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 문화와 산행.

계성고등학교 백봉회 제271봉 산행은 경북 고령군에 있는 "주산 및 미숭산" 의 종주 등정.

용암2000 2014. 11. 25. 23:42

2014년 11월 15일 (토요일)

 

매월 2번째 토요일에 실시하는 계성고등학교 제56회 동문 "백봉회" 11월 산행은 일주일을 순연하여 15일에 개최한다는 총무의 연락을 받는데, 금월 제271봉 산행은 경북 고령군에 있는 해발 311m "주산(主山)" 과 해발 757m "미숭산(美崇山)" 을 종주한다는 것이다.

아침 9시 20분 집결지 대구 서부주차장으로 나아가니, 지금까지 산행 중 최소가 되는 5명이 합류하므로 주차장 대합실에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나서 고령으로 가는 시외버스에 몸을 싣는다.

버스는 이내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려 고령 시외터미널이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부터 산행의 들머리가 되는 대가야 박물관까지 택시를 이용 할려고 하니 승차 인원의 Over로 걸어서 가기로 한다.

고령시가지를 통과하여 향교 방향으로 가다가 고령읍사무소 입구에서 좌회전 하면서 도로 따라 조금 걸어가는데, 도로의 모퉁이에 포장마차가 보여 아침 부터 포장마차로 들어가 막걸리와 함께 오뎅으로 몸을 따뜻하게 한다.

 

< 고령읍사무소 앞에서 "대가야 박물관" 방향으로 좌회전 하는 이정표 >

 

그러고 나서 고령시가지 중심지에 있는 보물 제54호 당간지주를 구경하면서 기념사진 한장을 찍고 나서 계속하여 합천 방향으로 걸어가면 이내 고령군이 자랑하는 대가야 "역사테마 관광지와 박물관" 주차장에 이른다.

 

< 대가야 박물관 가는 길에 있는 "당간지주" >

 

< "대가야 역사테마 관광지" 앞 주차장 >

 

주차장에서 박물관 입구 방향으로 들어가는데, 박물관 내부를 관람하기에 시간적으로 너무 늦으므로 개별적으로 관람하기로 하고 박물관 옆에 있는 대가야 왕릉전시관 앞으로 하여 주산의 산행 들머리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 "대가야 박물관" 방향으로 들어가는 길 >

 

< 대가야 박물관 위에 있는 "왕릉전시관" 앞을 지나면서 >

 

목재로 이루어진 계단 따라 지산동 고분군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비록 오늘 적은 인원이 동참하지만 상호 마음이 통하므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천천히 고분 사잇길을 통과하여 고도를 상승한다.

 

< "지산동 고분군" 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길 >

 

이곳 지산동 고분군은 대가야 시대에 조성되어진 고분으로 약 200여 기의 고분이 주산의 8부 능선에서 부터 언덕 반대편 역사테마 관광지가 있는 야산 까지 산재하고 있는데, 나는 이곳 고분군을 몇 번이나 방문하여 관람한 곳이라 동문들에게 엉터리 해설로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 "지산동 고분군" 으로 올라가는 사잇길 >

 

< "대가야 역사테마 관광지" 까지 이어지는 고분군 >

 

대가야의 수도가 되는 고령시가지는 동쪽이 되는 대구방향으로 망산(望山)이라고도 불려지는 해발 289m "금산" 이 자리하고 있고 뒤편에는 주산이 자리하고 있는데, 외적이 침입하여 오면 금산에서 수비병들이 고령시가지 서쪽에 있는 주산(主山)을 향하여 적의 내습을 알렸다고 한다.

 

< 지산동 고분군에서 바라보는 "고령시가지와 금산" > 

 

이러하여 고령시가지 서쪽에 있는 주산의 다른 이름은 "이산(耳山)" 이라고 부르는 것은 망산에서 적의 침입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는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주산과 금산의 위치로 볼 때 대가야를 위협하는 세력이 동쪽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대가야에게 위협을 가하는 대상은 신라국(新羅國) 이였다는 것으로 추정되어 진다.

해발 311m가 되는 주산은 대가야의 순장묘(殉葬墓) 등 고분군이 발견된 지역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산 일뿐만 아니라, 고령군민(高靈郡民)과 외지인들이 많이 찾아드는 산이다.

대가야 시대에 축조된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주산의 남동쪽 능선 따라 크고 작은 무덤들이 무리지어 축조되어 있는데, 높이 6m에 지름 25-27m 규모인 지산동 51호분을 비록하여 지산동 32호분 까지 규모가 큰 고분들이 이어진다.

 

< 고분군 중간에 있는 "휴식처" 에서 >

 

특히 1978년 경북대학교와 계명대학교에서 발굴 및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첫 순장묘로 밝혀진 지산동 44호분 등 학술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은 고분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 순장묘로 밝혀진 "44호분" >

 

주산의 남쪽 능선 아래 방향으로는 대가야 박물관과 더불어 대가야 역사 테마 관광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므로 주산은 대가야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역사적인 산이라 하겠다.

 

< 지산동 고분군에서 내려보는 "대가야 박물관" 전경 >

 

< 지산동 고분군에서 내려보는 "가야대학교" 전경 >

 

이렇게 고분군을 구경하면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고분군까지 올라가면 3거리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이 삼거리는 고령시가지에 있는 충혼탑에서 올라오는 산행길과 만나는 지점이 된다. 

                     

< 주산 제일 상부에 있는 "고분군" >

 

< 고분군 상부에 있는 "3거리 이정표" >

 

여기에서 주산 정상 방향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오솔길 따라 조금 올라가면 깔딱고개에 도착하여 지는데, 이 깔딱고개에는 산행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휴식를 가질 수 있는 의자가 있어 일행은 휴식을 가지면서 힘들게 운반하고 있는 막걸리 몇 병을 꺼집어 내어 갈증을 해소하여 본다.

 

< "깔딱고개" 에서 휴식과 갈증을 해소하는 동문 >

 

충분한 휴식을 가지고 나서 다시 발길을 재촉하여 주산의 허리길이 되는 오솔길 따라 조금 걸어가면, 또 다른 휴게소가 나타나면서 이 휴게소에는 약수물이 흘려내리는 샘이 자리하고 있다.

 

< 깔딱고개에서 조금 가면 만나는 "약수물" 나오는 샘 >

 

이 샘에서 능선으로 올라가면 해발 311m 주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되어지지만, 그 방향의 길은 주산 정상 주변으로 쌓여 있는 "주산성(主山城)" 발굴로 인하여 당분간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 약수물이 나오는 샘에서 "주산 정상" 방향으로 출입을 금지시키는 현수막 >

 

그래서 주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미숭산으로 가는 길의 중간지점에 있는 청금정 방향으로 길을 재촉하여 능선길을 걷고 있는데, 가는 길의 좌우에는 때 이른 진달래 꽃이 만발하게 피어있어 도통 계절의 감각을 망각하게 만든다.

 

< 약수물이 나오는 샘에서 "청금정" 까지의 거리 이정표 >

 

< 계절을 망각하고 피어있는 "진달래" 꽃 >

 

< 산행길 옆에 있는 망개" 도 구경하면서 >

 

무아지경으로 약 30분 정도 능선길 따라 걸어가면 넓은 임도를 만나게 되는데, 임도 가장자리에는 산불 감시용 조립식 건물과 더불어 다수의 승용차가 올라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휴식처 의자가 자리하고 있다.

 

< 청금정 아래에 있는 "임도" 에서 만나는 휴게소 > 

 

< 임도 가장자리에 있는 "조립식 건물과 승용차" >

 

이 휴게소 주변으로 샘물과 더불어 한개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는데, 이 시비에는 "대가야의 소리" 라는 시(詩)가 적혀 있어 그 내용을 읽어보니 시의 내용에는 우륵 선생님의 살아생전 가야금을 연주하는 모습을 회상하는 내용이 잘 표현하고 있다. 

 

< 임도 가장자리에 있는 "휴식처 의자" 에서 쉼을 가지는 동문  >

 

< 휴식처 옆에 있는 "대가야의 소리" 라는 시비 >

 

이 임도에서 다시 한 5분 정도 올라가면 능선의 정점에 "청금정(聽琴亭)" 이라는 정자에 도착하여 지는데, 청금정은 이곳 가야국의 "악성우륵(樂聖于勒)" 선생님의 발자취를 더듬기 위하여 건립되어진 정자이라고 한다.

 

< 산의 능선에 있는 "청금정" 정자 >

 

청금정에 올라가 정자에 걸려있는 내력을 읽어보면서 주변을 구경하여 보는데, 지금까지 왔던 길 방향으로는 고령시가지와 더불어 멀리는 대구시가지가 되는 아파트 군락지의 높은 빌딩이 펼쳐지고 있으며, 눈을 조금 왼편으로 돌리면 거대한 연못과 더불어 그 뒤편으로 우륵박물관의 지붕이 아련하게 보인다.

 

< 청금정에서 바라보는 "연못과 우륵박물관" 방향 >

 

반대로 우리들이 앞으로 가고자 하는 정자 뒤편 방향으로는 해발 757m의 높은 미숭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미숭산 사이로 가야산의 지맥과 함께 가야산의 정면에 있는 매화봉이 빼꼼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 앞으로 가야하는 "미숭산" 전경 >

 

일행은 정자 중앙에 자리를 잡고서 각자가 지참하고 있는 점심을 먹기 시작하는데, 다양한 반찬과 더불어 여기까지 가지고 온 먹걸리 한잔을 마셔보는 기분은 무엇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심정이다.

 

< 청금정에서 "점심식사" 하는 동문 >

 

정말 악성우륵 선생님의 가야금 소리가 함께 한다면 신선(神仙)의 놀이 장소가 되어지겠지만, 비록 음악이 없는 다소 삭막한 정자에서의 만찬이 되지만 함께 웃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벗이 옆에 있었기에 매우 즐거운 식사시간이 흘려간다.

그러고 짐을 챙겨 다시 산행길로 들어가 미숭산 방향으로 달려가는데, 한 20분 정도 걸어가니 다시 3거리 휴게소가 나타나면서 앞으로는 미숭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되고, 왼편으로는 반룡사(盤龍寺)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된다. 

 

<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산행길" >

  

< "반룡사" 로 내려가는 3거리 갈림길 >

 

여기 갈림길에서 미숭산으로 계속 진행하자는 의견과 시간적으로 너무 늦으므로 반룡사 방향으로 내려가지는 의견으로 나누어 지는데, 마침 지나가는 한 부부가 반룡사로 내려가면 5시 정각에 고령으로 들어가는 마을버스가 출발하므로 안성맞춤의 시간이 되어지겠다고 이야기를 하여 준다.

그래도 산행을 잘하는 2명은 사나이 한번 약속한 미숭산을 정복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전진을 강행하지만, 무릎이 좋지 않은 나를 비롯하여 3명은 반룡사 방향으로 길을 잡아 하산하는 2분화가 벌어진다.

 

< 3거리 이정표에서 2분화로 "미숭산 정상" 산행을 거부하는 2명의 동문 >

 

비록 눈 앞에 두고 있는 미숭산은 고령군과 합천군의 경계선에 있는 산으로 매우 유명한 산이라고 기술하여 놓은 설명문을 읽어 보는데, 미숭산은 고려의 장군이었던 안동장군 "이미숭(李美崇)" 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에 대항해 군사를 모으고 미숭산에 산성을 쌓아 고려를 되찾고자 싸움을 벌였던 산이라고 한다. 

당시 대세는 조선과 이씨왕조 쪽으로 완전히 기운 상태였기 때문에 이미숭은 결국 고려를 회복하고자 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절하였다고 하는데, 본래 산의 이름은 상원산(上元山)이었으나 뒤에 사람들이 이미숭 장군의 이름을 따서 미숭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미숭산과 주산과 연결하는 능선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고, 곳곳에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면서 멀리 가야산을 바라다 볼 수 있는 경관이 펼쳐지므로 많은 산행객들이 방문하고 있으며 또한 아직도 산의 정상 주변에는 미숭산성의 성터와 성문의 잔해 및 샘 등이 남아 있다고 한다.

 

< "미숭산성" 을 설명하는 안내문 >

 

이렇게 명산을 앞에 두고 반룡사 방향으로 내려갈려고 하니 다소 아쉬움이 발생하지만, 반대로 미숭산이 품고 있는 반룡사를 관람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한 30분 정도 하산 하니 반룡사의 측면 언덕 위에 도착하여 진다.

 

< 좌측 언덕 위에서 내려보는 "반룡사" >

 

언덕을 내려서서 사찰 입구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통과하여 경내로 들어가 반룡사의 유래를 읽어보는데, 반룡사는 팔공산 동화사의 말사로 언제 건립하였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신라 원효대사가 중찬하였다는 기록으로 매우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사찰이면서 많은 고승을 배출한 사찰이라고 한다.

 

< 미숭산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반룡사" 전경 >

 

< 반룡사의 "유래" 를 설명하고 있는 입석 >

 

거의 폐허가 되어진 사찰을 현재 거주하는 주지스님이 많이 복원하여 짜임새를 갖춘 사찰로 변모하고 있는데, 사찰의 중심이 되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을 비롯하여 그 앞으로 주지스님이 기거하는 심검당 건물과 요사채 건물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 반룡사 주불을 모시고 있는 "대적광전" >

 

< 대적광전 앞 왼편에 있는 "심검당" 건물 >

 

< 대적광전 앞 오른편에 있는 "요사채" 건물 >

 

경내에는 문화재가 되는 다층석탑을 비롯하여 반룡사 동종이 있어지만 현재 2종의 문화재는 대가야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으며, 이 밖에 경내에는 지장전(地藏殿) 및 약사전(藥師殿) 건물을 비롯하여 많은 부도탑이 자리하므로 매우 번성한 사찰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경내 오른편 야산에 있는 "지장전" >

 

< 반룡사 입구에 있는 "우물" >

                 

잠깐 동안 경내를 구경하고 있으니 버스가 도착할 시간의 임박으로 황급하게 사찰 입구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내려가니 이내 마을버스가 도착하므로 버스에 승차를 하는데, 기사분이 마을버스는 시골 구석구석을 구경하면서 돌아간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미숭산 언저리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시골 풍경을 구경하면서 실컨 돌아서 고령시외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의리도 없이 종주를 감행한 2명의 동문은 이제 막 미숭산을 정복하고 나서 합천군 야로면사무소 방향으로 하산하다고 연락이 도착한다.

일행은 할 수 없이 고령시가지를 조금 배회하다가 시장에 있는 한 식당으로 들아가 무한정 막걸리로 회포를 풀고 있으니, 2명의 동문이 야로면사무소 앞에서 버스에 승차하였다고 하면서 30분 이내로 고령시외 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고 버스 번호를 가르켜 준다.

남아있는 막걸리를 천천히 마시고 나서 고령시외 버스터미널로 들어가 동문들이 타고 있는 버스에 승차하여 대구 서부 주차장에 함께 도착하는데, 총무는 저녁식사를 하고 가자는 의견으로 택시를 타고 한 식당으로 가니 산행에 동행하지 않았지만 백봉회를 위하여 노력하는 2명의 동문이 합류한다.

 

< 대구에서 2명의 동문이 합류하여 "저녁식사" 하는 모습 > 

 

새롭게 합류한 동문과 함께 또 다시 막걸리 파티가 이어지는데, 백봉회 발전과 더불어 기나긴 인생노후 설계에 따른 이야기로 시간을 잠시 멈추게 하는 산행이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