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6일.(목요일)
오늘 합천시가지를 휘감고 돌아가는 황강과 더불어 해발 90m "취적산(吹笛山)"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함벽루(涵碧樓) 및 연호사(烟湖寺) 사찰을 구경하기 위하여 길을 나서 보는데, 합벽루는 합천군의 8경 중 제5경이 되는 명승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취적산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함벽루와 연호사를 먼발취에서 감상하기 위해 황강 반대편 정양레포츠 공원에서 바라보는 것이 일품이 되어지겠다는 생각으로 먼저 레포츠 공원으로 이동함과 동시에 모래사장 가장자리로 들어가 황강 백사장을 거닐면서 취적산 풍경을 구경하여 보는데, 합천시가지 빌딩과 더불어 정말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누각(樓閣)이다.
< "정양레포츠 공원" 에서 바라보는 취적산과 대야성 >
< 대야성 언저리 황강과 함께 하고 있는 "함벽루와 연호사" >
< 대야성과 함께 하는 "합천시가지" 빌딩 >
황강은 경상남도 합천시가지 중심지를 관통하는 하천으로 발원지(發源地)는 거창군 고제면 삼도봉 남쪽 계곡이면서 거창읍을 거쳐 동남쪽으로 흐르는 위천과 합류하고 나서, 이후 합천호에 이른다.
합천호에서 다시 합천읍을 지나 합천군 청덕면에서 낙동강과 합류하여 지는데, 황강이라는 뜻의 "황(黃)" 자 의미는 크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설이 있으며, 옛 삼가현에 있는 황산(黃山)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곳 황강 레포츠 공원은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레포츠 공원으로써 캠핑과 더불어 수상 레포츠를 즐기기에 좋은 장소인데, 주변으로 카페, 음악분수, 산책로, 음수대, 야외무대,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갖추고 있으나 매우 늦은 여름철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야영지 사람들이 살아지면서 적막감만 내리고 있다.
본격적으로 함벽루를 방문하여 보기 위하여 황강을 가로 지르면서 만들어져 있는 제2 남정교를 건너 합천시가지를 통과 함과 동시에 고령 방향으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오른편 취적산 언저리 따라 만들어져 있는 도로를 이용하여 황강 변으로 내려가 보는데, 강변 언저리에 "죽죽정(竹竹亭)" 이라는 입석이 서 있지만 정자는 보이지 않고 강 둔치에는 황강군민 체육공원과 더불어 국궁장이 자리하고 있다.
< 국궁장 입구에 있는 "죽죽정" 입석 >
이곳 취적산 둘레에는 "대야성(大耶城)" 이라는 성곽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성벽의 전체 길이가 약 300m 정도이지만 현재 성벽은 다 허물어지고 상부 약 30m 정도 토성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대야성은 신라 서부지역 요새로서 삼국시대는 신라와 백제, 그리고 통일신라 말기에는 신라와 후백제 및 고려가 각축을 벌였던 대표적인 접경지역이라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 11년(642년)에 백제의 침공으로 인하여 신라가 함락되어 지는데, 그 당시 대야성의 성주이면서 도독 "김품석(金品釋)" 과 그 부인 "고타소랑"(무열왕 김춘추의 딸)과 더불어 신라 병사 2천여명이 전사하고 또한 1천여명이 포로가 되어 백제로 압송 되어졌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성이다.
또한 통일신라 말기가 되는 서기 920년에도 견훤(甄萱)이 이끄는 후백제 군사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대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으며, 그 뒤 고려가 점령하였다가 다시 후백제로 넘어가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936년 최종적으로 고려가 차지하였다고 한다.
< "대야성"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산(山)의 동쪽 산기슭에는 642년 대야성이 백제에 함락 당할 때 끝까지 성을 지키다가 전사한 신라의 장수 "죽죽(竹竹)" 이를 기리는 유적비가 서 있다고 하지만, 오늘은 산성으로 올라가 관람하는 것을 생략하고 함벽루와 연호사를 구경하기 위하여 강변 주차장에 주차하고 나서 함벽루 방향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주차장에서 함벽루로 가는 방향이 2개의 길로 나누어지는데, 하나의 길은 산기슭로 올라가는 길이 되고 다른 하나의 길은 강변 따라 만들어져 있는 산책로 따라 가는 방법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산기슭 방향으로 올라가니 새롭게 신축하고 있는 연호사 일주문(一柱門)이 자리하고 있지만, 아직 일주문에는 이름도 붙이지 않고 미완성의 건물이 되어져 다소 어수선한 건물이 된다.
< 연호사의 첫관문이 되는 "일주문" >
일주문을 통과하여 산기슭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취적산 산자락에 수 많은 비석(碑石) 군락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그 많은 비석 중에서 중앙에 거대한 비석과 더불어 안내문이 붙어있어 그 내용을 정독하여 본다.
비석에는 합천군수 "이증영유애비(李增榮遺愛碑)" 라는 제목과 더불어 비문에는 남명 "조식(曺植)" 선생님이 문장을 짓고, 고산 "황기로" 선생님이 글을 썻다고 기록하고 있다.
< 연호사 입구 대야성 기슭에 있는 "비석" 군락지 >
비석의 내용에는 합천군수를 역임했던 이증영은 극심한 흉년이 백성을 구휼하고 청렴하게 관직 생활을 했던 업적을 기록하고 있는데, 비석의 크기는 가로 87Cm, 세로 202Cm, 두께는 17Cm이면서 비문의 글씨는 해서체(楷書體)로써 전체 13행(行)에 각 행에는 25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 비석 군락지 중앙지점에 있는 "이증영유애비" 와 안내문 >
이 비석 군락지에서 황강쪽으로 내려가는 계단길이 나타나므로 강변으로 내려서면 멀리 황강 건너편에서 바라 보았던 함벽루가 자리하고 있으므로 인하여, 이곳에서도 함벽루 안내문을 먼지 읽어본다.
함벽루는 고려시대의 충숙왕 8년(1321년)에 합주지주사(陜州知州事)가 되는 "김영돈(金永暾)" 이 처음으로 창건하였으며 그 뒤 수차례에 걸쳐 중건되었다고 한다.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5량(樑)의 구조로써, 팔작지붕의 목조와가(木造瓦家) 이면서 처마의 물이 황강에 바로 떨어지는 배치로 더욱 유명한 건물이다.
아울러 황강과 더불어 반대편 "정양호(正陽湖)" 방향의 수려한 풍광이 펼쳐지므로 많은 시인 묵객들이 풍류를 즐긴 장소로서 유명하여 지는데, 퇴계 이황(李滉), 남명 조식(曺植), 우암 송시열(宋時烈) 등의 한시와 문장이 누각 내부 현판으로 걸려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 2층으로 건축되어져 있는 "함벽루" 정면 >
< "함벽루"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함벽루 건물을 돌아보기 위하여 일단의 축대 위로 올라가면 누각 건물 뒤편 암벽에는 다양한 이름과 더불어 한문들이 각인되어 있는데, 암벽의 중앙에 제일 큰 글씨로 각자(刻字)하고 있는 "함벽루(涵碧樓)' 라는 글씨는 우암 송시열 선생님의 친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 함벽루 뒤편에 있는 우암 "송시열" 선생님 글씨 >
< 그밖에 시인 묵객들이 각인한 "이름" >
< 일단의 축대 위에 지어진 "함벽루" 측면 >
2층 누각에는 많은 사람들이 머물면서 해설사 한분이 이야기 하는 내용을 경청하고 있어 나도 그들과 함께 잠깐 해설을 들어보기로 하는데, 이미 모든 해설을 끝내면서 누각 중앙에 붙어있는 남명 조식 선생님의 한시(漢詩)를 읽으면서 그 뜻을 해석하기 시작하지만 현판에 붙어있는 한자가 너무나 난이하여 나에게는 "소귀에 경" 읽은 소리로 들린다.
- 남명 선생님의 "함벽루" 한시를 옮겨보면 :
상비남곽자(喪非南郭子) : 남곽자(南郭子) 처럼 무아지경에 이르진 못해도
강수묘무지(江水渺無知) : 흐르는 강물 아득하여 끝을 알수가 없구나.
욕학부운사(欲學浮雲事) : 얽매임 없이 흘려가는 뜬구름의 일을 배우고자 하나
고풍유파지(高風猶破之) : 오히려 높다란 바람이 흩어 버리네.
< 남명 "조식" 선생님의 한시 >
이밖에 퇴계 이황 선생님의 시와 더불어 우암 송시열 선생님의 답사기 및 다양한 사람들의 탐방기 등을 구경 함과 동시에 누(樓) 마루에 서서 흘러가는 강물 모습과 더불어 그 뒤편으로 펼쳐지고 있는 정양호 방향의 풍경에도 도취하고 있으니, 해설사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은 구름같이 살아지고 혼자 남아 멍하게 무한정 세월의 끝을 잡아본다.
< 퇴계 "이황" 선생님의 한시 >
< 우암 "송시열" 선생님의 답사기 >
< 기타 다양한 시인 묵객들의 "탐방기" >
< 함벽루 2층 누각에서 바라보는 "황강" >
< 함벽루 앞에 흐르는 황강 변에 조성하고 있는 "산책로" >
그러고 나서 함벽루 바로 옆에 붙어서 건축되어져 있는 사찰 연호사(烟湖寺)로 올라가 보기로 하는데, 사찰은 함백루와 같은 건물인 것과 같이 황강 기슭에 나란하게 자리하고 있는 반면에 일반 사찰과는 차별나게 너무나 협소한 공간이다 보니 건물과 건물 사이의 지붕들이 상호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 함벽루에서 바라보는 "연호사" 전경 >
연호사는 전통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로써, 대야성 전투에서 숨진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딸 고타소랑의 가족과 함께 전사한 2천여명 군사의 영혼을 위로 하기 위하여 후대에 원사로 추대 되어지는 "와우선사" 가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연호사 본찰이 되는 "극락전(極樂殿)" 이 높은 축대 위에 자리하므로 양쪽으로 만들어져 있는 계단을 이용하여 본찰로 올라가니 몇명의 스님들이 신도들과 함께 염불을 외우고 있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나 청아하면서 하모니(Harmony)를 형성하여 황강의 물결 위로 번져 나가고 있으므로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일어나 행동을 어둔하게 만든다.
< 본당에 되는 "연호사" 현판 >
< 처마 밑에 있는 또 다른 현판이 되는 "극락전" >
< 극락전 불상 앞에서 염불을 올리는 "스님" >
연호사는 한국 경제의 중추적인 역활을 하였던 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본부인이 되는 "김호남" 여사가 머물었던 곳으로 김호남 여사는 1920년 선산의 학자 집안에서 태어나서 17세가 되어지는 1936년도에 3살 위가 되는 박정희와 결혼하여 14년간 함께 살다가 1950년 이혼하였으며, 슬하에는 박재옥이라는 여식 한명을 두었다고 한다.
김호남 여사는 박정희에게 이혼을 당한 후 승려가 되어 합천 해인사의 한 암자에 잠시 머물다가 다시 이곳 연호사로 내려와서 1966년도 까지 고양주로 기거하므로 인하여 연호사가 다소 유명한 사찰이 되었지만, 청와대 압력으로 부산으로 거쳐를 이동하여 다소 부유하게는 살았지만 1991년에 작고한 비운의 여인이 되어진다.
이렇게 역사적인 발자취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연호사 경내를 구경하여 보는데, 작은 마당 앞에는 2층의 요사채 건물과 함께 범종각(梵鐘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본당 좌측편 언덕 위에는 삼성각(三聖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 매우 협소한 사찰이 되어진다.
< 극락전 앞에 있는 "범종각" 건물 >
< 본당 왼편에 있으면서 한글로 쓴 "삼성각" >
경내를 떠나기 위하여 다시 함벽루를 지나면서 황강 따라 만들어져 있는 산책길 따라 조금 걸어가면 주차장에 도착하여 지면서 주차장 언저리에 연호사와 연계 되는 요사채 건물을 새롭게 신축하고 있는데, 아마 본찰이 되는 연호사 경내에는 건물을 신축 할 부지가 없으므로 인하여 사찰과 다소 떨어진 곳에서 확장을 추진하고 있는 것 같다.
< 연호사 경내에서 바라보는 "함벽루" >
< 함벽루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산책길" 과 황강 하류 방향 >
< 주차장 인근 새롭게 신축하고 있는 "요사채" >
< 요사채 앞 담벼락에서 "함백루" 까지의 거리 표시 >
오늘 이렇게 합천의 명소가 되는 함벽루와 연호사 경내를 구경하여 보지만, 함벽루와 연호사를 품고 있는 대야성 성곽을 함께 관람하지 못하고 떠나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다소 혼란이 일어나는 관광이 되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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