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트레킹.(대구팔공산)

백봉회 5월 산행은 '파계사 및 성전암' 을 품고 있는 대구의 진산이 되는 팔공산 지맥에서 산행.

용암2000 2019. 5. 29. 18:39

2019년 5월 25일.(토요일)

 

백봉회 금년 5월 산행은 2012년 1월 14일에 산행을 추진하였던 파계사(把溪寺)와 성전암(聖殿庵)을 품고 있는 팔공산(八公山) 지맥의 코스가 되는 파계재 방향으로 다시 걸어보기로 한다.

모든 산행의 조건은 2012년과 동일하게 산행을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노후가 되어지므로 다소 짧은 산행을 하기 위하여, 파계재 까지 올라가지 않고 산의 7-8부 능선에 있는 성전암으로 들어갔다가 성전암을 관람하고 나서 파계사로 바로 하산하는 코스를 선정하기로 한다.  

주어진 시간 10시 까지 파계사 입구에 있는 시내버스 종점에서 만남을 약속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경과하면서 아무리 기다려도 총 6명이 참석하므로 다소 맥이 빠지는 산행으로 추락이 된다.

이제는 죽어도 고(Go) 한다는 심정으로 6명은 원대한 꿈을 품고 왼편의 능선길을 선정하여 산행의 초입으로 들어가는데, 엣날에는 산행의 출입을 금지시키므로 개구멍으로 들어갔지만 이제는 문이 활짝 열리면서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하게 되어있다.

 

< 버스종점에서 '파계사' 로 올라가는 일행 >

 

산행의 초입으로 들어서니 많은 유치원 원생들이 학부모와 함께 보물찾기 시합을 하고 있는지 숲속에서 꾀꼬리와 같은 아름다운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펴지고 있어, 근래에 와서 처음 들어보는 많은 어린이 소리가 된다.

 

< 산행의 들머리에서 '보물찾기' 를 하고 있는 어린이 및 학부모 >

 

여기에서 부터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이 되어짐과 동시에 산행의 내용이 2012년도와 거의 비슷하므로 산행기는 상이한 부분만 첨가하는 방식으로 기술하여 보기로 하는데, 한 20여 분 정도 올라가면 시야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높은 돌탑이 쌓여 있으면서 그 뒤편에는 2기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 울창한 숲속으로 이어지는 '산행길' >

 

< 2기의 무덤 앞에 쌓인 '돌탑' >

 

팔공산 지맥의 능선이 힘차게 뻗어 내리는 능선의 중앙에 2기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는데, 여기의 능선에는 넘넘한 좌청룡 및 우백호의 지맥을 거닐고 있으면서 그 앞으로 멀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도덕산이 오뚝하게 솟아있어 명당 중에 명당이 되는 것 같다.

남의 무덤을 보면서 얄팍한 풍수의 지식을 읍조리다가 다시 고도를 상승하는데, 산행의 길은 다소 가파른 길이 되지만 그래도 곳곳에서 만나는 바위로 인하여 다소 힘듬을 반감시켜 준다.

 

< 최적의 힐링 장소가 되는 '소나무' 길 >

 

< 곳곳에서 만나는 '바위' 길 >

 

무덤에서 한 30분 정도 더 고도를 상승하면 능선의 중간지점 정도에 있는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면서 이곳에서 점심식사의 시간을 갖도록 하는데, 이 봉우리 옆으로 일행이 갈려고 하는 성전암(聖殿庵)이 나무가지 사이로 빼꼼하게 보이고 있다.

 

< 작은 봉우리를 나타내고 있는 '이정표' >

 

<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성전암' >

 

적당하게 자리를 만들어서 점심식사의 시간을 가져보는데, 언제나 푸짐하게 준비하여 오는 총무의 돼지고기와 멀리 경남 진해에서 새벽에 출발하는 해군제독 아저씨의 푸짐한 안주가 산행의 즐거움을 첨가 시켜준다.

부어라 마시라 하는 시간 속에서 즐거운 점심식사의 시간을 끝내고 나서 다시 능선 따라 한 10여 분 정도 고도를 상승하면, 성전암 방향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자리하므로 금일은 옛날과 다르게 여기에서 성전암 방향으로 들어간다.

 

< 성전암 방향을 가르키는 '이정표' >

 

산의 허리길 따라 한 10여 분 정도 걸어서 가면 먼저 성전암의 부속 건물이 되는 화장실 건물을 만나고, 화장실 건물에서 다시 한 모퉁이를 돌아서 가면 성전암의 입구에 있는 불이문(不二門)을 만난다.

 

< 허리길의 중간지점에 있는 '화장실' >

 

< 화장실 가는 길 모퉁이 코너에 있는 '성전암' 홍보물 >

 

< 성전암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불이문' >

 

성전암을 방문한지가 너무나 오랜기간에 지나갔지만 모든 것은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성전암에서 주불을 모시고 있는 관음전(觀音殿) 건물의 옆에 창고와 같은 모습의 건물을 더 붙여지어 사진 발이 영 말이 아니다.

 

< 불이문을 통과하면서 만나보는 '성전암' 전경 >

 

< 주불을 모시고 있는 '관음전' 옆의 파란색 부속 건물 >

 

< '관음전' 내에 모시고 있는 부처님 >

 

스님이나 불자에게는 편리할지 모르겠으나 만약에 10년 동안 성전암에 머물면서 8년간 장자불와(長坐不臥)로 유명한 성철스님이 살아 계셨다면,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암자에 이렇게 더러운 부섭 창고를 붙여서 건축하게 하도록 허락을 하겠는지 의심을 가져본다.

 

 < 성전암 마당에서 바라보는 '대구시가지' >

 

< 성전암 뒤편에서 살고 있는 '노루' >

 

더 이상으로 암자에 머물어 있다는 것은 자존심 문제가 발생하여 조속하게 암자를 떠나 계곡으로 내려와 휴식의 시간을 가지는데, 곰곰히 생각을 하니 점심식사 전에 등정식을 하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모두 머리가 노후되어져 있다.

그래서 휴식을 중단하고 긴급하게 모임을 가지면서 제325회 등정식을 거행하기로 하는데, 매우 적은 숫자이지만 그래도 다소 우령찬 목소리로 교가를 불려보니까 옆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아주머니 몇 분이 박수로 응답하여 준다.

 

< 긴급하게 '등정식' 을 준비하는 동문 >

 

다시 20분 정도 하산을 하면 파계사에 도착을 하는데, 동문들은 경내를 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하산 하지만 그래도 나는 흔적을 남겨두기 위하여 경내를 돌아보면서 사진을 찍어두기로 한다.

 

< 경내의 바운다리 밖에 있으면서 파계사의 납골당이 되는 "극락전' >

 

< 극락전 내에 모시고 있는 '부처님' >

 

< 극락전 앞에 있는 '지장전' >

 

대구 팔공산이 품고 있는 파계사에서 파계(把溪)는 '물줄기를 잡는다는 뜻' 을 가지고 있는데, 파계사 주변에 흐르는 아홉 갈래 계곡에서 흘러드는 물줄기가 모여지는 곳에 지기(地氣)가 흘러오는 것을 방지 하겠다는 뜻으로 지어진 사찰 이름이었지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사용하는 파계(破戒) 즉 '계율을 깨뜨린다는 뜻' 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고 한다.  

파계사(把溪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로써, 신라 애장왕 5년(804년)에 신라 헌덕왕의 아들인 '심지왕사(心地王師)' 가 창건한 절로 그 연혁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 뒤 선조 38년(1605년)에 '계관(戒寬)법사' 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원통전(圓通殿)' 을 중건했고, 숙종 21년(1695년)에 '현응대사(玄應大師)' 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경내를 횡하게 한바퀴 돌면서 사진만 찍고 경내를 벗어나면서 주차장에 내려서니 인근에 샘물이 있어 한 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나서, 다시 기운을 차리면서 땀이 빠지도록 걸어서 일행을 따라가기로 한다.

 

< 주불을 모시고 있는 '원통전' >

 

< 원통전 왼편 뒤쪽에 있는 '산령각' >

 

< 산령각 왼편에 있는 '기영각' >

 

< 원통전 오른편에 있는 '응진전' >

 

< 응진전 앞에 있는 '설법전' >

 

< 설법전 앞에 있는 '범종각' 건물 >

 

< 파계사의 본당으로 들어가는 문 '진동루' >

 

< 진동루 앞 마당에 있는 수령 250년이 된 '영조임금' 나무 >

 

아홉 갈래의 물을 가두는 인공호수를 지나 한참을 내려가면 일주문을 만나고, 연 이어서 매표소를 지나 버스 종점에 도착을 하니 아침에 기다렸던 매점에서 일행들이 막걸리 한잔을 두고 이야기에 빠져 있다.

 

< 아홉 갈래의 물이 모이는 '인공호수' >

 

< 파계사 입구에 수령 250년이 되는 '현응스님' 나무 >

 

충분한 시간을 기지고 나서 대구시가지로 들어가는 101번 시내버스를 타고 불로동 까지 내려가는데, 불로동에서 살고 있는 한 동문이 잘 알고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산행에 따른 뒤풀이 행사를 거행하면서 제325봉 산행을 끝내기로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