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여행 및 산행.(경기도)

경북대학교 기계과 동문 3명과 함께 3박4일 일정으로 '백령도 및 대청도' 여행을 즐기면서.(4)

용암2000 2019. 6. 17. 19:13

 

2019년 6월9일 : 백령도 및 대청도 여행.(3박4일)


* 둘째날 : 2부 (6월 10일 : 월요일)
 
4. 천안함 46 용사 위령탑 방문.
두무진 항구를 출발한 관광버스는 한 야산의 언덕을 넘어 해수욕장 가장자리 따라 조금 지나가면, 조금 전 유람선 투어에서 보았던 천안함에서 희생을 당한 46명 용사를 추모하기 위한 '위령탑(慰靈塔)' 을 세워져 있는 언덕 아래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주차장 가장자리에는 위령탑을 참배하기 위하여 헌화용(獻花用) 국화꽃을 판매하는 간이 매점과 함께 공격용 무기가 되는 탱크를 비롯하여 4점의 무기를 전시하고 있다.
위령탑으로 올라가는 초입에는 순직한 46명의 용사 사진과 함께 초입을 나타내는 아취형 문을 통과하면 시멘트 포장길 따라 야산으로 올라가는데, 한 10여 분 정도 올라가면 야산 정점에 있는 위령탑 앞에 도착한다.
 
< 주차장에서 천안함 46 용사 '위령탑' 으로 올라가는 초입 길 >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꽃을 헌화(獻花)하면서 묵념(默念)을 올리고 있어 순서를 기다려 간단하게 목례를 올리고 나서 주변을 살펴보는데, 먼저 위령탑의 주탑은 높이 8.7m에 3개의 기둥이 서로 받치고 있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 '천안함' 위령탑을 나타내고 있는 안내문 >
 
< '위령탑' 앞에서 묵념을 드리고 있는 관광객 > 

탑의 앞에는 순직한 46명의 얼굴을 형상화 하였으며 양쪽 날개가 만들어져 있는데, 왼편의 날개에는 시인 '이근배' 씨가 쓴 추모시가 기록하고 있고 오른편 날개에는 해군참모총장의 비문이 기록되어 있다.
 
< 위령탑 앞에 있는 '순직용사' 의 얼굴 및 헌화꽃 >
 
위령탑의 뒤편으로 돌아가면 전망대가 자리하면서 조금 전 유람선 관광에서 되돌아간 지점의 바다가 펼쳐지고 있는데, 피격을 당한 위치가 이곳 전망대에서 2,5Km 밖에 되지 않아 우리의 영토 눈 앞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천안함' 침몰 지점의 바다 >
 
다른 한편으로 천안함의 연역과 함께 피격사건의 조사결과를 기록하고 있는데, 천안함은 2010년 3월 26일(금요일) 오후 9시 22분 경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뢰 공격으로 승조원 총 104명 중 46명이 순직하고 58명이 생존한 함정이라 한다.


< '천암함' 격침 조사 보고서 >
 
정말 천인공노(天人共怒)하는 사건을 눈 앞에서 벌어졌다는 것을 보고 있으니 얼마나 울분이 발생하는데, 가이드는 이곳 백령도는 UN이 직접 관활하는 섬이라서 북한이 도발하면 국제적 사건이 되므로 어떠한 도발행위를 할 수 없는 섬이라고 한다.
그래서 8개월 후 2010년 11월 13일 오후 2시 30분 경 웅진군에 있는 대연평도를 직접적으로 폭격을 가하는데, 그로 인하여 추가적인 군인 및 민간인 사망과 함께 수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면서 북한과의 갈등이 고조되어진 사건이 연속하여 발생하게 만들었다. 
다소 착잡한 마음을 품고서 야산을 내려와 주차장 인근에 배치하고 있는 무기류를 구경하여 보는데, 나는 한 때 방위 산업체에서 근무하면서 다양한 무기를 개발하면서 발생한 사건들이 주마등(走馬燈) 같이 스쳐 지나간다. 
 
< 주차장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는 '탱크' >
 
< 해수욕장 인근에 전시하고 있는 다연발용 '대포' >

          
5. 최초의 기독교 복음 전례지 중화동 교회 방문.
천안함 위령탑에서 출발한 버스는 해안선 및 야산으로 넘어가는 도로 따라 동쪽으로 10여 분 정도 달려가면 백령면 연화리 중화동에 있는 '중화동 교회(中和洞 敎會)' 에 도착하는데, 이곳 중화동 교회는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건립한 장로교회가 된다고 한다.


<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 '중화동 교회' 십자가 및 사저 >
 
중화동 교회는 백령도에 있는 모든 교회의 모교회(母敎會)가 되는데, 백령도 주민 80% 이상이 기독교 신자로 구성이 되므로 만약 교회 앞에 있는 종을 치면 신자들이 몰려 오므로 절대로 종을 치면 안된다고 한다.
백령도에서는 1832년 칼 귀츨라프(Karl Gutzlaff)가 그리스도교 선교사로 처음 들어와 선교 활동을 하였는데, 1898년 6월 전도와 교회 설립 등의 모든 제한이 풀리자 서경조 형제가 1898년 한학서당에서 중화동 교회를 설립 및 예배를 인도하였다.
이후 1899년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교회가 되는 황해도 장산곶 소재의 "소래 교회" 에서 건축 자재를 공급받아 초가 6칸의 규모로 우리나라 2번째의 중화동 교회를 세웠다.

이 교회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가 급속하게 발전하였으며 당시 황해도 지역의 선교를 지휘하였던 '언더우드' 목사님이 중화동 교회의 초대 당회장이 되었고, 현재는 교회 바로 옆에 초기 그리스도교 선교 역사 박물관이 되는 "백령기독교 역사관" 이 새롭게 건립되었다.
주차장 가장자리에 있는 계단을 이용하여 야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교회로 올라가는데, 계단의 끝지점에 높이 약 6.3m 정도가 되는 무궁화 한그루가 서 있으며 일반적으로 무궁화의 수명은 40년에서 50년으로 보고 있으나 이곳 무궁화는 100년이 넘었다고 한다.
 
< 중화동 교회로 올라가는 '돌계단' 입구 >
 
문제는 이 무궁화 나무가 작년 까지 부분적으로 잎이 돋아나 꽃을 피웠으나 올해는 아직도 잎이 나지 않아 아마 나무가 죽은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하고 있는데, 많은 신자들의 잎이 솟아 나도록 간곡한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 교회 입구 죽어가고 있는 수령 100여 년의 '무궁화' >
 
무궁화 나무를 오른편에 두고 마지막 계단으로 올라서면 교회의 본 건물 앞에 도착하는데, 열려 있는 정문으로 들아가 보면 내부는 일반적인 교회와 동일하지만 매우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건물이다.
 
< 계단의 끝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중화동 교회' >
 
< '교회' 건물의 내부 모습 >
 
교회건물의 뒤편으로 들어가면 푸르름을 발산하고 있는 100여 년의 수명을 가진 측백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측백나무 밑으로 들어가면 아담한 마당과 함께 '백령기도교 역사관(白翎基督敎 歷史館)'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백령기독교 역사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측백나무' >
 
< '백령기독교 역사관' 으로 들어가는 문 >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기독교에 관련되는 모든 자료를 비롯하여 백령도에 정착한 기독교의 역사를 한 눈으로 조명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벽면 따라 모든 역사의 기록물을 포함하여 디오라마(Diorama) 형상의 모형들로 만들어져 있다.
 
< 역사관 내부에 만들어져 있는 '휴게소' >
 
< '중화동 교회' 의 변천사 >
 
< 초기 '중화동 교회' 의 디오라마 >
 
< 백령도에 분포하고 있는 '교회' 의 숫자 및 위치 >
 
초기 중화동 교회의 모습, 최초의 백령도 복음 전파 장면, 서양 선교사 성경 전달 재현, 토마스 선교사 방문 모습, 언더우드 선교사 세례 집례 등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래서 백령도가 선교 현장의 역할을 하였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 초기 '중화동 교회' 에서 복음의 전파 경로 모형도 >
 
특히 이 교회의 당회장이 되시는 언더우드 목사님이 대구로 내려와 나의 모교가 되는 계성고등학교를 설립한 분과 동일한 사람이 되는지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 초기 당회장이 되시는 '언더우드' 목사 >

이곳도 주어진 시간으로 인하여 긴급하게 한번 돌아보고 마당으로 나와 마당 가장자리 끝에 설치하고 있는 전시물을 구경하여 보는데, 매우 오래되어진 교회의 종(鐘)과 함께 교회 설립에 공헌한 분들이 기념비가 배치하고 있다.


< 교회 마당 가장자리에 전시하고 있는 '종' >


< 창립 100주년를 알리는 '기념비' > 


< 중화동 교회를 홍보하고 있는 '조형물' >


6, 용트림 바위 관람.
중화동 교회를 나온 관광버스는 다시 해안가로 운전하여 동쪽 방향으로 조금 돌아서 가면 용트림 바위를 만나는데, 주차장 뒤편으로 만들어져 있는 전망대로 올라가 용트림 바위를 내려본다.
 
< '지질공원' 이 되는 용트림 바위 주변의 해안 >
 
< 지질공원을 홍보하고 있는 '안내문' >
 
해안가 바다 속에 자리하고 있는 용트림 바위는 마치 두개의 바위 기둥이 상호 꼬면서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바위를 형성하는 백령도의 대부분 바위가 사암 또는 규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풍화작용으로 바위가 깍여서 만들어진 형상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 해안가에 있는 '용트림' 바위 >
 
< 확대하여 보는 '용트림' 바위 >
 
용트림 바위 주변으로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나무테크 길이 만들어져 있어 잠시 걸어보는데, 이곳도 갈매기 서식지가 되면서 수 많은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게 만든다.
 
< 용트림 바위 주변 절벽에서 살고 있는 '갈매기' >
 
문제는 이러한 갈매기는 바다에서 먹이를 즐기다가 반듯이 섬에서 쌀 농사를 짖고 있는 논 까지 날아가 샘물에 목욕을 즐기고 있는데, 다른 지역의 갈매기 보다 청결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영 후 샤워를 즐기는 것이 아니지 모르겠다고 첨언(添言)하여 준다.

7. 콩돌 해수욕장의 지압 체험.
용트림 바위에서 콩돌 해수욕장으로 가기 위하여 다시 오솔길로 운전하여 가면 멀리 야산 기슭에 금강송 군락지가 보이고 있는데, 군락지 입구 수령 200여 년 정도의 한그루 노송 금강송이 자리하면서 먼 곳에서 보아도 그 크기가 거대하게 보인다.
 
< 거송으로 보호하고 있는 '금강송' >
 
다시 해안선 따라 약간 동쪽으로 이동하면 도로변으로 주차가 가능한 다소 넓은 주차장이 자리하고 있는데, 도로를 건너 방축으로 넘어서면 활과 같이 휘어져 있는 콩돌 해수욕장을 만난다.


< 방축 방향의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오색 콩돌길' 안내도 >
 
< '콩돌 해수욕장' 을 홍보하고 있는 안내문 > 

가이드는 현재 시간이 간조(干潮) 시간이 되므로 많은 콩돌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해안 입구에는 다소 큰 콩돌로 이루어져 있지만 바다물 가까이로 접근하면 매우 작은 콩돌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 활처럼 휘어져 있는 '콩돌 해수욕장' >
 
이곳의 콩들은 흰색, 적색, 적갈색, 회색, 파란색 등 오색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신발을 벗고 한번 걸어보면 발바닥이 지압으로 인하여 피로가 바로 풀려진다고 한다.
 
<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는 '콩돌 해수욕장' >
 
또한 콩돌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곳 백령도의 특산품이 되는 쌀로 만든 찐빵과 막걸리를 판매하고 있는데, 한번 구입하여 보는 것도 이색적인 체험이 되어질 것이고 한다.
일행 중 다수는 쌀로 만든 찐빵을 구입하여 먹으면서 콩돌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데, 해수욕장 입구에는 대부분 납작하면서 다소 큰돌로 형성하지만 바다물과 가까이로 들어가면 거의 콩알 크기의 돌을 형성하고 있어 '콩돌 해수욕장' 이라 불려진다.
 
< 다소 큰편이 되는 '콩돌' >
 
일행의 대부분이 신발을 벗고 파도 길 따라 걸어보는데, 발가락 사이로 파고 들어오는 콩돌로 인하여 충분한 지압 효과를 누려보는 행운의 시간이 잠깐 지나가게 한다.
   
8. 사곶 해수욕장을 거닐면서.
다시 콩돌 해수욕장에서 동쪽 해안선 따라 야산을 넘어가면 체육을 할 수 있는 종합 운동장과 함께 거대한 담수호가 되는 "백령호" 를 만나는데, 백령호 입구에 있는 도로 가장자리에 관광버스를 세운다.
 
< 담수호가 되는 '백령호' >
 
도로의 오른편 사구 언덕 위로 올라서면 거대한 사곶 해수욕장이 펼쳐지고 있는데, 물이 빠지는 썰물 때에는 해수욕장의 길이가 3Km에 폭이 300m가 넘는 해수욕장이 된다.
 
< '사곶 해수욕장' 의 전경 >
 
문제는 이곳 해수욕장을 형성하고 있는 모래는 사암이 잘게 뿌셔져 만들어진 모래이다 보니 물이 빠지면 비행기가 이륙 및 착륙이 가능할 정도로 단단한 성질을 가지는데, 세계에서 2곳 밖에 없는 천연 비행장이라 하겠다.
실제로 6.25 전쟁 당시 이곳 해수욕장 백사장에서 비행기가 이륙 및 착륙을 시행하면서 작전을 수행한 해수욕장이 되고, 또한 다른 한편으로 이곳 백사장에서 일출이 유명하여 많은 사진 작가들의 일출 관경을 찍는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라 하겠다.
사구의 언덕을 넘으면 앞으로 창과 비슷하게 삐죽하게 솟아있는 바위 한기가 서 있어 '창바위' 이라고 불려지고 그 바위 뒤편으로 4각으로 구멍이 난 바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바위가 자리하고 있는데, 실제로 가까이 가면 2개의 바위가 상호 어긋나면서 형성되어 있는 바위이다.
 
< 사곶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창바위' 및 구멍바위 >
 
일행들 모두가 모래 위를 걸어 보니 정말로 비행기가 착륙하여도 가능할 정도로 단단한 모래가 형성하고 있는데, 그래도 신발로 모래를 파면 잘 파여지므로 정말 신비스러운 모래가 된다.
 
< 물이 빠지면서 비행장이 되는 '사곶 해수욕장' >
 
너무나 넓고 기나긴 해수욕장이 되므로 입구를 조금 걷다가 되돌아 가기로 하는데, 반대편 해수욕장 끝지점에는 옛 용기포 항구가 자리하고 있고 항구의 뒤편이 되는 야산을 넘어서면 어제 백령도로 입도(入島)한 용기포신항이 자리하고 있다.
 
< 단단한 모래 위를 걷고 있는' 관광객' >
 
이렇게 하여 백령도의 남쪽 해안 따라 산재하고 있는 관광지를 돌아보고 나서 일몰과 함께 어둠이 내리므로 저녁식사 시간을 가지기 위하여, 가이드가 사전 예약하여 놓은 두무진 항구의 부두에 있는 횟집으로 달려간다.


9. 두무진 항구의 부두에 있는 횟집에서의 저녁식사.
약 30분 정도 달려가면 두무진 항구의 부두에 도착되는데, 많은 횟집 중에서 가이드가 잘 알고 있는 백령횟집으로 안내가 되며 이미 셋팅(Setting) 되어져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회를 먹기 시작한다.
 
< 가이드가 인도하고 있는 두무진 항구 부두에 있는 '백령횟집' >
 
먼저 두무진 항구 인접에서 잡은 조가비, 해삼, 성게 등의 해산물을 먹고 있으니 이어 자연산 회가 나오는데, 비록 얼마되지 않은 량(量)이지만 머나먼 백령도 까지 와서 먹어보는 회 맛이 우수하여 죄 없는 빈 소주병을 무한정 생산하게 만든다.
 
< 성게 등 '해산물' 이 먼저 나오고 >
 
< 이어 나오는 자연산 '회' >
 
< 회를 즐기고 있는 '일행' 과 함께 > 
 
이어 깔끔하게 요리가 되어진 매운탕이 나오므로 부른 배에도 불구하고 한그릇 공기밥을 비우는 저녁식사가 되는데, 모든 테이블에서 이야기 꽃이 만발하게 피어난다.
 
< 마지막으로 나오는 '매운탕' >
 
매우 늦은 시간 까지 음식을 즐기다가 다시 관광버스에 올라 숙소로 달려가는데, 일부 사람은 추가로 한잔을 즐기기 위해 면사무소가 있는 진촌동에서 하차를 요구하지만 백령도는 80% 이상 기독교 신자로 새벽기도를 위하여 매우 일찍 잠을 청하므로 상가들이 빠르게 문을 내린다고 한다. - 둘째날 2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