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문화와 산행.

2015년 경북대학교 기계과 제1회 동문 1박2일의 정기총회 모임 "경주" 에서 개최하면서.(1)

용암2000 2015. 3. 3. 08:39

2015년 2월 27-28일.(1박2일)

 

첫날 : 2월 27일.(금요일)

 

* 서언(序言).

경북대학교 기계과 제1회 동문의 정기총회 일정은 매년 봄의 소식이 찾아오는 2월 말에 시작하여 공휴일이 되어지는 3월 1일 오후 까지 1박2일로 개최하던 것을, 2015년 금년에는 하루 앞 당겨 2월 27일 금요일 저녁 5시 부터 28일 토요일 까지 경주 보문단지에서 개최하겠다는 총무님의 연락이 도착하여 진다.

그래서, 경주는 대구에서 인접하게 있는 관광지가 되어지므로 인하여 Wife와 함께 한명의 동문을 동승시키면서 오후 2시 경 대구에서 출발하여 경주로 달려가는데, 시간적으로 약간의 여유가 발생하므로 인하여 경주 남산의 한 모서리에 있는 서출지와 통일전을 먼저 관람하여 보기로 한다.

 

1. 서출지 구경.

서출지는 경주의 자연사 박물관이라고 자칭하는 남산(南山)의 동쪽 끝지점에 있는 칠불암(七佛庵)으로 올라가는 길의 입구에 통일전과 함께 자리하고 있으므로 인하여, 도로변에 주차하고 나서 연못의 뚝방으로 올라가니 아담한 호수와 더불어 주변으로 울창한 송림, 팽나무, 배롱나무, 향나무, 사철나무, 버드나무 등이 성장하고 있다.

 

< 뚝방에서 바라보는 "서출지" 전경 >

 

< 연못의 가장자리에서 자라고 있는 "향나무" >

 

< 뚝방 주변으로 자라고 있는 "송림" >

 

연못 속에는 작년 여름과 가을에 많은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던 연꽃의 죽은 꽃대가 물 표면과 대칭의 곡선 그림을 만들고 있는데, 그 곡선 그림 사이로 몇쌍의 원앙새들이 유영을 즐기면서 먹이를 찾고 있다.

뚝의 오른편 방향으로 반 바퀴 돌아서 반대로 들어가면 연못의 가장자리에 연못의 유래를 기술하고 있는 안내문이 나타나는데, 이 안내문에는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1편에 언급하고 있는 신라 21대 소지왕(炤知王) 때, 연못 속에서 나온 노인의 편지 때문에 암살의 위기를 모면하였다는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 서출지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소지왕 즉위 10년(서기488년) 정월 대보름날 왕이 궁궐 밖으로 행차를 하였는데, 쥐와 까마귀 한마리가 나타나면서 쥐가 까마귀가 날아가는 곳으로 따라 가라고 하여 왕이 병사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니, 이곳 연못에 도착하면서 물 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서 "거문고 갑을 쏘시요" 라는 편지를 받쳤다고 한다.

이에 왕은 궁궐로 돌아와서 활로 거문고 갑을 향하여 쏘니, 왕을 시해 할려고 거문고 속에 숨어 있었던 한 궁주(宮主)와 승려가 화살을 맞고 죽으므로 인하여 왕의 목숨을 보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 뒤 왕은 연못에서 노인이 나와서 글을 받쳤다고 하여 "서출지(書出池)" 이라고 명하였으며, 그 때 부터 소지왕은 정월 대보름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혜로 인하여 까마귀에게 찰밥을 주는 "오기일(烏忌日)" 이라는 풍속을 만들었다고 한다.   

 

< "안내문" 의 상세 내용 >

 

이 연못은 월성(月城)의 남천 따라 남산동록(南山東麓)에 위치하고 있는데, 인위적으로 축성하여서 만든 원지(苑池)의 못이 아니고 마을 밖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못으로 보이며, 곡지(曲池)의 생김새를 가진 연못이라 하겠다.  

자연 그대로의 유수지(溜水池 ) 이기는 하나 주변의 경관이 너무나 수려하여 경주 부근에서 보기 드문 경승지가 되고 있으며, 조선(朝鮮)조로 접어 들어서는 현종 5년(1664년)에 "임적(任勣)" 이라는 사람이 물 위로 누마루가 돌출되어진 "ㄱ"자 형태의 팔작지붕 "이요당(二樂堂)" 건축물을 지어 글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경관을 즐겼다고 한다.

 

< 연못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요당" 전경 >

 

현재 이 건물은 폐기가 되어 문이 굳게 잠겨져 있지만, 서출지 서북쪽 물가에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어 연못의 경관을 돋보이게 해주고 있는 건물이 되어지는데, 밤이 되면 아름다운 조명으로 인하여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고 있는 연못이라고 한다.

 

< 야간에 방문하면 화려한 조명으로 변화를 가진다는 "이요당" > 

 

2. 무량사 관람.

서출지 뒤편으로 들어가면 동네와 함께 하는 가장자리에 다소 산만하게 펼쳐지고 있는 "무랑사(無量寺)" 라는 사찰이 자리하고 있는데, 낮은 돌담으로 만들어진 담장 따라 조금 걸으면 무량사라는 현판에 붙어있는 일주문을 통과하게 한다.

 

< 서출지 뒤편에 있는 "무량사" 일주문 >

 

< 낮은 돌담 위에 있는 "두꺼비" >

 

일주문을 통과하면 왼편으로는 범종각 건물과 더불어 많은 돌로 만든 부처님과 석조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더 내부로 들어가면 넓은 마당을 중심으로 하여 오른편에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마당의 제일 뒤편으로 "ㄷ" 자 형태의 대웅전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경내 입구 왼편에 있는 "범종각" 건물 >

 

< 마당 오른편에 있는 "요사채" 건물 >

 

< "ㄷ" 자 형태를 하고 있는 무량사 대웅전 건물 >

 

이 대웅전 건물이 너무나 이색적으로 건축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궁궐이나 사대부 집의 건축물과 유사하게 축조하므로 인하여 지금까지 많이 보아왔던 사찰 이미지를 완벽하게 파괴하여 진다.

 

< 사대부 집 형태를 하고 있는 "무량사" >

 

주불은 모시고 있는 건물 중앙에 대웅전(大雄殿)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고, 좌우에 있는 익(翼)의 건축물 중 왼편에는 "진공묘유(眞空妙有)" 이라는 현판과 오른편에는 "심칙시불(心則是佛)"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어 사대부 집의 사랑채와 유사함이 묻어난다.

 

< 익의 건물 왼편에 있는 "현판" >

 

< 익의 건물 오른편에 있는 "현판" >

 

사찰의 왼편으로 돌아가면 또 다른 원형의 다층석탑 위에 부처님이 앉아 있는데, 부처님 앞에 소원을 빌기 위한 장소에 발바닥 형태의 좌석이 만들어져 있는 이색적인 평판 바위가 놓여있다.

 

< 대웅전 건물 왼편 원형의 다층석탑 위에 있는 "부처님" >

 

< 석탑 앞에 있는 불공을 올리기 위한 "평판 바위" 좌석 >

 

이 밖에 경내에는 작은 산령각(山靈閣) 건물을 비롯하여 다양한 석조물과 우물이 자리하고 있으며, 경내를 구획하고 있는 사찰이 뒤편 담장 넘어로 울창한 송림이 병풍과 같이 둘려쳐 있어 매우 고즈넉한 풍경을 가진 사찰이라 하겠다.

 

< 경내의 제일 왼편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산령각" >

 

< 경내에 산재하고 있는 "불상" >

 

< 경내에 있는 다른 "석조물" >

 

3. 통일전 방문. 

서출지 오른편 옆에 있는 "통일전(統一殿)" 을 방문하여 보는데, 이 통일전에는 내가 직장 따라 경주에 거주할 때 아들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자주 방문한 곳이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더 돌아보기 위하여 입장 할려고 하니, 정문 안에 있는 매표소에서 관람료 500원을 징수하고 있다.

매표소를 관리하는 아주머니 한분이 나의 하얀 머리를 보면서 고개를 가우뚱 하다가 그냥 입장하라고 하여 정문을 무사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서니, 옛 모습과는 차별이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주변으로 많은 정원수들이 성장하면서 재법 짜임새가 있는 관광지가 되어진다.

 

< 매표소와 함께 하고 있는 "통일전" 정문 >

 

이 통일전은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하면서, 통일신라의 과업을 성사시킨 태종 무열왕(武烈王)과 그의 아들 문무왕(文武王) 및 김유신(金庾信) 장군의 영정과 위패(位牌)를 모시고 있는 장소이다. 

정문을 통과하여 잘 만들어진 정원 따라 조금 올라가면 오른편으로 아담한 연못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연못의 가장자리에 삼국통일순국 무명용사비(三國統一殉國 無名勇士碑)가 세워져 있다.

 

< 넓게 만들어져 있는 통일전 "중앙 통로" > 

 

< 정원 곳곳에 성장하고 있는 "반송" >

 

< 입구 오른편에 있는 "연못" >

 

< 연못 가장자리에 있는 "삼국통일순국 무명용사비" >

 

다시 중앙 통로 따라 앞으로 올라가면 외삼문이 되어지는 흥국문(興國門)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외삼문 앞에는 거대한 2명의 장사가 보초를 서면서 입장하는 모든 관람객들에게 경건한 마음을 가지라고 무언의 압력을 부여하고 있어, 옷소매를 한번 더 단장하게 한다.

 

< 거대한 장사가 지키고 있는 외삼문이 되어지는 "흥국문" >

 

외삼문을 통과하면 또 다시 넓은 정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정원의 오른편으로 신라의 삼국통일의 대업을 달성하는데 주역을 담당하였던 무열왕과 문무왕 및 김유신 장군의 치적을 기리는 사적비(事積碑)가 먼저 나그네를 마중하고 있다.

 

< 외삼문 내 오른편에 있는 "사적비" >

 

왼편으로 통일전을 건립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삼국통일기념비(三國統一記念碑)가 자리하고 있는데, 비석의 전면으로 돌아가기 싫어 뒤면에서 사진 한장을 찍고 나서 마지막 문이 되어지는 내삼문 "서원문(誓願門)" 을 통과하게 한다.

 

< 외삼문 내 왼편에 있는 "삼국통일기념비" >

 

이 서원문을 통과하면 동서남북 화랑으로 구획하고 있는 중앙에 통일전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므로 인하여, 먼저 통일전 전면으로 들어가니 금일 방문한 관광객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성냥불을 켜기가 싫어서 그련지 향료에는 분향한 흔적이 전연 없으므로 인하여, 게으름의 대명사 격이 되어지는 내가 모처럼 향불을 피우고 묵념의 시간을 가져본다.

 

< 통일전 전각을 보호하고 있는 내삼문이 되는 "서원문" >

 

< 3분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통일전" >

 

그러고 나서 천천히 내부를 돌아보는데, 통일전 내부에는 위엄이 가득한 세분의 영정 그림이 내려보고 있어 직접 눈을 마주하기가 미안하여 묵념의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왼편에 있는 화랑으로 들어가서 화랑 벽면에 전시하고 있는 기록화(記錄畵)와 설명서를 정독하여 본다,

 

< 근엄하게 내려보고 있는 "무열왕, 문무왕 및 김유신" 영정 >

 

이 화랑에 전시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록화는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김유신 장군의 성장 과정과 더불어 나당연합으로 동맹을 이루면서, 백제와 고구려를 무찌르는 전투 장면이 주(主)를 이루고 있다.

 

< 통일전을 보호하고 있는 화랑 내에 전시하고 있는 "기록화" >

 

마지막으로 당나라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에서 그들의 야욕에 들어내면서 최후에 신라를 공격하므로 인하여 그들과 다시 적으로 싸워야 하는 신라의 왕실과 장군들의 고뇌를 잘 표현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경주시 주변에 있는 문화재 사진이 함께 전시하므로 인하여 많은 불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재" 사진 >

 

다소 불어오는 바람의 추위로 인하여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기록화와 사진을 구경하고 나서, 동문들이 기다리고 있는 보문호수 인근에 있는 "켄싱턴" 리조트로 달려가기로 한다.

 

< 통일전을 떠나면서 바라보는 "전경" >

 

4. 보문호수 산책과 숙소 도착.

보문호수 옆에 있는 켄싱턴 리조트로 들어갈려고 차를 운전하여 가니 일물시간의 임박으로 인하여 승용차를 잠시 호수 옆에 정차하고 나서 호수 주변을 거닐어 보는데, 보문호수에는 거대한 분수에서 뿜어내는 물줄기가 한폭의 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 경주를 대표하는 "보문호수" 전경 >

 

보문호수 산책길 따라 조금 걸어서 해가 넘어가고 있는 제방 방향으로 접근하면서 일몰을 구경하여 보는데, 해가 넘어가는 방향의 하늘에는 많은 구름이 드리우고 있어 좋은 풍경을 관람할 수가 없어 애석하여 진다.

 

< "해넘이" 를 구경하여 보지만 >

 

< 보문호수 주변에 있는 "콜로세움" 건물 >

 

호수 반대편에 있는 켄싱턴 리조트로 들어가서 예약되어 있는 방을 찾아 올라가니 아직도 거의 동문들이 도착하지 않고 있으므로 인하여 원인을 알아보니, 6시 경 2차의 장소가 되어지는 식당으로 바로 오는 동문이 많겠다는 통신 연락이 도착하여 진다.      

 

< 일행이 하루밤 유숙 할려고 하는 "켄싱턴" 리조트 >

 

< 3층 숙소에서 내려보는 "켄싱턴" 리조트 전경 >

 

식당이 보문호수에서 다소 많이 떨어져 있는 포석정 입구에 있는 부성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겠다는 회장단의 예약으로 인하여 에둘러 식당으로 이동하니, 많은 동문들이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어 반가운 재회의 시간을 가진다.

이윽고, 보리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몇가지의 안주와 함께 막걸리로 축배를 먼저 들고 나서 식사시간을 가지는데, 금일 참석한 동문은 남자가 17명, 여자가 8명으로 총 25명이 되어진다.

 

< 저녁식사를 즐기는 "동문" >

 

5. 월지 야경 관람.

푸짐한 식사를 끝내고 나서 숙소로 가는 길에 있는 "월지(月池)" 가 밤 9시 까지 야경을 구경할 수 있다는 식당 주인장 아주머니의 이야기로 인하여, 밤의 문화를 즐기기 위하여 월지 야경을 구경하기 위하여 월지 주차장에 집결하도록 한다.

이곳 월지에는 몇년전 부터 야경을 관람할 수 있는 조명시설이 설치하므로 인하여 다소 추위가 엄습하고 있는 겨울 날씨에도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여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으며, 또한 전국에 있는 사진 작가들이 야경을 찍기 위하여 제일 많이 찾아드는 관광지로 선정 되어진다고 한다. 

 

< 입장권을 구입하고 있는 "월지" 매표소 >

 

입장료 2000원을 요구하는 월지는 일행 대부분 고령으로 인하여 무료 입장이 가능하지만 다수의 부인을 위하여 입장권을 구입하여 정문으로 들어가는데, 일반적으로 우리들에게 "안압지(雁鴨池)" 라고 알려져 있는 월지는 신라 문무왕 19년(679년)에 동궁으로 만들어진 장소이다.

특히, 동궁에는 동서남북 약 190m 정도의 월지라는 인공 연못을 파고 가산(加山)을 만들고 화초를 심으면서 기이한 짐승들을 길렸다고 하면서, 군신들의 연화나 외국 사신들의 영접을 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비록 관람 시간이 1시간 정도 밖에 남지 않는 늦은 시간이지만 많은 사람들과 함께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조명 불빛 따라 내부를 구경하여 보는데, 제일 먼저 만나는 정자 가장자리에서 연못 속으로 내려보는 경관이 일품으로 보이므로 인하여 감탄사가 절로 발생하게 한다. 

 

< 제일 먼저 만나는 "정자" 주변에서 머물고 있는 관광객 >

 

< 정자 가장자리에서 내려보는 "연못" 속의 야경 >

 

현재는 연못 주변으로 3개의 정자가 복원되어 있는데, 정자 따라 연못 뒤편으로 들어가면 맑은 물에 비치는 정자의 조명이 환상적인 빛을 발산하므로 인하여 정말 황홀감에 젖어들게 만든다.

 

< 중앙에 있는 정자 주변을 관람하고 있는 "관광객" >

 

< 마지막 정자를 투영하고 있는 "불빛" >

 

< 연못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야경" >

 

< 수면과 대칭을 이루고 있는 "풍경" >

 

< "중앙과 마지막" 정자를 투영하고 있는 야경 >

 

< 3개의 "정자" 가 동시에 반영하고 있는 야경 >

 

머물 수 있는 시간의 촉박과 더불어 추위로 인하여 연못 한바퀴를 횡하니 돌고 나서 입구에 있는 영상실로 들어가 월지 내력을 설명하고 있는 TV를 관람하는 시간을 잠시 가지다가, 월지를 떠나 숙소로 돌아가기로 한다.

숙소에 도착하여 회장의 인사와 더불어 총무님의 정기총회 경과 보고를 하고 나서 현재의 회장과 총무 임기가 연임하기로 되어 있으므로 지속적으로 많은 노력을 당부하면서 박수로써 회의를 종결하고, 2차의 축하연을 계속하면서 경주의 밤은 깊어진다.

이윽고, 자정을 훨신 넘기고 나서 예약 되어진 약 30평의 3개 방으로 분산하여 잠을 청하기로 하는데, 2개의 방은 남자들이 사용하고 나머지 한개의 방은 부인들이 사용하면서 달콤한 숙면의 순간으로 푹 빠지게 한다.-첫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