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일본 등산)

일본 규슈 섬 내의 가고시마 현에 있는 "한국악" 등산과 더불어 여행 내용을 기록하여 보면.

용암2000 2010. 2. 6. 02:31

* 백봉회의 현황.

대구광역시에 있는 계성고등학교 제56회 졸업생 중 40대 초반이 되는 1992년 4월 노후에 건전한 정신 및 건강한 육체를 영위하기 위하여 산헹을 함께 하자는 의견 일치로 매월 1회 모임을 시작하기로 하였는데, 1차의 산행은 100개 산을 목표로 잡고 산행을 추진하여 보자는 뜻이 포함한 "백봉회(白峰會)" 라 칭하면서 산을 찾기 시작하였다.

2010년 현재 목표의 산행 수 보다 2배나 더 초과하여 200회 등정도 무사히 마치고, 아직도 몇몇 회원들이 활발하게 산을 찾고 있어 경의를 표한다.

백봉회 회원 중 다수의 맴버(Member)는 몇년 전 중국을 다녀오고 나서 해외 등산은 약간 중단된 상태로 머물다가 다시 한번 더 추진하자는 뜻이 모아지는데, 산행 장소로 일본 규슈지역에 있는 "한국악(韓國岳)" 이라는 산을 선정하여 3박4일간 일정으로 계획하여 본다.

규슈는 일본 최남단에 있는 크다란 섬 중에 하나인데, 규슈 내에는 8개의 현(縣)을 가지고 있으면서 남한 땅의 반 보다는 약간 작은 약 4만4천 평방키로메터(km²)의 넓이를 가진 섬이다. 

 

1, 첫째날 : 2010년 1월 28일.

2010년 1월 28일 오후 4시 단촐한 회원으로 구성된 11명은 대구법원 앞에 집결하면서 2대의 승용차와 승합차를 이용하여 부산광역시로 출발하여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에 도착을 한다.

오후 7시 부터 시작하는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서 2만톤 급 "뉴 카메리아(New Camellia)" 호 여객선에 몸을 의존하여 보는데. 부산에서 일본 규슈지역에 있는 "후쿠오카" 까지 선편 요금은 대인 왕복을 기준으로 1등실(4인 침대) 에는 228.000원 요금을 지불하고, 배에 오르니  한국 사람들 만 승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잃어버린 10년이 지나가고 새로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다고 큰소리 친 일본이 다시 기나긴 경제 불황으로 들어가고 있는 분위기가 묻어나는 듯 일본 관광객들은 거의 보이지가 않는다.

이번 산행을 계획한 "오태원" 원장의 세심한 스케줄(Schedule)에 따라 각자의 숙소 배정을 마치고, 레스토랑에 모여서 즐거운 저녁식사의 시간을 가져본다.

식사와 더불어 이번 등정을 추진한 "김윤" 단장이 등산에 있어서 주의점과 더불어 여행의 필요성을 설명하는데, 유종의 미(美)를 가지면서 안전한 산행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기다란 연설로 인하여 동문들은 일치 단결로 아낌없는 박수로 보답하여 본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10시 30분 경 여객선은 서서히 기동(起動)하면서 긴 여운의 고동을 울리고 나서 부산항 부두에서 닻(Anchor)을 올린다.

 

< "부산항" 의 야경을 멀리하고 >

 

일부 동문들은 데크(Deck)로 올라가 멀어져가는 부산항 야경(夜景)에 심취하여 보지만 아직도 한국의 매서운 겨울 바람이 옷깃을 세우기에 충분한 바람이 불고있어, 데크에서 야경의 구경도 곤역이 따르므로 이내 선실로 들어가기로 한다.

4인용 다담이 방으로 꾸며져 있는 선실에 옹기종기 모여 각자 준비하여 오신 막걸리와 안주로 기나긴 겨울 밤 이야기를 엮어보는데, 참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들이 긴 웃슴 속으로 묻혀진다.

 

2. 둘째날 : 2010년 1월 29일.  

아침 5시 경 여객선은 후쿠오까 부두에 도착하지만 부두 직원의 출근을 위하여 하선시키지 않고 장시간 대기시간을 가지고 나서 아침 8시 부터 하선을 시키는데, 우리 일행은 선상의 식당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하선하여 터미널로 나오니까 25인승 승합차 기사님이 대기하고 있다.

초면의 기사분과 간단한 인사와 더불어 여행 Schedule을 협의하고 나서, 승합차는 후쿠오까 외곽도로를 이용하여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달려가는 고속도로 가장자리에는 기름진 농촌 들렼과 더불어 전통적인 일본 가옥이 한폭의 풍경화와 같이 스쳐 지나가고 있는데, 멀리 보이는 야산(野山)에는 수십 년이 되는 아름들이 삼나무 숲이 너무나 빽빽하게 자라고 있어 한국의 농촌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산천을 보유하고 있다.     

기사님의 철두철미한 안전 운전과 더불어 잠깐씩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려 약간의 휴식 시간을 가지고 나서 약 4시간 정도 운전 끝에 가고시마 현에 있는 "에비노" Toll Gate를 통과하여 한적한 지방도로에 들어선다.

 

<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바라보는 "삼나무" 숲 >

 

도로 가장자리에 있는 한 상점에서 점심용 도시락을 구입하고 나서 일본 국립공원 제1호가 되는 "에비노 고원(高原)" 과 "한국악(韓國岳)" 산이 있는 산자락으로 들어가는데, 산자락 곳곳에는 온천에서 솟아나는 증기가 운전을 방해 할 정도로 뿜아내고 있다.

 

<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 "에비노 고원" 이라고 표시한 나무기둥 >  

 

구비구비 산길을 올라가 해발 1.200m "에비노 고원" 에 들어서는데, 고원 내에서도 고불고불한 도로 따라 한참 돌아 한국악 등산의 시발 지점이 되는 산자락에 오후 1시 경에 도착한다.

마이크로 버스는 도로 변에 있는 전용 주차장으로 들어가 하차를 하는데, 기사분은 오늘 우리 일행이 오르고자 하는 한국악(韓國岳)을 배경으로 하여 먼저 기념사진 한장을 찍어준다.  

 

< 산행하기 전 "한국악" 을 배경으로 하여 >

 

일본인들은 산을 신성(神聖)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보니 한국에 있는 산과 같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지 않아 매우 한적한 산행의 들머리 길로 접어든다.

한 10분 정도 올라가면 좌측에는 "유황산" 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앞에 간이용 의자들이 놓여 있어 그곳 의자에서 오는 길에 구입한 도시락으로 간단하게 점심식사의 시간과 더불어 소주 한잔도 겸하여 본다.

 

< "유황산" 옆으로 걷고 있는 일행 >

 

간간히 산을 찾는 연인들이 손에 손을 잡고 지나가면서 낮선 사람들의 언어에 도취가 되는 듯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우리 일행의 통역관이 되는 "여영택" 사장 혼자서 일본어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여영택" 통역관은 일본에서 사업차 한 3년간 거주한 경험이 있는 동문.)

한국에서 가지고 간 소주로써 목에 기름을 한번 더 칠하고 나서 산의 고도를 상승하니까 에비노 고원 전경이 서서히 눈 아래로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풍경이 너무나 이색적인 자연의 모습이라 하겠다. 

 

< 산 위에서 본 버스 정류장과 "부동지" 분화구 >

 

고원은 수십만 평 평원을 이루고 있으며 한쪽에는 넓은 골프(Golf) 장과 더불어 콘도 건물이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고, 산의 중터에는 아름다운 분화구 호수가 푸른 물을 가득히 담고 있는 모습이 눈 앞에 머물면서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 콘도와 해발 1.200m "에비노 고원" 의 전경 >

 

< 콘도 뒤편 산 정상 부근에 있는 "분화구" >

 

올라가는 길가에는 작은 잡목이 우거진 오솔길 따라 조금 올라가다 보니 이내 산행 길은 용암이 흘려 내려온 자갈 길로 만들어져 있어 걷기가 무척이나 불편하게 만든다.

 

< "한국악" 으로 올라가는 자갈 길 >

 

조금 만 방심하면 돌에 낙상 할 수 있어 안전을 우선으로 하여 약 1시간 30분 정도 올라가면 거대한 분화구 입구에 이르는데, 분화구 입구 가장자리에서 분화구 바닥을 내려다 보니 현기증이 나타날 정도로 급경사의 낭떠리지가 된다.

분화구 크기가 지름이 약 900m 이고 깊이가 300m 이라고 하는데, 너무나 직벽(直壁)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분화구 주변에는 안전 휀스도 없이 자연적으로 노출되어 있어 바닥을 내려다 본다는 것은 바로 고통으로 직결되므로 먼 발치에서 하구 내부를 바라보니 내부에는 물이 거의 없이 건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 한국악 정상에 있는 거대한 "분화구" >

 

한국악 정상은 한국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白鹿潭)과 같이 많이 유사하지만, 크기에서 둘레와 깊이가 2배가 넘을 정도로 거대한 분화구를 가진 산이다.

여기서 한국악 정상으로 가는 길은 분화구 외곽 오른쪽을 빙돌게 되어 있어 20분 정도 산의 반바퀴 정도 돌아가면 해발 1.700m 한국악 정상이 보이는데, 정상 조금 아래 전체적인 산행 지도가 있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흘러내리는 용암 바위를 타고 올라가면 나무로 만들어진 한국악 정상이라고 표시한 안내판(案內板)이 먼 길을 찾아온 한국인의 나그네를 반겨준다.

 

< "한국악" 정상으로 올라가는 일행 >

 

< '한국악' 정상을 나타내는 안내판 >

 

안내판 뒤편에도 안전 휀스가 없이 자연 상태로 방치가 되어져 있어 매우 위험한 장소가 되지만 아직도 이곳에서 추락 사고가 한 건도 발생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것이 너무나 이상하게 만든다.

만약 한국에서 이렇게 위험한 낭떠리지에 안전 난간대를 설치하지 않고 자연 상태로 방치하고 있다면 아마 수십 명 정도 추락하여 천당으로 갈 정도로 위험한 장소 같은데....  참 일본인들의 안전 의식에 부려움이 일어나게 한다. 

어쩌든 오늘 일본 국립공원 제1호가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본토의 중심지에 있는 후지산이 아니고, 일본에서 제일 남쪽 방향에 있는 한국악이 일본의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이 된 것을 보면 한국악의 조망과 풍경이 얼마나 좋은지를 알게 하리라. 

그러고 이곳의 산 이름을 "한국악(가라쿠니다케)" 이라고 붙여진 것은 첫째로 날씨가 좋을 때 한국의 땅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곳의 산은 섬의 매우 아래 방향에 자리하므로 그것은 전적으로 거짖말이라 하겠다.

둘째로 옛날 불모로 이곳으로 잡혀온 "백제 및 가야인" 들이 높은 산까지 올라와 한국 방향으로 바라 보면서 향수에 젖어 들었다고 하여 한국악이라고 전해 내려오는 것이 정설인 것 같다. 

정상에 머물면서 우리 일행 전체가 모여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싶지만 겨울에도 평균 10도 정도 기온을 유지하는 규슈지역이지만, 이곳 한국악 정상은 해발 1.700m 고산(高山)이라 차거운 바람이 살곁을 파고 들어와 참기가 너무나 힘이 들어 몇몇 동문은 먼저 하산하고 나머지 동문만 정상 안내판을 배경으로 하여 기념사진 촬영을 가져본다.

 

< "한국악" 정상 안내판을 배경으로 > 

 

정상에서 좌측 방향으로는 아주 높은 다른 능선이 이어지면서 그 능선 중간지점에 물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분화구가 눈 앞에 보이고 있는데, 이곳의 능선은 한국악을 종주하는 등산 코스이지만 너무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전문 산악인들이 산행을 즐기는 코스이라고 한다.

 

< "한국악" 의 종주 길과 거대한 분화구 >

 

한국악 정상 바로 앞에는 또 다른 작은 능선이 이어지면서 거대한 분화구에 물이 고여 있는데, 중천에 떠 있는 태양의 빛이 호수에 반사되어 눈을 부시게 만든다.

 

< 태양의 빛이 반사하고 있는 "분화구" >

 

이곳 분화구를 지나면 사자호악(1,428m)이 높게 솟아있고 그 뒤 편으로 신연악(1,421m)으로 이어지는데, 연이어 중악(1,345m)을 돌아 온천지구로 가는 등산 길이 이어져 일부 산악인이 이용하지만 대부분 등산객들은 이곳 정상 한국악까지 왔다가 뒤돌아가는 코스로 산행하는 것이 기본적 산행코스이라 한다. 

우리 일행도 되돌아가는 길로 선정하여 뿔뿔이 정상을 벗어나면서 추위로 인하여 빠른 걸음으로 산 중터까지 내려서니까, 다소 포근한 봄 날씨가 이어지는듯 바람이 자지려 진다.

약 1시간 정도 잡목 사이로 이어지는 길 따라 내려가면 하산이 종료되는데, 하산 바로 직전 올라 올 때 스쳐 지나간 "유황산(硫黃山)" 방향으로 혼자서 올라가 보기로 한다.

 

< "유황산" 내부 등산 안내도 >

 

유황산에는 전부가 아름다운 바위로 이루어져 있지만 흙이 유황으로 덮혀 있어 풀과 나무가 전연 성장할 수 없는 벌거숭이 산이면서 분화구 중앙에 약간의 물이 고여 있는데, 그 주위에 살았다가 죽은 풀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 "유황" 으로 인하여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분화구 내부 >    

 

분화구의 정점인 가장자리 한 곳에 이 분화구의 정상을 나타나는 비석(碑石) 한기가 서 있고, 그 비석에서 다소 떨어진 주변에 돌 "하루방" 한기가 외롭게 서 있다.

 

< 유황산 분화구 주위에 있는 "비석" >

 

돌 하루방 주위에 먹다 남긴 캔과 휴지가 어지럽게 남겨져 있는데, 철두철미한 일본인들도 쓰레기를 아무 곳이나 버리고 간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 사람이 없는 곳에 쓰레기를 버리고 있는 "돌 하루방" 주위 풍경 >

 

혼자서 마이크로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여도 몇몇 일행이 하산하지 않아 주차장 인근에 있는 "부동지(不動池)" 분화구 쪽으로 또 다시 관람하여 보기로 한다.

이곳 부동지는 물의 깊이가 9.3m에 둘레가 700m 정도가 되는 분화구로써 물은 강 산성(酸性)으로 이루어져 있어 햇빛의 반사하는 각도에 따라 수시로 색갈이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로 인하여 매우 아름다운 코발트 색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에비노 고원 주위에 약 20여 개 분화구가 자리하고 있는데, 아직도 연기를 뿜고 있는 활화산(活火山)이 존재한다고 안내문에 기술되어 있다.

 

< 주차장 근교에 있는 "부동지" 분화구 >

 

< "부동지" 분화구 내역을 설명하는 안내문 >

 

오후 4시 30분 후미 마지막 일행이 도착 함으로써 승합차는 일행을 싣고 왔던 길의 반대 방향이 되는 미야쟈키 현(縣)으로 출발하는데, 처음에는 너무나 급경사의 커브 길로 내려간다.

산의 정상 부근에는 죽은 고사목들이 곳곳에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태백산에 있는 죽은 주목나무 군락지와 비슷한 형태로써 죽어 있는 나무의 숫자가 너무나 많아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약 30분 정도 커브 길을 내려 와서야 비로써 평지에 이르고 평지에서 다시 30분 정도 달려 "미야쟈기" 시(市)에 도착 되는데, 시내를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한 식당에 주차하여 저녁식사를 가져본다.

오늘의 저녁식사는 김 단장이 한번 쏜다는 예고에 따라 조금 값이 나가는 식당에서 부폐식으로 마음 것 일본 음식을 음미하기로 하는데, 수 많은 맥주병도 남기면서....

문제는 일본에 있는 대부분 식당에서는 신용카드가 사용되지 않아 양말 속에 숨겨온 돈까지 다 지불하므로써, 김 단장은 선물을 구입할 돈이 없어 빈손으로 집으로 들어갈려고 하니 Wife에게 다소 미안하게 만든다고 한다.

미야쟈끼 신궁역 앞에 있는 리치몬드(Richimond) 호텔에 여정을 풀고 무지하게 먹은 음식도 소화시키면서 시내 관광도 겸한 온천욕을 하기 위하여 천천히 걸어서 가는데, 미야자끼 시내가 무척이나 깨끗하다. 

사람이 통행하는 인도(人道)가 차량이 다니는 길 보다 더 넓은 길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의 시(市)에서는 걷는 사람 및 자전거의 천국으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한 20분 정도 걸어 온천장으로 들어가니까 남탕 탈의실 목욕탕에 종사하는 여직원이 부끄럼도 없이 출입하여 남자 거시기를 무의미하게 감상하는데, 그 중 경북 청도군에서 오신 한 아주머니도 있어 한국 말로 고향소식도 교환하여 본다.

       

3. 세째날 : 2010년 1월 30일.

전일 우리 일행을 안전하게 이동시켜준 기사님이 아침 일찍 9시 정각 호텔(Hotel)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늦잠도 자지 못하고 서둘러 승합차에 올라 10여 분 정도 시가지를 돌아 미야쟈끼 시 변두리에 있는 "펑화대공원(平和大公園)" 에 이른다.

이곳 평화대공원은 해발 60m 정도의 구릉지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공원 중앙에 "평화의 탑" 이 우뚝 솟아있어 먼 발치에서도 웅장 함을 뽐내고 있다.

평화의 탑 높이가 37m로써 일본 역사에 있어 기원 26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설계하여 졌으며 1940년도 세계 2차 대전 때 세계평화를 축원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하는데, 2차 대전은 당사자인 일본인들이 일으켜 놓고서 자신 땅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탑을 만들고 있다니 역사를 왜곡시키는 자질에 천부적인 기술을 보유한 민족이다.

 

< 높이 37m "평화의 탑" >

 

탑의 기초가 1.070m²(평방미터)나 되는 거대한 탑이면서 탑을 축조한 돌은 세계 각국에서 기증한 돌을 사용하였다고 하면서 탑의 각 모서리에 거대한 동상이 서 있는데, 그 동상의 형상이 무인, 농인, 공인, 어부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 탑의 중앙 각 모서리에 서 있는 4명의 "동상" >

 

우리나라 동상은 문인이나 무인 중에서도 존경받고 훌륭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동상이 건립 되어지지만, 일본에서는 묵묵히 일하는 이름도 없는 어부나 공인 등 서민을 대상으로 하여 동상을 건립하여 필부(匹夫)도 존경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특이하다.   

 

< "평화의 탑" 앞 계단에서 사진 한장 >

 

탑으로 올라가는 길 중앙 약 50m 전방에 디딤돌 한개가 놓여있는데, 이 디딤돌 위에 올라서서 박수를 치면 약 100m가 떨어진 탑의 상부에 박수 소리가 울림이 되어 메아리로 돌아오는 참 신비스러운 수수께끼를 간직한 탑이다.   

공원 내부를 걸어보면 조경과 더불어 수목이 너무나 잘 가꾸어져 있어 산림욕(山林浴) 하기에 최상의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아침 시간이라서 그런지 사람의 분빔도 없고 매우 조용한 공원이다.

 

< 공원 내부의 "산책 길" 옆에 있는 동상 >

 

공원을 나와 미야자끼 시를 벗어나면 야자수로 이루어진 가로수 길 따라 남쪽으로 30분 정도 내려가면 "청도(靑島 : 아오시마)" 라는 작은 섬에 이른다. 

 

< "청도" 섬의 안내도 >

 

청도 섬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한국과 같이 많은 상점이 자리하고 있는데, 각 상점마다 몇 명의 여자들이 나와 물건을 구입하도록 호객 행위를 하고 있어 일본의 불황은 이곳에서도 실감나게 만든다.

 

< "청도" 섬으로 들어가는 돌 다리 >

 

섬 입구에는 조그만한 돌 다리로 연결 되어지고 이 다리를 건너면 둘레 약 1.5Km 아담한 섬에 이르며 섬의 중앙에는 야자수와 더불어 열대우림으로 덮혀있고, 섬의 주위에는 약 1,000만년 전 경도가 다른 모래층과 진흙층이 침식이 되어 만들어진 독특한 형태의 기암으로 쌓여있다.

그 형상이 마치 빨래판과 비슷하여 "도깨비 빨래판" 이라고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 "청도" 섬 주위에 있는 빨래판 형상의 암석 >

 

간조 때에는 빨래판 길이가 100m가 넘게 뻗어지는데, 섬의 중앙에 있는 야자수 및 모래사장과 더불어 참 좋은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울창한 야자수 숲 속에는 일본의 전통적인 신사(神祠)가 나타나는데, 이 신사를 "아오시마 궁" 이라고 한다.

 

< "아오시마 궁" 으로 들어가는 입구 >

 

< "아오시마 신사" 건물을 관람하고 있는 일행 >

 

신사 내부로 들어가는 곳곳마다 소원을 빌어보는 종이 쪽지와 나무판이 붙어있는데, 일본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토속신앙이 매우 성행하고 있는 것 같다.

 

< "신사" 내부에서 소원을 빌고 있는 일본인 > 

 

간단하게 신사를 돌아보고 나서 섬을 일주하여 보는데, 섬의 끝자락 방향에는 아담한 등대 한기가 태평양 바다를 넘나드는 배들의 길잡이가 되면서 자리하고 있으며 그 너머로 미국의 섬 "하와이" 가 보이는 듯하다. 

 

<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는 "등대" 를 관광하면서 >

 

< "청도" 섬을 일주하고 돌아오는 일행 >

      

약 30분 정도만 걸어도 섬 일주가 끝나면서 육지로 돌아 나오면 넓은 백사장으로 이어지는 바다가에 하나의 식물원이 나타나는데, 식물원 내부에는 열대우림으로 이루어진 야자수 나무 밑에 형형색색 튤립 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어 여기는 벌써 봄의 중앙에 있는 세상이다.

일행들은 충분한 여가시간을 가지면서 야자수 나무 밑에서 망중한을 느껴면서 기나긴 휴식의 시간을 취하여 본다.

 

< 아름답게 꾸며진 "꽃 길" 도 걸어보고 >

 

< "야자수 및 튤립" 꽃으로 장식하고 있는 식물원에서 >

 

< "실내 식물원" 앞에서 >

 

이어 승합차는 해안 길 따라 10여 분 남쪽으로 내려가면 도로는 한 야산을 끼고 있는 휴게소와 더불어 전망대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빨래판 절경을 내려다보는 최경(最景)의 장소가 된다.    

참 많은 사람들과 차량들이 머물면서 해안 경치를 구경하고 나서, 군중들은 각자의 가는 길로 살아진다.

 

< 전망대로 가는 "야자수" 거리 >

 

< 전망대에서 내려본 "빨래판 바위" >

 

< "빨래판 바위"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 >

 

우리 일행도 잠깐 정차하여 풍경과 더불어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나서 또 다시 남쪽 방향으로 10분 정도 더 운전하여 한 야산 기슭에 있는 "선 멧세(Sun Messe) 공원" 에 이르는데, 이 공원은 일본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어 개인당 700엔을 요구한다.

공원 주차장에서 부터 여러 갈래 길이 만들어져 있는 야산 따라 능선으로 올라서면 산의 중터 쯤에 박물관과 더불어 "태양의 신전" 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 "선 멧세 공원" 은 영어 그대로 "태양의 메세지" 를 받는다는 뜻을 가진 공원인데, 일본 국기에도 둥근 태양만 그려 놓고 있으니까 얼마나 태양을 품고 싶은 영악한 인간들인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다.

 

< "태양의 신전" 으로 올라가는 일행 >

 

< "태양의 메세지" 조각상 앞에서 >

 

또한 이곳 공원에는 지구의 반대 방향 일직선 상에 있는 칠레의 앞 바다에 있는 환상의 섬 "모아이" 섬에 있는 "모아이 상" 을 조각하여 놓고 있다.

이곳 조각이 모아이 섬에서 직접 제작하여 이곳까지 옮겨 왔다고 하면서 "모아이 상" 전부가 태평양 바다를 등지고 육지방향으로 보고 있는데, 우리나라 해안가에 있는 동상이나 사찰의 부처님은 대부분 바다를 바라보는 형상으로 건축하고 있는 것이 보통인데,,,,,

요렇게 우리와 정반대로 하는 것은 속아지가 좁은 민족으로써, 그래서 대륙과 전세계를 침법하고자 하는 피가 흐르고 있는 종족이라는 뜻이겠지?

 

< 육지를 바라보고 있는 "모아이" 상 전경 >

 

공원 내부에 있는 이정표와 식당 메뉴판 전부 한글로 기술하여 놓고 있는데. 일본인들도 한국인의 돈을 끌어 모을려고 하는 상술이 대단한 국민이라는 것을 느껴지는 장소이다,

여기서 우리들의 마지막 여행지인 "우도신궁" 이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데, 해안선 따라 가는 길이 1차선이라 겨우 교행하여 지나가면 일본에서 가장 경관이 좋은 해안 암벽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신궁을 만난다.

신궁 건물 전체가 주홍색으로 칠하고 있는데, 파란색의 바다와 조화를 이루고 있어 정감이 묻어나는 장소이다.

주차장에 정차하니 점심시간이 임박하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에 따라 신궁 입구에 있는 2층 식당으로 들어가 점심식사를 시켜보는데, 참치회의 본 고장인 일본까지 와서 참치회를 먹어보지 않고 그냥 갈 수 없다는 의견 일치로 모두 "사시미" 정식을 시켜본다.

이곳에서도 신용카드 사용이 불가능하고, 넓은 식당에는 우리 일행만 식사하고 있어 일본 경제도 이곳 신궁까지 미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다.

푸짐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느근하게 일주문을 통과하여 신궁 속으로 들어가는데, 많은 일본 관광객들이 움직이고 있다.

 

< "우도신궁" 으로 들어가는 일주문 >

 

이 신궁은 일본 건국신화에 나오는 "진무천황" 의 아버지 초상화를 모신 신궁으로써 바다가 바위 틈에 신궁을 지어 놓아 매우 특색이 있는 유적지가 되는데, 특히 신궁 앞에 있는 바위들이 바다를 뚫고 올라와 기기묘묘한 형상을 하고 있다.

 

< 거대한 동굴 속에 있는 "우도신궁"  및 신궁 입구에서 행운의 구슬을 던지는 사람들 >

 

파도에 깍긴 바위 위에 크다란 구멍이 있는데, 이곳에 "행운의 구슬(황토 흙으로 만든 구슬)" 을 던져 넣으면 Lotto복권이 바로 당선된다고 하면서 한국의 관광객을 꼬시기 위하여 한글로 크게 적어놓고 있다.

 

< "거북 바위" 등에 만들어져 있는 구멍 >

 

< 돈을 유혹하는 "한글 안내문" >

 

우도신궁은 옛 부터 부부의 백년회로를 기원하는 신궁으로써 유명하기 때문에 유난히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아오는 유적지가 되는데, 오늘도 수 많은 선남선녀들이 관광을 즐기고 있으며 특히 일본 북쪽 추운 곳에서 온 단체 여행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 하겠다.

이곳은 부산 해운대 근교에 있는 "해동 용궁사" 가 이곳을 많이 모방한 냄새가 나는 듯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오후 3시 공식적인 여행으로 계획된 우도신궁의 관광을 종결하고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후쿠오카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북쪽으로 달려가는데, 큐슈 남쪽에서 북쪽 후쿠오카 도시까지 연결된 고속도로 주행은 올 때와 동일하게 약 4시간 소요되어 가는 동안 눈과 귀가 매우 바쁜 시간을 가진다.

눈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농촌 풍경에 고정 되는데, 큐슈 남쪽에는 매우 따뜻한 기후를 가지지만 들렼에는 비닐 하우스로 천지가 하얀 물결을 이루고 있다.

 

< 비닐 "하우스" 로 덮고 있는 일본의 농촌 >

 

이렇게 열대성 기후를 유지하고 있는 큐슈 섬 남쪽에도 비닐 하우스가 나의 고향 경북 성주군 참외 농업을 종사하는 정도로 비닐 하우스가 많이 보이고 있는데, 그 비닐 하우스 내에는 무슨 농작물을 키우고 있는지 무척 궁궁하다.

아울러 귀는 일행 중에 해박(該博)한 지식를 가지고 있는 김 변호사의 이야기를 경청하다 보니 정신이 없다.

고조선에서 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년도별로 발생하는 역사, 문화, 전쟁, 왕조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내용 중에서 책에 잘 나타나지 않는 숨은 이야기까지 새심하게 나열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현지가 되는 일본 나라에서 직접 들어보니 생동감이 넘치고, 특히 이야기 중간 중간에 서양의 역사가 동양으로 흘러 들어오는 과정까지 비교 검토하면서 설명하는 것 듣고 있으니 신비스럽다.

나는 지금까지 일본과 서양 사람의 이름 한명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많은 꼬불꼬불한 이름을 기억하면서 설명하므로 역시 판사의 머리는 범인과 달리 천재성으로 이루어진 머리인가 보다.

더불어 송교수, 오원장, 임사장, 김대장 등 저마다 폭 넓은 이야기를 Plus 시키는데, 편도 4시간 승차시간도 화살같이 지나가고 오후 7시 경 후쿠오카 시내 호텔에 도착하니 봄비가 내리고 있다.

승합차는 마지막 서비스까지 제공하기 위하여 호텔로 운행하여 짐을 내려놓고, 후쿠오카에서 제일 번화가가 되는 한 음식점까지 일행을 안내하여 주므로 고맙다는 긴 인사로 작별을 한다.

 

< 2일간 함께한 애마와 "기사" 분 >

 

네온싸인이 빛나는 거리를 조금 걸어 호화스러운 한 식당에 들어가니 인산인해(人山人海)의 사람들이 음식의 삼매경에 빠져있는 군중 속에 좌석을 점유하면서 푸짐한 저녁식사와 함께 생맥주로 일본의 마지막 여정을 가져보는데, 후쿠오카의 밤은 소리없이 깊어만 간다.

 

< "후쿠오카" 중심지에 있는 거리의 야경 > 

 

그러고 나서 2차를 즐기기 위하여 시내를 배회하면서 야한 쇼(Show)를 한다는 어느 클럽을 찾아갔지만, 지금은 영업을 중지한다는 안내문으로 호텔(Hotel)로 돌아와 잠을 청하기로 한다.

 

4. 네째날 : 2010년 1월 31일.

일본에서 생산하는 기념품을 조금 구입하기 위해 10시 부터 문을 연다는 100엔 숍(Shop)을 가기 위하여 시내 버스를 한번 승차하여 보는데, 버스는 한국의 운전 방법과 상이하게 승차장과 신호등 앞 마다 버스의 시동이 자동으로 꺼지면서 정차한다.

이렇게 검소함이 몸에 베인 일본인을 보고 있으니 그래도 현재 일본에서는 산유국이지만 석유 한방울을 아끼기 위하여 정류장 마다 엔진의 시동을 꺼는 절약 정신이 역겹다 못해 얄밉다.    

 

< "후쿠오카" 시내의 거리 >

 

우리나라에서도 1.000원 숍(Shop)이 가끔씩 보이지만 대부분 규모가 다소 적은 구멍가게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이곳 일본은 백화점과 같이 대형으로 이루어져 많은 물건을 진열하여 놓고 있다.

일본도 대부분 중국산 제품으로 구비하고 있어 별도로 외화(外貨)를 소비하면서 까지 이곳에서 구입 할 물건이 많지 않아 몇 가지만 구입하고 택시를 이용하여 후쿠오카 여객 터미널에 도착하는데, 11시 부터 출국 수속을 시작하여 여객선에 승선하니 올 때와 마찬가지로 뉴 카메리아(New Camellia) 호 여객선이다.

 

< 비와 안개 속에 젖은 "후쿠오카" 항을 뒤로 하고 >

 

12시 30분 후쿠오카 항을 출발한 여객선은 잔잔한 대한 해엽을 미끄러지듯 달려가서 "대마도" 를 지나면서, 오후 6시 경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에 승객(乘客)을 토해낸다.

터미널에 주차 해둔 승합차와 승용차에 분산하여 타고 대구방향으로 달려 청도고속도로 휴게소로 들어가는데, 다소 늦은 저녁식사 시간을 가지면서 간결하게 여행에 따른 경비를 정산하여 본다.

그런데 이렇게 세심하게 큐슈의 섬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여행 계획을 수립하고 여객선 비용, 호텔 비용, 2일간 승합차 비용, 입장료, 유류대, 온천 목욕비 등 개인 별 55만원이라는 저렴한 비용으로 알뜰한 여행을 만들면서도 추가의 비용을 전연 발생시키지 않고 정산을 끝낸 오 원장의 주머니는 무슨 도께비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나의 무식한 머리로 도저히 계산이 안되는 분야(分野)이면서 아는 것 하나 없어 여행 중 아름다운 이야기도 못하고, 카메라 렌즈에 습기가 차서 사진도 억망으로 흐려짐도 모르고 다니는 반푼수라 하겠다.

다방면으로 문제만 발생시킨 골치 덩어리인 나를 함께 여행하도록 끼워 줌에 감사하고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까, 오 원장이 각자 열심히 돈을 모아 다시 한번 더 함께 여행을 가져보자는 문자 메시지도 잊지 않고 보내주는 섬세한 배려에 더욱더 감사하게 만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