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시 문화와 산행.

경북 경산시 남산면 인흥리에 자리하고 있는 '삼성현역사문화공원' 을 관람하면서.(2)

용암2000 2021. 10. 5. 06:39

 

2021년 10월 1일.(금요일)

 

1. 섬성현역사문화공원의 개요.

 

반곡지를 떠난 일행은 반곡지에서 5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섬성현역사문화공원(三聖賢歷史文化公園)' 을 방문하여 보기로 하는데, 이곳 삼성현역사문화공원에는 경산지역에서 태어난 3명의 성현(삼성현 : 원효대사, 설총, 일연스님)과 관련되는 위대한 정신과 의의를 계승 및 발전시키기 위하여 만든 역사문화공간이라 하겠다.

 

< '삼성현역사문화공원' 의 출입구 >

 

이곳 삼성현역사문화공원에는 3명의 성현(聖賢)에 대한 역사, 문화, 예술, 민속에 대한 조사 및 연구를 하고 경산시민을 포함하여 대중과 문화적으로 소통하기 위하여 2015년 4월 30일 경산시 남산면 인흥리 일대에 조성 하였는데, 조성 면적이 약 8만평(262,774㎡)에 문화관 건물은 지하 1층 및 지상 2층으로 약 1,500평(4,981㎡)에 이른다.

다소 넓은 주차장과 함께 하고 있는 삼성현역사문화공원에는 아담한 동산을 배경으로 삼성현역사문화관을 비롯하여 다양한 놀이시설로 꾸며져 있는데, 놀이시설에는 레일썰매장, 국궁장,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장, 이야기 정원, 어린이 놀이터, 미로정원, 둘레길 등이 만들어져 있어 어린이와 함께 노닐기에 안성맞춤의 다목적 공원이라 하겠다.

주차장에서 공원 입구로 들어서면 먼저 작은 로타리가 자리하고 있는데, 로타리 중앙에는 '삼성현을 기리는 뜻' 이라는 글을 새긴 입석이 서 있고 그 뒤편으로 공원으로 들어가는 정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정문에는 삼성현역사문화공원(三聖賢歷史文化公園) 이라는 긴 현판이 붙어있다.

 

< 정문 앞 '삼성형을 기리는 뜻' 을 새긴 입석 >

 

< '삼성현역사문화공원' 으로 들어가는 정문 >

 

정문을 통과하여 공원의 내부로 들어서면 중앙도로의 좌우로 다양한 놀이시설이 자리하고 있고 중앙도로의 끝지점에 거대한 '삼성현역사문화관(三聖賢歷史文化館)'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먼저 삼성현의 내력을 알아보기 위하여 문화관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 분수대와 함께 하는 '삼성현역사문화관' 전경 >

 

< '삼성현역사문화관' 건물 모습 >

 

2. 삼성현역사문화관을 관람하면서.

 

1) 1층 로비 및 기획전시실 구경.

정문을 통과하여 1층 입구로 들어서면 좌측편에 입장료 2.000원을 징수하는 자동 매표기가 자리하고 있지만 경로(敬老)에게는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는 안내원 설명에 따라 무료 입장권의 발권과 동시에 발열기를 통과하면서 로비로 들어서는데, 넓은 로비의 중앙에 '축복의 땅' 이라는 거대한 그림과 함께 양쪽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 1층 '로비' 의 전경 >

 

양쪽의 계단 및 2층 가장자리 따라 붉은색을 바당으로 하는 나무판에 한자가 쓰여 있어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무식의 발로(發露)로 안내원에게 내려가 한자의 정체를 문의하여 보는데, 이 한자는 모두 889자로 구성하고 있는 '원효불패(元曉不覇)' 이라는 글로써 전각작가 백영일 선생님이 쓰고 서각작가 이주강 선생님이 새겼다고 한다.

 

< 로비 벽면 따라 부착하고 있는 '원효불패' 글 >

 

< 제일 마지막 '글쓴이 및 서각인' 의 글 >

 

이 원효불패조(元曉不覇條)는 일연스님이 저술한 삼국유사에 나오는 글로써 문장의 내용은 원효스님이 불교의 계(戒)을 벗어던지고 걸인으로 형세를 하면서 거리에서 노래를 불렸는데, 노래의 내용에는 '누가 자루없는 도끼를 나에게 빌려주려나.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박으리' 라고 노래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떠한 사람도 이 노래의 뜻을 알지 못했지만 태종 '무열왕(武烈王)' 만이 이 노래의 의미를 알고 혼자서 자문을 하는데, 아마도 이 스님은 귀부인을 얻어서 훌륭한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그러면 나라에 큰 현인이 있으면 그 보다 좋을 수 있겠는가?

당시 요석궁(瑤石宮)에서는 왕의 여동생이 되면서 한명의 과부 공주가 살고 있어 왕은 궁리(宮吏)를 시켜 원효를 찾아 요석궁으로 맞아 들리게 하였는데, 궁리가 왕의 명(銘)을 받아 찾고 있을 때 원효가 남산에서 내려와 문천교를 지나다가 만나게 되었다.

원효는 일부러 물에 빠져 옷을 적셧고 그래서 궁리가 원효를 요석궁으로 데리고 가서 옷을 말리게 하면서 요석궁에 머물게 하였는데, 그로 인하여 과연 요석공주가 아기를 배더니 설총(薛聰)이라는 총명한 아기를 출생하였다는 내용을 기술한 한자 이라고 가르켜 준다.

다른 한편으로 로비의 뒤편으로 돌아서 가면 기획전시실 및 온가족실, 영유아실, 영상실, 느린우체국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 현재는 코로나 바이러스(Corona virus)로 인하여 모든 보조전시실에는 휴관을 하고 있어 상설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는 2층으로 올라가 보기로 한다.

 

< 휴관을 하고 있는 '온가족실' 내부 >

 

2) 2층 상설전시실을 돌아보면서,

계단 또는 엘리베이트롤 이용하여 2층으로 올라가면 2층은 상설전시실로 만들어져 있는데, 우측에는 원효실(元曉室)이 자리하고 있으며 좌측에는 설총실(薛聰室) 및 일연실(一然室)로 꾸며져 있고 중앙 통로 가정자리에는 성현들이 저술한 책에서 부터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아카이브(Archive)실로 만들어져 있다.

 

(1) 원효실.

관람의 동선(動線) 따라 먼저 원효실로 입실을 하면 전시실 초입의 벽면에는 3명의 성현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고, 그 다음 부스(Booth)에서 부터 원효대사의 출생에서 부터 성장할 때 까지의 생활상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또는 디오라마(Diorama) 전시품이 너무나 잘 만들어져 있다.

 

< '원효실' 입구에 있는 3명의 성현 >

 

원효대사는 신라 진평왕 39년(617년)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당시에는 압량군)에서 태어나 속세의 성(姓)은 설(薛)씨, 법명은 원효(元曉), 아명은 서당 또는 신당이라고 불려졌는데, 통불교를 제창하고 불교의 대중화에 힘써 한국 불교사상에 가장 위대한 고승의 한 사람으로 추대를 받고 있는 스님이다.

 

< '원효실' 의 전경 >

 

< '원효대사' 의 성장 배경 >

 

< '원효대사' 의 출가에 대한 설명문 >

 

특히 원효대사는 일심사상(一心思想), 무애사상(無碍思想), 화쟁사상(和諍思想)을 강조하였는데, 이 중에서 특별하게 강조한 화쟁사상은 화회(和會)와 회통(會通)을 의미하며 화회는 '다툼을 멈추고 한마음이 되는 것이고' 회통은 '불교 이론을 하나로 조화하여 더 높은 경지로 올려야 한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 원효대사의 '파계 및 번뇌' 에 대한 이야기 >

 

< 원효대사의 깨달음을 방영하고 있는 '영상물' >

 

< '화쟁사상'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화쟁사상은 석가모니의 가르침 중에서 '한마음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갈등 없이 화목할 수 있다' 는 뜻과 동일하다 하겠는데, 원효는 특히 종파주의적 방향으로 진행되던 불교이론을 화쟁이라는 입장에서 한뜻으로 모으려고 하였으며 그의 대표적 저술로는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이 전해지고 있다.

 

< '원효대사' 가 저술한 책 >

 

(2) 설총실.

전시실 통로의 가장자리에 있는 아카이브실 앞을 통과하여 반대 방향으로 이동을 하면 설총실과 일연실이 함께 하고 있는데, 먼저 설총실로 입실을 하면 설총(薛聰)의 성장 배경과 더불어 일대기를 기술하고 있다.

 

< '설총' 선생님의 자화상 > 

 

설총의 탄생은 너무나 유명한 몰가부 설화를 만들면서 출생을 하였는데, 아버지 원효대사와 어머니 요석공주(瑤石公主) 사이에 태어나 어릴적 부터 머리가 총명하여 자는 총지(聰智), 호는 빙월당(氷月當)으로써 신라의 대학자이라 하겠다.

 

< 설총의 일대기를 설명하고 있는 '몰가부 설화' >

 

설총은 강수(强首) 및 최치원(崔致遠)과 함께 신라의 3대 문장가로 유명하고 동방 18현(賢)에 속한 유학자로써 '이두(吏讀)' 문자를 집대성 하였는데, 이두로써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읽을 수 있게 하였고 또한 그의 저서로는 우화적 단편 산문으로 알려져 있는 '화왕계(花王戒)' 가 있다.

 

< 집대성한 '이두' 문자의 책 >

 

< 신문왕에게 '화왕계' 를 이야기 하는 설총 >

 

전시실 내부로 들어가면 설총의 출생 배경이 되는 '몰가부 설화(沒柯斧 說話)' 를 비롯하여 성장 배경을 디오라마(Diorama) 식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 다음 부스(Booth)에는 신라 유학(儒學)의 흐름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 '설총실' 내부의 전경 >

 

더 안쪽에는 설총와 김유신 및 최치원 선생님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있는 경주의 서악서원(西岳書院) 및 남악서원(南岳書院)을 소개하고 있고, 학생들에게 직접 공부를 가르키는 강학당(講學堂) 건축물도 만들어져 있다.

 

< 설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서악서원' >

 

<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키는 '강학당' >

 

< '설총' 선생님이 저술한 책 >

 

(3) 일연실.

설총 전시실 중간 정도에 일연실로 넘어가는 통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일연스님은 고려 후기의 고승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당시의 지명은 장산이라고 함)에서 1206년에 태어났으며 속세의 성은 김(金)씨, 호는 견명(見明), 자는 일연(一然)으로 후에 '보각국사(普覺國師)' 라는 시호를 하사 받았다.

 

< 설총실에서 '일연실' 로 들어가는 통로 >

 

< '일연스님' 의 자화상 >

 

< 고려의 '국사' 가 되시는 일연스님 >

 

< '일연실' 의 내부 전경 >

 

일연스님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삼국유사(三國遺事)' 를 비롯하여 중국 선종(禪宗)의 일파가 되는 조동오위설을 집대성한 '중편조동오위(重編曹洞五位)' 등의 책을 저술하였고,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 기록하지 않은 역사, 불교, 신화, 설화, 향가 등 광범위한 내용이 수록되어 오늘날 한국학을 연구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 '일연스님' 이 살아온 발자취 >

 

< 일연스님이 저술한 '중편조동오위' 책 >

 

< 군위 인각사에 있는 일연스님의 '부도탑' 모형 >

 

< 삼국유사에서 유일하게 기술하고 있는 '황룡사 9층 목탑' >

 

< 삼국유사에서 기술하고 있는 '단군 신화' >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의 차이점 >

 

이상과 같이 경산시가 배출한 3분의 성현(聖賢)의 치적을 기술하고 있는 전시실을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돌아 보았는데, 문제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관람을 하다 보니 무엇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대충 관람을 끝내고 전시실을 떠나기로 한다.

 

3. 야외전시장을 돌아보면서.

 

삼성현문화관을 벗어나면서 건물의 주변 및 뒤편으로 다양한 탐방시설과 더불어 둘레길이 만들어져 있는데, 대구시내에서 친구와 저녁식사의 약속으로 인하여 신속하게 문화관을 떠나면서 건물의 주변에 있는 놀이시설을 잠깐 돌아본다.

문화관 옆의 야산 언저리에 토굴(土窟)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장' 입구가 보이고 있고, 문화관 건물 전면에는 중앙광장을 비롯하여 야외공연장, 분수대, 미로정원, 어린이 놀이터, 이야기 정원 등이 자리하고 있다.

 

< 토굴 형태로 만들어진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장' >

 

< 핑크뮬리 및 억새로 만든 '미로정원' >

 

< '어린이 놀이터' 시설 >

 

특히 이야기 정원에는 다양한 조형물과 더불어 삼국유사의 책, 화왕계 이야기. 원효의 3대 사상, 몰가부 설화 등의 설명문이 붙어있는데, 정독할 시간적 부족으로 인하여 사진으로 남겨둔다.

 

< '삼국유사의 책' 조형물 >

 

< '화왕계 이야기' 의 설명문 >

 

< '원효의 3대 사상'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설총의 탄생기를 기술하고 있는 '몰가부 설화' > 

 

이 밖에도 다양한 시설들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지만 약속에 따른 시간 제약으로 관람이 불가능하게 만드는데, 언제 충분한 시간과 더불어 삼성현의 사상과 발자취에 대하여 사전 지식을 조금 획득하여 멍통이 아닌 상태에서 다시 한번더 방문할 것을 다짐하여 본다. -2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