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7-28일.(1박2일)
1. 목포 유달산 산행. (첫째날 오전)
한국 서남해 끝지점을 위치하고 있는 "홍도 및 흑산도" 섬 산행과 여행을 병행하여 계획하는 대구 드림산악회에서 1박2일 일정으로 추진하고 있는 산행에 동참하기 위하여 Wife와 둘이서 동참하여 본다.
아침 일찍 버스에 올라가니 산행을 안내하는 Guide는 타 산악회와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동일한 경비로써, 28인 리무진 버스를 운행한다고 한다.
여행기간 전 일정 동안 6식을 제공 함과 동시에 홍도에서도 제일 번화가 이면서도 최고의 관광 시설을 보유하고 "제1구 마을" 에 있는 모텔에서 숙식을 가지도록 일정이 수립 되어진다.
더욱더 산악회에서는 타 산악회에서나 여행사 보다 우수한 관광 해설 및 안내를 제공하기 위하여, 사장이 직접 Guide를 자청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사장은 긴급 발생시 상황 대처와 더불어 현지인과 지속적인 유대 강화를 통하여, 양질의 산행 서비스와 더불어 여행에 따른 불편을 해소시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버스는 아침 6시 30분 성서 홈플러스를 출발하여 Non-stop으로 "지리산휴게소" 까지 달려가 간단한 휴식과 더불어 아침 식사로 허기진 배를 먼저 충전시킨다.
이어 서남부 방향으로 계속 달려 광주광역시를 돌아 무안-광주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남쪽으로 달리다가 장거리 운전에 따른 안전과 더불어 불순물 제거를 시키기 위하여 "함평휴게소" 에 잠시 들어가는데, 한달 전 "임자도" 산행을 위하여 머물어 본 곳이라 정감이 묻어나는 휴게소이다.
< 또 다시 휴식을 가져보는 "함평휴게소" 전경 >
10여 분의 휴식을 끝낸 버스는 호남의 넓은 평야를 뚫고서 남도로 신바람 나게 내달아 10시 40분 목포시가 자랑하는 "유달산" 입구에 있는 노적봉 주차장에 이른다.
나는 1969년 대학교 1학년 때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제주도 한라산 등정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들어가 본 목포 도시를 연상하면서 노적봉 주차장에서 시가지를 내려다 보니. 44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땅으로 변경된 모습이 펼쳐지고 있어, 그냥 입이 허벌래하게 만든다.
목포는 원래 무안현에 속하는 지역이면서 엣 이름은 "물아혜" 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이 말은 물이 들어오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면서 알아듣기 쉽게 "물아랫골" 이라는 뜻이다.
또한 목포라는 지명은 한문으로 나무 목(木), 물가 포(浦) 자를 쓰는데, 그 때문에 나무와 포구가 많은 고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이곳 목포 도시의 심장부를 장식하고 있는 해발 228m "유달산" 산행은 홍도로 들어가는 시간과 더불어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한 시간으로 인하여, 단지 1시간 만 주어짐으로 유달산 정상까지 완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일 위쪽 전망대를 형성하고 있는 "유선각(儒仙閣)" 까지 갔다가 11시 50분 까지 하산하여, 버스에 탑승하여 주기를 부탁하는 Guide Ment 듣고 천천히 길을 나선다.
주차장 뒤를 돌아서 꽃길 따라 올라가면 목포의 상징이 되는 "시민종각(市民鐘閣)" 에서 부터 산행 초입이 되는데, 시민종각은 2000년 10월 1일에 세워졌다고 한다.
세워진 동기는 국가와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과 동서화합 및 한반도의 동맥이 되는 국도 1호선과 2호선의 시발점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뜻으로 시민의 이름으로 종을 제작하었다고 한다.
언젠가 "대통령김대중" 이라는 이름이 종각 명판 밑에 크다랗게 붙어있는데, 전 대통령이라고도 하지 않고 현직 대통령인량 착각을 발하는 대통령김대중이라는 글씨를 보니 경상도에서 멀리 목포까지 방문한 아저씨의 기분이 매우 불쾌하다.
< "시민종각" 밑에 기술하고 있는 대통령 김대중 이름 >
아무리 김대중씨가 이곳 목포 앞 바다에 있는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낳고 전라도 사람들의 우상이라고 하지만, 시민종각이라고 불려지는 시민의 대표를 상징하는 종각 현판에도 이름 석자를 써서 붙여만 옳은가?
차라지 목포의 상징이고, 진정한 목포의 시민 중에 시민을 대표하는 "이난영" 씨나 "남진" 씨 같은 연기인 이름을 붙어놓 은 것이 목포의 이미지가 더욱더 빛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저놈의 땅에 있는 김일성이나 김정일과 같이 명승지 아무 곳에서나 이름 석자를 새겨 불쾌감을 주지 않은 성숙한 목표시민이 되어주기를 한번더 간곡하게 부탁하여 본다.
이 시민의 종(鐘)은 중량이 전부 21톤으로 만들어졌는데, 21이라는 숫자는 새로운 천년의 시작점이 되는 21세기를 나타낸다고 하며 종의 크기가 높이 3.9m에 직경 2.29m로써 한국에서 매우 큰 종에 속한다고 한다.
종각 옆에 거금 5.000원만 지불하면 한번 타종이 가능하다는 현수막이 크게 붙어있어 한 사람이 시범적으로 한번 타종하니까 맑은 소리가 우령차면서, 기나긴 맹돌이를 형성하면서 목포시가지 전체를 흔들면서 울러퍼진다.
이 시민종각 정면으로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 바위가 노적봉으로써 초등학교 때 이순신 장군이 적을 속이기 위하여 이엉을 덮어 군량미로 위장하여 아군의 숫자가 많게 보이게 하였다는 역사적 이야기가 회상되게 한다.
< 시민종각 마당에서 바라보는 "노적봉" 바위 덩어리 >
이 바위 덩어리 왼편으로 이어지는 길 따라 조금 내려서면 목포 여인들의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음부나무" 가 두 다리를 쩌억 벌리고 누워 있는 약 150년 생의 팽나무 한그루 모습이 지나가는 남정내들에게 좋은 눈요기를 만들어 준다.
< 다리를 쩌억 벌리고 있는 "음부나무" >
구경꾼들이 다양한 모습들을 보고 있으니 재법 쏠쏠한 재미가 발생하는데, 특히 지나가는 여인들이 보기가 민망한지 손으로 눈을 가리지만 손가락 사이로 살짝 숨어보는 모습들이 가관들이다.
이 노적봉은 본래 유달산의 한 봉우리로 이어지는 바위 덩어리에 불과 하였지만, 노적봉 앞으로 도로가 개설됨으로 산이 2분화 되어 봉(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 "노적봉" 을 알리고 있는 입석 >
< 2분화 된 도로에서 바라보는 "노적봉" 모습 >
노적봉 앞으로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유달산으로 올라가는 높은 돌계단 앞에 이르는데, 가푼 숨을 몰아 쉬면서 계단의 끝지점이 올라서면 우측편으로 "유달산정기(儒達山精氣)" 라는 거대한 입석이 서 있어 사진의 배경이 되므로 한명의 사진사가 추억의 기념 사진 한장을 만들어 보라고 유혹한다.
< "유달산" 산행이 시작되는 돌계단 >
일반적으로 유달산 종주산행은 이곳 돌계단에서 부터 시작하여 대학루, 달선각, 유선각, 관운각 등의 정자 건물을 지나면서 유달산의 최고봉 "일등바위" 를 지나 북쪽 방향으로 뻗어진 능선을 넘고 넘어 "이등바위" 까지 종주하는 약 2-3시간의 산행 코스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유달산의 또 다른 이름은 "영달산" 이라고 하는데, 사람이 죽어서 영혼이 거쳐 가는 곳이라 하여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유달산은 크게 2개의 봉우리로 형성하고 있는데, 영혼이 심판을 받는다는 일등바위와 심판을 받은 영혼이 이동한다는 이등바위로 구성되어 있다.
영혼이 일등바위에서 심판을 받은 다음 이등바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극락 세계로 가는데, 삼학도의 세 마리 학이나 "고하도" 의 끝지점에 있는 용머리에서 용을 타고 저승길로 간다는 전설이 숨어있는 산이다.
구닥다리 사진기로써 "유달산 정기" 라는 입석 앞에서 간단하게 인증 샷 한장을 만들어 보면서 조금 내부로 올라가면 거대한 동상 한기를 만나는데, 이 동상이 "이순신" 장군의 동상으로 목포 앞바다를 내려다 보면서 왜군들에게 용맹을 보이는 듯 큰 칼을 잡고 서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기념사진 촬영장으로 제공하여 준다.
< "유달산 정기" 라는 입석 앞에서 >
< 목포 앞바다를 내려다 보는 "이순신" 장군 >
많은 점포가 도열하고 있는 좁은 통로를 통과하여 조금 더 고도를 상승하면 처음으로 만나는 시민들의 휴식터 대학루(待鶴樓)가 있으며 정자 입구에는 정오시간을 알리는 "오포대" 라는 총포가 놓여 있는데, 이 오포대는 옛날 시계가 없던 시절 총포에 화약과 종이를 넣어 불을 붙이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 산행길 옆에 있는 "선물가게와 먹거리촌" >
시내 전역에 울러퍼지는 대포소리를 듣고서 목포 시민들은 "오메 댕구 터졌네" 하면서 정오 시간을 인지하면서 식사를 하였다는 그 시대 풍속을 기억하게 하는 대포이다.
< 정오 시간을 알리는 "오포대" 총포 >
< 시간을 알리는 오포대 대포 "설명서" >
현재 정자 바로 위에 있는 공터에서는 목포 지방자치단체에서 옛날 장군들의 관복을 착용한 장수와 함께 병사들이 매시간 마다 대포에 화약을 장진하여 발사하고 있는데, 한발 사용하는 비용이 약 30.000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한다.
< "화약" 을 충전하여 직접 발포하는 장면 >
이곳도 밑에 있는 시민종각과 같이 풍락객이 원한다면, 시간에 관계없이 2만원만 지불하면 총포를 직접 쏘는 시연이 가능하다고 해설자가 입에 침을 팅긴다.
목포는 어디 가도 공짜는 없다는 생각을 머리에 잔득 채우고 울창한 숲속으로 조금 들어가면, 길의 옆 바위에서 꾀꼬리 같은 음악이 흘르고 있는 지점에 도착한다.
그 소리의 진원지에 "이난영" 씨의 노래비가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비석에는 목포의 눈물이라는 가사가 3절까지 적혀있어 그 노래 가사를 한번 옮겨본다.
< 이난영씨의 "목포의 눈물" 노래비 >
- 목포의 눈물 -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음.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임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설음.
깊은 밤 조각달은 흘려가는데 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 진다,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1930년 대에 이난영이 불러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노래 <목포의 눈물> 가사이다.
노래비 앞에 서면 은은하고 애수에 젖은 듯한 목포의 한을 가득 담아 부르는 그녀의 노래 소리가 반복하여 들을 수 있지만, 시간의 제약으로 반복하여 듣지 못함이 애석하다.
이 노래비 뒤편 언덕 난간에 서면, 목포항 및 삼학도가 개발되어 신도시가 되어져 가는 풍경이 한폭의 풍경화로 머물고 있다.
과연 개발만이 최상인듯 옛 정서를 완전히 무시하고 자연미를 지구상에 완전히 소멸하게 만드는 지자체의 이기를 바라보고 있으니, 어쩐지 현대가 다 좋는 것은 아닌 것 같다.
< 노래비 뒤편에서 바라보는 "목포 시가지와 삼학도" 방향의 전경 >
목포의 눈물 노래를 들으니 44년 전 제주도 한라산 산행을 하고 목포로 돌아 올 때, 뱃 전에서 만난 3명의 목포 아가씨 생각이 불현 듯 회상되는 장소이다.
그 중 한명은 목포에서 제일 잘 산다는 "JY극장" 대표의 여식으로써 방학을 통하여 서울 D대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여학생 2명과 함께 여행하는 처녀들로써 자기집 극장 구경을 하든지, 유달산 산행이나 하자는 양자 택일로 제의를 한다.
밤 늦게 유달산으로 올라가다가 목포에서 20여 년 살아도 유달산 정상에는 한번도 올라가지 않았다고 여기에서 주저앉아 더 이상 못 가겠다고 옥신각신 하였던 추억의 장소가 아련하게 회상되는데, 아마 지금 그녀들도 나와 같이 중 늙은이가 되어 어느집 할머니가 되어 있으리라.
< "목포역 및 JY극장" 이 있었던 목포 중심지 전경 >
노래비를 돌아 잘 만들어진 돌계단 따라 올라가면 애기바위, 투구바위, 돌고래바위, 종바위, 등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길가에서 명패를 달고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감상하여 주기를 기원하듯 다양한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유달산의 아름다움을 기억하여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고래바위" 입 모습 >
< 범종의 모양을 하고 있는 "종바위" >
고도를 조금 더 상승하면 목포 시민들의 휴식처를 제공하여 주는 유선각(儒仙閣)에 이르는데, 많은 사람들이 목포시가지를 내려다 보면서 여가를 즐기고 있다.
유선각은 1952년도에 목조 건물로 지어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었지만, 태풍으로 무너져 한번 중건하였으나 또 다시 풍파로 소실되어 1973년도 옛 모습 그대로 개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유달산 최고의 조망을 보여주고 있는 "유선각" >
유선각 앞 안반 위에 표석비가 세워져 있는데, 표석비에는 "흰구름이 쉬어가는 곳입니다. 세마리의 학이 고이 잠든 푸른 바다의 속삭임을 새벽 별과 함께 귀를 기울고 있습니다" 라는 글씨가 기술되어 있어 이곳의 풍광을 잘 표현하고 있다.
< 유선각 앞에 있는 "표석비" >
참 아름다운 풍경에 빠지다 보니 조금 더 정상 쪽으로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발생하여 무릎이 좋지 않은 Wife를 유선각 앞에 머물도록 하고, 혼자 더 고도를 상승하여 310m 전방에 있는 마당바위 까지 올라가 본다.
< 유선각에서 250m 지점에서 만나는 삼거리 "이정표" >
올라 갈수록 희기한 모양의 바위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명찰에는 조대바위, 버선바위, 입석바위, 손가락바위 등이 연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제 시대에 일본인들이 참배를 드린 불상들이 바위 곳곳에 세겨져 있다.
마당바위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의 한 모퉁이에 그들이 숭배한 "신당(神堂)" 이 전연 관리도 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 꼴 사납게 보인다.
< 여인의 버선 코 모습하고 있는 "버선바위" >
< 일본인들이 무분별하게 만들어 놓은 "신당" >
바위를 파서 만들어진 돌계단을 통하여 한계단 한계단 올라서면 유달산의 정점이 되는 "일등바위" 앞에 있는 마당바위 전망대에 이르는데, 이곳 전망대에 올라서면 목포시가지 풍경이 눈 아래에 머문다.
<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다도해 해상" >
지금까지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면 능선 끝자락에는 노적봉이 아련하게 보이고 있는데, 그 뒤편 신시가지 아파트 숲과 더불어 삼학도가 신 도시화로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건물들이 그림과 같이 펼쳐지고 있다.
< 마당바위에서 바라보는 "목포시가지" 전경 >
그 옆으로는 다도해 해상에서 고기잡이 어선들이 정박하고 있는데, 바다 넘어 거대한 "고하도" 섬 끝지점 용머리로 연결하는 목표대교로 인하여 육지화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교각과 더불어 산업화 물결이 일고 있는 조선소 건물 속에 대형 크래인 Boom대가 높게 솟아 있다.
고개를 더 서쪽 방향으로 돌리면 거대한 "목포대교" 가 놓여 있는데, 그 대교 중심에는 거대한 2개의 현수교 주탑에서 뻗어내리는 Wire 줄이 부채살과 같은 간격을 두면서 다리의 미(美)를 나타내고 있는 모습도 매우 아름다운 그림으로 나타나고 있다.
< 새롭게 만들고 있는 "목포대교"와 용머리" >
그 현수교 밑으로는 오후가 되면 우리 일행도 떠나야 하는 공기 부양으로 운행되는 쾌속선 배들이 연속하여 움직이고 있는데, 쾌속선은 하얀 물보라를 만들면서 각자의 목적지로 정처 없이 떠나가는 모습도 한폭의 그림으로 눈 앞에 머문다.
여기가 오늘 내가 올라가야 하는 유달산의 종점에 있는 마당바위로써, 해발 228m 유달산의 정점 "일등바위" 를 배경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념사진 한장을 부탁하여 본다,
< 유달산 정점 "일등바위" 를 배경으로 >
일등바위 정상까지 올려 갈려면 조금 밑에서 일등바위 뿌리를 우회하여 정상으로 올라갔다가 뒤편으로 연결되는 이등바위 능선까지 종주가 가능한 산행 종주코스가 된다.
전문 산악인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되돌아가는 하산길을 선택하여 유달산 주변에 있는 사찰 또는 공원 주변을 즐기는 것이 일반적 산행 코스이다.
< 일등바위에서 이등바위까지 "능선길" >
< "이등바위" 와 목포시가지 북쪽 방향 >
그런데 일등바위를 자세히 살펴보면 바위 허리에 거대한 불상이 세겨져 있는데, 그 위에 "부동명왕(不動明王)" 이라는 글씨가 암각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 일등바위 허리에 새겨진 "부동명왕" >
일본에서는 "홍법대사" 라는 고승이 살았는데, 이 흥법대사는 진안종이라고 하는 일본 불교의 한 종파의 창시자로써 중국 당나라에 건너가 불경을 수행하여 일본 불교의 선각자가 되신 분이다.
흥법대사가 일본으로 돌아올 때 큰 풍랑을 만나 위험을 처할 때, 부동명왕이 대사를 안전하게 항해하면서 지켜주므로 흥법대사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부동성왕이 함께 모시고 있다고 한다.
이곳 전망대에서는 일본에서 제작하여 바위에 붙어놓은 흥법대사의 불상 모습이 있다고 하나, 전망대에서는 바위 옆면에 자리하고 있는 홍법대사의 상은 보이지 않는다.
부동명왕의 철퇴를 들고 있는 모습이 육안으로 보이고 있는 것도 일본인들의 우리나라 자연에 대한 경관 회손의 만행들이 이곳 유달산에는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 바위 경사면에는 유달산의 일등바위 정상까지 올라가기 위한 암벽 등반가들이 자일에 의존하면서 암벽 등산을 즐기는 모습도 개미와 같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 일등바위에서 암벽 산행을 즐기고 있는 "산악인" >
잠시 땀을 식히면서 주변 경관을 감상하다가 하산 시간의 촉박으로 다소 바른 걸음으로 하산하여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앉자 조용하게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버스는 좁은 길을 곡예를 하듯 삼학도 인접 부두가로 내려서서 목포 연안여객선 터미널 앞에 있는 "남해식당" 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가져보는데, 언제나 호남쪽 식사는 정갈하고 깔끔하다.
< 목포 "연안여객선 터미널" 입구 >
조기에 식사를 끝낸 사람은 여객선 터미널로 한분 한분 들어감으로 나도 계단을 통하여 2층으로 올라가는데, 출입구에 목포시와 신안군을 홍보하는 해양관광 홍보관이 자리하고 있어 내부로 들어가 미지의 세상을 접하여 본다.
< 여객 터미널 내부에 있는 신안 "해양관광 홍보관" >
< 홍보관 내에 있는 "전시물" >
한달 전 처음으로 신안군의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임자도에 산행을 하여 보았지만, 본격적으로 신안군의 깊숙한 속살을 들어다 보는 것 이번이 처음이다.
나에게는 신안군이 그저 김대중 대통령이나 배출한 "하의도" 이름만 들어봤지만, 진정한 신안군이 어디에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총 1004개의 섬들이 어떻게 거미줄 같이 연결되는 끈이 무엇인지 찬찬히 지도를 보면서 하나하나 점검하여 본다.
신안군은 목포의 중심에 있었던 신안군청이 목포 앞바다에 자리잡고 있는 압해대교로 연결되는 "압해읍" 으로 2011년 4월에 이전 되면서 독자적인 행정구역을 갖춘 군(郡)으로써, 총 2개의 읍사무소와 12개 면사무소를 거닐고 있는 인구 4만 5천300여 명이 거주하는 완벽한 도서의 군이다.
섬의 특색으로 인하여 수 많은 철새들의 이동 경로와 동식물의 분포, 바다 생태계, 해양성 기후에 대한 변화, 청정지역으로 이루어진 해변과 Slow city의 구비 등 내륙 지역에 볼 수 없는 희귀자료 및 정보물이 많이 전시되어 있지만, 몇 분 후 미지로 떠나는 여행의 흥분으로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터미널 대합실로 들어가니 홍도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데, 홍도가 일일 평균 1.000여 명 정도의 사람을 수용 할 수 있는 한계 수준이지만 금일은 약 1.500명 정도가 입도하기 위하여 입장권을 발매한다고 한다.
< 터미널 대합실에서 입도를 기다리는 "승객" >
< 홍도로 들어가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는 "쾌속선" >
13시 홍도로 들어가는 쾌속선 몇 대가 동시에 출발하는데, 대부분 배는 운행길의 중간에 있는 섬 중에서 비금도나 도초도 또는 흑산도 주민들을 위하여 한번 정박하였다가 홍도로 들어간다.
< 금일 Non- Stop으로 홍도로 들어가는 "파라다이스" 호 >
노련한 Guide는 중간에 기착하지 않는 쾌속선을 선정하여 홍도로 Direct로 들어가므로 다른 선편보다 20여 분 정도 빠른 약 2시간 10여 분 정도의 시간으로 홍도에 입도하는 "파라다이스" 호에 승선하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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