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문화와 산행.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 있으면서 238년의 역사를 가진 '달성 조길방 가옥' 방문.

용암2000 2022. 3. 16. 12:19

 

2022년 3월 14일.(월요일)

 

* 달성 조길방 가옥을 찾아서.

오늘은 고등학교 동문 1명과 함께 드라이브(Driver)를 즐기면서 저녁식사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는데, 드라이브 코스는 한 때 내가 근무하였던 대한중석광업 주식회사 인근에 있으면서 가창댐 안쪽 정대리에 있는 한 식당을 선정하여 본다.

대한중석에서 가창댐 방향으로 한참 올라가면 정대1리에 있으면서 폐교가 되어진 한 초등학교에서 대구미술광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건물의 뒤편에 있는 도로 따라 최정산 방향으로 한 5분 정도 올라가면 3거리 길을 만나는데, 이 3거리에서 왼편 야산방향으로 800m 지점에 '달성 조길방 가옥(達成 趙吉芳 家屋)' 이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저녁식사 시간 까지 다소 시간적 여유가 있어 조길방 가옥을 구경하여 보기로 하는데, 3거리에서 시멘트 포장길 따라 급경사의 오르막 길 따라 어느 정도 올라가면 돌탑 한기와 함께 하고 있는 거대한 보호수 한그루가 서 있다.

 

< 급경사의 길 가장자리에 있는 '보호수' >

 

< 보호수 옆에 있는 '돌탑' >

 

이곳 보호수 수종(樹種)은 느티나무로 수령이 약 250년이 되면서 나무의 밑 둥지의 둘레가 약 4.1m에 수고(樹高)가 15m 정도가 되는데, 이 보호수는 이곳 최정산 골짜기로 안착한 조길방 가옥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나무이라 하겠다.

 

< '느티나무'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보호수에서 다시 빡시게 한 고비를 더 올라가면 최정산 북쪽 비탈면 따라 10여 채의 집들이 마치 새의 둥지와 같이 자리하고 있는데, 동네 입구에 있는 작은 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를 시키고 나서 마을 안길 따라 걸어가 본다.

 

< 마을의 입구에 있는 '안길' >

 

마을의 제일 상부에 초가(草家)로 이루어져 있는 집을 만나면서 집의 입구에 달성 조길방 가옥을 알리는 안내문과 함께 중요 민속자료 제200호 지정을 표시하고 있는 입석(立石)이 서 있는데, 이곳에 기술하고 있는 안내문을 요약하여 본다.

 

< '달성 조길방 가옥' 의 조감도 및 안내문 >

 

< 중요 민속자료 제200호' 로 지정하고 있는 입석 >

 

달성 조길방 가옥은 약 238여년 전 조길방 선조(先祖)들이 난리를 피하여 이곳으로 들어와 정착하면서 집을 지었는데, 안채는 정착 당시가 되는 정조8년(1784년)에 건립하였고 사랑채는 1925년에 확장하였으며 아래채는 1955년에 무너진 집을 새롭게 개축을 하였다.

사랑채 뒤편에 있는 부속채는 2005년에 헛간채를 고쳐 새롭게 지었는데, 전체 건물의 구조는 안채가 서향(西向)으로 자리하고 있으면서 마당의 중심으로 좌우측으로 사랑채와 아래채가 상호 마주보게 배치하므로 튼 'ㅁ' 자 구조를 가진 집이라 하겠다.

이 가옥의 주인장이 되는 후손들은 대구에서 거주하므로 마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철제 로프(Rope)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데, 염치불고(廉恥不顧)하고 로프를 넘어 마당으로 들어가 고택(古宅)을 구경하여 본다.

일단의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는 안채는 전면 4칸에 측면 1칸의 초가집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건물의 제일 왼편에는 부엌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연속하여 큰방, 대청마루, 작은방 순서로 지어져 있으면서 대청마루 앞에 있는 둥근기둥이 이색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 일단의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는 '안채' >

 

< 대청마루 중앙에 있는 '둥근기둥' >

 

대청마루에는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하는 6장의 교지(敎旨)와 함께 '백세청풍(百世淸風)' 이라고 쓴 가훈(家訓)이 부착되어 있는데, 한 가정에서 이렇게 많은 교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큰 자부심을 가진 가문(家門)이라 하겠다.

 

< 대청마루에 부착하고 있는 '교지 및 가훈' >

 

< 대청마루 위에 있는 '대들보' >

 

마당의 우측에 있는 사랑채에는 전면 3칸에 측면 1칸의 초가집이 되는데, 제일 왼편에는 각종 농기구 등을 보관할 수 있는 헛간으로 사용하고 있고 중앙과 오른편에는 2개의 방을 꾸며져 있으면서 2개 방에 출입하는 문은 건물의 뒤편에 있는 작은 툇마루를 사용하게 하였다.

 

< 마당의 우측에 있는 '사랑채' >

 

< '사랑채' 의 뒤편 툇마루 모습 >

 

< 사랑채 앞에 있는 '가마솥' >

 

마당의 좌측에 있는 아래채에는 전면 3칸에 측면 2칸의 건축물로 지어져 있는데, 제일 왼편에는 각종 곡식을 보관할 수 있는 곡간와 함께 뒤편으로 매우 작은 변소가 자리하고 있고 중앙에는 방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제일 오른편에는 헛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 마당의 좌측에 있는 '아래채' >

 

사랑채 뒤편에 있는 부속채 건물에는 전면 3칸에 측면 1칸의 건물로 3칸 모두가 방으로 꾸며져 있고, 이 밖에 해우소로 사용하고 있는 화랑실 건물과 아래채의 뒤편 야산 기슭에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소화전 펌프실이 자리하고 있다.

 

< 사랑채 뒤편에 있는 '부속채' >

 

< 해우소로 사용하고 있는 '화랑실' >

 

< 화재 예방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소화전 펌프실' >

 

이곳 조길방 가옥의 모든 건축물은 관리비가 많이 요구되는 초가(草家)로 구성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초가는 민속마을 또는 특수지역에 상존(尙存)하고 있지만 대구광역시에서 이렇게 초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매우 고무적(鼓舞的)인 문화재이라 하겠다.

다소 여유를 가지면서 고택을 구경하다가 승용차를 운전하여 3거리 까지 내려와 청도군 각북면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다가 정대2리에 있는 한 식당으로 들어가 저녁식사의 시간을 가지도록 하는데, 이 식당은 웰-빙(Well-being) 식사를 전문적으로 요리하는 식당이 되어진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