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공업고등학교.

2013년 신년 시무식과 더불어 통영 미륵도에서 "선취업 후진학" 에 따른 합동 위크숍 개최.

용암2000 2013. 1. 6. 18:15

2013년 1월 3-4일.(1박2일)

 

첫째날.(3일 : 목요일)

대구에 있는 OO공업고등학교는 새해 3일 아침 소강당에서 신년 하례와 더불어 간단하게 시무식(始務式)을 끝내고 교장, 교감, 각부 부장 및 산학부 선생님 등 40여 명이 한대의 버스를 이용하여 경남 통영 미륵도에 있는 "금호 충무 마리나 리조트" 에서 1박2일 "합동 위크숍" 을 개최하기 위하여 길을 떠난다.

버스는 구마와 남해 고속도로를 달려 12시 경 미륵도 가장자리에 있는 충무 마리나 리조트에 도착하여 각자 배정된 방에 짐을 풀고, 식당으로 내려가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먼저 한다.

 

< 미륵도에 있는 "금호 충무 마리나 리조트" 모습 >

 

< 숙소 방에서 내려다 보는 "통영항과 요트 계류장" >

 

식사 후 잠시 여분의 시간을 이용하여 리조트 주변에 있는 산책 도로 따라 해안가를 거닐어 보는데, 매서운 바다 바람으로 몇 걸음만 걸어보고 리조트로 다시 돌아와서 몸을 잠시 녹이고 나서 2층 회의실로 내려가 본격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기 시작한다.

 

< 리조트 뒤편 해안가 따라 만들어진 "산책길" 조감도 >

 

< 리조트 건너편에 있는 "한산도" 섬 >

 

< 산책길 따라 걷다보면 만나는 미니 "해수욕장" 과 아담 Size의 샤워장 >

 

세미나의 순서는 교장 선생님 인사 말씀과 더불어 산학부 부장이 "2012년 선취업 후진학" 에 따른 경과 보고 및 각 부서별 신년 업무를 발표하고 분임조로 나누어 각종 문제점 토의 시간을 가진다.

 

< 위크숍을 위한 "일정 계획표" 와 현수막 >

 

< 산학부장의 "2012년 선취업 후진학" 에 따른 실적보고 >

 

< "부서별 부장" 의 보고도 따르고 >

 

시간의 촉박으로 인하여 조별 분임조 발표는 다음날 오전에 결론을 도출하도록 하고, 통영항 인근에 있는 한 횟집으로 이동하여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통영항의 대표적 명소가 되는 해저터널로 내려가 본다.

통영 해저터널은 1931년 7월에 착공하여 1년 4개월의 공사기간을 투입하여 1932년 12월 말 완공된 동양 최초의 바다 밑으로 길이가 483m, 너비 5m, 높이 3.5m 해저(海低)터널이다.

작업공법은 바다 양쪽을 막아 제방을 설치한 후 해저를 직접 터파기(Open cut)하여 콘크리트를 타설하여 만들었으며 터널 양쪽 입구에 "용문달양(龍門達陽)" 이라는 쓰여 있는데, 그 뜻은 "섬과 육지를 잇는 해저도로 입구의 문" 이라는 의미로 기술하고 있다.

 

< 통영 해저터널 입구에 쓰여 있는 "용문달양(龍門達陽)" >

 

< "해저터널" 로 내려 가는 길 >

 

< 해저터널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통영" 홍보물 >

 

< "해저터널" 공사하는 작업 공법 (1) >

 

< "해저터널" 공사하는 작업 공법 (2) >

 

당시 해저도로 계획 개요서에 의하면 해저도로를 이용한 년간 교통량은 사람 9만명에 우마차 1.000대, 자전거 100대, 자동차 1.000대, 가마 1.000거(擧)가 통행하였다는 추정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 터널을 통과하여 통영편에서 바라보는 "미륵도" 야경 >

 

1967년 착량교(鑿梁橋) 자리에 철근 콘크리트 교량인 "충무교(忠武橋)" 가 개통하면서 부터 해저터널을 이용하는 차량 통행을 금지시키고, 현재 해저터널의 제일 깊은 부위에 터널은 만드는 공법과 더불어 통영 인근 지역의 명소 관광지를 소개하면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현재 차량이 통과하고 있는 "충무교" 야경 >   

 

둘째날.(4일 : 금요일)

전일 토의한 안건을 종결하고 나서 2일차 일정은 미륵도에 있는 미륵산 언저리 따라 산행을 하고 나서, 용화사 입구 산행 들머리에 있는 한 식당으로 들어가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오후 늦게 학교로 돌아가기로 계획되어 진다.

하지만 너무나 강하게 부는 바람과 함께 추위로 산행을 취소하고, 리조트에서 더 머물면서 휴식을 가지다가 식당으로 직행하는 것으로 당초 계획을 수정하겠다고 한다.

그 대신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약 2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주어지므로 함께 기거한 Room mate 4명은 무료하게 리조트에 머무는 것 보다 운동도 겸하면서 케이블카 타고 미륵산 정상으로 올라가자는 의견 일치로 완전무장을 하고 리조트를 먼저 떠난다.

 

< "리조트" 를 떠나면서 다시 한번 더 뒤돌아 보고 >

 

< 리조트 앞에 정박하고 있는 부자들의 전용물 "요트" >

 

< "케이블카" 가 운행하는 하부 승차장 매표소 >

 

리조트 인접하게 있는 케이블카 하부 승차장으로 걸어가서 올라가는 편도 요금 5.500원 지불하고 상부 승차장으로 올라가는데, 상부 승차장 건물 2층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가 통영항 주변 조망을 구경하여 본다.

 

< 약 2Km의 길이를 가진 "케이블카" 를 타고 >

 

날씨가 너무나 쾌청하여 주변 조망이 뚜렸하게 나타내고 있어 잘 올라왔다는 위안으로 주변을 구경하는데, 전일 밤 머물면서 워크숍을 실시한 마라나 리조트가 발 아래에 머물고 있으며 그 뒤편으로 거제도로 넘어가는 아름다운 다리가 그림 같이 펼쳐지고 있다.

눈을 약간 오른편으로 돌리면 거제도의 높은 산맥이 흐르고 있는 앞쪽으로 이순신 장군의 활약 상을 보이고 있는 "한산도" 가 지척에 머물고 있어, 금년 여름 방학 때 한산도로 돌어가 본 "제승당" 건물이 아련하게 보이고 있다.

 

< 상부 케이블카 매표소 건물 2층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리조트" 모습 >

 

< 바다 건너 한산도 "제승당" 으로 들어가는 길목과 멀리 거제도 노자산 및 망산 전경 >

 

비록 매우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많은 관광객들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는 인파와 함께 잘 만들어진 나무테크 길 따라 정상 방향으로 올라가면 산책로 옆으로 미륵산에 자생하고 있는 특수 야생화 설명서가 붙어있지만, 겨울이라써 볼 수 없음이 애석하게 만든다.

 

< 케이블카 건물 2층 전망대 바로 위에 있는 제2의 "전망대" >

 

나무테크 길 중간 쯤 올라가면 한명의 여승이 추위에도 굿굿하게 서서 불공을 드리면서 지나가는 길손에게 무언의 시주를 요구하고 있으나, 모른척 하고 지나가기에 다소 미안 함이 묻어난다.

스님이 있는 곳에서 부터 나무테크 길은 양쪽으로 나누어지는데, 일행은 오른편 나무테크 길로 올라가 제2의 전망대에 도착하면서 주변 풍경을 한번 더 구경하면서 기념사진 몇장을 남겨본다.

 

< 제2의 전망대와 "한려해상 국립공원" >

 

< 전망대에서 함께 기숙한 "Room 메이트" >

 

제2의 전망대에서 천천히 고도를 상승하면 해발 461m "미륵산" 정상에 이르는데, 정상에는 높은 정상석 주변으로 나무테크 전망대가 잘 만들어져 있으며 그 전망대 주변 곳곳에 사진으로 "한려해상 국립공원" 의 풍경을 설명하고 있다.

 

< 미륵산 정상에서 "각종 도시 방향 및 거리" 표시석 >

 

< 해발 461m "미륵산" 정상에서 >

 

통영시는 약 250개의 섬들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바다 풍경과 더불어 미륵도 주변에 있는 해안선 따라 펼쳐지는 조망을 구경하고 있는데, 나는 등산을 통하여 이곳 미륵산 정상을 몇 번 올라와 본 곳이지만 관광할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어 계절마다 풍기는 경치가 글로써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 발 아래 "박경리 여사" 의 묘소와 멀리 욕지도 섬 >

 

< 다른 방향의 "통영시가지와 항구" 및 뒤편 "벽방산" >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사진 한장 찍는 것을 부탁하여 정상석을 배경으로 Room mate 4명이 사진 한장을 찍고 나서 주어진 시간 내에 도착하기 위하여 하산길로 들어가는데, 나는 몇 번 산행을 통하여 잘 알고 있는 용화사 방향 길로 인도하면서 하산 할려고 하니 음달진 곳에는 아직도 잔설이 많이 남아 내려가는데 곤역을 치루어야 하는 길이다.

 

< 정상석을 배경으로 "Room mate" 와 >

 

특히 나는 산행 준비가 전연되지 않은 상태의 구두를 신고 하산 할려고 하니 많은 애로 사항이 발생하는데, 제일 뒤쪽에서 안전 산행을 위하여 4발로 엉금엉금 기면서 내려 갈려고 하니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띠밭등 고개" 가 있는 산 허리까지 내려서니 다소 시간적 여유가 남아 몇 번 걸어본 용화사 방향으로 바로 하산하지 않고, 한번도 걸어보지 않은 1.6Km 떨어진 도솔암으로 돌아서 가는 길을 선택하는데, 도솔암 방향의 길은 다시 능선으로 올라가므로 주어진 시간 내 도착이 가능할지 다소 불안한 느낌이 일어나는 길이 된다.

도솔암으로 가는 길이 몇 번의 능선을 돌아서 미륵산 종주 능선 까지 올라가는데, 이 능선 길은 한 때 내가 미륵산 종주 때 해발 330m 현금산을 넘어 미륵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의 중간 지점 "여우치" 고개로 매우 눈에 익숙한 길이다.

 

< 미륵산 종주 산행의 중간 지점 "여우치" 고개에 있는 이정표 >

 

애초 도솔암으로 간다는 계회이 있었다면 미륵산 정상에서 이곳으로 바로 내려왔다면 짧은 시간으로 여유치 고개에 도착되는 것을 빙돌아서 왔다는 것 생각하니 다소 짜증이 발생하지만, 사전 준비하지 않고 길을 선택한 내가 잘 못이라 원망도 못하고 제일 뒤에서 일행을 따라 가기가 바빠진다.

오솔길 따라 조금 내려가면 현금산 바위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도솔암" 에 도착하는데, 언제 다시 올지 몰라서 한번 방문할 때 구경하여야 겠다는 생각으로 암자 내부로 들어가 본다.

 

< "도솔암" 으로 들어가는 입구 >

 

도솔암은 고려 태조 26년(943년) 도솔선사가 창건한 사찰로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매우 작은 대웅전과 좌측과 우측에 아담한 요사채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오른편 요사채 앞에는 거대한 고목나무가 암자의 역사를 보증하고 있다.

 

< 매우 작고 아담한 "도솔암" 대웅전 >

 

< 도솔암 오른편에 있는 요사채 건물 앞에 있는 "고목" >

 

이 암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도솔선사가 사찰 뒤편에 있는 암굴에서 호랑이와 함께 참선을 하고 있을 때 호랑이가 입을 벌리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어 호랑이 입 속 목구멍에 비녀가 꼽혀 있어 비녀를 뽑아 주니 어느날 호랑이가 아리따운 처녀를 등에 업고 와서 선사 앞에 내려 놓고 살아졌다고 한다.

선사는 기절한 처녀를 소생시켜 그녀의 집으로 데려다 주었는데, 처녀의 아버지는 전라도 보성에 사는 갑부 "배이방" 으로 선사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뜻으로 3백금을 내어 놓았으며 도솔선사는 그 돈으로 이 암자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 "도솔암 전설"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판 >

 

현재도 암자 뒤편에 있는 바위에는 선사와 호랑이가 함께 참선하였다는 천연동굴이 있지만, 시간 관계로 그 곳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암자 입구에 있는 감로수로 목을 적시고 하산길로 돌아선다.

도솔암에서 부터 잘 만들어진 아스팔트 길 따라 내려서면 길의 중간 지점에 또 다른 새로운 사찰 하나를 만나지만 그냥 도로 따라 내려서면 미륵산이 품고 있는 최고의 명찰 용화가 입구에 도착하는데, 이곳 용화사는 미륵산 종주 산행할 때 한번 방문하여 본 사찰이지만 다른 일행 선생님의 요청으로 길을 안내한다.

 

< "용화사" 입구를 지키고 있는 입석 >

 

산기슭로 만들어진 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오른편 계곡을 막고 있는 작은 사방 댐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댐 내부에는 얼음이 얼지 않고 푸른 물이 담수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이곳 통영이 한반도의 남쪽 따뜻한 지역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이 댐을 돌아서면 울창한 삼나무 군락지 속에 아담한 용화사가 자리잡고 있는데, 사찰 입구로 올라가면 왼편으로 해월루(海月樓)라는 루각 건물이 보이고 계단 끝지점에 요사채 건물이 마주치고 그 건물을 돌아서면 넓은 마당에 이른다.

 

< "용화사" 로 들어가는 입구의 계단 >

 

용화사는 건축한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신라 때 부터 법통(法通)을 이어온 것으로 추정하며 조선 인조 6년(1628년)에 큰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고, 그 뒤 여러 차례 복원하면서 사찰 이름도 "용화사(龍華寺)" 로 바뀌었다고 한다.

마당 끝지점에 있는 몇 단의 돌계단 위에 용화사 본찰이 되는 "보광전(普光殿)" 건물을 만나는데, 보광전 내부에는 아미타 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사찰이며 이 보광전 옆으로 새롭게 건축한 명부전과 용화전 등 법당이 보이고 있다.

 

< 몇 단의 돌계단 위에 있는 "용화사" 보광전 >

 

보광전을 내려와서 왼편 요사채 건물을 돌아서 야산 쪽으로 올라가면 종루(鐘樓)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앞에 거대한 2층의 설법전(說法殿) 건물을 신축하고 있는 중이다. 

 

< 왼편 요사채 건물 뒤편에 있는 "종루" >

 

이렇게 많은 건물을 가지고 있는 사찰을 건성으로 돌아보고 사찰 앞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통영의 중앙통이라고 하는 중앙시장으로 이동하여 30분 정도 쇼핑시간을 주어지는데, 대부분 선생님은 통영의 명물이 되는 생굴, 꿀빵, 생선, 건어물 및 횟감 등을 구입하는 시간을 가진다.

 

< 통영 "중앙시장" 앞에 있는 부두가를 거닐면서 >

 

< 충무 김밥을 먹을려면 반듯이 찾아야 하는 "뚱보 할매 김밥집" >

 

빈털털가 되는 나는 통영 특산품을 구입 하기에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써 부두에 정박하고 있는 거북선으로 들어가 보는데, 옛날에는 한 척의 거북선에서 이순신 장군의 전쟁 역사를 관람 할 수 있는 전시실이 꾸며져 있다.

현재는 3대의 거북선이 정박하면서 각 거북선 마다 임진왜란 때 사용한 전쟁사 자료가 진열하고 있어, 어시장을 쇼핑하는 선생님과 다르게 관람으로써 쇼핑시간을 대신한다.

 

< 부두에 정박하고 있는 "거북선" 모습 >

 

< 거북선 내에 전시하고 "거북선" 제작 과정 >

 

<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가 되는 "한산대첩" >

 

< 거북선 내에 있는 "이순신 장군" >

 

< 거북선 내를 관람하고 있는 몇몇 "관람객" >

 

주어진 시간 까지 거북선 내에 머물다가 버스에 승차를 하는데, 대부분의 선생님이 구입한 수산물 보따리의 무게로 인하여 자동차 바퀴를 홀짝하게 만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