세지가 도착한다.

나는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다른 한쌍의 부부와 함께 한대의 승용차에 동승하여 입구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나서, 파계사를 통과하여 성전암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니 먼저 출발한 일행은 벌써 성전암까지 올라갔다는 연락이 다시 온다.

 

< "성전암" 을 가르키는 안내판 >

 

좁은 주차장에 겨우 주차를 끝내고 나서 급경사의 계단길 따라 천천히 성전암 방향으로 올라가는데, 오전에 다소 무리한 산행으로 인하여 다리의 움직임이 마음같이 되지 않는다.

 

< 몇대의 차량이 주차할 수 있는 "성전암 주차장" >

 

이 "성전암(聖殿庵)" 방문은 2012년 1월 백봉회 첫 산행 때 파계사 입구 매표소 옆에 있는 능선길로 올라와서 파계재로 돌아서 내려오는 코스 중 중간지점에서 잠시 들어와 관람한 사찰이라 매우 친숙하여진 장소이다.

일주문을 통과하여 우물가로 들어가서 한 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나서 먼저 도착한 일행과 조우(遭遇)가 이루어지는데, 금일은 2쌍의 부부가 불참하면서 총 4쌍의 부부 8명이 참석하여 진다.

 

< 성전암으로 들어가는 입구 "일주문" >

 

성전암은 파계사의 부속암자로 숙종 21년(1695년)에 현응(玄應)선사가 중창하였으며, 이 성전암 터는 경상북도의 3대 참선도량 중에 구미 도리사(挑李寺) 다음으로 손 꼽는 곳이며, 현응선사가 영조의 탄생을 위하여 백일기도를 하였던 곳이다.

영조는 자신의 탄신을 감사하는 뜻으로 11세 때 "자응전(慈應殿)" 이라는 현판을 써서 이곳으로 보냈는데, 그 편액은 지금까지 성전암 법당에 걸려 있으며 영조 때 제작한 특이한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이 암자에는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성철스님이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수도도량으로 만든 선원으로 유명하며, 1955년부터 1964년까지 10년 동안 동구불출(洞口不出), 즉 한번도 문을 나서지 않고 수행하였다고 하는 암자이다.

성철스님의 말씀 중 "마음의 눈을 바로 뜨고 그 실상을 바로 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실행 없는 말은 천번 만번 해도 소용없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다." 라는 문구가 생각이 나서 적어본다.

성전암은 암벽으로 형성되어 있는 골짜기 아래 길죽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입구 종무소 건물을 비롯하여 수도 정진을 위하여 출입을 통제하는 성전암 건물이 일직선에 자리하고 있으며, 종무소 뒤편 바위 틈 사이에 본찰 "관음전(觀音殿)" 이라는 작은 법당이 자리하고 있다.

 

< 산의 비탈면에 일직선으로 자리하고 있는 "성전암" 전경 >

 

< "성전암" 방향으로 출입을 제한하는 울타리 > 

 

< 경내 입구에 있는 "종무소" 건물 >

 

< 종무소 뒤편 바위 사이에 있는 "관음전" >

 

불교를 믿고 있는 한 회원 부인이 지금으로 부터 10여 년 전 이곳 성전암에서 처음으로 불경 공부를 하였다고 하면서, 성전암 뒤편 돌출하고 있는 바위 사이에 스님이 기거하는 요사채 건물 "적묵실(寂默室)" 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적묵실 방에는 거대한 바위가 돌출하고 있다고 한다.

 

< 바위 틈 사이에 지어진 "적묵실" >

 

적묵실에 있는 바위에서 나오는 기(氣)가 너무나 강하므로 인하여 일반적인 사람은 방에서 숙면이 불가능하지만, 도량이 높은 스님들만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과거의 경험담을 이야기하여 준다.

 

< 적묵실 뒤편에 있는 "바위 군락지" >

 

< 적묵실 입구 바위 틈 사이에 있는 "샘" >

 

경내 마당에 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는 사이 스님이 찹쌀 떡 한 쟁반을 내어 주시면서 천천히 먹으면서 쉬었다 가라고 하시면서, 커피 까지 무한정 리필로 제공하여 주고 있는 암자이다. 

 

< 스님이 주신 "떡과 커피" 를 마시는 일행 >

 

오늘 이목회는 저녁을 먹기로 한 모임이지만 떡의 맛이 너무나 좋아 무한정 손이 움직이지다 보니, 어느 사이 배가 남산 만큼 크지므로 인하여 하산하는데 곤욕을 치루면서 내려가야 한다.

 

2. 대비암을 돌아보면서.

승용차를 운전한 2명은 차량을 운전하여 파계사 주차장으로 먼저 내려가게 하고 나머지 회원은 부른 배를 소화시키기도 하면서 천천히 걸어서 하산하는데, 하산길의 중간지점에 있는 "대비암(大悲庵)" 으로 들어가 본다.  

대비암은 파계사에서 성전암으로 올라가는 길목 약 300m 거리에 있는 산내 5개 암자 중에 하나의 암자로써 입구에 높은 돌로 만든 입석에 대비암(大悲庵)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으며, 이 입석을 지나 몇단의 돌계단을 올라서면 대비암 입구에 도착하는데, 암자가 2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진다.

 

< "대비암" 을 알리는 입석 >

 

중앙에 돌출하여진 야산 언덕 위에 관세음보살 부처님이 서 있는데, 이 부처님을 중심으로 왼편으로 불공을 드리는 사찰 영역이며 오른편으로는 불자들이 생활하는 요사채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 대비암에 있는 "관세음보살" >

 

왼편 사찰 영역으로 들어가면 넓은 잔디마당이 펼쳐지는데, 마당 가장자리에는 돋을 형태로 새긴 앉아 있는 마애불 한기가 자리잡고 있으며 마당의 중앙에는 새롭게 만들어진 3층의 석탑이 서 있고, 그 석탑 뒤편으로 정면 7칸, 측면 4칸 "대비암(大悲庵)" 건물이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다.

 

< 잔디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마애불" >

 

< 잔디마당 중앙에 있는 "3층 석탑" >

 

< 암자의 중심 건물 "대비암" >

 

대비암 윈편으로 돌아서 가면 야산의 비탈면에 대비암의 기도도량인 "대웅보전(大雄寶殿)" 건물이 높고 자리잡고 있는데, 대비암 주변에 있는 모든 건물의 단층과 조각품이 새롭게 단장하고 있어, 매우 청결한 맛이 풍겨나는 암자이다.

 

< 대비암 왼편 산자락에 있는 "대웅보전" >

 

< 대웅보전 앞에 있는 "우물과 동자승" >

 

대비암에서 파계사로 내려오는 시멘트 포장길 따라 조금 내려오면, 왼편 산기슭 방향으로 새롭게 만든 부도탑과 더불어 사찰의 역사를 이야기하여 주는 옛 부도탑 군락지가 자리하고 있다.   

 

< 파계사로 내려가는 "시멘트" 포장길 >

 

< 대비암 옆 산기슭에 있는 "부도탑" >

 

< 파계사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부도탑" >

                                                                                               

3. 파계사 경내의 관람.

대비암에서 한 모퉁이를 돌아서 내려가면 파계사의 뒤편 영역으로 들어서는데, 제일 먼저 만나는 건물이 죽은 사람의 납골을 모시고 있는 "극락전(極樂殿)" 건물이 새롭게 지어져 있으며, 건물 앞 아담한 석조 다리를 건너면 "지장전(地藏殿)"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 납골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극락전" 과 다리  >

 

< 파계사 왼편 제일 구석이 있는 "지장전" >

 

지장전을 돌아서 내려가면 파계사의 주 건축물들이 모여 있는 사찰 영역으로 들어가는데, 입구에는 넓은 공터에 "영조임금 나무" 라고 하는 약 250년의 수령을 가지고 있는 느티나무가 파계사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 파계사 입구에 있는 "영조임금 나무" >

 

"파계사(把溪寺)" 는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로써,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애장왕 5년(804년)에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하였으며, 선조 38년(1609년)에 계관(戒官)스님이 중창하였으며 숙종 21년(1695년)에 현응(玄應)선사가 삼창한 사찰이라고 한다.

파계사는 입구 매표소를 지나면서 다소 가파르긴 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진입 도로 따라 한참 올라가면 아담한 연못이 나타나면서 경내에 도착하여 지는데, 웅장한 팔공산 산기슭에 울창한 숲이 병풍같이 둘러있고,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는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매우 뛰어난 풍광을 가진 절이다. 

파계사는 조선 영조대왕과 관련되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는데, 영조의 부왕인 숙종이 승려가 대궐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난 후 꿈이 선명하여 신하를 시켜 남대문 밖을 살펴보게 하였는데, 신기하게도 그곳에서 파계사의 현응(玄應)스님을 만나게 된다.

숙종은 현응스님을 불러들여 아들을 얻기 위하여 백일기도를 부탁하였으며, 현응스님은 농산(聾山)스님과 함께 백일기도를 시작하여 백일기도가 끝나는 날 농산스님은 숙빈 최씨에게 현몽하고 세자로 다시 태어났다고 하는데, 그 세자가 훗날 영조대왕이 되었다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영조임금 나무에서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2층의 진동루(鎭洞樓)와 범종각(梵鐘閣) 건물이 나란하게 서 있으며, 진동루 아래층의 중앙 통로를 통하여 올라서면 겅내 마당에 도착하여 지는데, 경내 마당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건물이 자리하고 있어 매우 포근함이 묻어나는 사찰이다.

 

< 파계사 경내로 들어가는 "진동문" 과 범종각 건물 >

 

정면에는 "원통전(圓通殿)" 이라는 본찰을 두고 좌측에는 설선당(說禪堂), 우측에는 적묵당(寂默堂)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적묵당 뒤면으로 거대한 설법전(說法殿) 건물이 2중으로 건립되어 지므로 인하여 경내가 완전하게 2중의 "口" 자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 파계사 경내의 중심 건물 "원통전" >

 

< 원통전 왼편에 있는 "설선당" >

 

< 원통전의 오른편에 있는 "적묵당" >

 

< 적묵당 앞에 있는 "설법전" >

 

정면 3칸 및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원통전 건물 내부에는 보물 제992호 "건칠관음보살좌상(乾漆觀音菩薩坐像)" 과 보물 제1214호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그림이 걸려 있어 많은 불자들이 참배를 올리고 있다. 

원통전 왼편 뒤편에는 산령각(山靈閣) 건물과 기영각(祈永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기영각 건물에는 선조, 숙종, 덕종, 영조 등 4분 위령을 모시므로 인하여 지방 유생들의 행패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 원통전 왼편 뒤편에 있는 "산령각" >

 

< 산령각 왼편에 있는 "기영각" >

 

원통전의 뒤편 오른편으로는 응향각 건물과 더불어 응향각 뒤편으로 미타전과 더불어 요사채 건물이 자리잡고 있지만, 문이 굳게 잠겨져 있는 그 방향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되돌아 나와야 한다.

 

< 파계사의 건물 "조감도" >

 

이 밖에 파계사 경내에는 도서관 등 다수의 건물들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지만, 더 이상의 관람을 생락하고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찰을 떠난다. 

 

4. 온누리 장작구이 식당에서의 정기모임 행사.

파계사를 떠나 대구시 볼로동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다가 3거리에서 대구은행 연수원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도로 우측편에 "온누리 장작구이" 식당이 있는데, 이 식당은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직장에서 몇 번 방문한 식당이다. 

 

< 저녁식사 모임을 개최하기 위하여 찾아간 "온누리 장작구이" >

 

다소 시간적인 여유가 발생하여 식당의 정원을 거닐어 보는데, 정원에는 많은 원두막을 비롯하여 분수대까지 설치하고 있어 날씨가 다소 포근한 계절에는 실외에서 식사와 더불어 음주가무를 하는 것, 또한 이색적인 운치를 가진 정원이 되어진다.

 

< 식당에서 조성하고 있는 "정원" >

 

아직 추위가 엄습하는 날씨로 인하여 실내에 들어가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즐기고 있어, 온누리 식당의 주 메뉴로 강력하게 추천하고 있는 "C" Set 음식을 주문하면서 반주와 함께 이목회 3월 모임행사를 가진다.

 

< 음식을 즐기는 "이목회" 회원 >

 

밤늦게 까지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면서 각자의 집으로 출발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