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및 트레킹.(충청남북도)

충남 태안군 태안읍 상옥리에 있으면서 태안 8경 중 제1경이 되는 '백화산' 의 등반.(7)

용암2000 2022. 2. 3. 17:31

 

2022124-26.(23)

 

2. 둘째날 : 125.(화요일)

 

7) 태안 백화산에 오르면서.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떠난 일행은 숙소가 있는 한화리조트 대천 파로스로 돌아가기로 하는데, 아직도 걷기에 목이 마른 동문들은 걷기를 더 원()하므로 나는 태안읍시가지 뒤편에 있으면서 태안 8경 중 제1경이 되는 '백화산(白華山)' 을 선정한다.

그 대신 걷기에 제일 짧은 코스가 되는 태을암(太乙庵) 방향에서 오르기로 하는데, 태을암은 백화산의 6-7 능선에 자리하면서 태을암 까지 승용차가 올라갈 수 있는 도로가 너무나 잘 정비되어져 있어 실제 산행거리는 제일 짧은 코스가 된다.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출발한 일행은 한 30분 정도 운전하면서 태안읍시가지에 진입하는데, 태안읍시가지 북쪽을 감싸고 있는 백화산은 눈 덮인 산봉우리의 모습과 같이 하얀 천을 씌운 듯하다고 하여 백화산이라 불려진다고 한다.

태을암으로 올라가는 산행의 들머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부터 승용차는 크게 한숨을 쉬고 나서 거구의 노인 4명을 싣고 한 10여 분 정도 고도를 상승하여 태을암 주차장에 무사하게 안착을 시켜준다.

태을암 옆에 있는 작은 주차장과 더불어 안내소가 자리하고 있지만 안내소에 상주하는 안내원(案內員)은 부재 중이고 그 옆에 백화산 산수길 및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을 설명하는 안내문이 붙어있는데, 그 내용을 먼저 정독하여 본다.

 

< '백화산 산수길' 의 조감도 >

 

<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의 안내문 >

 

주차장에서 오른편으로 돌아서 태을암으로 들어가 보면 경내는 넓은 마당을 중심으로 일단의 축대 위에 대웅전 건물이 자리하고 있고, 마당의 좌측 및 전면에는 요사채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주불을 모시고 있는 '태을암' 의 대웅전 >

 

< 마당의 전면에 있는 '요사채' 건물 >

 

< 마당의 좌측에 있는 '요사채' 건물 >

 

< 경내의 오른편에 있는 '삼성각' >

 

이곳 태을암은 백화산 중터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가 되는 수덕사(修德寺)의 말사로써, 창건 연대는 알려지지 않으나 사찰의 이름은 단군영전을 안전시켰던 태일전(太一殿)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대웅전 건물의 오른편 야산으로 조금 올라가면 거대한 바위에 태을동천(太乙洞天)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 사찰의 이름이 태을암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에 쓰여 있는 태을동천과 유관(有關)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 거대한 바위에 새겨져 있는 '태을동천' >

 

이 바위 앞으로 한채의 보호 건물이 자리하고 있으면 건물 내부에는 2004 831일 국보 제307호로 지정된 백제 최고(最古)의 불상이 되는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泰安 東門里 磨崖三尊佛立像)' 이 자리하고 있다.

 

<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을 보호하고 있는 건물 >

 

삼존불에는 두명의 여래(如來)와 한명의 보살(菩薩)이라는 파격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마애불에서 중앙에 부처님을 모시고 양쪽으로 보살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곳 태을암에서는 반대로 중앙에 매우 작은 보살을 두고 양쪽으로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중앙에 작게 새겨져 있는 보살은 양손으로 보주(寶珠)를 감싸고 있고, 좌우의 부처님은 전체적으로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오른쪽 부처의 왼손에 약병을 들고 있다는 점으로 보아 약사여래불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중앙의 보살상이 쓰고 있는 보관(寶冠)은 가운데가 약간 높은 산 모양으로 장식을 하고 양쪽의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닫고 있고 또한 양 어깨 위에 드리워진 전의가 무릎 밑에서 교차되는데, 백제의 초기 보살상의 전형의 따르고 있다.

최초 발견 당시 삼존불의 1m 정도가 흙에 묻혀 있어 온전한 모습을 알 수 없었지만. 문화재(文化財) 보호를 위한 발굴 과정에서 삼존불의 하반신과 백제시대 연화대좌(蓮花臺座)가 발견되어 진정한 가치를 인정 받게 되었다.

제작 연대는 자세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6세기 중엽 경 중국 불상을 백제식으로 변경한 작품으로 추측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로는 삼국시대 중국과 교역의 중심지가 되는 태안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문화 교류를 통하여 새로운 불상의 양식이 유입 되었다고 본다.

 

< 국보 제307호로 지정된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

 

< '마애삼존불입상'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마애삼존불을 보면서 간단하게 ()를 올리고 나서 건물 밖으로 나와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하는데, 걷기에 바쁜 동문들은 벌써 산의 정상으로 올라가 버리고 혼자 천천히 걸으면서 산행에 임한다.

 

< 보호 건물 앞에서 내려보는 '태을암' 전경 >

 

정상 까지 400m이라고 기술하고 있는 이정표 따라 고도를 상승하는데, 너무나 잘 만들어져 있는 나무테크의 계단을 이용하여 고도를 상승하지만 혼자서 걷고 있으니 거의 죽을 맛이다.

 

< '백화산' 정상을 가르키는 이정표 >

 

< 바둑판이 그려져 있는 '망양대' >

 

< '망양대'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 곳곳에 만들어져 있는 '나무테크의 계단 길' > 

 

10여 분 정도 고도를 상승하니 이내 소나무 숲 사이로 시야가 열리면서 태안읍시가지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부터 다소 완만한 길이 되므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마음으로 한 5분 정도 더 걸으면 백화산 정상을 두르고 있는 백화산성으로 진입하게 한다.

 

< 소나무 사이로 보이기 시작하는 '태안읍시가지' >

 

< '백화산' 정상 바로 아래에 만들어져 있는 계단 >

 

< 마침내 도착한 '백화산성' >

 

화산성은 고려 충렬왕 13(1286)에 백화산 정상에 돌로 쌓은 성(城)으로 둘레가 619m에 높이 3.3m가 되는데, 산성의 사면(四面)이 절벽으로 되어있는 험준한 곳에 성을 쌓아 외적의 침입이 어려운 요새지로써 태안 읍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현재 성벽은 거의 무너진 상태이며 성 안에는 우물 터 2곳과 서산의 북주산과 부석면의 도비산과 상호 연락을 취하였던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백화산성은 태안군에서 제일 먼저 쌓은 성이기도 하다.

 

< '백화산성' 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및 조감도 >

 

성내의 제일 꼭지점에 있는 해발 284m '백화산(白華山)' 정상석과 정상석 바로 앞에 있는 봉수대 터를 알리는 표시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장을 남기고 성곽을 돌면서 태안시가지를 구경하여 보는데, 옆에 있는 사진을 보면서 서해방향으로 주시하여 본다.

 

< 백화산성의 제일 높은 곳에 서 있는 '백화산' 정상석 >

 

                                                                                          < '봉수대' 자리에 설치하고 있는 표시석 >

< '봉수대'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백화산 정상으로 올라오는 다양한 산행의 길에는 기암 괴석과 소나무가 상호 조화를 이루면서 좋은 풍광을 보여주고 있고, 또한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몰(日沒)은 태안 최고의 경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서해바다 방향의 '태안읍시가지' 전경 >

 

< 남쪽 방향의 '태안읍사무소' 전경 >

 

< '백화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 >

 

< '전망대' 공사를 하고 있는 북쪽 방향 >

 

특히 산이 높지가 않아서 남여노소(男女老少)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정상의 뒤편으로 군부대가 자리하므로 전체 산행이 불가능하고 산의 곳곳에 군사시설로 인하여 출입을 금지하는 철조망으로 매우 제한적인 산이라 하겠다.

 

<  '군사시설' 로 돌아서 가야하는 길의 이정표 >

 

금일 너무나 늦게 산행을 추진하므로 정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적 부족으로 인하여 에둘러 하산의 길로 들어서는데, 왔던 길로 신속하게 내려가 태을암 옆에 주차한 승용차를 운전하면서 하산의 길로 들어선다. - 둘째날 4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