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기계과 행사.(전라도)

전라남도 해남군의 대표적인 유적지가 되면서 해남 윤씨의 종가가 되는 '녹우당' 을 찾아서.(6)

용암2000 2020. 7. 15. 22:53


2, 둘째날 : 7월 4일.(토요일)



6) 녹우당을 찾아서,
진도군을 떠난 일행은 약 1시간 정도 운전하여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녹우당길에 있는 '녹우당(綠雨堂)' 을 찾아가는데, 녹우당은 조선시대의 가옥으로 해남읍에서 남쪽으로 약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녹우당 입구에 있는 넓은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오후 6시가 지난 다소 늦은 시간이라서 그런지 텅빈 주차장에는 한대의 차량도 없고, 주차장 입구에 있는 매표소에서도 벌써 문을 내리면서 적막감에 머물고 있다.


< 덕음산 앞에 있는 '녹우당' 매표소 >


이곳 녹우당은 고산 '윤선도(尹善道)' 선생님이 살았던 고택으로 알려져 있으나 500여년 전 입향하여 본관을 얻은 어초은 '윤효정(1476-1543년)' 선생님으로 부터 시작하는데, 그 후 5대 고산 '윤선도(1587-1671)' 및 8대 공재 '윤두서(1688-1715)' 등 조선시대의 인물을 배출한 학문적, 경제적 명문가의 집이라 하겠다.
집터의 뒤로는 덕음산을 두고 앞에는 안산이 되는 벼루봉과 그 오른쪽에 필봉이 자리잡고 있는 명당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집인데, 전라남도 지방에서 현존하는 주택 중 가장 큰 규모로 1968년 12월 19일 사적 제167호로 지정되었다.


< '녹우당' 의 조감도 >


< 고산 '윤선도' 유적지 설명문 >


매표소의 뒤쪽 오른편으로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이 자리하고 있지만 현재 유물전시관에는 코로나 바이러스(Corona Virus)로 인하여 휴관을 하고 있는데, 한옥으로 지어진 유물전시관은 고산 윤선도의 고택인 녹우당과도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 '고산윤선도유물기념관' 을 알리는 입간판 > 


2개의 전시관으로 나눠진 유물전시관에는 총 4,6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제1전시실에서는 해남 윤씨의 역사와 전통, 사대부가의 삶에 대하여 기록된 고문서와 서책들을 전시하고 있다.
제2전시실에서는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의 생애와 학문, 문학, 그림 등을 전시하고 있는데, 고산유물전시관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유물로는 윤두서 자화상(국보 제240호), 해남윤씨 가전 고화첩(보물 제481호), 고산윤선도 수적관계문서(보물 제482호), 지정 14년 노비문권(보물 제483호) 등 국보 1점과 보물 3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 '고산윤선도유물전시관' 의 전경 >


< '유물전시관' 뒤편에 있는 정자 >


유물전시관 뒤편으로 돌아서 가면 고산 윤선도 선생님의 대표작이 되는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를 기술한 시비(詩碑)가 자리하고 있는데, 시비에는 춘(春), 하(夏), 추(秋), 동(冬) 중에서 대표적 시(詩) 한편씩 기술하고 있다.


< 유물전시관 뒤편에 세워진 '어부사시사' 시비 > 


< '시비' 에 새긴 대표적 어부사시사의 내용 >


윤선도는 정철, 박인로와 더불어 조선 3대 시가인(詩歌人)의 한 사람으로 일찍부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전라남도 해남군 보길도(甫吉島)에 머물 때 어부사시사를 비롯하여 주옥같은 시조를 많이 남겼다.
그러나 정치 생활은 순탄치 않아 당파싸움에 휩쓸려 17년을 유배지에서 보냈고 19년 동안 세상을 떠나 자연 속에서 살았는데,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물러서지 않는 고집과 칼날 같은 성품을 지녔지만 백성을 아끼는 따뜻한 인정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윤선도 선생님은 효종이 왕위에 오르자 여러 차례 조정에서 부름이 있었으나 그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보길도에서 시를 지으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나는 2010년 5월 21일에서 22일까지 1박2일 동안 Wife 및 작은아들과 함께 보길도 구석구석을 구경한 경험이 있으면서 그 때 윤선도 선생님의 삶을 조명하여 보았다.
이 시비의 뒤편으로 충헌각(忠憲閣)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충헌각에는 해남 윤씨의 문중 장학회(奬學會)와 녹우당 문화예술(文化藝術)을 관장하는 재단으로 활용하는 건물이라고 한다.


< 시비의 뒤편에 있는 '충헌각' 으로 들어가는 대문 >


< '충헌각' 내에 있는 건물의 전경 >


이 충헌각 건물의 앞 중앙길 건너편으로 녹우당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면서 건물의 입구에 수령 500년 정도가 되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이 은행나무는 해남 윤씨 증시조 윤효정 선생님의 아들이 진시 시험에 합격한 기념으로 심어진 나무이라고 한다.


< 충헌각 앞 중앙길 건너편에 있는 '은행나무' >


은행나무 뒤편으로 녹우당으로 들어가는 솟을대문이 자리하고 있지만, 현재 건물의 내부에 사람이 거주하므로 출입을 통제하기 위하여 문이 잠겨져 있어 탐방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 '녹우당' 으로 들어가는 솟을대문 >


그래서 녹우당의 중앙길 따라 상부로 계속하여 올라가면 녹우당으로 들어가는 동쪽의 사잇문이 있어 내부로 들어가 보는데, 현재 녹우당에는 윤선도의 종손 14대 손 '윤형식' 씨가 살고 있으면서 사잇문 한쪽 면에 출입을 금지시키는 이유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 '녹우당' 으로 들어가는 사잇문 >


그러나 사잇문의 한쪽 문이 열려있어 대문의 내부를 들어다 보니 내부에 사람이 움직이고 있어 양심적 가책으로 되돌아 나오는데, 고산 윤선도는 42세 때 봉림대군(후에 효종)과 인평대군의 사부가 되었으며 효종(孝宗)은 즉위 후 윤선도를 위해 수원에 집을 지어 주었다.


< 사잇문으로 통하여 들어다 보는 '녹우당' >


효종이 죽자 현종 9년(1668년) 수원 집의 일부를 뜯어 옮겨온 것을 현 고택의 사랑채로 지었는데, 원래는 이 사랑채의 이름을 '녹우당(綠雨堂)' 이라고 불려졌지만 지금은 해남 윤씨 종가 전체를 통틀어 녹우당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중앙길 따라 계속하여 상부로 올라가면 전통적인 사당으로 가는 길목의 입구에 수령 약 300년이 지난 해송 한그루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해송은 유적지 뒤편에 있는 비자림 숲과 같은 시기에 식재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 중앙길 옆에 있는 '해송' >


중앙길의 오른편으로 고산 윤선도 선생님의 사당과 어초은 윤효정 선생님의 사당이 앞뒤로 자리하고 있는데, 윤선도 선생님에는 매년 음력 6월 11일에 불천지위(不遷之位)의 제례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 윤선도 선생님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고산사당' >


< 윤효정 선생님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어초은사당' >


사당을 지나면 왼편으로 추원당으로 가는 길이고 바로 올라가면 수령 약 300여 년이 된 천연기념물 제241호로 지정이 된 바자림 숲이 자리하고 있는데, 숲의 한 가운데 어초은 윤효정 선생님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 천연기념물 제241호로 지정된 '비자림 숲' >


< 비자림 숲속에 자리하고 있는 '어초은' 선생님 무덤 >



7) 땅끝순례문학관 및 백련재 문학의 집 방문.
녹우당의 중앙길 따라 내려오면 어부사시사 시비 앞에서 반대편의 밭속으로 만들어져 있는 도로 따라 조금 들어가면서 작은 다리를 건너면 아름다운 정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정원에는 지역의 시인들이 쓴 시비들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 '땅끝순례문학관' 으로 가는 길 >


< 정원에 세워진 '시비' >


< 정원에 세워진 또 다른 '시비' >


정원을 지나면 한옥과 양옥을 절충하여 만든 2층의 땅끝순례문학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1층에는 거대한 성(城)과 같이 돌담으로 쌓아서 만든 건물에 출입문 있지만 너무나 늦은 시간으로 문이 굳게 잠겨져 있다.


< '땅끝순례문학관' 을 알리는 입석 >


< 성과 같이 돌담으로 만든 '땅끝순례문학관' >

 
땅끝순례문학관 1층에는 상설전시관으로 꾸며져 있으면서 지역 문학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고, 2층에는 기획전시실을 비롯하여 북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 독서를 즐기면서 힐링(Healing) 하기에 최적의 장소가 된다고 한다.


< 한옥과 양옥으로 절충한 '문학관' 건물 >


문학관 뒤편으로 돌아서 가면 백련재 문학의 집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문학의 집은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성작가 또는 예비작가들이 기숙을 통하여 문학을 공부하고 토론하는 장소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 땅끝순례문학관 뒤편으로 '백련재 문학의 집' 을 가르키는 이정표>


< '백련재 문학의 집' 으로 들어가는 솟을대문 >


< '백련재 문학의 집' 전경 >


두 곳이 건물 외형만 돌아보고 녹우당을 떠나기 위하여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주차장 앞에 휴식처가 되는 백련지 연못이 자라하고 있어 잠깐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백련지의 외형은 4각형으로 되어 있으면서 연못의 중앙과 가장자리에 2개의 원형 섬이 만들어져 있는데, 중앙에 있는 큰 섬에는 섬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름다리가 만들어져 있으면서 섬의 중앙에 아담한 정자 한채가 만들어져 있다.


< 주차장 앞에 있는 '백련지' >


< 큰 섬 복판에 있는 '정자' >


연못의 앞쪽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섬에는 거대한 소나무 한그루와 더불어 사시사철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사철나무 한그루와 조화를 이루고 있고, 연못의 내부에는 많은 연꽃이 자라고 있다.


< 연못의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섬' >



8) 저녁식사와 숙박.
다소 늦은 시간으로 해남읍사무소로 들어가 소재지의 중심에 있는 한 모텔에서 여장을 풀고, 전통 매일시장으로 걸어가 재래시장을 조금 구경 하다가 시장 인접하게 있는 천일식당을 찾아간다.


< 해남에서 유명한 '천일식당' >


천일식당은 전통 전라도 음식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식당이 되어지면서 각 방마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어 일행도 한 방으로 안내가 되어 정식을 시켜보는데, 정말 전라도는 식객(食客)에게 만족을 주는 식사가 된다.


< 큰 상으로 나오는 '정식' >


소주 한병과 함께 거나하게 식사를 끝내고 나서 개울가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서 여가의 시간을 즐기다가, 내일의 여행을 위하여 모텔로 들어가 깊은 숙면(熟眠)의 시간을 가진다. -둘째날 3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