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군 문화와 산행.

한곳의 군 단위에서 4개 향교가 있는 합천군에서 초계면에 있는 "초계향교" 의 관람.

용암2000 2016. 9. 30. 18:17

2016년 9월 20일.(화요일)

 

인터넷으로 합천군에 존재하고 있는 향교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합천군에서는 충(忠), 효(孝), 예(禮)의 유학 풍조와 더불어 학문적 애향(愛鄕)임을 증명이라도 하는듯 군(郡) 단위에서 4개의 향교(강양항교, 초계향교, 합천향교, 삼가향교)가 자리하고 있다는 내용을 인지하고, 먼저 초계면에 있는 "초계향교(草溪鄕敎)" 를 찾아보기로 한다.

시골 인구의 감소로 모든 것이 살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합천군은 전국에서 2번째로 많은 17개의 행정 단위를 가지면서 그 중에서 아직도 4개의 면(묘산, 가야, 삼가, 초계) 단위에서 재래시장이 열리고 있는데, 초계면 재래시장은 매월 끝자리 0과 5가 되는 날에 개최한다고 한다.

금일은 20일이 되므로 장터도 구경하면서 면사무소 인접지역에 있는 향교를 관람하기 위하여 시장으로 걸어보는데, 오후의 시간이라서 그런지 시골에서는 아침에 잠시 시장을 형성하고 이내 철시가 된다고 한다.

 

< "초계면" 의 중심거리 풍경 >

 

매우 한가한 거리에는 아직 철시하지 않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몇몇 노점상을 구경하면서 큰길 따라 합천시가지 방향으로 올라가니, 거리의 가장자리에는 재래시장 건물과 더불어 면사무소, 파출소, 초등학교 등 공공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오후에도 철시하지 않고 손님을 기다리는 "노점상" >

 

< 도로변 제법 큰 건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가" > 

 

< "초계시장" 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

 

< 초계면의 중심지에 있는 "면사무소" 건물 >

 

< 면사무소 입구 담 벼락에 서 있는 역대 군수의 "공덕비" >

 

면의 중심지 거리를 벗어나면서 상부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향교를 가르키는 이정표가 자리하고 있는데, 메인 도로에서 이정표가 가르키는 야산 방향으로 꺽어 조금 들어가면 낮은 담으로 쌓여 있는 시골 집과 더불어 어느 집의 담 모퉁이에 조그마한 "하마비(下馬碑)" 가 향교의 경계선을 표시하고 있다.

 

< "초계향교" 를 가르키는 이정표 >

 

< 향교 입구에 있는 "대소인하마비" >

 

이 하마비에서 조금 더 내부로 들어가면 높은 축대 위에 거대한 2그루의 나무가 서 있으면서 그 뒤편으로 초계향교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초계향교는 초계면의 자랑이 되는 해발 190m "단봉산(丹鳳山)"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 단봉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초계향교" 와 더불어 향교 전면이 있는 2그루의 나무 >

 

축대를 돌아서 초계향교 정문으로 올라가면 밑에서 바라보았던 수령 약 200년 가까이 되어진 2그루의 나무 중 한그루의 나무는 은행나무이고, 다른 한그루의 나무는 일반적으로 당산나무로 많이 키우고 있는 느티나무가 아니고 가슴둘레가 약 3m 정도의 중국산 굴피나무가 자라고 있다.

 

< 밑둥지에서 2개의 가지로 나누어지고 있는 "은행나무" >

 

< 가슴둘레가 약 3m 정도의 중국산 "굴피나무" 모습 >

 

일반적으로 중국산 굴피나무는 높이가 30m에 지름이 약 1m 정도 까지 성장하는 외래종 나무로써, 나무 잎의 모양은 홀수 깃모양 겹잎으로서 정엽(頂葉)이 없는 것도 있고 9-25개의 소엽(小葉)으로 구성되며 길이 20-40Cm로서 엽축에 날개가 있다고 한다.

 

< 9-25개의 소엽으로 구성하고 있는 중국산 "굴피나무" >

 

어찌하여 이렇게 희귀종의 굴피나무가 초계향교 앞에 자라고 있는지 매우 궁궁증을 가지도록 하는데, 초계면에서는 이러한 나무에 대하여 수령을 포함하여 재원을 기록한 안내문 하나라도 만들어서 방문객들에게 알려주었으면 좋겠지만....   

이 나무의 뒤편으로 초계향교의 외삼문이 되는 2층의 누각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누각의 1층 처마에는 입덕문(入德門)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으면서 더불어 2층 처마에는 "풍화루(風化樓)" 라는 현판이 붙어있어 다른 향교의 대문과 차별화가 발생하게 한다.

 

< 초계향교의 외삼문이 되는 "풍화루" 누각 >

 

이 외삼문 오른편으로 초계향교의 내력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이 붙어있어 그 내용을 숙지하여 보면,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位牌)를 봉안하면서 매년 봄과 가을을 통하여 1년에 2번씩 제사를 모시고 있으면서 또한 지방민의 유학교육와 더불어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敎育機關)이라 하겠다. 

 

< 초계향교 정문 오른편에 있는 "안내문" >

 

초계향교는 고려 충숙왕(재위 14세기 초) 때 청계산(淸溪山) 아래의 성지(聖智) 기슭에 창건하면서 성현의 덕풍을 숭앙 함과 동시에 유학을 연구 및 강론하는 기능을 가졌으며, 조선 인조 6년(1628년)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하였다고 한다.

1800년 대 초반 청계산에서 현재의 위치가 되는 단봉산 기슭로 옮겨졌으며, 또한 헌종 9년(1843년) 초계 현감 김선영(金善永)이 중수하였으며 그 후 많은 수리와 보수를 통하여 오늘에 이루고 있지만 세부적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현존하는 건물로써 전면에는 강학영역이 되는 5칸의 명륜당 건물과 더불어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있으며 뒤편으로 제향영역으로 들어가는 내삼문(內三門)과 함께 3칸의 대성전 및 각 3칸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가 자리하고 있다.

대성전 내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의 위패를 모시고 있고, 동무 및 서무에는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고 한다.

 

< 강학영역에 있는 "명륜당" >

 

< 옛 관리사 건물 오른편 뒤편으로 제향영역으로 올라가는 "내삼문" >

 

조선시대에는 국가로 부터 토지와 전적 및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초계향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향교로 들어가는 누각의 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내부 관람이 불가능하므로 원망이 발생하게 한다.

그래서 향교 주변을 통하여 구경하여 보는데, 먼저 외삼문이 되는 풍화루 누각의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4개의 기둥 주축돌에는 거북이 얼굴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그 모습이 너무나 해학적인 모양을 하고 있어 절로 미소를 머금게 만들어 준다.

 

< 풍화루 오른편 기둥 아래에 있는 "주축돌" > 

 

< 풍화루 오른편 중앙기둥 아래에 있는 "주축돌" >

 

< 풍화루 왼편 중앙기둥 아래에 있는 "주축돌" >

 

< 풍화루 왼편 기둥 아래에 있는 "주축돌" >

 

그러고 왼편으로 돌아서 올라가면 향교와 연계하여 한문학을 가르키는 "충효관(忠孝館)"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이 건물과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 향교의 담에는 작은 쪽문이 자리하고 있다.

그 쪽문을 통하여 내부로 들어가 보고 싶어 계단으로 올라가 쪽문 내부를 살펴 보니, 그 쪽문에서도 거대한 열쇠로 잠겨져 담장을 넘어서 내부를 들어다 보는 것으로 관람을 끝내기로 한다.  

 

< 초계향교 왼편 담에 있는 "쪽문" >

  

< 초계향교 왼편에 있는 "충효관" 건물 >

 

언젠가 향교의 문이 열리는 날 다시 방문하여 상세하게 돌아보겠다는 마음을 품어보면서, 아쉬운 마음을 간직하면서 초계면 인접지역에 있는 관광지로 떠나 보기로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