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6일.(일요일)
해탈교를 건너면서 조그마한 주차장과 더불어 화엄사 경내로 들어가는 관문 불이문(不二門)을 만나는데, 불이문 주변에는 봄의 향기를 느끼기 위하여 수 많은 상춘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 화엄사 경내로 들어가는 "불이문" >
화엄사는 1.50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오는 천년 고찰로 부처님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찰로 지리산 자락에 걸린 구름과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함께 머무르는 장소이다.
화엄사는 백제 성왕 22년(서기 544년) "연기조사(緣起祖師)" 가 창건하였으며, 연기조사는 화엄경과 비구니 스님인 어머니를 모시고 지리산 자락 황둔골에 작은 전각 두채의 사찰을 지었다고 한다.
절의 이름을 화엄경에서 따라 화엄사라 하였는데, 화엄경은 부처님의 세계, 즉 깨달음의 세계를 기록한 경전이니 화엄사가 곧 부처님의 세계이고 깨달음의 성지(聖地)이라는 뜻이 된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후에는 의상대사께서 화엄사를 화엄종의 원찰로 삼아 머물었으며 신라 경덕왕(서기742년)에 이르러 8개의 가람 및 80개의 암자을 거닐고 있는 대사찰이 되는데, 이 때 남방 제일 '화엄대종찰" 이라는 명칭을 얻게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화엄사의 해안선사와 벽암선사(碧巖禪師)께서 승군을 일으켜 땅을 지켰고 자운스님은 이순신 장군을 도와 바다를 지켰으며 설흥대사와 300여 명의 스님들이 목숨을 잃고 화엄사가 왜군에 의해 잿더미가 되었지만, 중생을 살피고 나라를 지키려는 정신이 고스란이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불타버린 화엄사는 선조 30년(서기1630년) 나라의 지원을 받아 벽암선사에 의해 여러 전각이 복원되어 오늘이 이루고 있는데, 경내에는 4개의 국보와 더불어 8개의 보물 및 2개의 천연기념물 등 많은 문화재를 보관하고 있는 보물 창고의 사찰이다.
입구 불이문을 통과하여 경내에 들어서자 마자 오른편으로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와 더불어 왼편으로는 지역의 특산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자리하고 있어 매우 혼잡한데, 일반적으로 사찰에서 조용한 명상과 산책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 불이문을 통과하자 마자 오른편으로 만나는 "기념품" 판매점 >
< 기념품 가게 내부에 진열하고 있는 "상품" >
< 경내로 들어가는 메인 길과 더불어 왼편 "지역 특산품" 판매장 >
동백나무가 심어있는 메인 보도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벽암 "국일도" 대선사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 서 있으며 그 비석 오른편으로 화엄사 승보관(僧寶館) 건물이 자리하고 있지만, 승보관 건물의 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내부 관람이 불가능함이 아쉽게 만든다.
< 벽암 "국일도" 대선사 공덕비 >
< 화엄사 유물 및 유적을 보관하고 있는 "승보관" >
이 벽암선사의 공덕비 반대편에는 화엄사가 운영하는 템플스테이 수련원과 더불어 승가대학으로 들어가는 작은 대문이 있는데, 대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거대한 마당 주변으로 "口" 자 형태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그 건물 크기가 상상을 초월하게 방대하다.
< "템플스테이 수련원" 으로 들어가는 반야문 >
< 수련원 내부에 있는 "승가대학" 전경 >
수련원으로 나와 다시 메인 통로로 들어서면 이내 금강문(金剛門)을 만나는데, 금강문 좌측에는 금강장사와 코끼리 등에 앉아 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금강문을 통과하는 불자의 마음을 점검하고 있다.
< 벽암 국일도 대선사 비석 뒤편에 있는 "금강문" >
< 금강문 내부에 있는 "금강장사와 문수보살" >
금강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올라가면 다시 천왕문(天王門)을 만나고 천왕문 좌측에는 만월당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오른편에는 상왕문(象王門)이라는 작은 문을 통과하면 여기에도 거대한 건물이 동서남북으로 건립되어 있다.
< 금강문 뒤편 계단 위에 있는 "천왕문" >
< 천왕문 왼편에 있는 "만월당" 건물 >
< 천왕문 오른편에 있는 "상왕문" >
< 상왕문 내에 있는 "요사채" 건물 >
천왕문 뒤편에 있는 높은 돌계단으로 올라가면 한단의 축대 위에 1636년에 건립된 "보제루(普濟樓)" 라는 고풍의 루각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루각 건물은 루하진입(樓下進入)이라 하여 루각 아래로 사람이 통과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기 화엄사에 있는 보제루는 기둥을 낮게하므로 오른편 옆으로 본당으로 올라가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 특색이다.
< 낮은 기둥으로 만들어진 "보제루" >
특히 보제루 루각의 기둥은 자연 그대로의 굵은 나무를 굽은 대로 설렁 설렁 다듬어 만들므로 마치 나무들이 춤을 추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건물 내부에는 신도들의 집회 장소로 사용하므로 여기도 누구나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한다.
< 자연 그대로의 굽은 나무를 사용하고 있는 "보제루" >
보제루 오른편 돌계단을 이용하여 다시 올라가면 이윽고 화엄사 중심 경내 마당에 도착하는데, 이곳 마당 주변으로는 많은 건물과 석조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아울러 마당 가장자리 전면의 높은 축대 위로 화엄사의 본 건물 "대웅전(大雄殿)과 각황전(覺皇殿)" 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먼저 마당 주변에 있는 건물과 더불어 석조물을 관람하여 보는데, 보제루 오른편에는 사찰의 행사 때 사용하는 북을 설치하고 있는 운고각(雲鼓閣)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옆에 또 다시 불교 용품과 서적을 판매하는 아담한 점포가 자리잡고 있다.
< 보제루 오른편에 있는 "운고각" >
< 운고각 옆에 책을 판매하는 "서점" >
이 점포 뒤편으로 또 다시 "口" 자 형태의 요사채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보제루 왼편 방향으로는 샘물과 더불어 범종각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그 뒤편에는 영산전(靈山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보제루 왼편에 있는 "범종각" 건물 >
또한 마당의 중심에서 오르편으로 보물 제132호 지정된 "동5층석탑" 이 자리하고 있으며 왼편 각황전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아래에는 보물 제133호로 지정된 "서5층석탑" 마주하면서 서 있고, 대웅전에서 부터 마당의 좌우까지 많은 연등으로 장식하고 있어 아마 4월 초파일 행사용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 대웅전 마당 오른편 앞에 있는 "동5층석탑" >
< 각황전 앞에 있는 "서5층석탑" >
특히 마당에서 높은 축대 위에 있는 대웅전과 각황전으로 올라가기 위한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는데, 중앙의 대웅전 방향에는 4줄의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으며 왼편 각황전 방향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은 3줄로 만들여져 있다.
비록 대웅전 건물이 각황전에 비하여 많이 외소하지만, 그래도 사찰의 중심이 되는 배려 차원에서 한단 넓게 만들어진 돌계단의 의미인가 보다.
<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4줄 "돌계단" >
< 각황전으로 올라가는 3줄 "돌계단" >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샘물로 들어가 한 바가지 물을 마시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나서 천천히 중앙 돌계단을 이용하여 화엄사 본찰로써 보물 제299호 "대웅전(大雄殿)" 뜰 아래에 도착하는데, 뜰에는 수 많은 연등이 달려 있어 젊은 연인들이 사진 촬영에 정신이 없다.
< 연등으로 장식하고 있는 "대웅전" 건물 >
대웅전 옆 문을 통과하여 내부를 관람하여 보는데, 많은 불자들이 불공을 드리고 있는 제단 위에 보물 제1548호로 지정된 "목조 비로자나 삼신불 좌상(木造 毘盧蔗那 三身佛 坐像)" 이 앉아 있다.
< 대웅전 내에 있는 "목조 비로자나 삼신불 좌상" >
이 비로자나불 좌상은 화엄사 사적기에 의하면 1636년에 전라도 고승과 경상도 고승이 함께 조각한 불상이라고 하고, 또한 대웅전 왼편 출입문 옆에 보물 제1363호로 지정된 '대웅전 삼신불탱(大雄殿 三身佛幀)" 그림이 걸려 있다.
< 대웅전 내에 있는 "삼신불탱" >
그런데 건물 내에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건물의 명칭은 "대적광전(大寂光殿)" 이라고 하는데, 인조 임금의 숙부인 의창군이 써 내려준 현판을 그대로 달아 대웅전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 대웅전 왼편으로 단청을 칠하지 않은 새로운 '영전(影殿)" 건물과 더불어 "원통전(圓通殿)" 건물이 동일 축대 위에 건립되어 있는데, 원통전 건물 앞으로 4마리의 사자가 떠 받이고 있는 보물 제300호 "사자탑(獅子塔)" 이 자리하고 있다.
< 대웅전 건물과 나란히 하고 있는 "영전" >
< 영전 왼편에 있는 "원통전" >
< 원통전 앞에 있는 "사자탑" >
이 원통전 옆 좌측 구석으로 나한전(羅漢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 나한전과 원통전 건물의 모서리 지점에 약 450년의 수령을 가진 홍매화 나무 한그루가 매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쏫고 있지만, 아직 만개의 꽃을 보지 못하여 다소 아쉬움에 발생한다.
< 원통전 왼편에 있는 "나한전" >
< 원통전과 나한전 모서리에 있는 "홍매화" >
우리나라에서 고목의 매화나무로 유명한 4곳으로 순천 선암사에 있는 "선암매(仙巖梅)", 장성 백양사에 있는 "고불매(古佛梅)", 강릉 오죽헌에 있는 "율곡매(栗谷梅)" 와 더불어 구례 화엄사의 "화엄매(華嚴梅)" 가 한국의 대표적 매화나무라고 하겠다.
이곳 화엄사의 홍매화는 조선시대 숙종 때 각황전을 중건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계파 성능대사" 가 심은 것으로 다른 홍매화 보다 꽃 색깔이 검붉어서 "흑매(黑梅)" 라고도 불려진다고 한다.
이 매화나무의 왼편으로 대웅전을 바라보고 있는 한국 최대의 목조 건물이 되는 국보 제76호 "각황전(覺皇殿)" 건물과 각황전 앞 마당에 국보 제12호 "석등(石燈)" 이 규모의 크기를 자랑하면서 서 있다.
< 국보 제12호 "석등" 과 국보 제76호 "각황전" 전경 >
각황전 앞에 있는 사자탑과 석등을 찬찬히 돌아보고 먼 발치에서 각황전을 구경하여 보는데, 아침 버스 속에서 산대장이 설명하여 준 각황전 건립 유래가 생각난다.
- 각황전의 건립 유래 -
계파선사가 "장육전(丈六殿)" 을 건립하기 위하여 기도를 올린지 100일이 지났지만, 장육전을 건립 할 재원 마련이 막연하여 번민하고 있는 도중 꿈에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복(福) 있는 화주승(化主僧)이 나타나 크게 시주 할 것이라 한다.
그런데 시주를 얻기 위해서는 물을 담은 항아리와 밀가루를 담은 항아리를 준비하고, 먼저 물 항아리에 손을 담근 후 밀가루 항아리에 손을 넣어서 밀가루가 손에 묻지않은 사람을 장육전 건립을 주관하는 화주승으로 임명하여야 한다고 한다.
꿈과 같이 화주승을 뽑기 위하여 물과 밀가루 항아리를 준비하여 산내 모든 스님이 차례로 계파선사의 지시대로 실행하였지만, 모두가 손에 밀기루가 묻어지므로 기대하는 스님이 끝내 나타나지 않아 맨 나중에 사찰에서 밥을 지어주는 공양주 스님을 시험 하니 손에 밀가루가 묻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대중스님은 공양주를 향하여 일제히 삼배의 절을 올리고 화주승으로 임명하고 계파선사는 공양주에게 10년 동안 우리 사찰에서 공양주로 일한 복력(福力)으로 천 여명의 스님 중에 가장 수승하기에 오늘의 시험에 기적이 나타난 것이므로 장육전 건립에 따른 중임을 맡길 것이니, 이것은 내가 꿈에 지리산 문수보살께서 지시한 대로 시험한 것이므로 아마 큰 시주자를 만나 불사 건립에 전력하여 주기를 부탁드린다고 한다.
지금까지 공양주는 공양을 짓는 일에만 수행 했을 뿐 화주에 대한 전혀 아는 것이 없어 걱정이 태산 같아 밤 새껏 고민 하다가 대웅전에 정좌(正坐)하여 부처님에게 기도를 올리는데, 비몽사몽 간에 한 노인(문수보살)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그대는 걱정하지 말고 내일 아침 일찍 사찰을 떠나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를 권하고 말씀하라" 고 하면서 살아진다.
공양주는 용기를 얻어 대웅전 부처님에게 절을 하면서 맡은 바 소임을 완수하도록 가호를 내려 달려는 인사와 함께 새벽 일찍 일주문을 나서는데, 한참 걸어가니 그의 앞에 남루한 옷을 걸친 거지 노파가 사찰로 들어오고 있다.
이 노파는 자식도 없이 혼자서 움막에 살면서 자주 사찰을 방문하여 잔심부름을 하면서 누룽지를 얻어가므로 공양주와 너무나 친근이 있는 노파이다.
화주승은 노파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령 내려 앉아 거지 노파에게 어떻게 장육전을 지어 달려고 할지 고민하다가 간밤에 문수보살의 교시를 생각하고 노파에게 엎드려 큰절을 하면서 장육전을 건립하여 달려고 애원 하니, 노파는 농담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무시를 하였다.
그래도 화주승은 하루 종일 노파에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 하면서 시주 하기를 간청하였으나, 노파는 아무런 대안이 없어 눈물을 흘리면서 "이 몸이 죽어 왕궁에 태어나서 큰 불사를 이루도록 문수보살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한다" 고 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 연못에 빠져 죽어 버리므로 화주승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에 대경질색 하고 멀리 도망을 가버린다.
그 후 오륙년의 세월이 흘려 화주승이 한양에 도착하여 화창한 봄날 하루 창덕궁 앞에 서성거리고 있는데, 유모와 함께 대궐 밖으로 나와 놀던 어린공주와 마주치게 되면서 어린공주는 화주승을 보자 반가워 하면서 누더기 자락에 매달려 어리광대를 부린다.
그런데 이 어린공주는 태어나면서 부터 한쪽 손을 꼭 쥔채로 펴지 않고 있어 화주승이 꼭 쥐고 있는 손을 만지니 신기하게도 공주의 손이 펴지는데, 손바닥에 장육전(丈六殿)이라는 석자의 글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숙종대왕은 화주승을 대전으로 불러 자초지조를 모두 듣고 감격하여 "노파의 깨끗한 원력(願力)으로 오늘의 공주로 환생하였구나. 그 원력을 이루어 줘야 한다" 라고 하면서 장육전 건립에 많은 시주를 내린다.
이렇게 하여 나라에서는 공주를 위하여 장육전을 중창하였는데, 장육전이 완성되자 숙종대왕의 은혜를 생각하는 뜻에서 "깨달을 각(覺)" 와 "임금 황(皇)" 자를 사용하여 각황전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각황전이 건립되어진 배경을 음미하면서 건물을 감상하면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다가 내부에 있는 불전함을 보기 위하여 옆문으로 들어다 보니, 3명의 부처님과 4분의 보살 등 7분의 부처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앞에 많은 불자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 각황전 내부에 모시고 있는 7분의 "부처" >
실내로 들어가는 한 스님에서 각황전에 보관하고 있는 국보 제301호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 에 대하여 물어보니, 현재 각황전 불상 뒤편에 수장 보관하고 있어 관람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여 준다.
각황전을 나와 왼편에 있는 동백꽃 숲속으로 만들어진 108 계단으로 천천히 올라가면서 각황전 옆과 뒤 모습을 내려다 보니, 정말 고풍의 웅장 함이 묻어나는 건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발생하게 만든다.
< 각황전 옆으로 올라가는 "108 계단" >
< 108 계단에서 바라보는 "각황전" 옆면 >
< 각황전 뒤편에 있는 "동백나무 숲" >
계단의 끝지점에 서면 아름들이 소나무 숲으로 쌓여 있는 다소 넓은 공간의 "효대(孝臺)" 라는 곳에 2기의 탑이 서 있는데, 뒤편에 있는 탑은 국보 제35호 "4사자 3층석탑(四獅子 三層石塔)" 이고, 그 앞에 작은 석등이 자리하고 있다.
< 108 계단 끝지점에 있는 "4사자 3층석탑과 석등" >
4사자 3층석탑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심을 기리기 위하여 만들어진 탑이라고 하는데, 석탑 앞에는 머리에 석등을 이고 차를 공양하는 모습의 보살이 좁은 석등 속에서 왼손에 찻 사발을 들고 경건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애초롭게 보인다.
< 석등 아래 왼손으로 찻 사발을 들고 있는 "보살" >
다시 4사자 석탑을 세심하게 돌아보면 2층의 기초석 위에 기단석을 놓고 그 위에 암수 각 두쌍 4마리의 사자가 3층석탑을 받치고 있으며, 그 4사자 석상 중앙에 평생의 업보를 지고 가는 연기조사의 어머님이 사자와 함께 3층석탑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애절하다.
< 국보 제35호 "사사자 3층석탑" >
동서남북 내 모퉁을 받치고 있는 사자의 얼굴에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이라는 4가지 표정을 지으면서 3층석탑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정교하므로, 각 사자의 표정을 감상하다가 보니 시간이 화살과 같이 지나간다.
< 희노애락의 표정을 짖고 있는 "4사자 석상과 연기조사 어머니" >
이 4사자 3층석탑 왼편 옆으로 만들어진 작은 쪽문을 통과하여 아래로 조금 내려서면 작은 탑전(塔殿) 건물을 만나는데, 이 건물에는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지 다소 적막감이 묻어나는 건물이 된다.
< 4사자 3층석탑 옆 "탑전" 으로 들어가는 쪽문 >
< 4사자 3층석탑 옆에 있는 "탑전" 건물 >
< 탑전 뒤편 야산 기슭에 길도 없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산신각" 건물 >
다시 각황전으로 내려와 대웅전 앞 마당을 통과하여 대웅전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명부전(冥府殿)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대웅전 건물 뒤편에는 밥통으로 사용한 거대한 구유가 놓여 있다.
< 대웅전 오른편에 있는 "명부전" 건물 >
< 대웅전 건물 뒤편에 보관하고 있는 "구유" >
대웅전 뒤편 담으로 구획하고 있는 돌계단으로 올라가면 오른편에 "삼전(三殿)"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대웅전 뒤편의 넓은 정원 끝지점 야산 기슭에 선등선원이 보이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약 130m 뒤편에 "구층암(九層庵)" 이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 대웅전과 명부전 건물 뒤편에 있는 "삼전" >
오솔길 따라 조그마한 도랑을 건너가면 구층암 앞 마당에 도착하는데, 이 구층암에는 앞 뒤 2개의 요사채 건물과 더불어 천불의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천불보전(千佛寶殿), 수세전(壽世殿) 건물 등이 자리하고 있는 화암사 10개 산내 암자 중에 하나이다.
< 대웅전 뒤편에서 "구층암" 까지 거리를 알리는 안내판 >
먼저 앞 요사채 건물 전면에 다 허물어져 가고 있는 3층석탑 한기가 서 있는데, 이 석탑은 완전히 파괴되어 곧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앞 요사채 건물 뒤면으로 돌아가면 건물의 뒤면 쪽마루 앞에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2개의 모과나무를 기둥으로 만들어 지어진 건물이 이색적이다.
< 구층암의 앞 "요사채" 건물 전경 >
< 앞 요사채 전면에 허물어져 가고 있는 "3층석탑" >
< 앞 요사채 건물의 뒤면에 있는 2개의 "모과나무" 기둥 >
< 자연과 순응하고 있는 "모과나무" 확대 모습 >
야산에 자라던 모과나무가 죽어 승방(僧房)의 기둥이 되어 다시 부활하고 있는데, 다듬거나 손대지 않고 밑둥을 주춧돌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위쪽에는 석가래에 가지를 뻗고 있는 모습이 자연을 거스러지 않고 있다.
요사채 뒤편 마당을 품고 있는 뒤 요사채 건물의 중앙에 있는 기둥에도 죽은 모과나무를 사용하고 있어 구층암은 참 자연에 순응하는 사찰이 되고 있으며, 또한 양 요사채 건물의 중심 측면 야산 기슭에 천불의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아담한 "천불보전(千佛寶殿)" 도 자연을 거슬리지 않고 조그마한 정원 위에 건립되어 있다.
< 뒤에 있는 "요사채" 건물 전경 >
< 뒤 요사채 건물 중앙에 있는 "모과나무" 기둥 모습 >
< 앞 요사채와 뒤 요사채 건물 측면 사이에 있는 "천불보전" >
< 천불보전 내에 있는 "불상" >
< 천불보전 오른편에 있는 "수세전" >
이 구층암 뒤편으로 돌아가면 야산 기슭에 차밭과 더불어 천연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된 울벚나무가 무리지어 피고 있는 "길상암(吉祥庵)" 이 자리하고 있지만, 구층암에서 길상암으로 바로 가는 길에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 따라 먼 발치에서 올벚나무와 함께하는 천연기념물 제485호 "길상암 매화나무" 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게 만든다.
<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는 "길상암" 입구 >
이 밖에 화엄사에는 산내 암자가 곳곳에 산재하고 있지만, 짧은 시간에 통하여 다 돌아본다는 것은 불가능하여 화엄사를 떠나기로 하면서 천천히 대웅전과 일주문을 통과하여 대형주차장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차도 따라 조금 내려가면 화엄사가 얼마나 많은 고승들이 삶을 마감하였다는 흔적으로 남아 있는 부도탑이 야산에 산재하고 있고 개울 옆으로 만들어진 차도 따라 한 20분 정도 내려가면 일주문과 동시에 매표소가 나타나는데, 약속시간 보다 10분 정도 빠른 4시 20분 경에 버스주차장에 도착한다.
< 화엄사 입구에 있는 "부도탑" 군락지 >
< 매표소와 함께 있는 화엄사 "일주문" >
< 일주문 아래 화엄사를 알리는 "입석" >
그런데 대부분의 동문들이 주점으로 직행하여 하산주를 마시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도 화엄사에서 머물고 있는지 단지 몇 명의 동문들만 보이고 있으며, 먼저 도착한 우리 기수 2명이 한 주점에서 하산주를 즐기고 있어 같이 합석하고 있으니 한명 한명 주차장으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 버스주차장 옆에 있는 주점에서 "하산주" 를 즐기는 동문 >
이윽고 우리 기수 8명도 다 합류하므로 노고단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장을 찍고 나서, 버스에 승차 하니 아직도 많은 동문들이 도착하지 않아 출발 시간이 무한정 늘어진다.
< 노고단 정상이 보이고 있는 "버스주차장" >
< 함께 산행을 하였던 56회 "동문" >
최종적으로 5시에 버스가 출발하는데, 아침에 약속한 조선 명종 때 낙안현감을 지낸 "류이주(柳爾胄)" 선생님의 99칸 짜리 생가 "운조루(雲鳥樓)" 방문은 개인적으로 찾아보기로 하고 남원 방향으로 들어가 88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대구로 향한다. -2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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