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군 문화와 산행.

6.25 격전지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 과 "도봉사" 를 찾아서.

용암2000 2012. 10. 3. 21:29

2012년 10월 1일 (월요일)

 

1.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구경하면서.

어제는 간단한 추석 제례와 함께 부모님 산소를 돌아보는 하루로 보내고, 금일 오후는 장모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하여 승용차는 대구광역시 팔공산 산자락이면서 가산선성 아래에 있는 남원동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추모를 드려본다.

이어 시간적인 여우가 다소 발생하므로 드라이브 길로 들어서는데, 승용차는 6.25 격전지로 유명한 경북 칠곡군 가산면과 석적면 경계지점을 점유하고 있는 "다부동 전적기념관" 을 다시 찾아본다.

입구 주차장에 들어가니 추석 연휴를 즐기려는 탐방객들이 6.25 때 조국을 위하여 산화된 국군과 무명의 용사를 참배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는데, 그로 인하여 다소 복잡한 장소가 된다.

 

 

< "다부동 전적기념관" 주차장 전경 >

 

승용차 주차장 주변에는 전적기념관을 관리하는 "구국관(求國館)" 건물과 더불어 많은 전차들이 도열하고 있다.

 

 

<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관리하고 있는 "구국관" >

 

탱크 모형을 하고 있는 다부동 전적기념관은 이곳 구국관 주차장에서 수십개의 계단 위편에 건립되어 있는데, 계단을 올라가기 전 다부동 전투에 따른 역사적 기록 내용을 읽어 본다.

 

 

< 구국관 앞 정원에 진열하고 있는 "탱크" > 

 

다부동 전투는 1950년 7월 29일 미국 제8군 사령관 "워커(Walton H, Walker)" 중장님이 "한치의 땅도 적에게 빼았기면 수 많은 전우의 죽음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한다" 라고 낙동강 방어선의 사수를 명령한다.

한국군 제1사단이 1950년 8월 1일 낙동강에 도착한지 3일이 지난 4일 부터 "낙정리(다부동 북방 43Km)" 에서 시작되었고, 같은 해 9월 16일 개시된 반격 작전의 일환으로 다부동 북서쪽 11Km 지점에 있는 "천생산" 을 탈환한 후 적진을 소탕하여 9월 24일에 끝낸 전쟁 지역이다.

낙동강 방어선이 구축되자 김일성은 7월 21일 수안보 전선 사령부까지 내려와 8월 15일 광복절 기념 행사를 대구광역시에서 거행하자는 망상으로 대구시 공략을 위하여 북한군 5개 사단을 투입하여 총 공세를 펼쳤다.

이에 아군은 왜관 303고지(적오산), 328고지(석적포남), 518고지(숲데미산), 839고지(유학산), 다부동, 중구동에 이르는 Y자 방어선을 구축하고 적과 공방전이 시작되었던 곳이다.

이때 9월 18일 UN군은 B-29 폭격기 98대가 약목 및 구미 3공단 지역 일대에 융단 폭격을 감행하였고, 북한군 13사단 기갑부대 T-34 전차와 미국 제25사단 27연대 M-25 전차와의 최초 전차전이 이곳 다부동 인근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55일 동안 치열한 전투로 인하여 이곳 다부동 전선에서 아군 1만 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적군은 1만7천5백 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곳이다.

이렇게 약 3만 여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유학산 앞에 칠곡군에서는 전적기념관을 만들어 놓았는데, 기념관 주변에 그때 사용한 전차와 탱크 및 비행기 등 전시품을 진열하여 놓아 6.25 참사를 다시 한번 더 상기시키는 장소이다.

 

 

 < 탱크 모양하고 있는 "다부동 전적기념관" 건물 >

 

 

< 돌 계단을 올라가면서 연결되고 있는 "공원" >

 

전적기념관 앞에는 6.25 때 참전한 나라의 국기가 일렬로 도열하여 있고, 국기의 중앙 계단으로 올라가 탱크 모양의 실내기념관으로 들어가면 입구에 방명록이 놓여 있어 10여 년만 새롭게 방문하므로 한번 더 서명하여 본다.

 

 

 < 전적기념관 앞에 있는 6.25 참전국 "국기" > 

 

 

< 전적기념관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

 

그러고 나서 전시하고 있는 전쟁 장비를 천천히 구경하면 아군과 적군이 사용한 개인 화기를 대비하여 진열하고 있는데, 그 떄 우리 국군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싸움이 이루어졌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 전쟁 때 북한군이 사용한 개인 "화기" >

 

 

< 전쟁 때 아군이 사용한 개인 "화기" >

 

북한은 전쟁을 도발하기 위하여 사전 철저한 준비와 동시에 소련의 도움으로 많은 무기를 자체 생산이 이루어지면서 소련재 무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때 남한은 공업 발전이 전무하다 보니 오직 미군이 사용하다가 넘겨준 재래식 무기를 의존하여야 하는 실정이다.

 

 

< "북한군" 이 사용한 개인 화기 >

 

 

< 각종 "개인 화기와 설명서" >

 

 

< 6.25 때 사용한 "박격포" >

 

아울러 벽면에는 우리나라 전도(全圖)의 그림으로써 각 지구마다 전투하고 있는 것을 날짜 별로 남쪽으로 남하(南下)하는 적의 도발 일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중요 항목을 읽어보면, 우리 남쪽의 군인와 학도병 및 경찰이 얼마나 고전하면서 전투에 임하였는지를 알 수가 있는 기념관이라 하겠다.

 

 

< "아군과 적군" 전투 전략 방어선 >

 

특히 입체 영상을 통하여 전투하는 장면을 보고 있는데, 다시는 이 땅에 전쟁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고 자유를 수호하여야 하겠다는 반공 의식이 절로 일어나는 기념관이 된다.

비록 기념관이 매우 협소한 공간을 가진 건물이지만, 그래도 매우 알찬 내용을 볼 수 있도록 짜임새 있게 관리하고 있어 많은 지식을 가져보는 순간이다.

그러고 나서 밖으로 나오면서 "야외 전시장" 을 구경하여 보는데, 야외 전시장에는 6.25 때 사용한 비행기와 더불어 각종 탱크, 전차, 장갑차, 대공포, 곡사포, 직사포, 자주포, 야포 등 113종 235점이 진열하고 있어 한점 한점 찬찬히 설명서를 읽으면서 구경에 임한다. 

 

 

< 야외 전시장에 진열하고 있는 "비행기" >

 

 

< 야외 전시장에 진열하고 있는 "폭격기" >

 

 

 < 야외 전시장에 진열하고 있는 "야포" >

 

 

< "나이키 유도탄" 의 모형 >

 

또한 자리가 좋은 야외 공원 곳곳에는 전쟁으로 희생된 영혼을 모시고 있는 기념비 및 제단도 함께 설치되어 있어 추모를 하여 본다.

무공 수훈자 전공비, 6.25 참전용사 충혼비, 월남 참전용사 유공비, 왜관지구 전적비, 다부동 전승비, 새롭게 건립된 구국 경찰 충혼비 등 많은 기념비가 건립되어 있는데, 많은 전적비 중에 대표적으로 몇 곳에 분향도 올려본다.                                         

 

 

< "구국 경찰 충혼비" 전경 >

 

다른 한편으로 김영삼 대통령 시절 대통령이 전적 전시관 내용물을 보강하면서 "구국 용사 충혼비" 이라는 비문을 직접 쓰고, 1995년 6월 24일 당시 전투에 참전한 용사들과 함께 제막식을 가져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이 쓴 "구국 용사 충혼비" >

 

다른 한편으로 많은 시비와 더불어 노래비, 격려비 등 돌에 새긴 비석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하나 하나 읽어보는 재미를 첨가 시켜준다.

 

 

<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전우야 잘 자라" 노래비 >

 

2. 도봉사의 관람. 

이어 대부동 전적 기념관을 나와  반대편에 있는 유학산(遊鶴山)으로 올라가 보는데, 유학산은 6.25사변 때 9번의 격렬한 전투를 통하여 조국을 수호한 산이라고 하여 "구국의 산" 이라고도 하며 산의 중터에 "도봉사" 사찰이 자리잡고 있다.

유학산은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와 학산리, 석적면 도계리와 접경을 이루고 있는 산으로 해발 839m 높이를 가진 산이다.

나는 10여 년 전 유학산 종주 산행을 한번하여 보았던 산인데, 그때를 생각하면서 산행 초입을 찾을려고 했으나 초입을 찾지 못하고 구미시로 넘어가는 새롭게 만들어진 도로 따라 올라가니 고개마루에 있는 팔재 휴게소에 도착한다.

이곳 휴게소 식당으로 들어가 도봉사 가는 길을 물어보니 휴게소 오른편 입구에 도봉사 입구라는 거대한 표시석이 서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보지 못하고 길을 묻는 바보 같은 해프닝을 발생시킨다.

 

 

< 팔재 휴게소 오른편 구석자리에 "도봉사" 입구를 알리는 입석 >

 

좁은 도로 따라 오르막 길로 한참 올라가면 어른 키 높이의 50배 정도가 된다고 하여 "쉰바위" 라는 거대한 병풍바위 아래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도봉사" 사찰 주차장에 도착한다.

 

 

< 쉰바위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도봉사" 전경 >

 

사찰 입구 좌우에는 험상굳은 사천왕이 자리잡고 있는데, 사찰로 들어가는 사람에게 악한 마음과 잡기를 쫒기 위하여 거대한 칼을 쥐고서 검문하고 있다.

 

 

< 사찰 입구를 지키는 "사천왕" 상 >

 

검문에 통과된 시람은 사찰 내부로 약간 걸어서 올라가면 3거리 이정표를 만나면서 오른편으로 화장실을 지나면서 유학산 정상에 있는 유학정으로 올라가는 산행길을 가르키고 있고, 반대편 급경사의 오르막 길로 올라서면 쉰바위 밑에 자리잡고 도봉사 사찰에 이른다.

 

 

< 사찰로 들어가는 길에서 만나는 동자 "부처님" >

 

 

 < "유학정" 으로 가는 산행길 안내표 >

 

먼저 높은 철계단의 끝지점에 쉰바위 허리 쯤 "산신전(山神殿)" 이라는 건물이 보이고 있고, 쉰바위 아래 입구에는 요사채 건물이 보이면서 그 안쪽으로 아담한 "대웅전"건물과 함께 종각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 쉰바위 허리 쯤에 자리하고 있는 "산신전" 모습 >

 

이곳 도봉사는 팔공산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동화사의 말사로써, 설립 연대가 불확실 하다고 한다.

도봉사는 쉰바위 아래 절개지에 높은 축대를 쌓아 그 위에 건립한 사찰로써 건물 전체가 동일선상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사찰 앞 마당 폭이 그렇게 넓지가 않아 마당 끝에 안전을 위하여 높은 난간대가 만들어져 있다.

 

 

< 쉰바위 앞에 자리잡고 있는 "도봉사 대웅전" 과 좁은 마당 >

                                                                                             

 

< 대웅전 옆에 있는 "종각" 건물 >

 

대웅전을 통과하면 이내 종각 건물이 건립되어져 있고, 그 옆편에 또 다른 사찰의 건물이 되는 "비로전(毘盧殿)" 이 고즈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 사찰 제일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비로전" >

 

비로전 앞에서 사찰 앞 풍경을 한번 구경하여 보면 눈 앞에는 첩첩 산맥이 물결치듯이 흘려내리고 있는 산의 지맥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지맥의 능선 사이로 흰색의 농촌 들판과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매우 전망이 좋은 사찰이다.

 

 

< 도봉사 앞에 펼쳐지고 있는 "풍경" >

 

현재는 이렇게 평온하한 사찰이지만, 한때는 대한민국 역사의 현장으로 6.25 사변 때 유학산 산속에 산화되어 죽어간 남북한 약 3만명의 영혼을 빌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사찰이라고 한다.

국가는 유학산에서 수시로 유해 발굴을 시도하지만, 아직도 많은 유골이 발굴되지 못하여 산행을 하기가 무척이니 주의가 요구 되는 산이다.

도봉사에서 800m 정도 올라가면 유학산 정상에 도착이 되지만, 어쩐지 두번 다시 산행 할 기분이 발생치 않아 "도봉사" 사찰 주변만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간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