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군 축제.

나의 고향 경북 성주군에 있는 한개민속마을에서 개최하는 '삼일유가축제' 를 돌아보며.

용암2000 2019. 10. 17. 09:05

                  

2019년 10월 13일.(일요일)


1. 방문의 개요.
대구에서 나의 농원(農園)이 있는 성주군 용암면으로 가는 길에 성주군 월항면 한개마을에서 개최하는 '삼일유가축제(三日遊街祝祭)' 가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3일간 실시한다는 내용을 인지하고 한번 방문하여 보기로 한다.
금년이 한개마을에서는 삼일유가축제를 개최하는 것이 3년째가 되어진다고 하지만, 현재 나는 나의 고향으로 귀촌하여 살고 있는 년수(年數)가 벌써 4년차가 되어져도 '등잔불 밑이 어둡다' 는 옛 고사성어와 같이 성주(星州)와 전연 관련이 없는 친구로 부터 축제의 사실을 알았다는 것에 대하여 다소 부끄러움이 일어난다. 
어찌하던 3일차 마지막 날 농원으로 가는 길에 다소 돌아서 한번 방문하기로 하는데, 이곳 한개마을은 중요 민속문화재 제255호로 지정이 되어진 유서 깊은 마을이면서 세종대왕의 자(子) 태실 및 가야국의 하나가 되는 성주성산동고분군(星州星山洞古墳群)을 포함하여 성주군이 자랑하는 3대 관광지 중 하나가 된다.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대왕 때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李友)' 선생님이 1450년 경 입향(入鄕)한 이래 560여 년을 내려오면서 '성산이씨(星山李氏)' 가 살고 있는 전통적인 씨족 마을인데, 다수의 전통 한옥이 보전되어 있으며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이 된 건축물이 9개의 동(棟)이 있다.
한개마을은 내가 성주에 있었던 어느 중학교 1학년(1962년) 때 소풍을 가면서 처음 대면한 마을인데, 그 때에는 너무나 어려 아무 것도 모르고 단지 마을이 크고 마을 뒤편 영취산에 있는 감응사(感應寺) 사찰이 매우 좋았다는 것만 기억이 나는 마을이다.

 
< 영취산 감응사와 함께 하는 '한개마을' 전경 >
 
이후 성인이 되어 몇 번 방문하여 보았고 2012년 3월 27일 나의 블로그(Blog)에도 기술하였지만. 크게 변화가 없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종종 마을 앞을 지나갔지만 이렇게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야 알게 한다. 


2. 한개마을의 한옥을 돌아보면.       
한개마을은 월봉(月峯) 이정현(李廷賢 : 1587∼1612) 선생님이 와서 성산이씨의 씨족마을로 온전하게 자리를 잡았는데, 월봉 선생님은 외아들 이수성(李壽星) 선생님을 낳았다. 
이수성씨는 달천, 달우, 달한, 달운 등 네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들은 모두 마을에 정착하여 각각 백파(伯派), 중파(仲派), 숙파(叔派), 계파(季派)의 파 시조가 되었고 각 파의 자손들이 마을 형성을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한다.
한개마을이 번창할 때는 100호가 넘었다고 하나 현재는 약 70호 집이 있는데, 마을을 구성하는 집들 가운데 하회댁은 1750년 경에 지어졌으며 교리댁와 북비댁 및 한주종택은 1700년 대 후반에 지어졌다.
그리고 나머지 한옥들은 대체로 1800년 대에 건축되었지만 6· 25 전쟁 당시 큰 피해를 입어 여러 채의 한옥이 파손되거나 소실되었고, 현재 농촌의 노령화(老齡化)로 인하여 빈집과 더불어 빈공간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마을의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면 중앙에서 길이 나누어 지는데, 왼편으로는 월곡댁, 북비댁(또는 응와종댁), 교리댁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자리하고 있고 마을의 중앙길에는 첨경재, 한주종댁, 도동댁, 극와고댁, 하회댁을 가르키는 방향을 표시하고 있다.

 
  < 마을 입구 '토산품' 을 판매하고 있는 매장 >

 
< 두개의 길로 나누어지는 곳에 있는 '이정표' >

 
왼편의 길로 들어가 구경하여 보면 먼저 교리댁(校理宅)을 만나는데, 대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사랑채와 함께 안채가 자리하고 있지만 현재 안채는 보수를 위하여 건물 전체에 건설용 비계가 설치되어 있다.

 
                                                                                                 < '교리댁' 을 나타내는 설명문 >
 

    < 교리댁의 '사랑채' >

 
교리댁을 나와 뒤편으로 돌아서 가면 북비댁(北扉宅 : 응와종댁)이 자리하고 있지만, 내부에 사람이 거주하므로 인하여 대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관람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 '북비댁(응와종댁)' 을 나타내는 설명문 >

 
   < 대문이 굳게 잠겨져 있는 '북비댁' >

 
다시 도로로 나와 뒤편에 있는 월곡댁(月谷宅)으로 들어가 보는데, 월곡댁은 대문이 열려있어 내부로 들어가면 먼저 일단의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는 사랑채를 만나고 사랑채와 구획하는 사잇문을 통과하면 안채에 이른다.

 
< '월곡댁' 을 나타내는 설명문 >

 
< 월곡댁으로 들어가는 '대문' >

 
< 일단의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는 월곡댁 '사랑채' >

 
< 사잇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만나는 월곡댁 '안채' >

 
이렇게 마을의 왼편에 있는 고댁(古宅)을 돌아보고 다시 갈림길 까지 내려와 이번에는 중앙길 따라 올라가 보기로 하는데, 중앙길은 좌우로 돌담길이 너무나 잘 만들어져 있어 몇일 전 서울에서 거닐어 보았던 덕수궁 돌담길 보다 더 조용하고 운치가 있어 안도감을 주는 길이 된다.

 
< 마을의 중앙을 관통하는 '돌담길' >


< '감' 이 담장을 넘보고 >

 
< 곡선미가 매우 아름다운 '돌담길' >

 
길의 좌우에는 하회댁(河回宅)과 극와고댁 및 도동댁이 자리하고 있지만 대부분 사람이 거주하므로 사랑채 까지 관람의 동선을 만들어 놓고 있는데, 건성으로 돌아보고 제일 위쪽에 있는 한주종댁(寒洲宗宅)을 방문하여 본다.  

 
< '하회댁' 을 나타내는 설명문 >

 
< 하회댁의 '사랑채' >
 

한주종댁은 종댁의 건물 답게 이곳 한개마을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자리하면서 넓은 부지에 많은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곳에도 사랑채와 함께 우측의 뒤편에 있는 별채가 되는 한주정사(寒洲精舍)의 건물에만 문이 열려 있다. 

 
< '한주종댁' 을 나타내는 설명문 >

 
< 한주종댁의 '사랑채' >
 

한주정사의 건물에는 'ㄱ' 자형의 건축물이 되어지는데, 건물 정면의 처마에는 '조운헌도제(祖雲憲陶齊)'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고, 앞으로 돌출하고 있는 2층의 마루에는 '한수헌(寒水軒)'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 '한주정사' 의 정면에 붙어있는 조운헌도제 현판 >

 
< 한주정사 건물의 마루 위에 붙어있는 '한수헌' 현판 >

 
건물 오른편으로 마을 뒤산이 되는 해발 332m '영취산(靈鷲山)' 에서 흘려 내리는 물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분수대를 만들어 놓은 연못이 자리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건물에서 차가운 물이 돌아가는 건물이라는 뜻의 한수헌을 무색하게 현재는 물을 흐르지 않고 빈 연못으로 방치하고 있다.

이밖에도 한개마을에는 학생들을 가르켰던 여동서당(餘洞書堂), 돈재 이공(李公) 선생님의 공덕비. 초가집, 공동우물, 천년의 고찰 감응사 등 불거리가 많이 자리하고 있어 찬찬히 돌아보면 하루가 부족한 마을이 되어진다. 

< 마을의 제일 왼편에 있는 '여동서당' >

 

< 돈재 '이공' 선생님의 공덕비 >

 

< 마을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초가집' >

 

< 마을의 입구에 있는 '초가집' >

 

3. 삼일유가축제장 방문.

이곳 한개마을에서는 마을의 왼편 여동서당 앞에서 3일간 '삼일유가축제(三日遊街祝祭)' 가 펼쳐지고 있는데, 1일차에는 개막식 축제의 행사를 비롯하여 난타의 공연 등이 이루어지고 2일차에는 군민 노래자랑대회를 비롯하여 인기가수 김범룡 및 주병선 등 다수의 가수들이 출연하므로 성대한 축제가 되었다고 한다.

 

< 마을의 왼편으로 자리하고 있는' 행사장' >

 

< '행사장' 으로 가는 길 >

 

< 행사장 입구에 있는 '솟대' >

 

내가 참석하는 3일차에는 단비의 공연, 과거시험, 남사당 줄타기 등 다양한 행사로 진행하고 있는데, 오전에는 한개마을 한옥촌을 돌아 다니면서 관람을 하고 나서 먹자 집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점심식사의 시간을 가진다.

 

< 일정별 '행사' 안내문 >

 

오후에는 삼일유가축제 행사장으로 들어가서 몇 가지 공연을 구경하여 보는데, '삼일유가(三日遊街)' 이라는 뜻은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한 선비에게 왕(王)이 삼일간의 유가(遊街)를 허락한 것이라고 한다.

유가(遊街)는 일종의 거리행진으로 왕으로 부터 받은 어사화(御史花)를 머리에 꽂은 급제자들이 악사와 광대 및 재인(才人)을 앞세워 풍악을 울리면서 고향으로 당당하게 장원급제를 알리는 행사이라 하겠다.

그러고 사흘간 급제자들은 키워주신 부모님과 스승 및 일가 친척을 찾아 뵙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재실(齋室) 또는 무덤으로 찾아가 선조들에게 장원 소식을 전하는 예(禮)를 올렸다고 한다.       

내가 행사장으로 들어갈 시점에 과거시험을 치루고 있는데, 축제를 주체하는 마을의 위원장과 사회자 한명이 과거를 치루는 방법과 함께 사행시(四行詩)의 문제를 출제하여 시험을 치루고 있다.

 

< 행사를 주관하는 '위원장 및 사회자' >

 

< 마지막 까지 '과거시험' 에 열중하는 지원생 >

 

이내 시험의 결과를 발표하면서 급제는 초등학교 저학년부, 초등학교 고학년부, 중고등학부, 성인부로 나누어 결과를 발표하는데, 각 분야의 장원급제 4명과 차하급제 3명을 선출하여 각종 상장과 상품을 시상한다.

 

< 영광의 '장원급제' 를 한 합격자 >

 

그러고 나서 약사와 광대를 앞세우고 장원을 급제한 사람은 흰색 말(白馬)을 타고 마을 한바퀴를 돌게 하는데, 마을을 돌고나서 무대로 다시 올라와 주체측에서 준비한 제례상(祭禮床) 앞에서 절을 하면서 과거시험의 재현(再現)을 끝내게 한다.

 

< 약사를 앞 세우고 마을을 돌고 있는 '장원급제자' >

 

< '백말' 을 타고 가는 급제자 >

 

< '제례' 의 행사를 하는 급제자 >

 

이어 사물패(事物牌)의 신명나는 한마당 놀이, 해금(奚琴)의 연주, 마지막으로 신파극(新派劇) 광대놀이 한마당 공연을 하면서 행사의 분위기를 절정으로 이루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린다.

 

 < '사물패' 의 한마당 놀이 >

 

< '해금' 을 연주하는 공연자 >

 

< 신파극 '광대놀이' 를 하는 공연자 >

 

< 신명나게 춤을 추는 '광대' >

 

또한 남사당 패와 함께 외줄타기 공연이 이어지면서 오늘 줄타기 선수는 어여뿐 아가씨 한명이 나와 약 3m 높이의 줄로 올라가 다양한 묘기를 보여주는데. 이 아가씨는 줄타기도 잘하지만 이야기도 잘하면서 관람자에게 박수를 유도하는 것도 하나의 기예(技藝)가 되어진다.

 

< '외줄타기' 의 묘기를 보여주고 있는 아가씨 >

 

< 뒤로도 걸어가는 '공연자' >

 

한개마을의 관람을 포함하여 3-4간의 공연을 구경하다가 나의 농원으로 넘어가기로 하는데, 왜 성주군청과 한개마을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축제장을 만들고 있지만 홍보의 부족으로 인하여 대부분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나의 불로그를 읽는 독자들이라도 청명한 가을날씨에 개최하는 한개마을 '삼일유가축제' 가 작은 동네의 축제가 아니고 대한민국의 축제로 크게 성장하도록 협조의 부탁을 드리겠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