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여행 및 산행.(전라도)

전라남도 진도군의 3번째 방문지는 첨찰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운림산방' 을 탐방하면서.(3)

용암2000 2020. 7. 11. 12:24

1. 첫째날 : 7월 3일.(금요일)



6) 운림산방을 돌아보면서.
벽파진전첩비 관람을 끝낸 일행은 약 20분 정도 운전을 하여 진도군의 중심지에서 약간 동쪽이 되는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자리잡고 있는 '운림산방(雲林山房)' 을 찾아가는데, 운림산방은 진도에서 제일 높은 해발 485m '첨찰산(尖察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 '운림산방' 을 알리는 입석 >


< '운림산방' 의 조감도 >


진도에 가면 세 가지를 자랑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 3가지가 다름 아닌 바로 글씨와 그림 및 노래가 되어지는데, 이 3가지 중에 글씨와 그림은 모두 운림산방에서 나온다고 보면 되겠다.
이른바 남종화(南宗畵)의 산실로 일컬어지는 운림산방이 진도군에 있기 때문이고. 운림산방 주변으로 쌍계사, 진도역사관, 남도전통미술관, 진도아리랑비, 운림예술촌, 운림삼별초공원, 무장애숲길 등 많은 볼거리를 함께 하고 있다.
나는 2012년 4월 8일 대구에 있는 어느 산악회에서 첨찰산의 산행과 더불어 일년에 단 한번 바다가 갈라지면서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신비의 바닷길을 걸어보는 체험을 가졌는데, 그 때 산행의 들머리는 운림산방 오른편에 있는 진도아리랑비 방향으로 올라가 정상을 찍고 하산은 운림산방 왼편에 있는 쌍계사 방향으로 종주산행을 가져본 산이다.
운림산방이 너무나 아름다운 정원을 가졌지만 함께 산행을 즐긴 일행과 함께 신비의 바닷길로 바로 가야하므로 운림산방을 돌아 볼 시간적으로 제한이 되었는데, 그로 인하여 입장료를 지불하면서 내부를 관람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외형만 바라본 정원이라 하겠다.
오늘은 마음 껏 운림산방을 구경하기로 하면서 출입문에서 입장료 2.000원을 요구하지만 경로(敬老)에게는 무료의 입장이 가능하게 하는데, 정문을 통과하면 넓은 잔디광장에 도착하면서 잔디광장의 가장자리에 정자 한채가 자리하고 있고 그 뒤편으로 4각의 연못이 자리하고 있다.


< 운림산방 '매표소' 로 들어가는 길 >


< 잔디광장과 함께 하고 있는 '운임산방' 전경 >


연못은 방지원도(方池圓島)의 형태로 외곽은 네모가 되고 그 안에 동그라미가 있기 때문에 외방내원(外方內圓)의 형상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연못의 한가운데 위치한 섬에는 소치 허련 선생님이 심었다는 배롱나무가 자라고 있다.


< 정원 내에 있는 '연못' >


연못의 뒤편으로 운림산방의 건물이 되는 화실 및 초가집, 운림사, 사천사, 소치기념관 등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운림산방은 조선시대 남종화의 대가이였던 소치 '허련(許鍊)' 선생님(1808-1893년)이 말년에 거쳐하여 여생을 보낸 장소이라 하겠다.
허련은 진도읍 쌍정리에서 허임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어려서 부터 그림에 재주가 많았던 그는 20대 후반 해남의 두륜산방에서 초의선사(草衣禪師)의 지도 아래에서 공재 '윤두서(尹斗緖)' 의 화첩을 보고 그림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1840년 33세 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평생 가장 소중히 모신 스승 추사 '김정희(金正喜)'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받았는데, 비록 남도의 섬에서 출생하기는 했지만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질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시(詩), 서(書), 화(畵)에 모두 능한 삼절(三絶)을 이루게 되었다.
소치 허련은 '허유(許維)' 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는데, 중국 당나라 남종화의 효시(嚆矢)로 알려져 있는 왕유(王維)의 이름에서 따와 허유라고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소치(小痴)’ 라는 아호는 스승인 김정희가 내려주었는데, 원나라 때 사대가의 한 사람이었던 대치 황공망을 본따 지은 것으로 추사 선생님은 소치의 화재를 두고 '압록강 동쪽에서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 고 극찬하였다고 한다.
철종 7년(1856년) 허련은 그의 스승 추사 김정희가 죽은 후 49세가 되던 다음 해에 고향인 진도로 내려와 초가를 짓고 거처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이곳의 이름을 처음에는 운림각(雲林閣)이라 하고 마당에 연못을 파서 주변에 여러 가지 꽃과 나무를 심어 정원을 만들었다.
소치는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면서 그림을 그렸으며 남종화의 터전으로써 운림각의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고, 허련은 이곳에서 1893년 8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불후의 명작들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허련이 사망한 후 그의 아들 허형이 진도를 떠나면서 운림산방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예전의 모습을 거의 잃게 되어 그 후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피폐된 이곳을 허형의 아들 허윤대가 다시 사들였고, 또 다른 아들 허건이 1992년 부터 2년에 걸쳐 옛 모습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소치 '허련' 선생님의 일대기 >


연못의 뒤편으로 화실로 사용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지만 내부 수리로 인하여 출입이 불가능하고 그 뒤편으로 돌담으로 만들어진 터에 살림집이 되는 초가집이 자리하고 있는데, 초가집에는 안채와 더불어 허련 선생님이 머물었던 사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공사로 인하여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 '화실' >


< 허련 선생님이 살았던 '초가집' >


초가집의 뒤편으로 돌아가면 허련 선생님의 화상을 모신 '운림사(雲林祠)' 가 자리하고 있고 오른쪽 후면에는 '사천사(斜川祠)' 가 자리하고 있는데, 사천사는 소치의 문중 양천허씨 진도중파의 제각으로 매년 한식날 소치 선생의 6대조 가문이 춘향대제를 봉행하는 건물이라 하겠다.


< 허련 선생님의 화상을 모시고 있는 '운림사' >


<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천사' >


사천사의 앞쪽 오른편으로 소치기념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어 입구로 들어서면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로 구획하고 있는데, 먼저 입구에 있는 제1전시실에는 소치 선생님의 5대 가계도, 즉 초대 소치 선생님을 비롯하여 2대의 미산(米山), 3대의 남농(南農)과 임인(林人), 4대의 임전(林田), 5대에 동원(東園), 소정(小丁), 진(眞), 재(在), 오림(五林) 으로 구성하고 있다.


< '소치기념관' 전경 >


< '소치기념관' 의 유래 >


< 5대 '일가직계' 가계도 >


운림산방은 200여 년 동안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가직계(一家直系) 5대에 걸쳐서 남종화를 보여주는 곳인데, 남종화는 북종화와 구분되는 화법으로 당나라의 문인화가이자 시인이었던 왕유를 비조로 하여 송나라를 거쳐 원나라의 사대가(四大家) 및 명나라의 심주(沈周)와 문징명(文徵明) 같은 오파(吳派)의 문인화가들에 의해 전해 내려온 화법이다.
남종화는 북종화보다 존중되었는데 중국 명과 청나라 시대에는 남종화가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두 분파의 큰 차이점은 주로 대상을 어떻게 표현하는 가에 있다고 하는데, 북종화는 외형을 위주로 한 사실적인 묘사를 주로하고 남종화는 작가의 내적 심경, 즉 사의표출(寫意表出)에 중점을 둔다고 한다.
제1전시실에는 5대의 5인(동원, 소정, 진, 재, 오림)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는데, 5인이 화가는 자기의 개성을 살리고 있는 독특한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 현대의 미술학도에게 발길을 잡기에 충분한 그림이라 하겠다.


< '제1전시실' 의 전경 >


< 5대의 5명 '화가' >


< 제1전시실에 전시하고 있는 '그림' >


내부에 있는 제2전시실로 들어가면 이곳 전시실에는 초대 허련의 작품에서 부터 2대의 미산, 3대의 남농 및 임인, 4대의 임전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각자의 작품은 유사하면서도 독특하게 개성을 나타내고 있는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 '제2전시실' 의 전경 >


< 소치 선생님의 작품 '운림각도' >


2대 미산 허형(許灐 : 1862-1938년)은 초대 소치 선생님이 매우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로 그의 화풍을 이어받아 산수, 노송, 모란, 사군자 등을 잘 그렸지만, 아버지의 화격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미산 선생님은 3대 남농 허건(許揵 : 1907-1987년) 및 임인(林人 : 1917-1942년)을 낳았는데, 남농 선생님은 조선 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한 후 20세기 근대 화단에 한국화의 중심에 자리한 화가가 되었으며 운림산방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을 하였다고 한다.
임인 선생님은 4대 임전 허문(許文 : 1941-현재) 선생님을 낳았는데, 임전 선생님은 현존하는 화가로써 운무산수화(雲霧山水畵)의 대가로 구름과 안개를 주제로 산수화를 많이 그리고 있다.


< 전시하고 있는 '작품' >


< 4대 임전 선생님의 '운무산수화' >


나는 그림을 보는 안목이 전무하다 보니 그저 보았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하여 좋다고 생각이 되는 작품 앞에서 사진으로 남겨두는 것이 나의 한계가 되어지는데, 나의 눈에 비치는 작품들은 그저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그림이라서 그런지 매우 유사함이 느끼게 만들고 있다.


< 작품명 : '팔군자팔곡병풍' >


< 허림의 작품 '아침(朝)' >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5대의 작품을 관람하고 나서 소치기념관을 떠나기로 하는데, 진디광장의 앞쪽으로 진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진도역사관이 자리하고 있지만 진도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방문한 진도타워에서 전시하고 있는 진도 역사와 큰 차이점이 없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바로 운림산방을 떠나기로 한다.



7) 남도전통미술관의 관람.
운림산방으로 들어가는 입구 왼편으로 남도전통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주차장에서 들어가면 미술관으로 바로 진입이 가능하지만 운림산방에서 들어갈려면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이용하여야 한다.


< 주차장에서 '남도전통미술관' 으로 바로 들어가는 문 >


계단의 입구에 한옥집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이곳 한옥집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 경매를 통하여 미술품을 직접 구입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현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당분간 경매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 경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한옥집' >


일행은 운림산방을 관람하고 나서 바로 남도전통미술관으로 내려가기 위하여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이용하여 건물로 들어가는데, 건물의 출입문을 열고 내부로 진입을 하니 관람객이 없어서 그런지 안내원이 자리를 비워 두고 있다.


< '남도전통미술관' 건물 >  


이곳 남도전통미술관에는 진도 출신의 한국 거장 화가의 작품을 순차적으로 전시를 하는 곳으로 전시실에는 3개의 전시실로 나누어지는데, 출입문 앞에 있는 제1전시실에는 종합전시실로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 제1전시실에 전시하고 있는 '작품' >


< '산수화' 그림 >


< '병풍도' >


제1전시실 오른편으로 제2전시실과 제3전시실로 꾸며져 있는데, 제2전시실에는 백포 '곽남배(郭楠培)' 화백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고 제3전시실에는 전정 '박항환(朴亢煥)' 화백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백포 '곽남배' 화백의 연역 >


< '곽남배' 화백의 그림 전시실 전경 >


< 곽남배 화백 전시실에 전시하고 있는 '도자기' >


< 전정 '박항환' 화백의 연역 >


< '박항환' 화백의 그림 전시실 전경 >


< '박항환' 화백이 그린 그림 >  


이곳도 미술에 대한 안목이 전무하여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을 관람을 끝내고 남도전통미술관을 떠나기로 하는데, 지금까지 그렇게도 찌뿌린 날씨에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우산을 쓰고 주차장으로 나가 인접하게 있는 쌍계사를 구경하여 보기로 한다.



8) 쌍계사 및 아리랑 마을의 관람
우산을 쓰고 사찰의 입구에 있는 일주문을 통과 할려는 순간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므로 관람을 포기하는데, 내리는 강우로 인하여 더 이상 관광이 불가능할 것 같아 드라이브나 즐기자는 마음으로 진도군의 남쪽 해안가에 있는 아리랑 마을로 달려간다
.

< 첨찰산 '쌍계사' 의 일주문 >


< 비에 젖은 '아리랑 마을' 에 있는 기념관 >


한 20분 정도 운전하여 국립 남도국악원 앞에 있는 아리랑 마을에 도착을 하는데, 여기에 도착을 하여도 계속하여 내리는 강우로 인하여 관람을 포기하고 숙소를 구하기 위하여 저렴한 숙소가 많은 진도읍시가지로 올라가기로 한다. -첫째날 3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