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강원도)

강원도 양구군 펀치볼 내에 있는 "평화의 숲길" 트레킹 및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 의 관람.

용암2000 2012. 7. 28. 01:05

2012년 7월 26일 (목요일)

 

오늘 대구에서는 폭염으로 최고의 기온으로 상승한다는 일기 예보로 더위는 더위로 다스린다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극약 처방을 만들기 위하여, 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에 있는 일명 "펀치볼" 로 유명한 DMZ 내에 있는 "평화의 숲길" 트레킹 길을 걸어본다.

대구에서 신규 트레킹 길을 개척하는데 선구적인 역활을 하면서 지역 산악인들에게 언제나 신선감을 부여하고 있는 대구드림산악회에서 운행하는 새벽 버스에 승차를 하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대구를 탈출하고 있다.

언제나 방긋 방긋 웃음으로 대면하는 보조개 아줌마 Guide님의 환영 인사를 대면하면서 상쾌한 기분으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북쪽으로 달려, 안동 휴게소로 잠시 들어가 휴식과 더불어 변함없이 산악회에서 제공하여 주는 간단한 아침식사를 가진다.

이어 다시 달리는 버스 속에서 Guide는 산행 팜플릿과 산악회 시그날을 돌리고 나서 오늘의 일정을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2번의 방문 경험을 살리면서 펀치볼 안내 설명이 연결된다.

펀치볼과 해안면 유래 및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면서 DMZ의 내역과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의 아푼 역사를 상기하면서 후손들에게 비극의 역사를 되물림 하지 말자는 역사관을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휴전선에 대한 역사를 얼마나 공부하였는지 많은 원고지를 들고서 차곡차곡 내용을 설명하므로 세상에 이런 공부하는 Guide와 함께 동행 함이 너무나 행복하여 진다.

오늘 트레킹 Schedule을 개략적으로 설명하는데, 11시 30분 경 현지에 도착하여 12시부터 현재 개발된 트레킹 코스 중 제일 많이 찾는 제1코스의 트레킹 중 약 1/3 정도의 길을 3시간 정도 걷다가 중간 지점에서 중단하고 버스를 이용하여 제4땅굴로 이동한다.

 그래서 제4땅굴을 구경하고 오후 4시 경 다시 버스를 이용하여 "을지 전망대" 까지 올라가 북한 땅과 약 30Km 떨어진 금강산 까지 구경하고 나서, 오후 5시 경 대구로 출발하여 10시 30분 경 대구 성서 홈플러스에 도착되는 기나긴 여정으로 짜여진다고 한다.

버스는 춘천시내로 갈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홍천 Toll gate에서 내려 내설악산 방향으로 올라가기 시작하다가, 안전 운행을 위하여 국도 변에 있는 "화양강 랜드" 휴게소에 잠시 들어가 불순물 제거와 동시에 간단한 휴식시간을 가진다.

 

< 인제군으로 들어가는 국도 변에 있는 "화양강 랜드" 휴게소 >

 

짧은 휴식을 끝낸 버스는 인제군 북면 원통리시가지를 통과하면서 야산 고개를 넘어 양구군 해안면으로 바로 들어가는데, 여기서 부터 도로 변에는 요소요소 마다 적의 침입을 지연시키기 위한 방공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아울러 도로 가에는 민간인 마을 보다 군인들이 주둔하는 군사 시설물이 더 많이 눈에 들어오므로 지금까지 후방에서 전연 느껴보지 못한 전쟁의 공포가 엄습하여 온다.

해안면으로 들어가는 길은 첩첩산중 속에서 흘려가는 냇물 옆으로 만들어진 고부랑 길 따라 약 30분 정도 달려가면 별천지의 거대한 분지를 만나는데, 이 분지 하나가 얼마나 큰지 한개의 행정 단위인 면(面)을 형성하고 있다.

버스는 면사무소 입구에 있는 "양구 통일관" 앞 주차장에 정차하는데, Guide는 오늘의 트레킹 길을 안내하는 "방문자 센터" 사무소로 들어가 비무장 지대에서 트레킹을 실시하기 위한 소속을 진행하는 동안 우리 일행에게 한 20분 정도 시간을 부여하여 "양구통일관 및 전쟁기념관" 내부를 관람하도록 한다.

 

< "양구통일관" 으로 들어가는 일행 >

 

통일관 내부 전시물은 현재 북한의 실정과 더불어 6.25 사변의 역사성을 조명하고 있는데, 시간적인 한계로 중요한 부분만 선택하여 읽어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 양구통일관 내부에 있는 "전시물" 을 구경하면서 >

 

특히 양구군 해안면과 펀치볼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데, 옛날 해암면은 바다 속에서 솟아 올라와 육지가 된 지역으로 "바다 해(海)자" 를 쓴 지역이 조선시대 사람들이 밖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뱀들이 서식하여 한 스님이 이곳의 지명을 뱀의 천적인 돼지를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 지명의 이름도 바다 해(海)자에서 "돼지 해(亥)자" 로 바꾸며는 뱀이 없어졌다고 하여, 집집마다 돼지를 키우게 하여 뱀이 사라지게 하였다고 한다. 

아울러 해안면을 "펀치볼" 이라고 하는 것은 6. 25 전쟁 때, 외국의 한 종군기자가 해발 1100m 가 넘은 "가칠봉" 정상에서 분지를 내려다 보니 노을 빛으로 인하여 분지가 칵테일 유리잔 속 술의 빛과 같고 높은 산으로 빙돌아 쌓여있는 분지의 아름다운 모습과 형상이 마치 한개의 "화채 그릇(Punch Bowl)"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해안면과 펀치볼" 로 불려진 내역 설명서 >

 

위에서 내려다 본 번치볼 분지가 한국에서 유일하게 눈으로 보이는 땅 전체가 한개의 지방자치단체 땅이 된다고 한다.

 

 < 북한에서 생산하고 있는 "생활 필수품" >

 

 < 북한에서 통용하고 있는 "화폐" >

 

이어 통일관 오른편에 있는 "전쟁기념관" 으로 발길을 돌려보면 이 전쟁기념관에는 양구군 펀치볼 내에 치루어졌던 도솔산 전투, 펀치볼 전투, 피의 능선 전투 등 총 9곳의 전투사를 조명하고 있다.

 

< 양구 통일관 오른편에 있는 "전쟁기념관" 입간판 >

 

 < 전쟁기념관 입구 9곳의 전투를 치른 "고지높이" 를 나타내는 기둥 >

 

내부로 들어가면 폭탄 또는 총탄의 자국이 선명하게 노출되면서 쓰려져 가는 건축물 사이로 미로 같은 통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이 미로 따라 내부로 들어가면 원형의 영화관이 나타나면서 6. 25 전쟁의 참사를 재현하여 놓으면서 영화가 연속적으로 상영되고 있다.

 

< 연속적으로 상영하는 "6.25 고지 전투사" >

 

빗발 같이 쏟아지는 총탄과 연신 터지는 대포 소리를 들으면서 내부로 돌아가면 6.25 전쟁 때 기록물과 더불어 그 때 아군과 적군이 사용한 무기와 전쟁 유품 500여 점도 동시에 진열하고 있어, 당시 군사력을 가름할 수 있다.

 

 < "철조망" 으로 재현하여 놓은 통로 >

 

 < 6.25 전쟁 때 사용한 "무기류 전시품" >

 

출구 쪽으로 나아가면 전선에서 산화 되어간 병사들의 녹슨 철모들이 천장에 메달려 있으며 유리로 된 통로 발 아래에도 수 없이 많은 탄피들이 진열하고 있어,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흘린 피방울이 얼마인지 상상도 되지 않는 전시실이다.

 

 < "철모와 탄피" 로 이루어진 통로 >

 

밖으로 나와 야외 전시장을 돌아보면 전차와 탱크가 전시되어 있어 천천히 돌아보고, 왼편에 있는 숲속 휴게소로 들어가니 오늘 우리들과 함께 트레킹 길을 인도 할 현지 3명의 Guide가 나와 인사와 더불어 트레킹에 따른 주의점을 설명한다.

 

< 야외에 있는 "전쟁 기념탑" >

 

< 야외에 전시하고 있는 "대포와 탱크" >

 

최고 연장자가 되는 남자 Guide가 먼저 인사와 더불어 이곳 펀치볼 내에 만들어진 트레킹 코스 현황을 설명하는데, 현재 펀치볼 내에서는 3곳의 트래킹 코스가 개발되어 있다고 한다.

트레킹의 제1코스는 총 길이 13.1Km의 "평화의 숲길" 로써 약 4시간 4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며 제2코스는 총 길이 14.6Km의 "오유밭길" 로써 약 5시간 30분, 제3코스는 총 길이 18.2Km의 "만대벌판길" 로써 약 6시간 40분이 소요되는 코스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 "평화의 숲길" 을 설명하고 있는 현지 Guide >

 

 < "제1코스 트레킹" 거리와 조감도 > 

          

그런데 이 트레킹 코스 주변에는 각종 농작물을 재배하는 밭과 논 사이를 일부 걸어가야만 하고, 각종 약재와 산나물을 재배하고 하고 있는 야산 및 안보를 위한 군사 시설이 있는 통제 지역도 통과하여야 하므로 그에 대한 농작물이나 시설물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하게 주의를 요구하면서 추억의 트레킹 장소가 되도록 간곡하게 부탁을 드린다고 한다.

이어 2번째 젊은 여성 Guide는 트레킹에 따른 세부적인 설명을 하는데, 현재 번치볼을 형성하고 있는 해안면 분지의 크기가 서울 여의도 면적의 약 5배가 되는 44.7 평방 키로메터로써 약 1.350만 평이나 되지만 한 눈에 다 볼 수 있는 평지이다.

현재 이 해안면에는 6개의 마을로 구성된 약 500가구 1.500명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주민들은 고냉지 채소와 과수 농업을 영위하고 있는데, 한 가구당 평균 2만 9천평의 논경지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해안면 전체 땅은 한 때 북한으로 편입 되었다가 남한의 승리로 인하여 획득한 땅이다 보니 대부분 토지가 국유지로 되어 있어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국가로 부터 토지를 임대하여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농업 인구가 타지역 농촌에서 꺽고 있는 고령화와는 다소 거리가 먼 젊음이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농가들은 저렴하게 경작지를 임대하므로 농사에 대한 애착이 크므로 영농작업 모두가 기계화 작업이 이루어져 있어, 사람의 숫자 보다 영농기계가 휠신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제일 젊은 세번째 청년 Guide는 트레킹 전에 간단한 체조를 시킴으로 콘디션을 조절을 하고 나서, 출발로 유도를 시킨다.

간단하게 국민 체조를 끝낸 Guide는 트레킹 초입으로 안내하기 시작하는데, 우리 Guide가 나누어 준 지도와 달리 전쟁기념관 옆에 있는 트레킹 제3코스 만대벌판길의 종착지점까지 안내하여 제3코스 길을 역행하여 걷기를 시작한다.

 

 < 트레킹 초입을 알리는 "안내판" 과 길을 지키는 군인 > 

 

동행한 Wife를 앞 세우면서 천천히 언덕 길로 올라서서 숲속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DMZ(De-militarized Zone)라는 생소한 지역을 경험하다 보니 신비감이 묻어난다.

 

< 숲길을 걷고 있는 "Wife" 의 뒤 모습 > 

 

가는 길 곳곳에서 Guide가 현지의 풍경과 풍속, 동식물의 생태계, 후방에서 알지 못하는 전쟁의 사연, 현재의 북한 동정 등 그들만이 아는 많은 경험을 이야기하여 주는데, 동시에 사람들이 운집하여 경청하다 보니 상세하게 설명을 듣지 못함이 아쉽다.

 

 < 현지 생태계를 설명하고 있는 "Guide" 뒤 모습과 좀 늙은 학생들 >

 

조금 더 앞으로 전진하니까 3거리 이정표가 나타나면서 오른편의 제3코스 길 반대편인 왼편 능선길로 들어서는데, 능선길 좌우에는 동토의 땅 소련에서 잘 자라고 있는 "자작나무" 가 빽빽하게 도열하고 있다.

 

< 새롭게 숲을 형성하고 있는 "자작나무" >

 

조선시대 이곳 해안면에서는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 나라 임금님이 마음되로 벌목하지 못 하도록 규제 할 정도의 숲으로 형성 되었지만 6.25 사변 이후 북한에서 바람이 남쪽으로 부는 날에는 인위적으로 산불을 질려 남한 주민들에 큰 타격을 주므로 울창한 소나무가 완전히 살아지고, 현재는 작은 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있는 곳에 자작나무도 병행하여 식목하므로 인공 조림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이렇게 야산을 한바퀴 돌아서 내려가니 출발 지점인 양구 통일관에 다시 도착하여 지는데, 약 1.5Km의 야산을 돌아보는 것은 제1코스로 바로 들어가 도로가 만나는 지점까지의 트레킹 길이 다소 짧아 머나먼 거리인 대구에서 방문한 드림산악회 회원들에게 서비스 차원에서 추가 안내하는 현지 Guide의 선물이라고 한다.

 

 < 긴 줄을 형성하면서 걷는 "트레킹" 길 >

 

이어 본격적으로 제1코스의 시발점으로 이동하는데, 마을 입구에 있는 해안면 복지회관 및 해안 휴게소를 지나면 반대편 마당에는 많은 농기계들을 수리하는 주차장 사이로 통과하여 을지전망대로 올라가는 도로 따라 100m 정도 올라간다.

도로변에서 야산으로 올라가는 이정표를 만나면서 트레킹 길로 이어지는데, 다시 땀으로 번벅이 되는 고행(苦行)의 구간을 걷어가야 한다.

 

 < "해안면 복지회관" 앞을 지나면서 >

 

< 다른 한편에 정차하고 있는 "농기계" >

 

< 본격적으로 제1트레킹 길을 알리는 "평화의 숲길" >

 

울창한 숲 길 따라 고불고불 걸어가면 더욱더 맑은 공기가 폐부를 찔려 오면서 상쾌한 기분을 유발시키고 있지만, 산책 길 옆으로는 수 없이 많은 방공호와 방공호 사이를 연결하는 비밀 통로가 산천을 뚫고 있어 이렇게 망가진 자연의 모습 보고 있으니 여기가 DMZ 이구나 하는 슬픈 생각이 직면하게 된다.

 

 < 방공호 통로를 위하여 "회손시킨 자연" > 

 

무아지경으로 제일 뒤쪽에서 천천히 걸어가니 선두 현지 Guide는 울창한 숲 그늘 아래에서 자리를 만들면서 만찬을 즐기고자 하는데, 일행 옆에 자리를 잡고서 각자 가지고 온 점심식사의 시간을 가져본다.

충분한 휴식과 더불어 식사를 끝내고 나서 트레킹 길로 다시 이어지는데, 몇 개의 능선을 돌아가면 넓은 밭 가장자리 따라 만들어진 농로 길로 들어간다.

밭에는 고냉지 작물이 되는 고구마. 감자, 고추, 들깨, 호박, 무우, 배추, 옥수수, 콩, 도마도, 등 채소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으며 다른 한편의 야산에는 사과, 포도, 배, 살구 등 과일 나무들도 잘 가꾸어져 있는데, 강력하게 내리 쪼이는 햇빛을 받으면서 결실의 가을로 치닫고 있다.

 

< 고냉지 "채소" 가 자라고 있는 밭 >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거대한 산비탈 밭에 검정색과 흰색의 비닐로 덮혀 있는데, 그 비닐 아래에는 5-6년이라는 인내의 세월을 기다려만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인삼을 재배하는 거대한 밭의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다.

반씨(潘氏) 성을 가진 UN의 모 인사님 4촌 동생이 이곳 번치볼 야산에 약 50만평을 임대하여 인삼을 재배하고 있는데, 초기 투자 비용이 천문학적이라고 한다.

 

< "인삼" 을 재배하기 위하여 설치하고 있는 흰색과 흑색 비닐 >

 

농로길 따라 걷는 길가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 있으며 자연으로 부터 최고의 꿀을 제공하여 주는 싸리나무 꽃도 만발하게 피어 있는데, 벌 나비들이 부지런히 왕림하는 모습도 보면서 걷고 있으니 전형적인 농촌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된다.

 

< "야생화" 가 피어 있는 길도 걸어 가면서 >

 

또 다시 다른 야산으로 길이 이어지는데, 이번 야산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산이라서 그런지 곳곳에 야생 마늘 및 장뇌삼을 재배한다는 패말이 부착되어 있으며 농작물에 절대 손되지 말고 눈으로 즐기면서 트레킹에 임하여 달려는 간곡한 문구도 보인다.       

이렇게 야산을 넘고 넘어 또 다시 도로에 내려서서 걸어가면 7월이면 청포도가 알알히 익어가는 밭 가장자리를 지나가는데, 펀치볼 포도를 홍보하고 있는 모습도 정겨움이 묻어난다.

 

< "포도" 를 보호하여 달려는 안내문 >

 

< 종이 봉지 속에서 익어가고 있는 "포도밭" >

 

이 포도밭을 지나면서 왼편 야산으로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이 야산은 해발 598m "와우산(臥牛山)" 정상으로 마치 한마리의 소가 엎드려 있는 모습하고 있어 와우산이라고 한다.

 

 < "와우산" 정상에 지어진 정자에서 >

 

< "와우산" 을 알리고 있는 전설 내용 >

 

와우산 정상에는 아름다운 정자가 자리잡고 있으며 그 정자 앞에는 펀치볼을 홍보하는 넓은 사진이 놓여 있는데, 사진 속에는 펀치볼의 넓은 들판과 병풍 같이 둘려쳐 있는 대암산, 도솔산, 대우산, 가칠봉 등 산맥이 그림과 같이 펼쳐지고 있다.

 

< 와우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펀치볼" 마을과 대암산 능선 >

 

 < 와우산 정상에서 바라본 "가칠봉" 능선 >

 

여기에서 부터 15분 정도 하산하면 오늘 계획한 트레킹 길이 끝나므로 마지막으로 정자에 머물고 있는 일행에게 지금까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는 현지 Guide님이 더위에 지친 일행에게 힘을 부여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 한곡을 멋지게 불어주므로 한여름의 무더위가 저 만큼 달아나는 명가수의 노래가 연속적으로 불려진다.

 

< 관중에게 박수를 받으면서 노래하는 "현지 Guide" >

 

아름다운 경치와 명가수 노래를 감상하면서 천진난만 하게 평화로운 모습으로 박수를 치면서 즐기고 있는 일행들이 비무장지역이라는 DMZ의 긴장감 속에서도 위기감을 망각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져본다.

어느 정도 땀을 식히고 나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제4땅굴로 올라가는 차도에 도착하여 지는데, 우리 측 Guide는 통일관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올라오게 전화를 한다.

 

< 마지막 차도까지 걷는 "트레킹 길" >

 

일행이 승차한 버스 속으로 현지 Guide가 올라와서 간단하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나서, 버스는 급경사의 오르막 길로 10여 분 정도 가칠봉 방향으로 올라가면 제4땅굴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다.

 

< 주차장 앞에 있는 "제4땅굴" 조형탑 >

 

먼저 땅굴 좌측에 있는 홍보관으로 들어가 제4땅굴에 관련된 영상물을 보고, 옆에 있는 전시관으로 다시 들어가 전쟁의 잔해물을 한번 더 돌아보는 기회를 가진다.

 

< "제4땅굴 현황" 을 상영하는 영상물 >

                                                                                        

< 홍보관 내에 진열하고 있는 "전시물" > 

 

그리고 나서 산기슭로 돌아가면 먼저 제4땅굴을 발견할 시 땅굴 속에 설치하여 놓은 적의 지뢰로 산화된 독일산 명견 동상이 서 있으며, 그 옆으로 땅굴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 지뢰로 희생된 독일산 "명견" 동상 >

 

입구로 들어가면 적의 땅굴을 지나가는 지점까지 연결하는 역갱도가 만들어져 있는데, 땅굴로 들어가기 전 한명의 군인이 주의점을 설명하고 2줄로 통과하도록 하면서 땅굴 속에서는 절대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 "제4땅굴" 입구에서 >

 

이 역갱도(易坑道) 땅굴을 뚫기 위한 기계는 독일산 착암기인 TBM 장비를 이용하여 뚫은 굴이며, 그 길이가 약 300m가 된다고 한다.

역갱도 300m를 걸어 들어가면 막창에 도착하면서 북한에서 만든 제4땅굴과 만남이 발생하는데, 이곳에서 또 다른 한명의 군인이 땅굴의 내역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제4땅굴은 총 길이가 약 2.000m이며 38선인 남방 한계선에서 약 1.000m가 넘어 와 있는데, 땅굴의 크기는 가로 1.7m에 높이 1.7m 로써 지하 145m에서 굴착되어 있다고 한다.

 

 < 제4땅굴 "구조적 특징" 및 세부 그림 >

  

현재 남한에서 발굴된 4개의 땅굴 중 3개 땅굴은 정보를 통하여 발견되었지만, 이곳 제4땅굴은 순수한 우리 기술로 발견된 땅굴이며 안보의 장소로 민간인에게 완전히 개방된 땅굴이라고 한다.

특히 땅굴에는 광차에 직접 탑승하여 북한 방향으로 100m 정도까지 운행하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므로써, 눈으로 직접 보는 안보 정신을 고취시키고 있다.

오늘 광차 구석자리에 앉자 나의 인생과 나의 고민 등과 더불어 국가 걱정이 번개 같이 지나 가는데, 6번이나 방송국을 통하여 사과만 먹고 지나는 푸른 집 주인공 아저씨 MB씨 이젠 사과 먹는 꼴 보기도 싫으니 그 자리 누구에게 좀 물려주었으면 좋겠다.

국회에서 왈가 불가하면서 나라 살림이나 축을 내는 몇 명의 국회의원이나 좀 제명시켜 주고, 제4땅굴로 추방하여 광차 운전사로 좀 취직 시켜주면 안되나요? 

"백문이불여일견(百問以不如一見)" 이라는 명언과 같이 아무리 책에서 배우고 들어도 직접 한번 체험을 통하니 잠들어 있는 안보 의식을 크게 고취가 되고,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 펀치볼 마을 까지 다시 내려와 다른 길을 이용하여 "을지 전망대" 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올라가는 길은 너무나 급경사의 고불고불 한 오르막 길로 만들어져 있어 오금을 조이면서 몇 개의 능선을 넘어가면 전망대 주차장에 도착하여 지는데, 능선 정점에는 붉은색의 2층 건물을 만난다.

 

 < 2층으로 된 "을지 전망대" 를 배경으로 >

 

건물로 올라가는 계단 끝지점에 2층 테라스로 되어 있는 지붕 처마에 "을지 전망대" 라는 글씨와 더불어 3개의 국기가 바람에 휘날이고 있어, 이곳이 최전방이라는 생각이 전연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평화스러운 집이다.

 

 < "을지 전망대" 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

 

한명의 군인으로 부터 안내를 받으면 2층으로 올라가면 강당에는 의자들이 놓여 있는데, 단상 뒤편 북한 방향으로 투명 통유리로 되어 있어 북녁땅 산하가 그림같이 펼처지고 있다.

그런데 이곳 강당에서는 북한 방향과 강당 내부에 진열하고 있는 전시물에게 절대로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고, 오직 남한 방향으로만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고 주의를 준다.

조금 후 한 군인이 서서 영상물과 더불어 북한지점 하나 하나 가르키면서 설명이 이어지는데, 아 저곳이 그렇게도 우리 남한을 못살게 만드는 통토의 땅 이북이구나 하는 현실에 직면하여 진다.

이곳 을지 전망대에서 1년 365일 동안 약 80일 정도만 금강산을 볼 수 있는 청명한 날씨가 되는데, 오늘은 다소 희미하지만 그래도 금강산을 볼 수 있는 행운의 날 중에 하나라고 한다.  

상세한 설명이 끝내고 나서 망원경을 통하여 방금 설명한 북한지점 하나 하나를 점검하여 보면서 관찰하다가 금강산 쪽으로 망원경을 돌려서 관찰하여 보는데. 정말로 희미한 모습의 금감산이 고즈늑하게 졸고 있다.

옆에 있는 Wife에게 망원경을 건너면서 아름다운 금강산 풍경을 공유하여 보지만, 언제 직접 한번 발길을 찍어보는 산천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내부에 진열하고 있는 전시물을 잠시 돌아보다가 밖으로 나와 펀치불 전망대로 올라가 아름다운 해안면 풍경을 다시 한번 더 구경하여 보는데, 밑에서 본 펀치볼 보다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번치볼 풍광이 말로써 표현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움 풍경이 펼쳐진다.

 

< "을지 전망대" 에서 >

 

< "을지 전망대" 에서 내려다 보는 펀치볼 전경 > 

 

오늘 무더위를 이기기 위하여 트레킹 코스로 자청한 이곳 을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 하나 만으로도, 너무나 충분하게 보상 받고도 남는 장사가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