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대구)

대구광역시에서 출생한 유명한 가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과 방천시장을 거닐어 보면.

용암2000 2015. 12. 2. 16:03

2015년 11월 28일.(토요일)

 

금일 토요일은 나에게 중복의 결혼 청첩장이 도착하므로 모두 초대에 응하기로 하는데, 먼저 오후 2시 대학교 후배가 되는 모 공업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아들 결혼식이 범어로타리에 있는 교원공제회관에서 거행하므로 한명의 대학교 동문과 함께 결혼식을 참석하여 푸짐한 식사시간을 가진다.

연이어 나의 4촌 동생의 아들도 오후 5시 범어로타리 인접지역에 있는 호텔 라온제나에서 거행하므로, 약 1시간 30분 정도의 짬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동문과 함께 범어로타리에서 가깝게 있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을 한번 방문하기로 한다.

푸짐하게 먹어버린 음식의 소화와 더불어 산책도 겸하면서 천천히 걸어 수성교를 지나 방천시장 입구에 있는 김광석 거리에 진입하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시장 입구에 있는 김광석 동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 대구광역시를 관통하는 "신천" >

 

< 신천대로와 "방천시장" 경계선 >

 

< 거리 입구에 있는 "김광석" 과 함께 하는 포토존 >

 

몇년 전 대구광역시 중구청에서는 "근대로(近代路)의 여행" 이라는 골목 Tour가 조성하므로 타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지만, 이곳 김광석 거리는 나와 같이 6-70 세대에게는 Tour 하기에 적합한 거리가 되지 않으므로 차일피일한 거리이다.

이곳 김광석 거리가 현재의 행정명으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이라는 Slogen의 이름으로 바꾸어지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호응하고 있지만, 대구에 거주하는 3-40대 이상의 사람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젊음의 거리가 된다.

 

< 방천시장과 함께 하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의 조감도 >

 

<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로 명명한 이유 > 

 

실제로 이곳 방천시장 인근에는 우리들 세대에서 공전의 희트를 치면서 유명한 가수가 되는 "남일해" 선생님이 수십년 간 살았던 생가(生家)가 자리하고 있는 동네이므로 "남일해 거리" 가 되지 못하고 우리들에게 이름도 생소한 "김광석 거리" 가 등장한다는 것에 대하여 많은 의아심을 가지면서 천천히 거리로 진입하여 본다.

입구에 있는 김광석에 대한 연역을 읽어보니 김광석은 1964년 1월 22일에 이곳 방천시장에서 "번개전업사" 라는  간판으로 사업을 전개한 전직교사 출신 아버지 김수영과 양장점을 운영하는 어머니의 3남2녀 중에 막내로 태어났고, 5살이 되는 1968년 서울 창신동으로 이주하여 창신초등학교, 경희중학교, 대광고등학교, 명지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중학교 시절 현악부에서 활동하였는데, 이 때 선배들로 부터 바이올린을 다루면서 악보 읽은 법을 배웠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는 합창부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음악적 감성을 키웠고 대학교 시절에는 연합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 김민기의 음반 "개똥이" 에 참여하면서 가수로 데뷔 하였으며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에서 노래를 불렸고, 1985년 1월 입대하였으나 군대 생활 중 큰형의 사망으로 단기 사병으로 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하고 이 후 동물원의 보컬로 활동하면서 일반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지만 이내 동물원 활동을 그만 둔 후에는 통기타 가수로 인기를 누렸다.

1989년 10월 솔로(Solo)로 데뷔하여 첫 음반을 내놓았으며, 이후 1991년에 제2집 및 1992년 제3집을 발표하였고 1994년에 마지막 정규 음반이 되는 제4집을 발표하면서 1995년 8월 까지 1.000회의 공연 기록을 세웠다.

그의 대표적 노래로는 "거리에서", "변해가네", 사랑했지만",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등의 애잔하면서 서정적인 노래가 있다고 하나, 나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노래가 된다

그러나 김광석은 불운하게 33살이 되는 1996년 1월 6일 새벽 자택에서 전깃줄로 목을 매 자살하였는데, 평소에 그는 오래 살고 싶다고 하면서 활발하고 의욕적인 삶을 살아가므로 인하여 그의 가족과 부인은 자살이 아니고 타살이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 "김광석 연역" 을 설명하는 안내판 > 

 

골목 초입에서 조금 들어가면 "T" 자 형태의 3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코너에 김광석 거리를 홍보하는 안내소를 겸하는 "골목방송 스튜디오" 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앞으로 재래식 시장이 되는 방천시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로 들어가는 초입 길 >

 

< 거리를 홍보하는 "골목방송 스튜디오" > 

 

< 포토존에서 "기념사진" 찍고 있는 관광객 >

 

방천시장은 대구 도심을 남북으로 흐르는 신천(新川)과 동서로 달리는 달구벌(達句伐) 대로가 만나는 수성교 옆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신천 제방 따라 개설한 시장이라고 하여 방천시장이라 불려졌는데, 1945년 해방 후 일본, 만주 등지에서 돌아온 이주민들이 호구지책으로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이 방천시장의 시초라 하겠다.  

 

< "방천시장" 으로 들어가는 입구 >

     

< 또 다른 방향으로 들어가는 "방천시장" 입구 >

 

이후 60년 대 방천시장은 싸전과 떡전으로 유명세를 탔고, 한 때는 점포가 1.000개가 넘는 대구의 대표적 재래시장 중 하나이었으나 도시 공동화 및 백화점, 대형 마트 등에 밀려 점점 쇠략하여 가던 중 2009년 부터 "별의별 별시장 프로젝트", "문전성시 프로젝트" 등을 통하여 다시 한번 더 중흥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 사람이 거의 움직이지 않은 "방천시장" 내부 >

 

< "방천시장" 내부를 현대화 거리로 만들었지만 >

 

< "방천시장" 뒷 골목도 구경하면서 >

 

< 옛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재래시장" 골목 >

 

한적한 거리가 되는 시장을 한바퀴 돌아보고 나서 다시 약 350m 정도로 조성하고 있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거닐어 보는데, 잔잔하게 흘려내리는 김광석 음악을 들으면서 산책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왼편 벽면으로 각종 그림과 시, 만화, 포토존, 낙서판, 열쇠와 자물통, 조형물, 공연장 등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김광석" 거리를 거닐고 있는 관광객 >

 

< 왼편 벽면 따라 그려져 있는 "김광석" >

 

<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만화" 그림 >

 

< 벽면에 기술하고 있는 그림을 감상하는 "동문" >

 

< 김광석씨가 쓴 "시" > 

 

< "사랑의 언약" 을 표현하는 열쇠 >

 

< 김광석을 사랑하는 "화살" > 

 

< "방문 기념" 흔적도 남기면서 >

 

< 통기타를 치고 있는 "김광석" >

 

< 간이용 "공영장" 에 앉아 있는 커풀 >

 

<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한 "포토존" >

 

< 통기타를 사랑했던 "김광석" >

 

좁은 골목의 오른편으로는 허물어져 가는 판자집을 개조하여 다양한 선물 및 공예품 판매하는 가게, 음식점, 커피점, 동상, 추억의 문방구, 옛날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 등이 자리하므로 많은 젊은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리가 된다.

 

< "김광석 다시 그리기" 체험장 >

 

< 새롭게 건립되어진 "상가" >

 

< 손님을 기다리는 "판매원" >

 

< 기념품을 구입하는 "관광객" >

 

< 새롭게 건축하고 있는 "빌딩" >

 

< 노래하는 "김광석" 동상 >

 

<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커피" 집 >

 

< 되돌아 나오면서 바라보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 거닐기에는 다소 무안 함이 묻어나는 길이 되지만, 타 지역에서는 소설에서 나오는 가상의 인물에도 자기 지방의 출신이라고 하면서 거짖의 전시장 또는 행사를 하면서 홍보하는 것 보다는 그래도 방천시장에서 짧은 삶을 살았던 김광석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어 자랑스러운 대구 골목 Tour 거리의 일부분이 되어짐을 보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