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전라)

전라남도 영광군에 있으면서 꽃무릇으로 유명한 '불갑사' 사찰을 다시 찾아가 보았지만.(9)

용암2000 2021. 5. 1. 06:43

 

2021년 4월 13-15일.(2박3일)

 

* 세째날 : 4월 15일.(목요일)

 

3. 불갑사를 다시 찾아보면서.

원불교의 성지가 되는 영산성지를 떠난 일행은 국도와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한 30분 정도 달려가면 영광군 불갑면에 있으면서 불갑산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는 '불갑사(佛甲寺)' 를 방문하여 보는데, 경내 입구에 있는 주차장은 매우 넓으면서 시설이 잘 조성되어져 있다.

 

< '일주문' 을 바라보면서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 >

 

넓은 주차장에는 주 중이면서 코로나 바이러스(Corona virus)로 인하여 다소 적은 차량이 주차를 하고 있지만, 주차장 가장자리에서 성장하고 있는 수령 666년이 된 당산나무 4그루가 봄 단장을 하기 위하여 분주하게 새싹을 돋구고 있다.

 

< 주차장 가장자리에 있는 '당산나무' >

 

나는 2009년 9월 23일 대구 모 산악회에서 전라남도 영광군에 있는 불갑산과 능선으로 연결하고 있는 함평군 모악산 까지 종주산행을 한 경험이 있었는데, 불갑산에는 유명한 사찰 불갑사가 자리하고 있고 모악산에도 용천사라는 사찰이 능선의 동쪽과 서쪽에서 상호 등을 지고 자리하고 있다.

 

< '불갑사과 용천사' 를 연결하는 종주산행 길 >

 

내가 이렇게 다시 한번 더 방문하는 이유는 오늘 아침 제일 먼저 방문한 법성포시가지에 있는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에서 인도의 스님 '마라난타' 가 백제로 들어와 처음으로 건립한 사찰이 이곳 불갑사이라는 사연을 인지 함이라 하겠다.

 

< 주차장 인근에 있는 '불갑사' 조감도 >

 

옛날 종주산행 때에는 산행이 주 목적이 되므로 불갑사 관람을 건성으로 돌아보고, 주어진 시간 내에 산행을 끝내고 산의 뒤편에 있는 용천사 앞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버스에 탑승하여야 하는 의무적 걷기에 동참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느근한 마음으로 천천히 걸어 불갑사의 첫번째 관문이 되는 일주문을 통과하는데, 12년 전이 되는 그 때 보다 경내 주변이 너무나 잘 가꾸어져 있어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경관이 펼쳐지고 있다.

 

< 불갑사의 첫번쨰 관문이 되는 '일주문' >

 

일주문에서 쪼금 내부로 걸어가면 경내로 들어가는 길이 2개로 길로 나누어 지는데, 하나의 길은 메인 길이 되는 포장도로가 되고 다른 하나의 길을 도로의 왼편에 있는 개울 건너편 야산 언지리로 만들어진 오솔길이 된다.

경내로 들어갈 때에는 포장도로 따라 걸어가는데, 도로 가장자리에는 영광 산림박물관 및 탑원 등이 새롭게 조성을 하고 있고 더 내부로 들어가면 사찰의 역사를 증명하는 부도탑 군락지를 만난다.

 

< 경내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영광 산림박물관' >

 

< 백제불교 도래지와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는 '탑원' >

 

< 야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부도탑 군락지' >

 

이곳 부도탑 군락지 앞으로 꽃무릇 단지가 조성이 되어 있는데, 불갑사와 용천사 주변에는 가을의 대명사가 되는 꽃무릇으로 온 천지를 수를 놓으므로 가을철에는 너무나 많은 등산객과 관광객이 찾아드는 사찰이 되지만 현재는 꽃무릇이 없는 계절이라 다소 실망을 안겨주는 장소가 된다.

 

< 불갑사 주변에 피는 '꽃무릇' 종류 >

 

꽃무릇(=석산)은 수선화과 Lycoris 속에 속하는 알뿌리 식물로 우리가 흔히 아는 상사화 꽃과는 한 집안의 식물이 되는데, 그래서 통상 상사화라고도 부르지만 그것은 속을 대표하는 명칭이기 때문에 굳이 전체를 통칭하여 부른다면 상사화류 라고 불러도 된다.

고창 선운사와 영광 불갑사 및 함평 용천사, 정읍 내장사 등에는 가을철 꽃무릇 꽃들이 화려하게 연출을 하므로 명성이 높은 곳인데, 매년 추석 무렵이면 꽃이 만개하면서 계곡 전체에서 불난 것 처럼 빨간색으로 장식을 한다.

 

< '꽃무릇'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이곳 꽃무릇 단지에서 조금 더 내부로 올라가면 불갑사 경내의 바운다리에 도착하면서 경내로 들어가는 2번째 관문이 되는 금강문(金剛門) 이 자리하고 있는데, 금강문 앞에 불갑사의 연역을 기술하고 있는 안내문이 서 있다.

 

< 경내 2번째 관문이 되는 '금강문' >

 

< 금강문 입구 옆에 있는 '안내문' >

 

안내문에 따르면 전라남도 영광군에 있는 '불갑사(佛甲寺)' 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8교구 본사가 되는 백양사의 말사로써, 영조 17년(1741년) 이만석(李萬錫)이 쓴 사적비에 의하면 창건 연대는 미상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일설에는 침류왕 원년(384년)에 행사존자(行士尊者)가 창건하였다고 하였는데, 행사존자는 '마라난타(摩羅難陀)' 의 다른 이름으로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한 뒤 최초로 세운 절이 되며 마라난타가 불갑사 부근의 법성포(法聖浦)를 통하여 들어왔으므로 다소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 '불갑사' 를 홍보하고 있는 안내문 >

 

금강문을 통과하여 일단의 계단으로 올라서면 경내의 왼편에는 명경당(明鏡堂)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오른편에는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건물이 자리하고 있지만 문이 닫혀 있어 내부 관람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 경내의 왼편에 있는 '명경당' >

 

< 경내의 오른편에 있는 '성보박물관' 건물 >

 

다시 일단의 계단으로 올라서면 3번째 관문이 되는 천왕문(天王門)을 만나는데, 건물 내에 모시고 있는 목조 사천왕상(四天王像)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 150호로 지정이 될 정도로 유명하다.

 

< 경내 3번째로 만나는 '천왕문' >

 

불갑사 사천왕상은 그 규모가 웅장하면서 크기가 자그만치 4m 50cm가 되며 균형미가 완벽하고 손에는 비피, 보검. 용과 보주, 창과 보탑을 들고 있는 4명의 사천왕이 각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데, 조성 연대가 17세기 중엽으로 추정을 한다.

 

< 4m 50cm가 되는 거대한 '4천왕상' >

 

< 반대편에 있는 '4천왕상' >

 

천왕문을 통과하면 넓은 마당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마당의 좌, 우측에는 범종각 건물을 비록하여 다양한 전각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전면에는 불광보전(佛光寶殿)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2층의 만세루(萬歲樓)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1층이 매우 낮은 모습을 하고 있는 '만세루' 건물 >

 

< '만세루'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만세루 주변에 있는 '법당' >

 

< 만세루 주변 또 다른 방향의 '법당' >

 

이곳 만세루 건물을 돌아서 내부로 들어가면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大雄殿) 건물을 만나는데, 불갑사 대웅전은 건물은 보물 제 830호로 지정이 되면서 정면 3칸에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 건물 >

 

잡석으로 쌓은 2층 기단 위에 원형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 기둥을 세웠으며 보통 출입문은 앞으로 내는 것이 상식인데, 이 건물에서는 앞면 3칸에 모두 3짝 꽃살문을 달아 창 역할을 하도록 하고 동쪽 벽 가운데 칸에 문을 낸 것이 특징적이다.

기둥 위에 창방과 평방을 두르고 짜올린 공포는 내 3출목에 외 2출목으로 된 다포계(多包系)이고, 작은 규모의 건물 내부를 넓게 사용하기 위해서 사천주를 세우고 그 안에 불단과 닫집을 설치한 것도 특이하다.

 

< '대웅전'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또한 불단이 서쪽 끝에 있어 본존불(本尊佛)이 동향(東向)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것은 드문 예로서 부석사 무량수전에서나 볼 수 있고 전체적으로 아담한 규모이며 조선 후기에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불단(佛段)에는 다른 사찰과는 상이하게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왼쪽에는 약사여래불 및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을 모셔 특이한 불상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 대웅전 내에 동향으로 보고 있는 '삼존불' >

 

이 밖에도 경내에는 일광당, 설선당, 문수전, 명부전, 무량수전, 조사전, 칠성각, 팔상전, 향로전, 향적전, 요사채 건물 들이 경내 곳곳에 자리하므로 매우 짜임새가 있는 사찰이라 무척이나 친근감이 일어난다.

 

< 대웅전 옆에 자리하고 있는 '설선당' >

 

< 대웅전 뒤편에 자리하교 있는 '향로전' >

 

< 향로전과 함께 하는 '칠성각' >

 

< 칠성각과 나란하게 자리하고 있는 '팔상전' >

 

경내를 한바퀴 돌아보고 이곳 불갑사 주변에 진각국사가 심었다고 전하고 있는 수령 700여 년이 된 참식나무 군락지를 돌아보기로 하는데, 이곳의 참식나무는 천연기념룰 제 112호로 지정 및 관리하고 있다.

 

< '참식나무 군락지' 을 안내하고 있는 이정표 >

 

< 참식나무 군락지 속에 자리하고 있는 '암자' >

 

옛날 산행 때에도 참식나무를 찾아 나섰지만 주어진 산행 시간으로 실폐를 하고 돌아 갔었는데, 오늘은 혼자라도 찾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사찰의 오른편 옆에 있는 참식나무 군락지로 들어가니 옛날에는 없었던 참식나무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 '참식나무' 를 홍보하고 있는 안내문 >

 

참식나무는 우리나라 남해안에서 부터 일본, 타이완, 중국 남부, 멀리 동남아시아의 난대와 아열대에 걸쳐 자라는 나무로써, 늘푸른 잎을 달고 있고 키는 10미터 정도에 줄기 둘레가 한아름 정도에 이를 수 있다.

참식나무를 보는 즐거움은 예쁜 꽃과 향기가 아니라 잎에 있는데, 봄에 갓 돋아난 잎은 포인터의 귀 처럼 멋스럽게 밑으로 늘어지며 계절이 깊어 가면서 잎의 뒷면은 하얀색으로 변하여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되어가는 인간사의 과정을 볼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매력이라 하겠다.

참식나무는 관상용, 방풍림, 공업용, 약용으로 사용이 되고, 목재(木材)는 질이 좋아 가구재 또는 완구재로 쓰이며 열매는 향수의 원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추위를 싫어하여 제주도 및 울릉도 또는 남해안을 벗어나면 만나기가 어러운 나무가 되어 그래서 육지 사람들은 참식나무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데, 참식나무가 육지에서 북쪽으로 올라오는 한계는 전남 영광의 불갑사 뒷산이며 참식나무가 이곳에 자라게 된 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 때 '정운' 이라는 법명을 가진 한 젊은 스님이 인도로 유학을 떠나는데, 스님이 머물던 절은 왕실과 관련이 깊었던 터라 어느 날 아리따운 인도 공주가 찾아오게 된다.

먼 이국 땅에서 온 훨칠한 외모의 스님을 보고 공주는 차츰 사랑에 빠지는데, 그러나 몰래한 사랑은 들키기 마련이라 소문은 바람을 타고 궁궐의 임금님에게 까지 알려지게 된다.
임금님은 고심을 거듭하다 정운스님을 본국으로 강제송환을 하기로 하는데, 신라로 되돌아가기 전날에 이승에서는 다시 만나 사랑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은 내세에서 못다한 사랑을 이어가기로 약속한다.

그래서 이별의 증표(證票)가 필요했는데, 마침 둘이 자주 만나던 곳에 있는 참식나무 한 그루가 생각이 나서 우선 사시사철 푸른 잎사귀는 변치 않은 사랑을 상징하는 나무에 관심을 둔다.

새털보다 더 보드라운 새로운 잎은 공주의 섬섬옥수(纖纖玉手)가 그대로 연상이 되며 작고 귀여운 노란 꽃을 잠시 내보이고 나면, 굵은 콩알 크기를 가진 빨간 열매가 송골송골 열린다.

떠나는 정운스님의 보따리 속에 공주는 참식나무 열매 몇 알을 넣어주는데, 스님은 귀국하자 마자 곧장 불갑사를 찾아가 따뜻한 봄날 스님은 절 뒷산의 양지바른 곳에 가져온 열매를 묻고 싹을 틔워 잘 자라도록 돌봐준다.

이것으로서 공주와 이승에서 사랑의 연(緣)을 참식나무로 승화시키고, 처음처럼 정운스님은 다시 부처님의 제자로 조용히 되돌아갔다고 한다.

 

< 수령이 다소 오래된 '참식나무' >

 

< 군락을 이루고 있는 '참식나무' >

 

< '참식나무' 자생지를 알리는 안내판 > 

 

이렇게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참식나무 군락지 속에 머물면서 새롭게 돋아나는 잎과 나무를 구경하다가 일행은 사찰만 구경하고 먼저 내려갔으므로 신속하게 따라가기 위하여 빠른 걸음으로 하산을 한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와 다르게 개울의 건너편에 있는 오솔길 따라 걸어가는데, 오솔길의 주변에는 다양한 꽃밭과 더불어 조각품을 설치하고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오솔길 따라 만들어져 있는 '조형물' >

 

한참을 내려가면 야산의 기슭에 한마리의 호랑이 실물 모형을 설치하여 놓고 그 옆에는 동굴에서 앉아 있는 호랑이 한마리도 함께 하고 있는데, 이곳 호랑이 모형은 옛날 내가 종주산행을 할 때 호랑이가 생포된 불갑산의 7부 능선 정도 등산로 옆에 있었던 것을 기억하게 만든다.

 

< 야산 기슭에 만들어져 있는 '호랑이' 모형 >

 

호랑이 모형 옆에 있는 안내문에 따르면, 불갑산에서 서식하는 호랑이가 1908년 2월 한 농부에 의해 잡힌 것을 일본인 하라구찌가 당시 논 50마지기 값에 해당하는 200원에 사들여서 동경 시마쓰 제작소에서 표본 박제하여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기증하여 지금도 보관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남한지역에서 잡힌 호랑이가 박제 표본으로 보관되고 있는 호랑이는 불갑산에서 잡힌 호랑이 하나 밖에 없다고 하는데, 그래서 영광군에서 포획 100년 만에 살던 곳에 보관을 시키고자 하는 차원에서 유달초등학교 관계자와 환경부의 협조 하에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자 2009년 모형으로 제작 설치하였다고 한다.

 

< '호랑이' 내력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호랑이의 모형 옆에 빨간색 버턴(Button)이 있어 그 버턴을 눌리면 우렁찬 호랑이의 울음 소리가 스피커를 통하여 '으흥' 하면서 3번을 울게 하는데,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큰지 온 산천(山川)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호랑이와 이별을 하고 조금만 더 내려가면 일주문을 만나면서 불갑사 관람이 종료가 되는데, 옛날 종주산행을 할 때 체험하였던 꽃무릇을 구경하지 못하여 매우 아쉬움을 가지면서 불갑사를 떠난다.

 

4. 점심식사를 위하여 다시 찾아가는 송정골 식당.

불갑사를 떠난 일행은 국도를 아용하여 한 시간 정도 달려가면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송정역 앞에 도착하는데, 송정역은 서울동문이 한양으로 올라가기에 편리한 기차가 지나가는 역이 된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 첫날에 만났던 송정골 식당으로 들어가 굴비정식으로 점심식사의 시간을 가지도록 하는데, 이렇게 송정골 식당을 자주 찾아가는 이유는 전라도 음식이 너무나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 또 다시 찾아가야만 하는 '송정골' 식당 >

 

그러고 인접하게 있는 한 카페로 들어가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문제점과 더불어 사용한 경비를 결산하는데, 이번에는 무리한 여행에 따라 경비가 다소 많이 나왔지만 여행의 계획에 대비 가성비(價性比)가 너무나 우수한 것 같다.

먼저 서울동문을 올라보내고 혼자 렌탈한 승용차를 반납하기 위하여 광주시가지 중심지에 있는 고속버스 터미널 앞에 있는 렌트카 회사로 들어가 승용차를 반납하고, 3시 20분 발 대구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 세째날 3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