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군 문화와 산행.

나의 고향 성주군에서 공자 및 옛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성주향교" 를 관람하며.

용암2000 2015. 7. 19. 17:11

2015년 7월 17일 (금요일)

 

오늘은 나의 고향이 되면서 나의 농원이 있는 성주군 용암면으로 들어가는 길에 매월 2일과 7일에 성주읍 장터에서 개최하는 5일장을 돌아보기 위하여 조금 돌아서 가는 길을 선택하기로 하면서 재래시장에 도착한다.

다소 일찍은 아침이 되므로 활기찬 시장이 형성하지 못하고 있어, 성주읍 예산리 교촌마을 동쪽 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보물 제1575호 "성주향교(星州鄕校)" 를 방문하여 보기로 한다.

성주읍시가지에서 칠곡군 왜관읍으로 가는 옛길 따라 가다가 왼편 야산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는 교촌마을 안길로 조금 들어가면 성주향교를 가르키는 이정표와 함께 야산의 비탈면으로 향교 건물이 보여, 내부로 올라가면 넓은 주차장에 도착한다.

 

< 성주읍시가지에서 왜관으로 가는 국도변에 있는 "성주향교" 를 가르키는 입석 >

 

그런데 승용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오니 향교 전체를 보수하기 위하여 많은 건축 자재들이 쌓여 있어, 관람이 불가능 할 것 같아 주변에 있는 한명의 인부에게 먼 곳에서 왔다고 하니 조심하여 관람하여도 무방하겠다는 허락이 떨어진다.

 

< "성주향교" 앞에 있는 주차장 >

 

일반적으로 향교는 선현(先賢)의 배향 공간을 두기 위하여 평지에서는 대성전을 앞에 두면서 강학(講學)을 행하는 명륜당을 뒤에 두는 전묘후학(前廟後學), 구릉지에서는 대성전을 높은 곳에 두고 명륜당을 낮은 곳에 배치하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 건축하는 것이 원칙으로 한다.

먼발취에서 바라보는 성주향교는 좀 독특한 형성을 하고 있는데, 성주향교는 앞에서 볼 때 한개의 영역(Boundary) 표시가 되는 담장으로 구획하고 있는 것 같이 매우 아름다운 형상을 하고 있는 향교가 된다.

 

< 야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성주향교" 전경 >

 

그렇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중간에 흙담으로 쌓아 3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지는데, 제일 오른편에는 대성전(大成殿) 건물, 중앙에 명륜당(明倫堂) 건물, 왼편의 구석에는 고사(庫舍)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 "우묘좌학(右廟左學)" 의 보기드문 배치 방법을 취하고 있다.

 

< 3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는 "성주향교" 조감도 >

 

그래서 향교로 들어가는 문이 3개로 만들어져 있는데, 오른편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은 높은 언덕 위에 작은 사주문을 형성하면서 자리하고 있으며 그 사주문을 통과하면 아담한 마당과 함께 또 다른 내삼문(內三門)을 통과하여 대성전에 도달하도록 한다.

 

<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첫번째 "사주문" >

 

<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2번째 "내삼문" >

 

향교의 중앙이 되는 명륜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정면의 담장 중앙에 위치하면서 높은 돌계단 위쪽 작은 문으로 형성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 있는 향교의 문을 솟을대문을 하면서 위엄을 갖추는 것 과는 대조적으로 이곳 성주향교는 매우 작은 협문으로 지어져 있으면서 처마에는 "입덕문(入德門)"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 명륜당으로 들어가는 "입덕문" >

 

아울러 입덕문 앞으로 형성하고 있는 도로의 가장자리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말에서 내려 가라는 "하마비(下馬碑)" 와 더불어 성주향교를 나타내는 입석이 나란하게 서 있으며, 계속하여 길 따라 올라가면 향교의 일반적 대문이 되면서 고사 건물로 들어가는 주 출입문에 도착한다.

 

< 입덕문 앞 도로 가장자리에 있는 "하마비와 성주향교 입석" >

 

< 왼편 주 출입문으로 올라가는 길의 가장자리에 있는 "배롱나무" >

 

고사 건물로 들어가는 주 출입문도 작은 대문이 되는데, 명륜당 건물과 고사 건물의 정면으로 향하지 않고 측면으로 비켜서 들어가는 형태의 문이 되므로 손객이 바로 주인과 대면을 피할려고 하는 옛 조상들의 예절이 숨겨져 있는 대문이라 하겠다.

 

< "명륜당과 고사 건물" 의 측면으로 향하는 주 출입문 >

 

이 측면 대문으로 들어가면 향교의 제일 좌측으로 "ㄱ" 자 형태의 고사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건물 앞으로 거의 허물어지면서 없어진 흙담으로 구획하는 담장의 흔적이 자리하고 있는데, 담장 흔적의 후미에는 다소 낮은 담을 구성하면서 작은 쪽문이 자리하고 있다.

 

< 건물의 왼편에 있는 "ㄱ" 형태의 고사 건물과 더불어 파괴되어진 흙담 >

 

넓은 마당을 가지고 있는 명륜당 건물은 정면 5칸에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써 전면으로 퇴칸을 두고, 가운데 3칸은 마루가 깔린 전형적인 "중당협실((中堂夾室)" 형의 평면구성으로 되어 있으면서 창호의 구성에서 옛날 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등 평면구성과 창호수법 등이 잘 보존되고 있다. 

 

< 학문을 가르키는 정면 5칸에 측면 3칸의 "명륜당" 건물 >

  

< 명륜당 건물 중앙에 있는 "현판" >

 

이 명륜당 건물 앞 좌우에는 만화루(萬化樓)와 양사재(養士齋)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없고, 반대로 마당의 끝지점에서는 향교에서 머물고 있는 선비 아들에게 시중을 들어 주면서 함께 기거하는 노복들이 머무는 수복사(守僕舍) 건물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 명륜당과 마주보고 있는 "수복사" 건물 >

 

< 명륜당에서 내려보는 "입덕문과 성주읍시가지" >

 

이 명륜당에서 오른편이 되는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길에 또 다시 흙담으로 구획하면서 작은 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문에는 제사(祭祀) 등에 사용하는 제기를 보관하는 전사청(典祀廳) 건물이 문과 붙어서 건축되어 있다. 

 

< 명륜당에서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문과 함께 건립되어 있는 "전사청" >

 

이 문을 통과하면 공자와 옛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 건물을 만나는데, 대성전 건물 전면 좌우로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나 현재 공사용 자재로 매우 어수선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 공자와 옛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대성전" >

 

< 대성전 앞에 있는 "동무" 건물 >

 

< 대성전 앞에 있는 "서무" 건물 >

 

< 대성전 건물에서 내려보는 "내삼문과 성주읍시가지" 전경 >

 

여기에 있는 성주향교 건물은 조선 태조 7년(1398년) 서울의 성균관, 지방의 향교를 세울 때 건립된 중심 건물로써 공자와 더불어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대성전 건립 년대는 17세기 초의 건물로써 처마 끝에 하중을 받치기 위한 부재인 공포의 형식이 그 예가 드문 형태가 되어지는 다포식 건축양식에서 당시의 모습들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특히 다포 건축이면서 천장을 설치하지 않았고 유교 건축에 맞게 내부 구성을 매우 간략하게 처리한 점 등이 특이하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 부터 토지와 전적 및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또는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였으며 초하루 및 보름에 분향을 하는 장소로 사용한다.

이곳 성주향교에 있는 명륜당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5호로 대성전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1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전교(典校)와 장의(掌議)를 두어 향교의 운영 및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공사에 따른 너무나 어수선한 분위기로 그렇게 오래동안 머뭄이 불가능하므로 주마간식(走馬看山) 식으르 관람을 끝내고, 5일장이 열리고 있는 성주 재래시장으로 달려가 옛 추억의 시장거리를 배회하면서 다양한 간식도 먹어보는 시간을 가지다가 잡풀이 기다리고 있는 농장으로 넘어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