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대구)

대구시 중앙통에서 추억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향촌문화관" 및 음악감상실 "녹향" 관람.

용암2000 2017. 6. 1. 19:18

2017년 5월 28일. (일요일) 

 

1, 향촌문화관을 찾아서.

오늘 대구시가지에서 "2017년 컬러풀 대구페스티벌" 축제가 실시 한다는 방송을 보고, 오전 일찍 중앙통으로 나가니 행사가 오후 1시 부터 개최한다는 홍보물 따라 다소 시간적 여유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대구 중심지에 산재하고 있는 몇 가지 전시실을 관람하여 보기로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되는 "향촌문화관(香村文化館)" 에 첫발을 내린다.

대구역에서 중앙로 거리를 통하여 반월당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면 오른편 향촌동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 옛 상업은행이 되는 4층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을 새롭게 단장하여 1층 및 2층은 향촌문화관으로 할용하고 있고, 3층 및 4층은 대구문학관으로 지하실에는 녹향 음악감상실로 사용하고 있다.

 

< 향촌동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향촌문화관" 건물 >

 

1층 입구로 들어가면 매표소가 자리하고 있으면서 입장료는 경로의 혜택이 되는 사람에게는 500원으로 향촌문화관 및 지하실에 있는 녹향 음악감상실을 관람할 수 있다.

반대로 건물의 3층 및 4층에 자리하고 있는 대구문학관에서는 입장료 없이 바로 올라가 관람이 가능하게 하고 있다.

 

< 1층 "향촌문화관" 으로 들어가는 입구 >

 

너무나 저렴한 입장료가 되므로 먼저 입장권을 구입하고 나서 1층 부터 관람하기로 하는데, 입구에는 "향촌동 속으로" 라는 주제로 1906년 에서 1907년 까지 대구읍성이 헐리고 1911년 성곽과 누각이 사라진 자리에 새롭게 탄생한 "향촌동(香村洞)" 이라는 동네에 시대별 분류와 더불어 년표, 사진, 영상,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 "1900년 도" 향촌동 거리 풍경 사진 >

 

< "1920년 도" 향촌동 거리 풍경 사진 >

< "1945년 도" 향촌동 거리 풍경 사진 >

 

< "1950년 도" 향촌동 거리 풍경 사진 >

 

향촌동은 대구읍성의 화약고가 있었던 매우 한적한 자리가 되었지만, 물류 및 수송의 중심지가 되는 대구역이 들어서고 나서 부터 행정, 금융, 상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그후 향촌동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문화예술과 더불어 대구의 경제 및 상업 중심지로 근대화 과정을 증언하여 주는 역사의 산실이라 하겠다. 

전시실 내부로 조금 들어가면 1917년에 개통한 중앙로 거리로 향촌동 일대의 상권 변화에 큰 역활을 가져 왔는데, 1960년 까지만 하여도 향촌동에는 한국은행 대구지점, 금융기관, 서점, 다방, 금은방, 양복점, 안경점, 주점 등이 즐비하게 자리하므로 대구의 중심 상업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대구시가지에 처음 운행하는 "버스" >

 

< "미성당" 금은방 >

< 향촌동에 있었던 "양복점" >

 

< "애안당" 안경점도 보이고 >

 

더 내부로 이동하면 한국 산업의 기반이 되는 북성로 공구골목이 인접하게 발달하므로 향촌동은 더욱더 번창한 거리로 변모하면서 대구의 거점 중심지로 탈바꿈하였다고 한다.

 

< 북성로에 자리하고 있는 "공구상" >

 

계속하여 전시실을 돌아보면 1905년 경부선(京釜線) 철도의 개통으로 대구역(大邱驛)이 생기면서 향촌동은 더욱더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지방에서 수확한 농수산물을 판매하기 위하여 몰려오는 농어촌 사람들로 주변으로 도깨비 시장도 형성하게 만든다.

 

< 1905년 도에 개통한 "대구역" >

 

6.25 전쟁이 발생하고 나서 또 다시 밀려오는 피난민들로 인하여 미군 PX 에서 흘러나오는 구제품과 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교동시장도 인접하게 형성하므로 1960년대 까지 향촌동은 최상의 호황기를 누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교동시장" 을 알리는 안내문 >

 

< '교통시장" 에서 장사하는 상인 모습 >

< "미군 PX" 물건을 판매하는 점포 >

 

< "가정용" 물건을 판매하는 아주머니 >

< "석유" 를 판매하고 있는 경북광유 >

 

2층으로 올라가면 "향촌을 기억하다" 라는 주제로 만들어져 있는데, 입구로 들어서면 먼저 6.26 전쟁 당시 전국에서 모여든 문화예술인들로 당대의 대표적 시인, 소설가, 화가, 연극영화인, 가수들이 넘쳐 났다고 한다.

 

< 2층으로 올라가면 만나는 "향촌동 사람" >

 

향촌동은 특히 구상, 조지훈, 이중섭, 이상범, 김동진, 박시춘 등 이들이 대구로 내려오면서 부터 명실상부한 한국 문화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1950년 및 1960년 대에는 풍미하였던 예술인들이 출입하였던 장소들이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 향촌동을 빛내는 "문화예술인" 사진 >

 

안쪽으로 이동하면 1950년 대 다방은 한국 문화 및 음악사를 증언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향촌동의 다방, 음악 감상실, 주점은 문화 및 예술의 열정을 쏟았던 문화 예술인들의 아지트이라 하겠다.

 

< "문화 예술인" 의 아지트가 되는 주점 거리 >

 

< "탁주" 를 판매하고 있는 뚱보집 >

< 차려진 "국수와 탁주" 상 >

 

< 주전자와 함께 하고 있는 "1968년" 달력 >

 

북성로의 모나미 및 상록수 다방에는 문인들의 출입이 자주 하였으며 갈매기 다방은 영화인들의 화합의 장소가 되고, 백조다방에는 홀 중앙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명품이라 음악인들의 출입이 잦았다고 한다.    

 

< 음악인들이 많이 찾았던 "백조다방" >

 

특히 "대중예술의 요람" 이라는 코너에는 광복 직후 5개 이었던 대구의 영화관이 1960년 대에는 개봉관만 7개에 이르면서 송죽극장과 자유극장이 마주하고 있는 골목에는 작은 충무로 거리가 되고, 목로주점 카스바에는 영화인들이 주로 찾은 술집이 되었다.

 

< "영화관" 의 거리 풍경 >

 

다른 부스(Booth)에는 남선악기사 대표 이병주 선생님이 1947년에 설립한 "오리엔트 레크드사" 에서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주옥 같은 곡(曲)들이 제작하였다.

당시 오리엔트 레크드사에서는 박시춘, 이재호, 강사랑, 손로원, 남인수, 백년설, 현인, 백설희, 금사향 등 한국 가요사에서 이름을 남긴 사람 대부분이 소속이 되어진 레코드사이라 하겠다. 

 

< "남산악기사" 를 홍보하고 있는 부스 >

 

< "오리엔트 레코드사" 의 홍보물 >

 

< 오리엔트 레코드사에 보유하고 있는 "음반" >

 

< 레코드사에서 기증하고 있는 "축음기" >

 

오늘 무심코 관람하여 보는 향촌동 옛 거리와 극장, 다방, 서점 등은 1969년 부터 내가 대학교 다닐 적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므로 그 때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되고 있는데, 만약 앞으로 중앙통으로 나가는 길이 있으면 종종 찾아보고 싶은 향촌문화관이 된다.

 

< 이 밖에 "20세기" 중구의 모습 사진 >

 

2. 녹향 음악감상실을 돌아보고.

이렇게 1층과 2층에 자리하고 있는 향촌문화관을 관람하고 나서 3층 및 4층으로 올라가기 전 먼저 지하층에 있는 "녹향(綠鄕)" 음악실로 내려가 보는데, 지하실 입구에 있는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니 주인장은 출타 중이라서 그런지 몇 명의 관람객들이 서성이고 있다.

 

< "녹향" 음악실로 내려가는 입구 >

 

< 지하실 입구에 있는 "녹향" 음악 감상실 >

 

녹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 감상실인데, 1946년 이창수 선생님이 SP 레코드판 500여 장과 축음기 한대로 향촌동 자택의 지하층에 문을 열면서 시작한 음악 감상실이다.

녹향은 6.25 전쟁의 발발로 인하여 대구로 내려온 많은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활을 하면서 그들 작품의 산실이 되는데, 양명문 시인의 "명태" 도 이곳에서 탄생한 작품이라 하겠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고전 음악을 찾는 발길이 줄어 들면서 극심한 경영난을 이겨 내지 못하고 10여 차례 장소를 이전하다가 결국에는 도산하였지만, 대구 원로 음악회에서 "녹향 창립 50주년 기념 음악회" 등 예술가들의 노력으로 그 모습을 지켜내게 되었다고 한다.

2014년 7월 이창수 선생의 유가족이 녹향에 관련 되는 기자재 전부를 대구광역시 중구에 기증하였고, 향촌문화관의 개관과 더불어 이곳 지하실로 옮겨와 문화관과 함께 관람객에게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를 제공하여 준다.

 

< "녹향" 의 변천사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음악 감상실 내부 왼편으로 음반과 함께 듣기를 원하는 곡(曲)을 신청할 수 있는 Room 및 홀이 자리하고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조그만한 음악회를 개최할 수 있는 무대와 더불어 이창수 선생님의 일대기를 조명할 수 있는 영상물이 방영하고 있다.

 

< 입구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음반" >

 

< 입구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안내 데스크" >

 

< 녹향이 보유하고 있는 "축음기" >

 

< 녹향의 창업주가 되는 "이창수" 옹 >

 

< 음악실 내부에 있는 "무대" >

 

< 무대와 함께 하고 있는 내부 "객석" 모습 >

 

감상실에는 매일 오전 10시 부터 12시 까지 팝송 및 영화 음악, 12시 부터 16시 까지 고전 및 오페라 음악, 16시 부터 18시 까지 다시 팝송 및 영화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는 안내문과 더불어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다.

 

< "고전 음악" 을 감상하고 있는 고객 >

 

< 녹향 음악 감상실 내부 벽면을 장식하는 "시" >

 

그래서 홀에 앉아 한곡의 영화 음악을 경청하다가 음악에 소질이 없으므로 이내 자리를 떠나기로 하는데, 같은 건물 3층 및 4층에 있는 대구문학관으로 발길을 옮기기로 한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