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군 축제.

경상북도 성주군를 대표하는 축제가 되는 "2015년 성주 생명문화 축제장" 을 돌아보면서.

용암2000 2015. 5. 19. 02:46

2015년 5월 14일 (목요일)

 

나의 고향이 되는 경북 성주군에는 매년 참외축제가 개최되어 왔었는데, 어느 때 부터인가 성주를 대표하는 참외축제라는 브랜드(Brand)는 없어지면서 "성주생명문화 축제" 라는 이름으로 변경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나는 금년 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고향이 되는 성주군 용암면으로 귀촌하여 농사에 매진하고 있는 차에 매주 2회 이상 농촌으로 내려가서 밭을 일구면서 생활하는 중 낙동강을 가로질려 만들어져 있는 성주대교를 지나자 마자, 용암면으로 넘어가는 육교 아래 5월 14일부터 17일까지 4일간 "성주생명문화 축제" 가 개최한다는 현수막을 대면하게 만든다.

오늘도 대구에 거주하면서 가끔씩 나의 농장을 방문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은 2명의 지인과 함께 고향으로 들어가 약간의 일을 하다가 점심식사 시간이 되므로 축제장 생각과 더불어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하여 성밖 숲에서 개최하는 축제장으로 달려간다.

  

< "성주생명문화 축제" 행사 일정을 알리는 현수막 > 

 

< "참외의 고장" 을 알리는 현수막 >

 

금일 축제는 첫날이 되어짐과 동시에 주중이다 보니 아직 많은 사람들도 움직이지 않는 매우 한산한 축제가 펼쳐지고 있는데, 일단 성주군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으로 들어가 참외 돼지불고기 한접시(접시 당 : 18.000원)와 참외 비빔밥(한그릇 당 : 6.000원) 4그릇을 주문하여 먹어보기로 한다.

 

< 먹거리 음식을 판매하는 "텐트 촌" >

 

그런데 먼저 참외 돼지불고기 한접시가 나오면서 불고기 위에 껍질도 깍지 않고 엷게 쓴 참외 조각이 언져 나오는데, 시식을 하기 위하여 젖가락으로 돼지불고기를 뒤집어 보니 불고기가 많이 타서 거의 먹기가 불편할 뿐 아니라 너무나 엷게 쓴 참외로 인하여 이것이 무슨 성주를 대표하는 참외 돼지불고기가 되는지 모르겠다.

 

< 제일 먼저 나오는 18.000원 짜리 "참외 돼지불고기" >

 

이어 참외 비빔밥이 나오면서 비빔밥에는 적은 콩나무과 무우채로 만든 야채와 더불어 몇 조각의 참외를 넣고 만든 비빔밥과 멀건 국물이 함께 나오는데, 식사 전에 물도 아무런 기본 반찬도 주지 않고 오직 달랑 비빔밥과 국물만 나온다.

 

< 이어서 나오는 6,000원 짜리 "참외 비빔밥" >

 

하도 어이가 없어 김치 몇 조각이라도 달려고 하니 그 때에서 많은 종업원 중에 제일 늙은 아주머니 한분이 적은 김치 Set를 가지고 오면서 비빔밥을 먹는 대부분 사람들은 반찬을 남기므로 반찬을 주지 않는다고 억지 춘향이 같이 변명을 늘어 놓는다.

 

< "물과 반찬" 도 없이 달량 나온 참외 비빔밥과 멀건 국물 >

 

얼마나 귀가 차서 물도 없이 억질로 꾸역꾸억 식사를 끝내고 나서 계산을 하는데, 현금으로 4만 2천을 내고 나니 얼마나 화가 나는지 그 돈으로 참외나 한박스 구입하며 나무 아래에 앉아 실컨 깍아 먹었으면 원한(怨恨)이나 없을 것 같은데....

탄 불고기를 남겨두고 나오면서 항의를 하니 탄 불고기 량(量) 만큼 새롭게 교환하여 주겠다고 하면서 기다리라고 하는데, 더욱더 화를 나게 만드는 성주 생명문화 축제장 식당이 되어진다.

이것이 내가 노후를 위하여 살려고 하는 성주군의 인심(人心)인가 하면서 다음 행사장으로 들어가는데, 한무리의 각설이 타령팀이 흥겨운 노래와 더불어 구수한 입담으로 지나가는 나그네를 웃음을 선사하고 있어 다소 마음의 위안을 가져본다.

 

< 한무리 "각설이 타령" 을 구경하면서 >

 

< "각설이 타령" 들과 함께 하는 연주단 >

 

그러고 나서 주 무대가 되는 성밖숲으로 내려가니까 울창한 버드나무 그늘 아래에 한무리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구경하고 있는데, 그 앞에 무중력(無重力) 상태를 시연(試演)하는 기예단이 공연을 하고 있다.

 

< "주 무대" 입구에 있는 행사장 출입문 > 

 

< "버드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는 관람객 >

 

< 무료로 제공하는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

 

밑에 한명의 남자가 오른손으로 막대기를 잡고 앉아 있으며 그 막대기 위에 다른 한명의 아가씨가 앉아 구경하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면서 생긋생긋 웃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지는데, 문제는 어떻게 저런 무중력 자세로 약 30분간 앉아 있는가 하는 것이다.

 

< "무중력" 상태를 시연하는 기예단 >

 

< "측면" 에서 바라보는 기예단 > 

 

그래서 남자의 뒤편이나 주위에 투명의 지지대 물체가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하여 남자의 뒤편 또는 얼굴을 만져 보아도 같이 손짖 하면서 호응하는 모습이 아무리 생각하여도 답이 나오지 않고, 만약 아가씨가 남자의 머리 위로 만들어져 있는 투명 의자에 앉아 있으면 궁둥이 부분이 납작하여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 "측면과 뒤면" 으로 돌아보면서 >

 

< 무중력을 구경하고 떠나는 "어린이" >

 

다방면으로 돌아보면서 사진기로 앉아 있는 모습을 담아 보고 고등학교 물리시간 때 배운 중력의 원리가 되는 위치 에너지 = mgh 및 뉴톤의 사과가 떨어지는 원리도 회상하면서 문제가 해결하기 위하여 골머리를 쓰고 있어 보지만, 오히러 나의 무식(無識)만 탈로가 날 것 같다,

그래서 오후 농사도 뭐고 집어 치우고 30분이 경과하면 휴식시간을 가지기 위하여 위에 앉아 있는 아가씨가 내려온다고 하므로, 그 때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 무슨 흰트가 발생 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무작정 기다림을 가지도록 한다.

그런데 30분의 시간이 경과하여 위에 있는 아가씨가 내려오는 모습을 보기 위하여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으나, 몇명의 남자들이 나와서 시연하고 있는 주변으로 텐트로 가리면서 내부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  

 

< 동료 기예단이 "텐트" 로 가리고 있는 모습 >

 

과연 무중력이 있는지 아니면 사람을 혼돈하게 하는 마술인지를 곰곰하게 생각하면서 다음 구경을 위하여 옆으로 이동하기로 하는데, 메인(Main) 무대가 되는 공연장에는 밤의 공연을 위하여 한무리의 연주단이 연습하고 있다.

 

< 메인(Main) 무대에서 "공연" 을 위하여 연습하는 악당 >

 

그래서 주체 측에서 나누어 주는 팜플랫 한장을 얻어 그 내용을 읽어보는데, 첫날에는 개회식과 더불어 무료 참외 시음식 및 농수산물 판매처를 구경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부분의 행사는 2일차가 되는 15일 부터 주말 까지 집중적으로 행사가 진행한다고 한다.

 

< 매우 한산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는 "행사장" 부스(Booth) > 

 

악기 연주를 하기 위하여 연습하고 있는 메인(Main) 무대 앞에 자리하고 있는 실내 주제관으로 들어가 보는데, 주제관 내부에는 성주군 선석사 인근에 세종대왕 태실이 자리한 태실에 관련 되는 영상과 더불어 생과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한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 "탄생(生), 삶(活), 죽음(死)" 의 체험을 할 수 있는 주제관 > 

 

이곳 주제관이 성주군의 대표 먹거리가 되는 "참외축제" 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부각하기 위하여 축제의 명칭을 "성주생명문화 축제" 로 바뀌어졌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데,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왕실의 태실이 많이 존재하므로 성주군을 대표하는 참외를 제외 시킨다는 것을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찌하던 주제관에는 생명 탄생의 기초가 되는 선석사 주변에 있는 세종대왕 태실에서 부터 인간의 삶을 영위하면서 살아가는 한개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삶의 영역, 가야고분군에서 생(生)을 마감한 조상들의 죽음을 음미하여 보는 인생 싸이클(Cycle)의 생로병사에 대하여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초점을 두고 있는 주제관이 된다.

 

< "주제관" 내부를 구획하고 있는 각종 부스(Booth) >

 

< 전국에 있는 "태실" 의 분포도 >

 

< 성주 선석사 주변에 있는 "세종대왕" 아들 태실 모형도 >

 

< 삶을 표현하고 있는 "한개마을" 서당 체험장 > 

 

< 생의 마감하는 모습 "죽음" 을 체험하는 공간 >

 

이곳 실내 주제관을 통과하여 뒤편으로 나아가면 성주를 대표하는 참외를 전시하고 있는데, 사전 품평회에서 출품하여 상을 받는 다양한 참외들이 전시하고 있어 정말 고운색을 가진 참외들이 진열하고 있어 먹기가 아까운 전시장이 되어진다.

 

< 우수 "참외" 를 진열하고 있는 전시장 >

 

< 다양한 "참외" 를 전시하고 있는 코너 >

 

< 최고의 색을 내고 있으면서 탐스러운 "참외" >

 

다른 한편으로 참외 무료 시식 코너가 자리하고 있는데, 내부에 몇 명의 아주머니들이 참외 껍질을 깍고 입구에는 참외를 먹기 좋게 조각 내어 접시에 담아주고 있어 축제장에서 최고의 인기 지역이 되어진다.

 

< 참외 "무료 시식" 을 즐기는 관람객 >

 

나도 점심 때 식당에서 받은 원한을 해소시키기 위하여 먼저 허리 띠를 풀고 양손으로 잇쑤시게를 잡고 정신 없이 먹고 있는데, 참외를 토막 내고 있는 아주머니가 어디에서 오신 거지인지 의미한 눈총을 보이므로 슬며시 자리를 떠나기로 한다.

 

< 아주머니의 눈총을 받으면서 무한정 시식하여 보는 "참외" > 

 

넓은 마당을 가로 질려 반대편에 있는 천막 부스로 이동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참외의 성장과정에서 출하까지 단계를 차례되로 구비하고 있어 참외에 대한 많은 지식과 더불어 눈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 "참외" 성장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전시장 >

 

< "임산부" 에게 우수성이 있다는 참외 홍보물 >

 

< 씨를 파종한 후 "100일" 된 참외 >

 

다른 부스에는 참외를 제외하고 다양한 과일과 채소의 성장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올해 처음 농업에 도전하는 초보 농사꾼에게는 소귀에 경을 읽은 수준이 되어지므로 멍충하게 구경하다가 전시장을 떠난다.

 

< "복수박" 을 재배하는 방법 >

 

더불어 다른 텐트 부스에는 농사에 관련 되는 씨앗에서 부터 퇴비, 농약, 농기구, 비닐하우스, 수확, 저장방법 까지 다양한 전시물이 진열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아직 먼나라의 이야기가 되어진다.

 

< 다양한 "농자재" 를 판매하는 텐트 촌 >

 

< "참외" 를 관광객에게 직접 판매하는 부스 > 

 

< "태극기" 그리기를 체험하는 코너 > 

 

< "독도" 를 우리 땅이라고 시연하는 퍼포먼스 >

 

< 다양한 "조형물" 을 전시하고 있는 광장 >

 

< "장승" 도 한자리에 모아 축제를 빛내고 있으며 >

 

이 밖에 성밖숲을 가르는 강의 반대편 체험마루 전시장으로 넘어가기 위한 임시가설용 다리가 놓여 있고 강의 중앙에는 내일 부터 본격적으로 물놀이 기구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 중 보트(Boat)에서 부터 스피드를 자랑하는 수상스포츠 시설이 손님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하여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다.

 

< 강의 반대편 체험마루로 건너가는 "임시가설용" 다리 > 

 

< 손님을 기다리는 "물놀이" 기구 >

 

< "물놀이" 기구를 점검하고 있는 기술자 >

 

< 임시가설용 다리에 접안하고 있는 "보트(Boat)" >

 

임시가설용 다리를 건너면 많은 텐트 속에는 각자에 적합한 예술작품이나 물건을 판매 및 체험하는 부스가 도열하고 있는데, 왼편 입구에서 한 사람이 나와서 나의 이름을 부르므로 깜짝 놀라 바라보니 나의 고등학교 동문 한명이 가훈(家訓)을 써 주는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 강 건너편 "체험마루" 로 들어가는 아취문 > 

 

< 다양한 "체험" 의 경험을 가질 수 있는 텐트 촌 >

 

이 친구는 나와 너무나 친한 동문이 되어지므로 그의 부스에 앉아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으니까, 다른 장소에서 기다리는 와이프(Wife)와 함께 농사일을 도우려 왔던 사람들이 지루하다고 전화가 오므로 다음을 기약하면서 행사장을 떠나기로 한다.

 

< 가훈을 써 주는 "친구" 와 이별을 하면서 > 

 

다시 다리를 건너 메인(Main) 축제장이 되는 무대 전면을 통과하여 둑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성주군이 배출한 유명한 가수 백년설 선생님의 "나그네 설음" 이라는 노래비가 자리하고 있다. 

 

< 둑의 가장자리에 있는 "백년설" 노래비 >

 

백년설 가수의 본명은 "이창민(李昌民)" 으로 1914년 경북 성주군 예산동에서 출생하여 1938년 문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일본으로 유학을 갔으나, 일본 고베시에서 당시 태평양 레코드사의 문예부장이던 박영호(朴英鎬)의 권유로 전기현 선생님이 작곡한 "유랑극단" 이라는 노래를 취입하여 가수로 입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사의 2절과 3절을 직접 지어서 부른 이 노래가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고, 1940년 "나그네설음" 이 10만장이나 팔리는 대 성공을 거두었으며 1941년 OK 레코드사 사장이 되신 이철 선생님으로 부터 거액을 받고 전속회사를 옮겼다고 한다.

1940년대 일제의 목적가요가 되는 "복지만리" "대지의 항구" "아들의 혈서" 등을 불렸으며 광복 이후 계속하여 가요계에 활약하면서 한 때 고아원도 경영하였고, 1953년 서라벌 레코드사를 창업하였으며 1960년대 가수협회 초대회장을 역임하였다.

그후 경향신문사 사업부에서 일하다가 1979년 전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1980년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서 65세의 나이로 타개하였는데, 그의 대표곡이 되는 나그네설음에서 부터 일자일루, 두견화사랑, 번지없는 주막 등 희트곡이 있다.

이렇게 성주가 배출한 유명한 가수가 되어지지만, 일제시대에 작곡하여 부른 노래 중 일본을 찬양하는 노래가 있으므로 인하여 지방색이 뚜렸하고 심산 "김창숙(金昌淑)" 씨 같은 항일투사를 많이 배출한 성주군에서 그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것에 대하여 반대가 너무나 강하여 그의 아성이 사장되는 불운의 가수가 되어진다.

동 시대에 일본노래를 많이 부른 남인수 선생님 같은 가수는 현재 진주에서 "남인수 가요제" 를 개최하면서 지역 홍보를 극대화하고 있지만, 이곳 성주군에서는 이념의 갈등으로 인하여 상호 싸움으로 지지부지 하고 있어 자방자치단체에 아무런 이득도 창출하지 못하게 한다.

작금의 어느당 대표는 범 국가적인 차원에서 빛고을 광주까지 찾아가 동서 화합을 위하여 물세례 까지 받아 가면서 그들의 주제곡이 되는 "님의 행진곡" 을 부르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원점에서 재검토 하기 위하여 노력하는데, 시대의 억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부른 몇곡의 노래가 현재 성주고을에 무슨 이득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한 때는 빛고을 축제를 한다고 요란하다가 영쳔시에서 별축제를 한다고 하드니 쑥 들어가 버리고, 항일투사를 많이 배출한 고을이라고 자랑하는 성주군은 몇 명의 일본을 찬양한 사람을 청산하고 항일투쟁의 예향이라 내세우고 있지만 경남에 있는 의령군에 의병 정신에도 못따라 가는 주제를 파악하고는 있는지 의심이 일어난다.

금일 추진하고 있는 성주생명문화 축제의 주제로 등장하고 있는 탄생에서는 세종대왕 태실을 테마로 하고 있지만 다른 자방자치단체에서도 많은 태실을 보유하고 있어 충격강도가 다소 떨어지는 주제이고, 생과 인문학을 논하는 한개마을의 삶(生)에 대해서는 안동지역에 대비하면 죽도 쓰지 못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한 테마가 되는 성산고분군에 대해서는 6가야 중 제정자립도에서 성주군과 대비하여 게임도 되지 않은 경남 고성군에서도 소가야를 위하여 박물관을 건립하여 지역을 홍보하고 있다,

같은 가야의 영역이 되는 성주군 성산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구 계명대학교에 다 빼았기고, 6가야 중에서 유일하게 박물관 건물도 건립하지 못하는 무관심 속에서 살고 있는 고을에서 죽음에 대하여 논한다는 것이 정답으로 되어지는가?제주도 끝지점과 강원도 민통선 안에 있는 도로 변에 있는 좌판대에서도 "성주참외" 이라는 글씨가 없으면 참외가 판매 되지 않을 정도로 지명도와 세계인이 알고 있으면서 고유 명사가 되어진 성주참외 브랜드를 헌 고무신과 같이 버리고, 어느 부분에서도 강도가 빈약한 탄생, 삶, 죽음을 주제로 성주생명문화 축제라는 귀에도 어둔한 제목을 선정하여 홍보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물론 성주군을 좌우하면서 다소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몇몇 사람들이 탁상에 앉아 만들었겠지만 이것은 아니다는 생각으로 축제장을 떠나기로 하는데,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지방자치단체 아래에서 내가 앞으로 생산 할려고 하는 농수물이 잘 판매가 되어질지 걱정이 앞선다.

 

< 성주에서 용암 방향으로 건너가는 "다리" >

 

< 다리 아래까지 행사장 "먹거리" 텐트가 이어지고 >

 

오후 농사 일을 계속하기 위하여 다시 고향으로 넘어가기로 하는데, 오전에 함께하는 지인은 바쁜 일정으로 성주에서 대구로 바로 운전하여 가도록 하고 용암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 농원으로 달려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