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기계과 행사.(전라도)

민주화운동의 성지 중에서 두번째 방문지가 되는 '5.18자유공원' 에서 역사의 현장 돌아보고.(11)

용암2000 2020. 6. 22. 10:51

넷째날 : 6월 8일.(월요일)

 

2) 5.18자유공원을 돌아보면서.

5.18기념문화센터에서 10여 분 거리에 5.18자유공원이 있다는 센터 직원의 이야기로 한번 방문하여 보기로 하는데, 5.18자유공원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집권 찬탈을 기도하던 일부 정치 군인들의 강경 진압에 맞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신 분들이 구금되어 군사재판을 받았던 곳에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 '5.18자유공원' 을 알리는 입간판 >

 

5·18자유공원은 크게 2개의 구획으로 나누어지는데, 5·18광주항쟁에 관한 자료를 보관하고 홍보하는 자유관 및 5.18당시 군사재판 현장이었던 상무대 법정과 영창을 원래의 위치에서 100m 정도 떨어진 5.18자유공원으로 옮겨와 원형으로 복원하고 있다.

 

< '5.18자유공원' 조감도 >      

 

(1) 5.18자유관의 관람.

먼저 오른편에 있는 5.18자유관을 돌아보기 위하여 넓은 운동장을 통과하여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입구에 여성 해설사 한분이 상주하고 있는데, 반가운 인사와 함께 5.18민주화운동에 관련되는 안내 팜플릿을 제공하여 준다.

 

< 넓은 운동장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5.18자유관' 전경 >

 

< '5.18자유관' 으로 들어가는 정문 >

 

전시실 입구의 정면에는 5.18민주광장에서 집회를 하기 위하여 원형으로 모여 있는 사진이 걸려 있는데, 해설사는 사진에서 나타내고 있는 집회의 내용과 방법을 세부적으로 설명하여 준다.

 

< 전시실 입구 전면에 '5.18민주화광장' 에서 집회하는 사진 >

 

이어 오른편 전시실로 입실하는 통로에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일정(1980년 5월 18일에서 5월27일까지 10일 동간)을 날짜와 시간별로 기록하고 있는데, 기록의 내용 모든 것이 학생과 시민군의 활약상을 기술하고 있다.

 

< 전시실로 입실하는 통로에 있는 '삽화' >

 

내부 전시실로 들어가면 이곳에도 5.18항쟁에 관련된 내용을 일정별로 사진과 함께 자료들이 기술하고 있는데, 기술의 내용 모두가 계엄군이 학생과 시민군에게 총기로 발표한 내용을 중심으로 붙어 있다.

 

< '전시실' 내부의 전경 >

 

< 치열한 '투쟁' 을 나타내고 있는 설명문 >

 

< '전시실' 내부에 기술하고 있는 내용 >

 

< 무장 '시민군의 활약' 을 기술하고 있는 내용 >

 

전시하고 있는 내용 대부분이 승자의 독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공정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는데, 우리나라 고대사에서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이 가야사(伽倻史)는 거의 기술하지 않고 신라사(新羅史)만 부각함으로 후세인들은 가야국들은 매우 미미한 역사로 취급하고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 같다.

 

(2) 군사재판소의 구경.

5.18자유관에서 나와 건물의 왼편에 있는 통로로 들어가는데, 입구에 비치하고 있는 방명록에 서명을 요구하므로 서명 후 철조망으로 구획하고 있는 내부로 들어가면 먼저 군인들이 민간인을 후송하는 모습의 디오라마(Diorama)가 만들어져 있다.

 

< 5.18자유관에서 '군사재판소' 로 넘어가는 길 >

 

< '군사재판소' 로 들어가는 입구 >

 

< '시민' 을 연행하는 장면의 디오라마 >

 

< '운동장' 의 전경 >

 

그 옆으로 5·18 광주항쟁 당시의 자료와 사진들을 보관한 전시실과 함께 연행자들이 고문과 조사를 받았던 헌병대 본부사무실, 임시취조실로 사용한 헌병대 식당, 고문수사와 재판을 지휘한 계엄사합동수사본부, 특별수사반이 임시본부로 사용한 본부사무실, 내무반의 숙소 시설 등이 있다.

 

< '헌병대 본부사무실' 에서 조사 받고 있는 시민 >

 

< '얼차례' 를 받고 있는 디오라마 >

 

< 헌병대 내부반 '숙소' 건물 >

 

전시실의 제일 앞쪽 별도의 장소에 영창을 재현하고 있는데, 당시 상무대 현병대 영창이라고 불렸던 영창은 일부 정치 군인들의 정권 찬탈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분들이 구금되었던 곳으로 이곳에 강제로 연행된 시민들은 폭도이라는 누명을 씌운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의 온갖 고문 수사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상한 장소이다.

 

< 별도로 구획하고 있는 '영창' >

 

< '영창' 의 현황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하루 16시간의 정좌(正坐) 자세와 수감생활 및 가혹한 구타와 감시 등 인권을 유린당한 곳인데, 수감기간 동안 한 방에 많게는 150명씩 수감되었거나 영창 내 독거실에는 10여명씩 갇혀 있으면서 더위와 배고품에 이겨 내야 했다.

시민들은 폭력 앞에 굴종을 강요받았지만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으로 서로 굳게 뭉쳐 꿋꿋이 극복하여 나아 갔었는데, 1980년 10월 27일 광주교도소로 이간(離間)될 때 까지 구금이 되어진 장소이라 한다.

영창 내부를 구경하기 위하여 내부로 들어가면 입구에 한명의 감시인과 함께 그 앞으로 부채꼴의 6개 감방이 만들어져 있는데, 각 감방에는 민간인들이 얼차례를 받고 있는 모습과 함께 마네킹이 만들어져 있다.

 

< '영창' 의 내부 모형도 >

 

< 내부를 감시하고 있는 한명의 '헌병' >

 

< '정좌' 자세로 앉아 있는 시민 >

 

< 영창 내에서 '얼차례' 를 받고 있는 마네킹 >

 

이곳에서 주먹밥 체험을 비롯하여 영창 체험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가끔씩 어린이들이 체험을 통하여 그 때의 고통을 느끼면서 자유 민주주의(自由 民主主義) 의미를 깨우치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현재 민주당 국회의원 다수가 5.18민주화운동에 대하여 반대의사를 표현만 하여도 수천만원의 벌금 또는 감옥에 보내자고 입법을 추진할려고 하는데, 5.18민주화운동이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하여 그렇게 크게 공헌한 운동이라면 명단의 공개와 더불어 반대 표현도 불가능하게 만들려고 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의아심을 품게 만든다.

지금 일본 나가사키현의 끝지점에 있는 무인도 군함도에서 조선인 강제 징용이 대규모로 이루어진 내용에 대하여 유네스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되어 졌는데, 이곳 광주에 있는 5.18민주화운동 내용에 의의(疑意)를 가지는 사람에게 무엇이 뜻뜻하지가 못하여서 그런지 입에 자물쇠로 잠글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넷째날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