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군 문화와 산행.

경북 성주군 출신으로 경제 부총리를 엮임한 청사 '서석준' 선생님 기념관 및 도서관 방문.

용암2000 2019. 4. 19. 19:48
2019년 4월 17일.(수요일)


나의 고향 성주군은 매월 2일와 7일 날에는 성주읍내에 있는 재래시장에서 장(場)이 형성하는데, 옛 이야기에 따르면 이웃 아저씨가 물건을 구입하기 위하여 시장으로 가면 할일도 없는 머슴은 거름이라도 지고 장에 간다는 속담과 같이 우리 부부도 할 일도 없으면서 재래시장을 구경하기 위하여 길을 나선다.
내가 살고 있는 용암면에서 성주읍내로 가기 위해서는 2개의 거대한 고개를 넘어야 겨우 재래시장에 도착하는데, 먼저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하여 평소에도 종종 방문하여 먹어보는 짜장면을 먹기 위하여 중화요리 식당을 찾아간다.
풍족한 식사를 끝내고 재래시장으로 들어가 구석구석 각가지 물건을 구경하다가 지루 함이 발생하므로 일전에도 한번 방문한 '청사 서석준(靑史 徐錫俊)' 선생님의 기념관 및 도서관을 재 방문하여 보기 위하여, 성주군청 방향으로 달려간다.
성주군청은 영어 'Y' 자 모양의 도로 중앙에 위치하면서 군청 건물의 좌측과 우측으로 나누어지는 도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오른편 도로 방향으로 100m 정도 올라가면 도로의 가장자리에 청사기념관을 가르키는 이정표를 만난다.

 
< 성주군청에서 오른편 도로 따라 100m 정도 올라가면 '청사기념관' 을 가르키는 이정표 >

 
이정표에서 지시하는 방향으로 한 90m 정도 들어가면 다소 넓은 공간의 중앙지점에 고목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이 고목나무가 옛날 '성주사고(星州史庫)' 가 있었던 자리가 된다는 역사물의 징표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 '성주사고' 자리에 역사물의 징표가 되는 고목나무 >
 

이 고목의 나무 뒤편으로 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건물의 처마 아래에는 가로 방향으로 '청사기념관(靑史記念館)'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고 대문의 오른편 기둥에는 '청사도서관(靑史圖書館)' 이라는 세로 방향의 현판이 붙어있다.

 
< 고목나무 뒤편 '솟을대문' 으로 만들어져 있는 청사기념관 >

 
대문의 좌측편으로 청사기념관 안내문이 붙어있는데, 안내문 내용을 읽어보면 청사 서석준 선생님은 1938년 9월 24일 이곳의 생가에서 4남 3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여 성주초등학교 및 성주중학교를 졸업하고 성주농업고등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 때 검정고시를 통과하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로 조기 입학을 한다.

 
< 솟을대문 왼편에 있는 '청사기념관' 안내문 >

 
대학교 3학년 때 행정고시를 통과하였으며1960년 도에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1962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관계(官界)에 몸을 담으면서 승승장구하여 물가정책국장, 경제기획국장, 기획차관보, 차관으로 승격하면서 우리나라 경제의 디딤돌이 되는 제1차에서 제5차 까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 추진하는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다.
그 사이 1966년 미국 유학길로 올라가 벤더빌트(Vanderbilt) 대학원에서 경제분야 석사학위를 마쳤는데,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성적이 '올 에이(all A)' 학점을 받으므로 아직도 미국에서는 어떠한 대학교에서도 이러한 성적을 가진 학생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1980년 상공부 장관으로 입각하여 중화학공업에 의한 수출입국 정책을 강력하게 수행하였고, 1983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승진하여 우리나라 경제각료의 수장으로 국가경제의 제2단계 도약을 향하여 비약적인 업무를 추진한다.
그런데 1983년 10월 9일(한글날) 전두환 대통령은 동남아 6개국을 공식 방문하기 위해 첫번째 국가가 되는 미얀마(당시 버마)를 방문했다가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북한 특수 요원들에게 폭탄 테러를 당한다.
이러한 사고로 당시 서석준 부총리를 비롯하여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심상우 국회의원(개그맨 심현섭씨의 부친), 이중현 동아일보 사진기자 등 수행원 17명이 현장에서 순직하고 15명이 중경상을 입는 비극이 일어났다.
사건 당일 아침 서석준 부총리를 비롯한 수행원들과 경호원들은 아웅산 묘소에서 참배 행사를 위한 예행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사건 전날 미리 북한의 테러범 3명이 아웅산 묘지 건물 천장에 폭탄을 설치하고 아웅산 묘소 근처 숲속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 폭탄은 1~2Km의 먼 거리에서 원격으로 터트릴 수 있는 폭탄으로 테러범 중 한 명이 되는 '신기철' 이라는 북한 사람이 정확하게 10시 30분에 태극기를 휘날리는 벤츠 차량이 들어가고 애국가가 나오자, 전두환 대통령이 도착한 걸로 착각하여 폭탄 3개를 터트린 비극이 발생하게 만들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안내문을 정독하고 나서 솟을대문을 통과하여 기념관 내부로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서석준씨 연역을 소개하고 있는 기념비와 함께 동상이 서 있고, 일단의 축대 위로 올라가면 2층으로 건립되어져 있는 청사도서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솟을대문을 통과하면 작은 마당의 오른편에 있는 '청사 동상' >

 
< 일단의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는 '기념관 및 도서관' 건물 >
 

도서관 건물의 1층으로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책을 볼 수 있는 자료실이 자리하고 있으며 왼편에는 기념관을 관리하는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고, 건물의 정면 뒤편으로 서석준씨의 위패(位牌)와 사진을 모시고 있는 작은 기념실이 함께 하고 있다.
 
< 건물의 1층 내부 오른편에 있는 '자료실' >


< 건물의 1층 내부 왼편에 있는 '사무실' >

 
< 건물의 1층 중앙 뒤편에 함께 하고 있는 '기념실' >

 
먼저 사무실로 들어가 도서관을 관리하는 직원과의 인사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어 보는데, 본래 이곳의 건물 터에는 서석준씨가 살았던 약 50평 정도의 작은 생가 집이 있었다.
그의 사망 이후 1987년 지역의 유지 및 문중에서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성금을 모금 함과 동시에 국가, 경북도청, 군비를 지원 받아 약 300평의 부지를 매입하여 생가를 헐고 새로운 기념관 건물을 신축하였다고 한다.

그 후 기념관의 활성화를 꾀하기 위하여 1989년 4월 청사기념관 내에 진열하고 있는 유물 또는 유품을 축소시켜 건물의 중앙 뒤편으로 이동시키고, 더욱더 많은 관람객을 유치시키기 위하여 성주군청은 청사도서관으로 개조하므로 기념관과 도서관이 혼재하는 건물이 된다.  
관리 직원에게 기념실을 한번 관람하여 보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니 흔쾌하게 기념실 문을 열어주면서 전등을 켜주므로 내부가 밝아지는데, 먼저 사진 앞에 있는 방명록에 서명하고 향로에 향을 피우고 나서 경건한 마음으로 추념을 올러본다.

 
< 기념실 내부 중앙 벽면에 모시고 있는 '서석준' 씨 사진 >

 
< 사진 아래에 있는 '방명록 및 추모' 향로>


그러고 좌우에 비치하고 있는 유물 또는 유품을 관람하여 보는데, 좌측 진열장에는 대부분 서석준씨가 공무원으로 임명되어진 임명장이 진열되어 있으며 오른편 진열장에는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받는 상패를 비롯하여 돌아가시고 나서 추서가 되어진 훈장들이 진열하고 있다.



< 좌측 진열대 내부에 진열하고 있는 각종 '임명장' >

 
< 우측 진열대 내부에 진열하고 있는 각종 '상패' >

 
< 우측 진열장 옆에 있는 '훈장' >
 

< 다른 벽면 코너에 있는 '원서 책' >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노력한 결과로 현재 우리 세대는 잘 사는 국가가 되었지만, 내가 방문한 날짜의 앞 사람의 방명록 날짜를 보니 까마득하게 먼 옛날이 되면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어 매우 큰 실망을 안겨주는 기념실이다.
애절한 마음을 품고 기념관 1층의 오른편 야외로 나아가면 서석준씨의 추모비(追慕碑)가 서 있고, 건물의 왼편 코너에 있는 계단을 이용하여 2층으로 올라가면 2층에는 도서관의 열람실로 운영하고 있어 살며시 문을 열고 내부를 돌아보니 단지 몇 명의 학생들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 기념관 건물 오른편 뜰에 있는 '추모비' >
 

< 건물의 2층에 있는 '열람실' >
 
관리 직원의 입을 빌리면 그래도 매년 10월 9일이면 성주군에서 간단하게 추도식을 거행하고는 있다고 하지만 서울에서 살고 있는 서석준씨의 자녀(2남 1녀)들은 크게 관심도 없다고 하는데, 식구도 그러할 지언데 누가 이러한 곳을 방문하면서 그 분의 업적을 기억 하겠는가?


< 기념관을 떠나면서 도서관 내부에서 바라보는 '솟을대문' >
 

오늘 내가 나의 고향이 되면서 성주군에 자리하고 있는 청사기념관을 찾아와 서석준씨 연역을 잠시 살펴 보았는데,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최고의 학업을 거두었지만 조국에서 웅비(雄飛)의 날개도 한번 펼쳐보지도 못하고 46세 젊은 나이로 생(生)을 마감한 경제 부총리에게 무한한 애도의 시간을 가져본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