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둘째날 : 8월 22일.(토요일) 4) 해인사 산내 암자를 돌아보면서. (5) 원당암의 탐방. 홍제암 주차장을 떠난 일행은 조금 전에 통과하였던 3거리에서 왼편으로 달마선원(達磨禪院) 및 '원당암(願堂庵)' 을 가르키는 이정표 따라 조금 들어가는데, 암자의 입구에서 부터 급경사의 오르막 길로 올라가면 종무소와 함께 하는 넓은 주차장에 도착이 된다. < '원당암 및 달마선원' 을 가르키는 입석 > < 주차장 입구에 있는 '원당암' 종무소 > < 주차장 주변에 있는 '요사채' 건물 > 많은 차량과 함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서 급경사의 오르막 길 따라 조금 걸어가면 심검당(尋劍堂)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신검당 건물 뒤편으로 돌아서 가면 원당암에서 주불은 모시고 있는 '보광전(普光殿)' 건물과 더불어 보광전 앞 보물 제518호가 되는 '점판석 다층탑 및 석등' 이 자리하고 있다. < 경내 입구에 있는 '심검당' 건물 > < 심검당 뒤편에 있는 '경내' 전경 > < 주불을 모시고 있는 '보광전' > 원당암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에 따르면 원당암은 신라 왕실의 원찰(元刹)로 세운 매우 큰 사찰이었는데, 해인사의 본당이 되는 대적광전과 마주 보이는 비봉산 중터에 건립한 사찰로 본래의 이름은 '봉서사(鳳棲寺)' 이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이 암자는 해인사 건립을 위하여 기초 작업장 역할을 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본찰이 되는 보광전은 해인사 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또한 역사가 오래 됨으로 인하여 풍부한 사적과 더불어 몇 차례의 중수한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세조 임금 때에는 학조대사가 오랫 동안 주석하였으며 철종 3년(1852년)에 우룡스님이 중수하였으며 고종 11년(1874년)에는 비구니 스님이 되는 성주스님이 다시 중수하였고, 근대에 이르러 해운스님과 혜암스님께서 도량의 변모를 일신시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 보광전 오른편에 있는 '점화실' > 보광전 건물을 중심으로 튼 'ㅁ자' 형태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전면에는 원당(願堂)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좌측에는 조금 전에 통과한 심검당과 우측 상단에는 점화실(坫花室) 및 하단에는 무설설(無說說) 건물이 나란하게 자리하고 있다. < 튼 'ㅁ' 자 형태로 건립된 원당암 전경 > 보광전 뒤편으로 연결하는 높은 계단으로 올라가면 미소굴(微笑窟) 이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미소굴 내에는 이곳 원당암을 주석하였던 혜암스님이 남긴 사리와 유품을 모시고 있는 건물인데, 건물의 왼편에 있는 높은 기둥에 '공부하다가 죽어라' 라고 쓴 혜암스님의 글씨가 이색적이다. < 혜암스님의 유퓸을 모시고 있는 '미소굴' > < 혜암스님의 쓴 '명언' > 다시 미소굴 왼편으로 올라가면 원당암에서 제일 높은 곳에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전망대에는 가야산의 전도(全圖)를 비롯하여 해인사의 풍경이 눈 앞에 머물고 있다. < 전망대에서 내려보는 '원당암' > <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가야산 및 해인사' 전경 > 전망대에서 왼편 골짜기로 이동하면 달마선원(達磨禪院) 이라는 건물을 만나는데, 달마선원은 혜암스님에게 생전에 재가 불자들에게 참선을 가르칠려고 건축한 시민 선방으로 스님께서는 1996년 가을 부터 이곳에 머물려면서 대중에게 참선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 경내 제일 안쪽에 있는 '달마선원' > 이렇게 간단하게 원담암을 돌아보고 나서 암자의 왼편 방향으로 내려오면 공앙간 건물을 비롯한 다양한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원당암은 상당하게 큰 규모를 가진 암자이라 하겠다. (6) 금강굴의 탐방. 원당암을 떠난 일행은 해인사 경내를 벗어나면서 해인사 성보박물관 우측 야산 언저리에 있는 보현암과 금강굴을 방문하여 보기로 하는데, 다리 입구에 금강굴과 보현암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입석에서 지시하는 방향에 따라 야산의 기슭로 올라가면 보현암 앞에 작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 '금강굴 및 보현암' 을 가르키는 입석 > 입구에 있는 보현암을 먼저 관람하여 볼려고 하는데, 입구에서 여가를 즐기는 한 보살이 보현암은 현재 하안거(夏安居) 기간이라 관람이 불가능하다고 하여 보현암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는 금강굴(金鋼窟)만 돌아보기로 한다. < 하안거로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보현암' > 보현암 앞으로 이어지는 도로 따라 조금 걸어 내부로 들어가면 금강굴이라고 새겨져 있는 입석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 금강굴도 보현암과 유사하게 1976년 창건한 비구니 스님의 수행처로써 원래 이곳의 지명이 오가리(五佳里)이라고 하였다. < 보현암 안쪽에 있는 '금강굴' > 오가리는 다섯가지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뜻 이라고 하는데, 다섯가지 아름다움 이라는 것은 산의 왼편으로 펼쳐지고 있는 가야산의 좌청룡, 산의 오른편으로 펼쳐지는 남산제일봉의 우백호, 눈 앞으로 펼쳐지는 홍류동 전경, 문수보살의 정진, 보현보살의 교화 등 다섯가지를 말한다고 한다. 경내로 들어가면 입구에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그 옆으로 암자의 중심 지점에 본찰이 되는 '금강보전(金鋼寶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금강보전 건물 앞에는 2그루의 백송이 성장하면서 가지에는 다소 흰색을 나타내고 있다. < 금강굴 입구에 있는 '요사채' 건물 > < 주불을 모시고 있는 '금강보전' > < 금강보전 앞에 자라고 있는 '백송' > 금강보전 건물 내부에는 아담한 기도처와 함께 전면에 부처님을 모시고 있고, 왼편으로 성철스님의 사진이 함께 하고 있어 여기가 성철스님의 여식이 되는 불필스님이 계시는 곳이라는 것을 무언으로 말하여 주는 것 같다. < 금강보전 내에 모시고 있는 '부처님 및 성철스님' 영정 사진 > 이곳 금감굴 마당에서 왼편의 가야산 방행으로 바라보면 산의 7-8부 능선에 백련암이 자리하고 있는데, 금강굴에 상주하는 불필스님은 살아생전 매일 성철스님의 먼 그림자를 보다가 성철스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부터 법당에 사진으로 모시면서 매일 대면하고 있는 것 같다. < 금강굴 마당에서 바라보는 '백련암' > 불필스님은 성철스님이 출가를 하신 후 태어난 두번째 딸이다 보니 '필요 없는 딸' 이라는 뜻을 가진 불필(不必)이라는 법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딸이 아버지에게 법명을 받는날 '하필이면 왜 불필' 이라고 하는가를 물어보니 '하필(何必)을 알면 불필의 의미를 알게 될 것' 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금강보전 건물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스님들의 수행처가 되면서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과 함께 문수원(文殊院)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금강굴도 보현암과 같이 너무나 조용하면서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그 때 요사채에서 머물고 있다가 다수의 신도를 인솔하면서 금강보전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다소 키가 적으면서 70세 중반의 여승 한분이 불필스님인 것 같는데, 신도와의 대화를 중단시키면서 까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다는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금강굴을 떠나기로 한다. - 둘째날 4부 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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