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8일.(금요일)
2. 대구 향토역사관의 개요.
달성공원 정문의 입구에서 왼편 경사면 따라 한 50m 정도 올라가면 2층의 대구 '향토역사관(鄕土歷史觀)'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향토역사관은 정문과 더불어 달성공원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뒷문 등 2개의 출입문으로 만들어져 있다.
< 대구 '향토역사관' 건물의 전경 >
< 달성공원 내에서 들어가는 '뒷문' >
향토역사관은 제1전시실 및 제2전시실로 구분하고 있는데, 건물의 1층에 있는 제1전시실에는 선사시대에서 부터 1960년 대 까지 향토역사(鄕土歷史) 및 생활문화(生活文化)의 흐름을 시대별로 전시하고 있다.
건물 2층에 있는 제2전시실에는 향토의 생활문화를 중심으로 농업, 상업, 교육, 약령시, 민속예술, 주거생활 등을 전시하고 있는데, 양쪽 전시실을 통하여 대구의 발전사를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향토관이라 하겠다.
1) 제1전시실의 관람.
먼저 1층에 있는 제1전시실로 입실하면 입구에 있는 안내원이 관람의 동선(動線)을 가르켜 주는 방향으로 구경하여 보는데, 제일 먼저 원형의 벽면 따라 태양이 떠오르는 아름다운 아침과 함께 바닥면에는 대구부(大邱府) 지도가 새겨져 있다.
< '제1전시실' 로 들어가는 입구 >
< 전시실 입구에 있는 '원형' 벽면 >
< 원형 벽면에 부착하고 있는 '대구 년표' >
안쪽 부스로 들어가면 대구의 역사를 시대별로 조명하고 있는데, 대구는 지금으로 부터 2만년에서 1만년 전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에서 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이어 신석기시대에는 서변동 및 상동 일대에서 주거지(住居址)가 확인되었다.
< '제1전시실' 내부의 전경 >
청동기 및 철기시대를 거쳐 기원 원년 전후 진한 및 변한 24개국 중 한 연맹체로서의 국가로 발전하였는데, 5세기 말에서 부터 6세기 초가 되었을 무렵 신라에 통합되었으며 신라 신문왕 9년(689년) 신라의 도읍지를 경주에서 달구벌(達句伐)로 옮길려고 까지 할 정도로 비중이 컸었다.
< '구석기,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판 >
< '삼국시대' 에 발굴되어진 유물 >
< '통일신라시대' 에 발굴되어진 유물 >
고려시대에는 12세기 부터 점점 위상이 상승하기 시작하여 무신정귄 시대에는 대구 부근에서 발생한 민란(民亂)을 진압하기 위하여 군사적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고, 몽골의 침입 때 부인사(符印寺)에 있는 초조대장경이 소실되었으며 대구지역 주민들은 공산성에서 대몽항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 '고려시대' 의 대구 변천사 >
조선시대 대구는 농업의 중요 생산지로 또 영남 내륙 교통의 중심지로 부각하기 시작하였는데, 세조 12년(1466년)에 도호부가 설치되어 군사적 중심지로서의 역활이 높았고 임진왜란 이후 선조 34년(1601년)에 경상감영이 설치되어 영남지역의 행정, 교통, 군사를 통합하는 명실상부한 중심지역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 '조선시대' 의 대구의 위상 >
< '수운' 을 이용한 대구지역의 교툥 >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의 침락이 점차 노골화 되자 1907년 국내 최초로 대구에서는 금연(禁煙) 및 금주(禁酒)를 통하여 기울어 가는 국권을 회복하고자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을 전개하였는데, 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게 만들었다.
1910년 국권이 침탈 당하자 1915년 영남지역 독립운동가들은 조선 국권회복단 및 대한광복회 등을 조직하여 일제에 항거하였고 1919년 3.1운동 시기에는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세 시위가 일어났는데, 이처림 대구지역은 일제감점기 항일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한 곳이다.
< '일제강점기' 의 대구 >
1945년 광복 이후 해외 귀환동포와 월남한 피난민의 유입으로 급격한 인구증가를 가져 왔고, 1950년 6.25 전쟁 때 나라를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 되는 낙동강 전선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1960년 대구에서 일어난 2.28 학생 의거는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 '6.25 전쟁 및 8.15 해방' 후 대구 발자취 >
< '2.28 학생 의거' 의 발자취 >
이후 대구는 성장을 계속하여 1995년 대구광역시가 되면서 7개 구(區)와 1개의 군(郡)을 거느린 거대 도시로 성장하였는데, 200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와 2011년 세계 육상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국제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2) 제2전시실의 관람.
건물의 2층에 있는 제2전시실로 들어가면 입구에 줄당기를 하는 디오라마(Diorama)가 설치되어 있고 전시실의 왼편으로 돌아가면 먼저 농업에 관련되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데, 한반도에서는 신석기시대 부터 농경생활이 시작하였다고 하나 기원 전 6-5세기 부터 벼농사가 널리 보급이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 제2전시실 입구 '줄당기' 를 하는 디오라마 >
< '제2전시실' 내부의 전경 >
이후 인구의 증가와 농경생활(農耕生活)의 발달로 인하여 많은 식량이 필요하여 관개(灌漑) 또는 치수(治水) 관리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곳 대구 지역에도 신천(新川)의 범란으로 인하여 안정적 농업이 불가능하여 신천에 제방을 축조하여 치수 관리를 하게 되었다.
< 대구지역 '농업' 의 발자취 >
정조 2년(1778년) 당시 대구 판관(判官) '이서(李漵)' 선생님이 사재(私財)를 털어 신천에 제방을 축조하므로 침수의 걱정으로 부터 해방되게 만들었는데, 이에 주민들은 판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제방의 이름을 '이공제(李公堤)' 이라고 부르면서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 '이서' 선생님을 기리는 기념비 >
다음 부스로 넘어가면 차례로 대구의 상업(商業), 전통교육 및 근대교육, 종교(宗敎), 약령시(藥令市), 경상감영(慶尙監營) 등을 세부적으로 기술하고 있고, 더불어 대구의 한옥(경주최씨 종가댁 및 조길방 초가집) 및 민속놀이를 디오라마(Diorama) 식으로 만들어져 있어 많은 교육의 자료를 비치하고 있다.
< 대구 지역의 '상업' >
< '전통교육' 에 관련되는 자료 >
< '근대교육'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판 >
< 대구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종교' >
< 대구에서 번창한 '약령시' >
< '경상감영' 에 관련되는 자료 >
< '민속놀이' 를 보여주고 있는 디오라마 >
< 대구에 자리하고 있는 '전통가옥' 의 디오라마 >
금일 나는 걷는 것이 목적(目的)이므로 이곳에 전시하고 있는 모든 자료를 세부적으로 읽어보지 않고 대구 향토역사관을 떠나기로 하는데, 이젠 나에게는 하나의 역사(歷史)를 아는 것 보다 건강을 챙기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 2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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