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6일 (수요일)
경기도 수원시가 보유하고 있는 "화성(華城)과 화성행궁(華城行宮)" 을 걸어보기 위하여 집에서 새벽 별을 보고 출발하여 겨우 12시 정각 수원역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화성의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장안공원으로 이동하는데, 오늘 함께 동행하면서 해설을 하겠다는 2명의 대학교 동문과 만남이 먼저 이루어진다.

< 동문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안공원" >
화성과 화성행궁 한바퀴를 돌아보기 위해서는 왕성한 체력의 바탕이 필요하므로 장안공원 옆에 있는 화서문을 통과하면서, 출발에 앞서 화서문 입구에 있는 한 식당으로 들어가 돼지국밥과 더불어 반주로 막걸리 2병으로 배를 든든하게 만든다.
1. 수원화성,
오늘 약 4시간의 여유를 가지면서 트레킹 할려고 하는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된 성(城)으로써, 정조대왕이 아버지 장헌세자(일명 :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으로 부친의 원침을 수원 화산으로 옮기므로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1796년 9월 까지 약 2년 9개월의 공사기간으로 완공한 계획적이면서 역사적 산성(山城)이라고 한다.
산성의 둘레가 약 5.7Km에 성곽의 높이가 4-6m, 총 면적 130ha 로써 조선시대의 실학자 유형원과 장약용이 설계하였고, 석재와 벽돌의 병용, 화살과 청검, 총포를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용재를 규격화하고 거중기(巨重機) 등의 새로운 기재를 이용하여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축조하여 건축사(建築史)의 독보적인 건축물로 평가 받는 곳이지만 이후 200여 년 동안 성곽과 시설물이 파손되어 무너지기도 하고, 특히 한국전쟁을 꺽으면서 크게 훼손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초기 축조 상황을 기록하여 놓은 "화성성역의궤" 에 따라 1975년 부터 보수 및 복원을 시작하여 현재 까지 부분적으로 보수하고 있으며, 1997년 12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21차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진 사적이다.

< 화성이 "세계문화유산" 으로 등제하고 있다는 입석 >
화성에는 동서남북 4개의 "관문(關門)" 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처음 출발하는 서쪽 화서문을 비롯하여 화성의 중심적 관문 역활을 하고 있는 남쪽의 팔달문, 북쪽의 장안문, 동쪽의 창룡문으로 만들어져 있어 먼저 보물 제403호 "화서문(華西門)" 으로 들어가 내부를 관람하여 본다.

< 출발지 "화서문" 과 동문 해설사 >
비록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파손되어 화성성역의궤에 표시하고 있는 도면과 그림 따라 새롭게 신축되어진 건물이지만, 좌우로 높은 성곽을 두면서 건축되어져 있는 건물이 매우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관문이다.
화서문에서 부터 다소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되어있는 성곽 따라 고도를 상승하면 성곽 밖으로는 북쪽의 수원시가지 빌딩들이 점점 낮아지고 있으며, 성곽 내부로는 울창한 숲이 형성되는 자연 녹지지대가 펼쳐진다.

< 화서문에서 성곽 따라 걷는 "트레킹 길" >
2명의 친구를 앞 세우고 천천히 뒤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면 언덕의 중간 지점에 "서북각루(西北角樓)" 가 나타나므로 각루로 들어가 구경하는데, 화성에는 동남각루, 동북각루, 서남각루, 서북각루 등 4개의 각루가 만들어져 있다.
각루는 군사적인 요새지(要塞地)에 루각을 세워 주변을 감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군사들의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건축물이다.

< 주변을 감시하는 "서북각루" >
이 각루를 통과하여 계속적으로 올라가면 "서일치(西一雉)" 를 만나는데, 치(雉)는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애서 바깥으로 돌출하여진 구조물로써 성벽 가까이로 접근하는 적군을 감시하고 공격하기 위한 시설물이다.

< 성곽 밖으로 돌출하여 나간 "치" 모습 >
화성에는 이런 치가 모두 10개가 조성되어 있으면서 치의 이름은 방향과 숫자로 표기 하였는데, 그 이름을 동일치, 동이치, 동삼치, 서일치, 서이치, 서삼치, 서남일치, 서남이치, 남치, 북동치로 만들어져 있다.
치를 통과하면서 천천히 걸어 고도를 상승하면 밖에서 보면 3층의 건물 "서포루(西砲樓)" 가 나타나는데, 이 포루는 벽돌을 사용하여 만든 포루로써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복동포루, 복서포루 등 5곳이 자리잡고 있다.
포루는 지대 위에 대포를 발사하기 위하여 구멍으로 되어진 혈석(穴石)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혈석은 전면에 2개 및 좌우에 각각 3개의 구멍으로 되어있어 효과적인 공격으로 적을 타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포루의 아래 방향에는 돌로 쌓고 중간부분은 벽돌로 축조하면서 그 위에 집을 짖고 판자를 깔아 문루를 만들면서 문루 좌우에는 활을 쏘는 구멍도 만들고 있는데, 화성에는 동일포루, 동이포루, 동북포루, 서포루, 북포루 등 5개의 포루가 만들어져 있다.
< 대포를 발사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서포루" >
또 다시 오솔길 따라 고도를 상승하여 서이치를 통과하면서 수원화성이 최고 정점이 되는 해발 128m "팔달산(八達山)" 정상에 도착하는데, 정상에는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장소에 각종 시설물과 전망대, 의자들이 만들어져 있다.
정상부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서노대(西弩臺)" 로써 노대는 벽돌로 쌓은 높은 탑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노대 위에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면서 적의 공격에 대한 방어시설로 산 꼭지점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곳에 있는 서노대와 더불어 또 다른 하나의 동북노대는 치(雉) 위에 조성되어 있다.
<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노대" >
이 서노대 앞에 화성의 최고 높은 곳에 전망대 역활을 하면서 군사를 총 지휘하는 본부의 건물 "서장대(西將臺)" 가 자리잡고 있는데,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등 2개의 장대가 만들어져 있으면서 장대에서의 주변 경관이 사방 100리가 한 눈에 보이는 곳 이다.
<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와 서노대" >
정조대왕은 화산에 있는 아바지 사도세자 무덤을 참배 햘려고 수원을 방문 할 때 마다 이곳 서장대로 올라와 직접 군사를 지휘하였다고 하며, 현재 서장대 전면에 붙어있는 현판은 정조대왕이 직접 쓴 글씨라고 한다.
< 정조대왕이 쓴 "화성장대" 현판 앞에 선 동문 >
서장대 건물은 2층으로 만들어져 있어 사방으로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곳이지만 더위를 식히기 위하여 다수의 아낙내들이 마루에 누워 여가를 즐리고 있어 2층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장대 앞에 있는 안전 난간에 기대서서 주변 조망을 구경하여 본다.
멀리 광교산 지맥들이 병풍과 같이 둘려쳐 있는 산맥 앞으로 수원시가지 건물들이 높이를 자랑하고 있으며, 발 아래으로는 산성 내부의 시가지와 더불어 거대한 "화성행궁(華城行宮)" 건물이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다.
< 서장대 앞 안전 난간대에서 바라보는 "수원" 시가지 >
< 서장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화성행궁" >
많은 수원 시민들이 올라와 저마다 여가를 즐기는 모습과 수원시가지 풍경을 구경하는 여유를 조금 가지다가 주어진 시간으로 옆으로 나아가니 수원 시민들의 효(孝)를 상징하는 "효원의 종각"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1.000원의 비용을 지불하면 종을 한번 타종하면서 소원을 빌 수 있다고 한다.
이 효원의 종각 앞에 "서암문(西暗門)" 이 나타나면서 암문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만들어 적에게 들키지 않고 군수물자를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든 군사시설로 유사 시에 문을 닫고 주변에 쌓아둔 돌과 흙으로 암문을 패쇄하는데, 화성에는 동암문, 서암문, 서남암문, 북암문 등 4개의 암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 효원의 종 앞에 있는 서암문" 으로 내려가는 입구 >
이 암문 밖으로 나아가면 높은 성벽을 형성하고 있는 바위에는 역사의 세월을 말하여 주는듯 이끼와 검은색으로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그 앞으로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울칭한 숲속으로 오솔길이 연결된다.
< 서암문으로 나아가서 보는 "외부 성곽" 모습 >
< 암문으로 연결하는 "오솔길" >
서암문에서 조그만 앞으로 전진하면 입장료 1.000원을 받는 구간 매표소가 나타나는데, 입장료 지불이 싫으면 성곽 외부로 연결되는 암문길로 돌아서가면 약간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지만 인간의 정도가 아니라 당당하게 비용을 지불한다.
매표소에서 부터 성곽 길은 내리막 길이 되므로 훨신 편리하면서 무아지경으로 내려가면 "서포루(西鋪樓)" 건물이 나타나는데, 서포루는 치 위에 설치한 루(樓)로써 군사들의 대기 또는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면서 유사 시에는 감시와 공격을 위하여 쓰이기도 하는 루각이다.
포루는 아래쪽은 돌로 쌓고 중간부분은 벽돌로 축조하면서 그 위에 집을 짖고 판자를 깔아 문루를 설치하면서 문루 좌우에는 활을 쏘는 구멍도 만들고 있는데, 화성에는 동일포루, 동이포루, 동북포루, 서포루, 북포루 등 5개의 포루가 만들어져 있다.
< 군사들의 휴식 장소로 사용하는 "서포루" >
계속하여 내려가면 서삼치와 서남암문을 연속적으로 만나면서 서남암문을 통과하여 성곽 밖으로 나아가면 별도의 혹 같은 조그마한 외곽성이 붙어있는데, 그 외곽성에는 서남일치, 서남각루, 서남이치 등 3개의 망루가 만들어져 있다.
< 서장대에서 내려가는 "성곽 길" >
< 별도의 외곽성으로 나아가는 "서남암문" >
< 급경사의 하산길에서 만나는 "남포루" >
이어 급경사의 계단길로 내려가면 남포루와 남치를 만나면서 조금 하산하면 산성 내에 주민들이 살고 있는 건물 숲에 도착하면서 화성의 Main 관문 "팔달문(八達門)" 에 도착하는데, 팔달문은 로타리 중앙에 석돌로 만들어진 무지개 같은 석문 위에 목조의 2층 문루를 축조하였으며 전면에는 반월형의 웅상이 쌓여있다.
< "팔달문" 주변을 형성하고 있는 수원시가지 >
목조 건물은 우진각 지붕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건물의 공포는 다포식을 만들어져 있는데, 건물 외곽에는 최근에 새롭게 단청을 칠하였는지 매우 산뜻한 모습의 건물이 된다.
< 새롭게 단청을 칠한 "팔달문" 전경 >
팔달문에서 장안문으로 가는 메인 도로의 신호등 건널목을 건너가면 팔달문 반대편 주변에는 3개의 시장(팔달문시장, 지동시장, 수원염통시장)이 인접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므로 매우 번잡한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 "팔달문시장" 으로 들어가는 길 >
< "지동시장" 으로 들어가는 입구 >
이 팔달문시장의 주 통로를 통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정조대왕이 술상을 차려놓고 지나가는 과객들에서 "술에 취하지 않고는 돌아가지 말아라" 는 뜻을 가진 "불취무귀(不醉無歸)" 라는 입석과 함께 정조대왕 마주 앉아 술을 권하는 동상을 있어, 화성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정조대왕이 하사하는 술 한잔을 받는 모습으로 사진 촬영이 여념이 없다.
< "불취무귀" 를 설명하고 있는 입석 >
< "정조대왕" 의 하사 술을 받으면서 >
이 동상 앞으로 "유상박물관(柳商博物館)" 이라는 현판에 붙어있는 건물을 만나는데, 옛날 화성 내에 사는 빈곤한 선비들에게 생계의 수단으로 일정한 세금을 부여하고 천민이나 상인들이 하는 장사를 할 수 있도록 권리를 획득하여 영업하였던 장소라고 하면서 내부에 전시하고 있는 자료가 다소 빈약하다고 해설사 동문이 설명하여 준다.
< "유상박물관" 으로 들어가는 문 >
시장을 지나면서 수원시 정 중앙을 통과하는 수원천에 도착하는데, 이곳의 성곽은 강으로 침투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9개의 좁은 홍예문 다리 교각으로 만들어져 있으나 루각은 없는 평교의 성곽이 연결된다.
여기에서 부터 성곽은 화성(華城)의 반(半)을 통과하면서 남쪽의 성은 다소 높은 평지형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걷기에는 많이 편리하지만, 나무 그늘이 없는 시멘트 포장길 위로 걷다보니 서쪽으로 넘어가는 태양 빛의 열기로 다소 지친몸이 된다.
< 남쪽 방향의 "성곽" 으로 다시 올라가는 길 >
< 강력한 햇빛을 받으면서 걷는 "성곽 길" >
남쪽 방향으로 만들어진 성곽도 지금까지 왔던 것과 동일하게 먼저 동남각루, 동삼치, 동이포루가 나타나고 그 다음으로 "봉돈(烽墩)" 이 나타나는데, 봉돈은 비상 사태를 알리는 통신시설로써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벽돌을 쌓고 그 위에 5개의 화두(火竇)를 쌓았으며 성벽에 총안(銃眼)을 두어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 비상 사태를 알리는 통신시설의 "봉돈" >
그 옆으로 동이치, 동포루, 동일치, 동이포루 등 용도별 성곽의 방어시설이 Zig-Zag 식으로 배치하므로써, 효과적으로 내성을 보호하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더욱 더 앞으로 나아가면 4대문 중 또 다른 하나의 문 "창룡문(蒼龍門)" 에 이른다.
< 화성의 동쪽 방향으로 출입하는 "창룡문" >
이 창룡문에서 성내를 바라보면 시원하게 뚫린 도로와 더불어 넓은 광장 뒤편으로 동장대 건물이 내려다 보이는데, 동장대 앞 주차장에는 화성을 관람하기 위하여 방문한 손님들이 타고온 버스가 도열하고 있으며 인접하게 국궁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대에 올라서서 활을 쏘면서 옛 궁중 놀이 체험에 전념하고 있는 모습이 아련하게 보인다.
< 많은 관광버스가 기다리는 "광장" >
창룡문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동북노대와 더불어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 을 만나는데, 공심돈은 군사가 안으로 들어가 적을 살필 수 있게 만든 망루의 일종으로 서북공심돈와 함께 2개의 공심돈이 자리잡고 있다.
< 멀리서 바라보는 "동북공심돈" >
이곳 동북공심돈은 수원 화성에서 가장 특이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중국 요동지방에 있는 평돈(平燉)을 모방하여 벽돌로 둥그렇게 돈대를 쌓아 만들었고, 내부는 미로와 같은 통로를 통하여 루각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동북공심돈에서 조금 내려서면 "동장대(東將臺)" 에 도착하는데, 동장대는 많은 군사를 동시에 훈련을 하기 위하여 넓은 마당을 가지므로 일명 연무대(鍊武臺)라고도 하며 이곳 동정대 루각에도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군사를 훈련하는 "동장대" >
< 창룡문에서 바라보는 "동장대" 전경 >
그런데 이 동장대 앞에서 화성 내를 운행하는 명물의 관광열차가 운행하고 있는데, 더위로 인하여 걷기가 싫은 사람이나 어린이들이 많이 애용하는 열차로써 열차 앞부분은 정조대왕의 용맹성을 나타내는 용(龍)의 형상으로 되어 있으며 동장대 앞 승차장에서 열차가 수시로 출발하고 있다.
< 동장문 정문에서 출발하는 "관광열차" >
동장대 옆으로 동암문, 동북포루, 북암문을 통과하면 화성에 제일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보물 제 1704호 "동북각루(일명 : 방화수류정)" 에 도착하는데, 여기 루각에도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으며 각루 밖으로는 아름다운 호수와 함께 분수대에서 물을 뿜고 있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거닐고 있다.
< "동북포루" 로 올라가는 트레킹 길 >
< 화성에서 제일 아름다운 "동북각루" >
< 동북각루의 밖에 있는 "연못" >
이 동북각루에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면 광교산에 흘려내리는 물이 수원시가지를 관통하여 남쪽으로 흐르는 수원천을 만나는데, 이 수원천 위에도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화홍문(華虹門)" 이 건축되어 있으며 이 화홍문은 일명 북수문(北水門)이라고도 하며 다리 교각에는 7칸의 홍예문을 두고 있다.
< 수원천 위에 있는 "화홍문" >
< 산책길로 잘 가꾸어진 "수원천과 동북각루" 전경 >
여기에서 계속하여 앞으로 나아가면 북동포루, 북동치, 북동적대와 더불어 수원의 북쪽 출입을 관리하는 장안문(長安門)을 만나고, 연이어 북서적대, 북서포루, 북포루, 서북공심돈(보물 제1710호) 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옆으로 아침에 친구와 만남이 이루어진 장안공원이 펼쳐진다.
화홍문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수원 천변 따라 시내로 들어가는데, 그 이유는 나머지 문과 시설물들이 지금까지 본 성곽과 동일하므로 "화성행궁" 에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위하여 지름길을 선택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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