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기계과 행사.(경북)

숙종 및 정선 선생님이 감탄하였던 내연산이 품고 있는 천년의 고찰 "보경사" 를 찾아간 이유는?

용암2000 2017. 2. 14. 22:55

2017년 2월 4일 (토요일)

 

2. 신비의 보물을 찾아 송라 보경사를 돌아보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향마을 구경하고 다시 7번 국도를 이용하여 동해안 따라 조금 올라가면, 왼편으로 송라면과 더불어 보경사를 가르키는 이정표를 나타나므로 지시하는 방향으로 들어가 본다.

송라면 사무소를 지나 계곡 따라 조금 올라가면 보경사 경내를 방문하는 모든 차량에게 주차비를 징수하는 매표소를 통과하게 하는데, 매표소 직원에게 포항에 거주하는 시민에게는 차량 등록증을 제시하면 무료 입장이 가능하게 한다.

넓은 주차장 가장자리에 주차하고 보경사로 들어가기로 하는데, 도로 좌우에 상가 건물이 도열하고 있으면서 그 중에서 음식점을 운행하는 아주머니들이 따뜻한 두부와 함께 이곳 보경사의 별미가 되는 "벌떡주" 한잔하고 구경하는 것이 좋겠다고 유혹의 극치를 일으킨다.

 

      < 보경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상가 건물" >

 

        < 보경사의 특미가 되는 "벌떡주" >

 

유혹을 뿌리치면서 내려오는 길이 한번 들어가 보겠다고 거짖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빨리 보경사 경내로 들어가기로 하는데, 이렇게 신속하게 걸어가는 이유는 동행하고 있는 한명의 동문이 보경사 경내에 몇년 전 새로운 보물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을 찾기 위함이다.

나는 2009년 6월 14일에 이곳 보경사를 품고 있는 내연산 산행을 종주한 경험이 있는데, 그 때에는 내연산의 반대편이 되는 경북수목원에서 출발하여 매봉 및 향로봉, 내연산을 빙돌아 장장 7시간 이라는 긴 시간으로 종주를 끝내고 이곳 보경사 경내를 돌아본 경험이 있는 사찰이다.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25년(서기 602년)에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大德) "지명법사(智明法師)" 가 창건한 고찰인데, 지명법사는 왕에게 진나라에서 유학할 때 어떤 도인으로 부터 받은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동해안 방향의 명당을 찾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고 이웃나라 침략을 받지 않으면서 장차 삼국을 통일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래서 왕이 크게 기뻐하며 그와 함께 동해안 북쪽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해아현(海阿顯) 증남산 아래 있는 거대한 연못 속에 팔면보경을 묻고 못을 매워 금당을 건립하고, 사찰의 이름을 "보경사(寶鏡寺)" 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그 뒤 고려 고종 때 원진국사를 비롯하여 많은 고승들이 중창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현존 당우로는 일주문, 해탈문, 천왕문, 적광전, 대웅전, 산신각, 명부전, 팔상전, 영산전 등 건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자리하고 있다.

중요 문화재로는 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 원진국사부도(보물 제430호), 서운암 동종(보물 제11-1호), 보경사 괘불탱(보물 제1609호), 적광전(보물 제1808호), 대웅전(문화재자료 제231호), 금당탑(유형문화재 제203호), 보경사 탱자나무(경북기념물 제11호) 등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상가 건물이 끝나는 지점에 보경사 온천과 더불어 가정집 담벼락에 한그루의 매화나무가 꽃을 활짝 피우고 있으면서, 나무에는 벌써 많은 벌들이 꿀을 찾아서 날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봄이 가까이 오고 있는 듯 화창한 날씨로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 보경사 입구를 지키는 "당산나무" >

 

            < 보경사 입구에 있는 "보경사 온천" >

 

    < 봄의 전령사 "매화나무" 꽃도 피고 >

 

매표소 입구에 도착하여 안내도 한장을 얻고 경로의 혜택으로 무료로 일주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이내 해탈문이 자리하고 있는데, 해탈문에서 부터 거대한 소나무 숲을 이루고 있는 오솔길 따라 조금 걸어가면 화장실 앞에 고목의 2그루 회화나무가 자리하고 있으면서 회화나무에는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로 수술한 자국이 애초롭게 보이고 있다.

 

        < 보경사의 첫 관문이 되는 "일주문" >

 

     < 일주문 다음으로 만나는 "매표소" >

 

< 매표소를 통과하여 만나는 2번째 관문이 되는 "해탈문" >

 

       < 해탈문을 지나면서 만나는 소나무 "숲길" >

 

      < 보경사 역사를 대변하고 있는 고목의 "회화나무" >

 

화장실 앞으로 계곡 따라 바로 올라가면 내연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되고 우측으로 꺽어서 들어가면 보경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이 되는데, 경내 입구에는 이곳 내연산 12폭포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한 영상물의 설명문이 붙어있다.

 

   < 이곳 보경사 주변에서 촬영한 "영상물" 설명문 >

 

이곳 보경사를 품고 있는 내연산은 기암괴석과 더불어 12폭포가 너무나 유명하여 시인 묵객과 더불어 나라의 임금 등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장소가 되는데, 조선 때 백성의 어려움을 직접 살펴보기 위하여 종종 미행을 즐기는 숙종이 머나먼 청하현 까지 내려와 민정을 보살피고 내연산 관광도 겸하여 보면서 산수의 아름다운 풍광에 도취되어 밤마다 꿈을 꾸다가 한수의 시(詩)를 남겼다고 한다,

아울러 숙종과 영조 시대에 살았던 겸재 "정선(鄭敾)" 선생님이 58세의 늙은 나이로 청하현 현감의 명(命)을 받아 이곳에서 근무 할 때, 종종 내연산을 돌아보면서 "내연삼룡추도(內延三龍湫圖)" 라는 명작의 그림을 후세에 남겼다. 

이렇게 왕과 선비들이 즐겨 찾았던 보경사를 다시 관람하기 위하여 경내로 들어가면 먼저 천왕문을 만나고 천왕문을 통과하면 넓은 마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마당 좌측편에는 2층의 범종각 건물과 오른편으로는 종무소와 함께 불교용품을 판매하는 기념품 상점이 있다.

 

        < 보경사 3번째 문이 되는 "천왕문" >

 

           < 천왕문 뒤편 마당 왼편에 있는 "범종각" 건물 > 

 

         < 천왕문 뒤편 마당 오른편에 있는 "종무소와 불교용품 판매점" >

 

   < 판매점 내부에 전시하고 있는 "불교용품" >

 

천왕문을 통과하여 뒤편으로 나가면 마당의 중간에 5층 석탑과 함께 보물 제1868호 "적광전(寂光殿)"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적광전은 신라 26대 진평왕 25년(603년)에 창건하였으며 그 후 여러 차례 중수가 되어 오늘에 이르면서 건물 내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다.

 

      < 5층 석탑과 함께 하는 "적광전" >

   

        < 적광전 내부에 모시고 있는 "비로자나불" >

 

문제는 이 건물을 빙돌아서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축돌과 더불어 기초석 전부가 가공하지 않은 원석의 옥돌로 만들어져 있는데, 현재까지 기초석 위로 사람들이 다녔지만 먼지로 인하여 옥의 빛을 잃어버려 사찰에서는 옥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몇년 전에 알았다고 한다. 

 

< 적광전 입구에 있는 "옥돌" 기초석 > 

 

< "옥돌" 로 되어져 있는 주축돌 >

 

또한 사천문과 적광전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의 기둥 아래에 옥돌의 분실과 더불어 어떠한 재앙도 침범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위하여 나무로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자상을 조각하고 있는데, 이 또한 건물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 천왕문과 적광전 입구를 지키는 "사자상" >

 

동문의 도움으로 이렇게 숨겨진 비밀을 알았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불자나 관광객들을 전연 눈치를 취하지 못하고 그냥 통과하고 있는데, 모르고 지나가는 것도 전생의 업(業)이라고 생각하는지 보경사에서는 아무런 설명문도 기록하지 않고 자연 상태로 두고 있다.

적광전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면 일단의 축대 위에 석등과 함께 대웅전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석등과 대웅전 건물 사이에 있는 마당에는 일반적 사찰에서는 사월초파일에 걸어주는 연등이 이곳 보경사에서는 년초 부터 설치하므로 겨울철에도 대웅전 마당을 호화찬란하게 만들어 준다.

 

        < 연등과 함께 하고 있는 "대웅전" >

 

      <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대웅전" 전경 >

 

보경사 대웅전 건물도 정확하게 건립 년대는 미상이지만 이 건물도 숙종 3년(1677년)에 크게 중수를 하였는데, 경내에 모시고 있는 부처님은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두고 좌우측에 모시고 있는 협신불은 미륵보살 및 제화가라보살을 모시고 있어 다른 사찰의 대웅전 건물에 있는 협신불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 대웅전 내부에 모시고 있는 "석가모니불" >

 

대웅전 앞 마당의 오른편으로 수백년 수령을 가지고 있는 반송(盤松)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반송은 나무의 밑 둥지에서 부터 많은 가지가 뻗어나므로 비록 높은 키를 가지는 못하여도 모양이 너무나 아름다워 관상수로 각광을 받고 있는 나무이라 하겠다.

 

 

          < 대웅전 앞 마당 오른편에 있는 "반송" >

 

대웅전 건물 뒤편으로 돌아서 가면 벽면에 "비사리구시" 라는 거대한 통나무 한개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통나무는 사찰에서 큰 행사를 할 때 마다 밥을 퍼서 보관한 통으로 한번에 4.000명이 먹을 수 있는 밥을 담을 수 있어 한 때 보경사가 얼마나 큰 사찰인가를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 대웅전 뒤편에 보관하고 있는 "비사리구시" >

 

대웅전 건물 뒤편으로 일단의 축대로 올라가면 아담한 마당이 나타나면서 마당의 오른편 가장자리에 보물 제252호 "원진국사비" 가 자리하고 있는데, 원진국사는 1171년 출생하여 1221년 이곳 보경사에서 입적한 고승으로 고종 2년(1215년)에 대선사로 임명되었으며 능엄경에 능하였다고 한다. 

 

 

     < 대웅전 뒤편 마당 오른편 구석에 있는 "원진국사비" 와 명부전 >

 

마당에서 또 다시 일단의 축대 위로 5채의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제일 왼편으로 팔상전(八相殿), 두번째 산령각(山靈閣), 세변째 원진각(圓眞閣), 그 다음으로 영산전(靈山殿) 건물이 남쪽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제일 오른편에 있는 명부전(冥府殿) 건물은 서쪽 방향을 보고 있다.

 

 

         < 대웅전 뒤편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는 "팔상전, 산령각, 원진각, 영산전, 명부전" 건물 > 

 

 

                    < 팔상전과 원진각 사이에 끼여 있는 "산령각" 건물 >

 

이 밖에 경내에는 불교대학 건물을 비롯하여 요사채 건물 등 다양한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수월당(水月堂) 건물 방향으로 들어가 보면 건물의 처마에는 수 없이 많은 메주가 달려 있으며 그 앞으로 도열하고 있는 장독대의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 경내 주변에 있는 다양한 "요사채" 건물 > 

 

 

                       < 많은 메주가 달려있는 "수월당" >

 

 

                      < 시멘트 블록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메주" >

 

 

            < 수월당 앞 마당에 도열하고 있는 "장독대" >

 

아울러 수월당 건물 앞 가장자리에 수령 400년이 되는 탱자나무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탱자나무는 밑 둥지의 굵기가 1m 정도에 높이가 6m가 되므로 경북기념물 제11호로 보호 받고 있는 것도 보경사의 자랑이다.

 

 

                    < 경북기념물로 지정하고 있는 "탱자나무" >

 

이 밖에 보경사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괘불탱(보물 제1609호)과 더불어 보경사 주변에 있는 서운암 동종(보물 제11-1호) 및 보경사 뒤편 야산에 있는 원진국사부도(보물 제430호) 등 문화재를 관람하지 못하고, 다음 관광지를 구경하기 위하여 보경사를 떠나기로 한다. - 두번째 방문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