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경남)

경상남도 남해군을 연결하는 남해대교 아래에 있는 남해 '충렬사' 참배 및 횟집 방문.(5)

용암2000 2021. 11. 8. 17:31

 

2021년 10월 29-30일.(1박2일)

 

2. 둘째날 : 10월 30일(토요일)

 

4) 남해대교 및 거북선 관람.

경남 하동군 화개면 평사리에 있는 박경리문학관 및 최참판댁 구경을 끝낸 일행은 매우 늦은 점심식사의 시간을 가지기 위하여 19번 국도를 이용하여 남해군 방향으로 달려가는데, 평사리에 한 30분 정도 달려가면 남해군으로 넘어가는 노량대교를 건너면서 남해대교 바로 아래에 있는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로 들어간다.

 

 < 남해대교 아래에 있는 '노량리' 해변 >

 

< 노량마을 주변에 있는 '마실길' 조감도 >

 

노량리 해안가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를 시키고 나서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여 보는데, 무엇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어 하동군에서 남해군으로 들어가기 위한 2개의 다리가 아름다운 운치를 만들어주고 있다.

남해대교는 길이 660m에 폭이 9.5m이며 높이가 52m가 되면서 국도 19호선 상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1968년애 착공하여 1973년 개통한 다리로써, 우리나라에서 제일 최초로 현수교(懸垂橋)로 건설하므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남해대교가 가로 지르고 있는 노량해협(露梁海峽)의 거센 물살은 남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산 증인이 되고 또한 역사의 한 마당으로써.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노량해전이 시작된 곳으로 이순신 장군이 이곳 노량해전 인근에서 전사한 곳이라 더욱더 애잔한 해협이다,

또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수한 유배객들이 자신의 적소로 건너오기 위하여 나룻배를 타거나 도선으로 노량의 물살을 가로질러 다녀야 했지만, 40년 전 부터는 2차선의 남해대교를 건설하므로 승용차로 1~2분이면 물을 건넌다.

하지만 교통량의 증가로 인하여 남해대교에서 한 100m 아래 방향이 제2남해대교를 건립하였는데, 제2남해대교는 2009년 10월에 착공하여 9년간의 공사 끝에 2018년 9월에 완공한 다리로써 공사 증에는 제2남해대교이라고 불려지다가 완공하기 전 2018년 2월에 '노량대교' 라는 이름으로 확정하였다고 한다.

노량대교는 총 연장의 거리가 3.1Km에 주탑의 높이가 148.6m로 50층 건물의 높이와 비슷하면서 4차선의 교량으로써, 주탑은 'V' 자 형태로 8도의 경사각을 적용하므로 세계 최초로 경사주탑 타입의 현수교가 된다.

 

 < 아름다운 운치를 가지고 있는 남해대교 및 노량대교' >

 

2개의 다리 아래로 거닐면서 바다를 구경하여 보는데, 매우 작은 방파제의 끝에는 많은 낚시꾼들이 물고기를 잡고 있고 부두가에는 임진왜란 때 맹활약을 하였던 거북선 한척이 정박하고 있다.

 

 < 노량대교 아래에 있는 작은 '방파제' >

 

< 방파제 끝에서 '물고기' 를 잡고 있는 낚시꾼 >

 

이곳에 정박하고 있는 거북선의 내부 관람에는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지만 나 같이 늙어서 쓸모가 떨어지는 경로(敬老)에게는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바로 들어가도 좋다는 안내원의 이야기로 거북선으로 들어가 보는데, 이곳 거북선은 무척이나 안면이 있는 것 같다.

 

< 부두가에 정박하고 있는 '거북선' >

 

입구에 있는 안내문에 따르면 이곳 거북선은 선박에 관련되는 기술 자료에 따라 노산 '이은상' 선생님을 비롯하여 학계의 전문가 16명의 고증(考證)을 받아서 1980년 1월 31일 해군 공창에서 복원하여 해군사관학교에 전시 및 관리를 하였던 배가 되는데, 나는 까마득한 옛날에 진해 군항제가 개최하는 날에 한번 참석하여 해군사관학교 부두가에 정박한 거북선으로 들어가 관람한 경험이 있는 배가 된다.

그런데 이 거북선은 전 해군참모총장의 주선으로 1999년 12월 31일 이곳으로 이동하여 전시하고 있는데, 그래서 모든 국민들과 청소년들에게 충무공의 호국 정신과 창의 정신을 함양시키기 위하여 호국의 성지가 되는 이곳 남해 충렬사 아래에 정박시켰다고 한다.

 

< '거북선' 내부의 전경 >

 

< 배의 후미에 있는 '방향 키' >

 

< 거북선에 사용하는 '노' >

 

배의 내부를 대충 돌아보는데, 배의 크기는 길이가 34.2m에 선체의 폭이 10.3m이며 선체의 높이가 6.4m에 승조원(乘組員) 인원이 130명이고, 배의 양쪽으로 14문의 함포(艦砲)가 설치 되어져 있고 실물 크기의 수병(水兵)도 함께 하고 있다.

 

< 거북선 주변에 설치하고 있는 '함포' >

 

< 거북선을 지휘하는 '이순신' 장군 >

 

< 거북선을 지키는 '수병' >

 

5) 충렬사의 참배.

해안가 도로 건너편에 횟집과 함께 작은 공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공원에는 공원의 위치를 표시하고 있는 조감도(鳥瞰圖)를 비롯하여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는 정자, 공적비, 관리사무소, 화장실 등이 자리하고 있다.

 

< 해안가에 있는 '횟집' 타운 >

 

< 해안가에 자리하고 있는 '공원' 의 조감도 >

 

< 공원 내에 있는 '공덕비' >

 

< 공원과 함께 하는 '관리사무소' >

 

공원의 뒤편에 있는 야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과 더불어 남해 '충렬사(忠烈祠)' 가 자리하고 있는데, 충렬사는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祠堂)이라 하겠다.

 

< '충렬사' 로 올라가는 길 >

 

나는 오솔길 따라 혼자 걸어서 작은 마당으로 들어가 보는데, 마당의 우측편 구석자리에 청해루(淸海樓)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요사채 건물 한채와 더불어 마당의 정면에는 충렬사로 들어가는 외삼문이 자리하고 있다.

 

< 충렬사 입구 오른편에 있는 '청해루' >

 

< 마당의 정면에 있는 '외삼문' >

 

외삼문의 앞에 남해 충렬사의 내력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과 함께 충렬사를 세운 내력을 기술한 한기의 비석(碑石)이 자리하고 있고, 외삼문을 통과하면 또 다시 작은 마당에 도착이 된다.

 

< 충렬사 외삼문 앞에 있는 '안내문' >

 

< 충렬사의 건립 내력을 설명하고 있는 '비석' > 

 

이곳 작은 마당에서 90도로 꺽어진 방향으로 높은 계단의 끝지점에 충렬사(忠烈祠)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내삼문이 자리하고 있고, 내삼문의 바로 뒤편에 '보천욕일(補天浴日)'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비각(碑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사당 입구에 있는 '내삼문' >

 

보천욕일은 중국의 수군 도독 '진린' 장군이 '보천욕일지공(補天浴日之功)' 이라고 쓴 글을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필체로 쓰신 현판인데, 그 뜻은 '찢어진 하늘을 바늘로 기우고 빛을 잃은 해를 깨끗이 씻어낼 정도로 공이 있었다' 라는 뜻을 가진 중국의 신화에서 나오는 한자숙어 중에 하나이라고 한다.

 

< 내삼문 뒤편에 있는 '비각' 건물 >

 

이 비각의 건물 뒤편으로 이순신 장군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있는 충렬사(忠烈祠)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건물의 왼편에는 충민공비(忠愍公碑)이라는 비석이 서 있고 오른편에는 충무공비(忠武公碑)이라는 비석이 서 있다.

 

<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충렬사' >

 

< 사당의 왼편에 있는 '충민공비' >

 

< 사당의 오른편에 있는 '충무공비' >

 

오른편 충무공비의 비석 뒤편에 있는 쪽문으로 들어가면 이순신 장군의 가묘(假墓)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가 되는 1598년 음력 11월 19일 아침 이곳 노량진에서 다소 떨어진 관음포 앞 바다에서 순국을 한다.

 

< 사당의 뒤편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가묘' >

 

< '가묘'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전사한 장군의 시신은 관음포에서 출발하여 이곳 충렬사에서 잠시 초빈(草殯)되었다가 고금도를 지나 이순신 장군의 출생지가 되는 충청도 아산으로 운구되어 묻혀지는데, 이순신 장군이 이곳 충렬사에 잠시 묻혀 있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하여 가묘를 만들었다고 한다.

 

6) 횟집을 찾아서.

이렇게 충렬사와 주변의 관광지를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구경을 하고 나서 친구들이 먼저 들어간 횟집을 찾아가는데, 친구들은 벌써 회와 더불어 소주를 즐기면서 음주가무(飮酒歌舞)에 빠져있다.

 

< 음주가무를 즐겼던 '횟집' >

 

나도 빈 자리에 앉으면서 친구들과 함께 긴급하게 회를 즐겨보니까 언제나 바다가에서 직접 먹어보는 싱싱한 회가 입 속에서 사르르륵 녹아 내리는데, 다소 빠른 저녁식사도 겸하면서 만찬식은 깊어간다. - 둘째날 3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