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대구)

대구시 중앙로 인근에 있는 경상감영공원과 함께 하는 "대구 근대역사관" 을 돌아보면서.

용암2000 2017. 6. 10. 23:13

2017년 6월 10일.(토요일) 

 

나는 약 50여 년간 대구광역시 남구에 살면서 대구시를 홍보하는 "근대역사관(近代歷史館)" 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다가 최근 대구 중구청에서 야심차게 개발하여 많은 호응을 받고 있는 "근대로의 여행" 안내 팜플릿을 통하여 근대역사관이 존재하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금일 중앙통으로 나가는 길에 잠시 근대역사관을 돌아보기로 하는데, 역사관이 있는 위치는 옛 경상감영(慶尙監營)이 있었던 공원의 바운다리 서쪽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조형미가 뛰어난 대구 근대역사관 건물은 일제 강점기 시대가 되는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처음 건립하였고, 1954년 부터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활용하기도 한 건물이다.

 

               < 경상감영공원의 서쪽 코너에 있는 대구 "근대역사관" 건물 >

 

이후 2003년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이 되어지면서 2011년 지상 2층 및 지하 1층에 대구를 홍보하는 근대역사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는데, 역사관 내에는 근대의 대구 모습 및 선조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상설전시실 및 기획전시실, 체험실, 문화강좌실로 운영하고 있다.

먼저 1층 상설전시실 입구로 들어가면 안내원의 인사와 더불어 입장료가 무료가 되어진다고 하면서 홍보용 팜플릿 한장을 건너 주므로, 팜플릿 내용을 잠시 읽어보고 나서 관람의 순서를 가르키는 화살표 방향으로 입실하여 본다.

 

              < 대구 근대역사관으로 들어가는 "문" >

 

          < 근대역사관 내부 입구에 있는 "안내 데스크" >

           < 대구 "근대역사관" 1층 상설전시실 관람 동선 >

 

먼저 전시 방향 입구 왼편으로 대구 "근대의 태동" 이라는 주제로 전시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대구는 선조 34년(1601년)에 경상감영이 실치된 이후 경상도의 행정, 사법, 군사의 중심지가 되어진다.

 

                 < 입구 왼편에 있는 대구 "근대의 태동" 전시물 >

 

            < 살아진 "대구읍성" 의 해설문 >

 

            < "경상감영" 을 설명하는 안내문 >

 

그러나 일제의 침략으로 대구 도심이 일본인 중심의 상권으로 변모를 가져오는데, 전시하고 있는 문인, 모형, 영상을 통하여 일제가 대구를 내륙 침탈의 거점으로 삼으면서 근대 도시로 변모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초기 "대구의 재구성" 안내문 >

 

반대편으로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의 방이 마련되어 있는데, 방의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면 일제 강점기 시대 경제 정책에서 금융의 지배를 담당하였던 핵심기관으로써 1918년 조선식산은행이 설립하자 이곳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개편이 되어지면서 당시에 시용하였던 금고를 비롯하여 화폐, 국채, 유가증권, 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 "조선식산은행" 의 방으로 들어가는 문 >

 

            <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의 홍보문 >

         < "조선식산은행" 에서 사용한 화폐 >

 

식산은행 옆으로 이동하면 대구의 근대년표(近代年表) 방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대한제국 에서 현재 까지 대구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하여 시각 및 영상자료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 다음 부스에 있는 대구 1870년대 "근대년표" >

       < 연결하는 대구 1930년대 "근대년표" >
 

제일 안쪽 부스로 들어가면 부영(府營)버스 영상 체험실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부영버스 영상실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시내버스를 도입하여 운행하였다고 하면서 대구부(大邱府)가 운행하였던 부영버스를 타고 대구시가지로 이동하면서 시간 여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다음 코너로 이동하면 구국의 정신을 함양시키기 위하여, 1907년도 서상돈 선생님을 중심으로 국채보상운동의 전개 과정과 더불어 1960년대 4.19 민주혁명의 기폭제가 되는 2.28 학생운동 등을 설명하는 안내문과 영상물이 방영하므로 쉽게 내용의 인지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 "일제 강점기" 에 대구의 모습 >

 

                 < "2,28 학생운동"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전시실 제일 안쪽 코너로 들어가면 "근대의 대구문화 및 근대화의 산실" 이라는 부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대구의 근대미술, 음악, 문학, 교육도시 대구의 학교 등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고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제일 안쪽 코너에 있으면서 "6,25 전쟁" 에서 대구 역활의 설명문 >

 

           < "교육도시" 대구의 안내문 >

 

다시 전시실의 앞쪽 방향으로 이동하면 근대화의 대구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에는 대구에서 출발하여 세계적 기업이 되는 삼성그룹, 대구가 배출한 박정희 대통령, 능금의 첫 재배지, 섬유산업의 모태, 한국의 3대시장이 되는 서문시장 등을 기술하고 있어 새롭게 대구를 알게하여 준다.

 

           < 세계적 기업이 되는 "삼성그룹" 의 탄생지 설명문 >

              < 대구가 배출한 "박정희" 대통령의 역활 >

 

           < "능금" 첫 재배지와 "섬유 도시" 대구의 설명문 >

 

        < 한국의 3대시장이 되는 "서문시장" 안내문 >

 

이 밖에 대구는 개항 이후 서구 문물의 수용과 더불어 지역민들의 삶을 볼 수 있는 시계, 라디오, 전화기, 인력거 등 생활용품을 전시하고 있고, 벽면에는 대구를 방문하였던 순종황제, 마를린먼러, 헬렌켈러 등 유명한 외국인이 찾았던 내력 및 사진이 붙어있다.   

 

              < "근대역사관" 내에 진열하고 있는 전시물 >

              < 개항 이후에 사용한 "생활용품" >

           < 근대인이 사용한 "인력거" >

            < 근대 대구를 방문한 "유명 인사" >

 

이렇게 1층에 있는 전시물을 관람하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2층으로 올라가면 먼저 어린이들의 놀이기구가 있는 체험실이 자리하므로 많은 어린들이 퍼즐기구를 통하여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다.

 

               < "어린이" 체험실로 운영하고 있는 공간 >

 

        < 어린이를 위한 "퍼즐" 기구 >

 

체험실을 통과하여 내부로 이동하면 기획전시실이 자리하고 있는데, 기획전시실에는 4월 26일 부터 7월 30일 까지 "학교 종이 땡,땡,땡" 이라는 주제로 대구지역에 있는 학교에 관련 되는 도서(圖書) 및 학습 기자재 등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 기획전시실 입구에 있는 "학교 종이 땡,땡,떙" >

 

전시실 중앙에는 1950년대에 학교의 교실 한칸을 만들어져 있는데, 교실의 내부에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책상과 걸상, 난로, 탁상, 도시락, 풍금, 책, 가방 등이 적나하게 전시하고 있어 옛 추억을 상기하기에 좋은 장소가 된다.

 

      < "기획전시실" 내부의 전경 >

 

        < 기획전시실 중앙에 전시하고 있는 "교실" >

 

          < 학생들이 사용하는 "책상과 걸상" >

 

그러고 벽면의 가장자리에는 1880년 부터 1910년 까지 개화기의 교과서, 1910년 부터 1945년 까지 일제 강점기의 교과서, 1945년 부터 1954년 까지 광복 및 정부 수립기에 사용한 교과서, 1954년 부터 현재 까지 교육과정기의 교과서를 시대별로 분류 및 비치하므로 우리 국정교과서의 변천사를 일목요약하게 볼 수 있게 만든다.

 

       < 일제 강점기에 사용한 "교과서" >

 

          < "광복 및 정부 수립기" 에 사용한 교과서 >

 

        < "교육과정기" 에 사용한 교과서와 학생복 >

 

              < "참고 서적" 으로 사용한 책 >

 

특히 대구지역에서 제일 처음이 되는 1899년 사립 달성학교의 설립에서 부터 다수의 소학교가 생겼으며, 1906년에 나의 모교가 되는 계성학교, 1907년의 신명여고 등 종교계의 학교가 설립하면서 부터 많은 학교가 개교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 영상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계성학교 "아담스관" >

 

그 후 대도시의 인구 유입에 따라 대구는 급속하게 학생수의 증가로 인하여 1979년 전성기에는 62개의 초등학교(학생수 : 206,928명), 42개의 중학교(학생수 : 87.534명), 23개의 인문계 고등학교(학생수 : 46,808명), 17개의 실업계 고등학교(학생수 : 40,437명)가 존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지속적인 인구의 감소와 더불어 저출산으로 인하여 매년 몇 개의 학교가 폐교의 수순을 발고 있어 속수무책으로 교육의 파괴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인지하면서, 관람을 종료하고 근대역사관을 떠나기로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