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베트남 및 캄보디아)

세계문화와 자연유산의 보고 캄보디아 "앙코르왓트" 및 베트남 "하룡베이" 돌아보고.(3회)

용암2000 2010. 11. 23. 19:07

셋째날.(11월 15일 : 월요일)

 

금일 여행 Schedule은 하루 종일 씨엠림 시내에 머물면서 도시 주변이 있는 관광지 및 Shopping Center를 돌아보고, 오후 9시 비행기로 베트남 수도 "하노이" 로 떠나는 일정으로 계획을 한다.

그래서 늦게 잠에서 깨어나 호텔에서 제공하여 주는 아침식사를 끝내고 나서 관광길로 나서는데, 마이크로 버스를 이용하여 씨엠림 시내 인접하게 있는 동양 최대의 자연호수 "톤레삽(Tonle Sap)" 호수와 수상가옥을 돌아보기로 한다.

톤레삽 호수는 약 100Km 정도 떨어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까지 강으로 연결되어진 호수인데, 강은 다시 "메콩강" 본류와 합류되면서 우기가 되는 4월에서 부터 10월 까지 메콩강 가에는 많은 비로 인해 풍족한 물이 범람한다.

물이 톤레삽 호수로 역류하여 들어가 풍선와 같이 부풀어져 호수가 크지게 되는데, 그 면적이 자그만치 13,000Km2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합한 면적)의 크기가 된다.

또한 호수의 수심이 10m가 넘고 반대로 건기가 되는 11월에서 부터 3월 까지는 물이 빠짐으로 면적이 2,500Km2 (서울특별시 면적)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 톤레삽 호수에는 지구상에서 단위 면적당 민물고기가 최고로 많이 잡히는 곳으로 "메기" 같은 민물고기 250종류가 단위 Km2당 년간 5만 Ton 이나 잡히는데, 캄보디아 전 국민의 담백질 공급원이 되고도 남아 수출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더불어 호수 가장자리에는 빈민촌의 수상가옥이 형성하고 있으면서 이 수상가옥에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1일 1불($) 정도 비용으로 생활하는 빈민이 1만 5천여 명이나 살고 있는데, 빈민촌을 돌아보는 것도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부각되어 캄보디아를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적 관광 코스가 된다.   

 

< 호수가에 생활하고 있는 "빈민촌" 전경 >

 

세계 구호단체 및 한국 구호단체에서도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빈민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샘물 파주기 및 노숙자 쉼터 등 구호사업을 하는 단체들이 들어와 상호 경쟁을 하는 듯 국가별 국기가 가는 길 옆 곳곳에 나붙끼고 있다.      

도로 따라 양쪽으로 줄 지어진 수상가옥 촌을 지나 호수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면 배를 타는 선착장에 도착하는데, 수 없이 정박하고 있는 유람선 한척을 전세 내어 수로 따라 대해로 나아가 본다.

수로 양쪽에는 수 많은 수상도시, 학교, 교회, 식당, 상점, 수리 센타 등이 밀접하면서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배들이 정박하고 있다.

 

< 톤레삽 호수로 들어가는 "선착장" 전경 >

 

< 관광을 즐기고 있는 "외국인" 들의 배 >

 

특히 수상 배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 모습이 다 노출되어 있어 지나가는 배의 소음으로 공부에 많은 방해 일으키고 있는데, 학생들이 운동 할 수 있는 운동장이 전연 없어 감옥과 같은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애초로움이 묻어난다.

 

< 호수 가장자리에 정박하고 있는 "교회와 학교" 건물 >

 

조금 만 수로 따라 나아가면 통통배가 수 없이 따라 오는데, 달리는 배 옆구리에 붙이면서 어린이들이 원숭이와 같이 매달리며 구걸과 동시에 열대 과일을 강매한다.

이들 대부분은 월남에서 넘어온 "Boat People" 의 난민들로써 왕성한 생활력을 가지고 있지만, 캄보디아 주민들은 너무나 순진하여 그냥 바라만 보고 적선만 기다리고 있어 대조적이다.

 

< 물건을 강매하거나 구걸하기 위하여 따라오는 "통통배" >

 

한 30분 정도 운항하면 호수가 아니라 바다보다 더 큰 모습을 하면서 파도가 일고 있는 호수 중앙에 이르는데, 호수 한쪽 끝부분에 수평선이 보인다.

일정한 곳에서 신나게 한번 호수를 크게 회전하면서 왔던 길로 되돌아 빈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수상가옥 사이 사이 돌아보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면서 톤레삽 호수 관광을 끝낸다.

 

< 호수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수상가옥" 전경 >

 

<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톤레삽" 호수 전경 >

 

다음 행선지가 되는 "와트마이" 사찰로 이동하여 보는데, 캄보디아는 남방계 소승불교를 믿는 나라이므로 소승불교는 남을 배려하는 것 보다 자신의 해탈을 위하여 수행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와 같이 여럿이 같이 수행하여 상호 자비심을 유발시키는 대승불교와 약간 상이한 모습하고 있고, 사찰의 구조도 다소 생소하다.

 

< 씨엠림 시내에 자리하고 있는 "와트마이" 사찰 >

 

< 와트마이 사찰 내부에 모시고 있는 "부처님" >

 

30여 년 전 캄보디아는 온 나라가 "킬링필드" 의 무대가 되었는데, 와트마이 사찰 한쪽 코너에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크메르 루즈" 로 부터 희생당한 사람들 "해골 및 뼈" 전시하고 있다.

더불어 해골 및 뼈와 함께 학살 현장을 사진으로 스크렙하고 있는데, 그래서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그날의 참상을 기억하도록 하고 있다.

 

< 와트마이 사찰 내부에 보관하고 있는 "해골 및 뼈" >

 

하얀색 해골은 아기를 출산한 어른의 뼈로써 칼슘이 빠져 나아간 뼈이고 누른색 해골은 아직 출가하지 않아 뼈속에 많은 칼슘이 남아있는 뼈인데, 누른색의 뼈가 많이 있다는 것은 어린들도 많이 학살 당했다는 증거이다. 

 

< 보관하여 놓은 "뼈" 의 색갈을 보면서 >

 

1975년 크메르 루즈가 정권을 잡았을 때 캄보디아 인구가 약 700여 만명이 되었으나 5년 간 집권 할 동안 캄보디아 지식인을 상대로 사살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래서 인구의 1/3이 되는 약 200여 만명이라는 대 인구를 학살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살인마 집단이다.

공산주의의 이상적 왕국을 건설하는데,  광기에 빠졌던 크메르 루즈 정권은 지식인과 부르주아 반동을 제거해야 다 같이 행복한 "농업 공동체" 만들 수 있다고 선동했다.

중앙은행을 폭발하고 화폐를 없애면서 물물교환 사회로 되돌렸는데, 단지 안경만 끼었서도 머리에 "먹물" 이 들었다는 핑게로 사람을 무차별 처형하기도 했을 정도로 잔인한 암흑의 시대이다.
금이 간 두개골 및 도끼 자국이 선명한 턱뼈 등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 방문객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이것이 피해갈 수 없는 역사의 기록이라 사람의 해골 및 뼈를 전시하고서 그 날의 참상을 기억하도록 현 정권 "훈센" 총리의 작품이다.

이렇게 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전시물이라 하겠다.

1950년 대 캄보디아는 원래 우리 대한민국 보다 훨씬 잘사는 나라이라 6. 25 전쟁 직후 기아로 허덕이던 한국에 쌀을 보내주기도 했을 정도로 부강한 나라이었다.

하지만 지도자 한명으로 세계에서 최빈국으로 전락되어진 모습을 보고, 사원 입구에서 구걸하고 있는 모자(母子) 모습을 보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학살의 원흥이 되는 "폴포트" 라는 사람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처형을 당하지 않고, 천수를 누리면서 살았다는 것에 대하여 이해가 불기능하게 만든다.

사찰을 나오면 사찰 입구에 스위스 의사 한분이 무료로 운영하는 "어린이 병원" 이 자리하고 있는데, 병원 주위에 수 많은 어린이를 앉고 있는 여성들이 힘도 없이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처량하게 보인다.

스위스 의사는 매 주말마다 병원 정원에서 직접 연회를 개최하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얻은 수익금으로 무료 병원을 운영한다고 하니 진정한 "사회 봉사자" 라 고개가 숙여진다.  
이어 버스는 와트마이 사찰 북편 농로길 따라 조금 들어가는데, 캄보디아 조상들이 만든 인공저수지 "서 바라이(Western Baray)" 에 이른다.

이곳 인공저수지는 끝없이 넓은 씨엠림 평야에서 농사를 짖기 위하여 물을 저장하는 곳으로 크기가 자그만치 폭이 2,2Km에 길이가 8Km나 되고, 수심도 2-3m가 되면서 저수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서 바라이" 인공저수지 >

 

이렇게 관정 시설을 활용 할 정도로 부강한 나라가 지금은 식량의 자급 자족이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난한 실정을 보고 있는데, 한국이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지 해외로 나아가보면 실감하게 만든다.

 

< 더위로 인하여 "인공저수지" 에서 목욕하고 있는 사람들 >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캄보디아가 자랑하고 있는 "상황버섯" 가공 공장에 들어가 한국인 사장님으로 부터 버섯의 우수성을 들어보는데, 상황버섯으로 만든 음료수와 술을 거나하게 마시는 시음회도 겸하여 본다.

 

< 캄보디아에서 생산하고 있는 "상황버섯" >

 

이곳 씨엠림은 옛날 실크로드 길의 중심지에 있으면서 실크 생산하는 뽕나무를 많이 재배하다 보니 그 뽕나무에서 기생하는 암덩어리가 되는 상황버섯을 많이 수확하는데, 년수가 수백년이나 된 것도 많이 채칩된다고 한다.

 

< 수백년에 수천만원하고 있는 대형 "상황버섯" > 

 

한때 많은 돈을 벌어 캄보디아의 빈민구제 사회사업도 많이 한 사람이지만, 현재는 한국에서도 상황버섯 재배 농가가 많이 늘어나 시중에 유통되므로 외국에서 생산한 버섯의 반입을 금지시키고 있다.

상황버섯의 효능은 년수가 좌우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매우 안타깝다고 하는데, 일행 중 몇 분이나 수백년된 상황버섯을 구입하지만 실업자가 되는 나는 언제나 말 없이 고개 숙이고 뒤돌아선다.

다시 시내로 들어와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오후에 "서진 젬 인터네이셔널" 에서 운영하고 있는 보석 가게에 잠시 들려 캄보디아에서 생산된는 보석을 감상하여 본다.

 

< 캄보디아에서 생산하고 있는 "보석" 판매장 >

 

이어 한인이 운영하는 상점으로 들어가 Shopping를 비롯하여 씨엠림에서 제일 큰 "프사라 짜아(Psar Chaa)" 재래시장도 방문하면서 진열하여 놓은 물건도 구입하는데, 지루한 오후 일정을 소화시키면서 캄보디아의 모든 여정을 끝낸다.

 

< 씨엠림에서 제일 큰 "재래시장" 전경 >

 

< "재래시장" 내부에서 장사하고 있는 사람 >

 

또 다시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는 한식집으로 들어가 풍만한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에 보관한 짐을 찾아 씨엠림 공항으로 들어가 출국 수속 마치고 기내에 들어가니 출발시간 보다 빨리 베트남 "하노이" 로 향한다.

3일차에는 이렇게 많은 시간이 남지만 앙코르 왕조에서 최고로 아름답게 건립되었다는 씨엠림에서 25Km 떨어진 여성의 성채 "반티 스레이" 를 관광하지 못하고, 다시는 방문하지 못 할 캄보디아를 떠날려고 하니 매우 아쉽다.

 

< 한적한 "씨엠림 공항" 의 내부 전경 >

 

밤 11시 경 하노이 공향에 도착하여 마중나온 베트남 Guide의 영접을 받는데, 베트남에서는 4명의 Guide가 새롭게 합류한다.

베트남 말을 통역하는 한국인 현지 통역사 1명과 베트남 Guide 1명, 베트남 Guide의 보조 1명, 버스 운전수의 보조 1명 등 4명 Guide와 한국에서 부터 같이 동행한 Guide 1명을 포함하여 총 5명 Guide가 동행한다.

그러므로 베트남은 Guide의 공화국이 되는데, 이렇게 많은 Guide가 동행하는 이유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인력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국가 정책이라고 한다.

하노이 공항에서 "하롱베이" 가 있는 도시 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약 2시간 정도 달려가는데, 새벽 1시 경 하룡베이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 4성급 호텔 "하룡 Plaza Hotel" 에서 여정을 풀기 위하여 각자의 방으로 입실한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