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베트남 및 캄보디아)

세계문화와 자연유산의 보고 캄보디아 "앙코르왓트" 및 베트남 "하룡베이" 돌아보고.(5회)

용암2000 2010. 11. 27. 17:23

다섯째날.(11월 17일 : 수요일)

오늘은 마지막 날이라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베트남의 농촌 풍경과 더불어 곳곳에 산재하고 있는 특산품 판매점을 돌아보면서, 3시간 정도 떨어진 수도 "하노이" 로 들어가 저녁까지 하노이 시가지 관광명소 돌아보고 새벽 1시 비행기로 하노이 출발하여 부산으로 돌아가는 일정으로 계획된다.

호텔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각자 방으로 올라가 짐을 정리하고 퇴실하는데, 하룡만이 내려다 보이는 바다가로 Driver하면서 시골길 따라 한 30분 정도 달려 베트남 지역에서 야생하고 있는 "반달곰" 사육장을 방문하여 웅담의 채칩하는 체험을 가져본다.

한 때 한국 사람들이 몸을 보신하기 위하여 동남아로 원정가 몇천만 원 돈을 지불하고 밀림 현장에서 직접 곰을 사살하는 일이 많았지만, 베트남 정부에서는 반달곰 멸종을 예방하기 위하여 직접 곰을 관리하면서 정기적으로 웅담 채칩을 시행한다고 한다.

이곳 곰 사육장에는 수십 마리의 반달곰을 가두어 놓고 있는데, 매일 10여 마리 반달곰으로 부터 웅담을 채칩하고 나면 펫말을 부착하여 야생으로 돌려 보낸다고 한다.

한국인 의사 한분이 주관하면서 업무를 처리하면서 우리들 눈 앞에서 곰을 마취시켜 직접 웅담을 빼서 판매하는데, 처음에는 5봉지(한 봉지는 소주잔 반컵 정도의 량)에 120만 원 요구하다가 아무도 구입하지 않으니 마지막에는 공산국가에서는 활인 같은 제도는 불가능하므로 그 대신 부부용으로 10봉지를 동일가격으로 판매한다고 종용한다. 

이 모든 행위 일체를 사진으로 촬영이 전연 불가능하다고 하니 무엇인가 찝찝함을 느끼지만 이 나라의 상술이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면서 버스에 올라 한가한 농촌 들녘으로 들어서는데, 하룡베이로 들어올 땐 캄캄한 밤 중이라 보지못한 풍경을 차창으로 바라보면서 지나가니 정겨움이 묻어난다.

베트남 농촌 촌락구조에 있어서 대부분 집들이 성냥갑을 옆으로 세운 것 같이 동일한 집이 다닥 다닥 붙어있는데, 토지를 활용하는 건폐율이 거의 100% 정도가 된다.

일률적으로 도로를 전면으로 하여 전면 5m에 뒤로 18m 정도 2-3 층 건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또한 건물벽에는 아무런 도색도 하지 않는 자연 상태로 두고 있어 이색적이다.

이렇게 건축하는 주 이유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토지 사유화를 인정하지 않고 토지를 배급식으로 공급하는데, 베트남 정부에서 제공하는 토지의 크기는 가로 5m에 세로 18m의 동일한 토지로 한정하다 보니 농촌마져 조그마한 공간도 없이 획일적으로 건축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이어 농촌 들녘에는 1년에 2-3 모작의 벼농사 짖고 있는데, 많은 논의 한쪽 구석에는 어김없이 납골당 형태의 무덤이 존재하고 있다.  

이 나라의 장례문화는 조상이 돌아가시면 본인 소유의 논에 먼저 묘를 만들어 시신을 보관하는데, 이렇게 논에 시신을 보관하는 이유는 수분으로 인하여 시신의 부패를 지연 시킴과 동시에 연중 농사를 짖을 때 마다 묘지를 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2-3년 후 아직 부패되지 않은 시신에서 살을 발아내고 뼈를 화장하여 영원히 모신다고 하는데, 어찌보면 남의 땅과 돈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땅에 조상을 모시면서 수시로 벌초도 겸할 수 있어 효성이 지극한 민족인 것 같다.

약 1시간 정도 더 달려 조그마한 농촌에 있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한 식당에 도착하는데, 이 식당에서 이른 점식식사의 시간을 가진다.

식사와 더불어 이 집에서는 베트남의 특삼품 커피와 노니를 판매하고 있는데, 노니는 "꼭두서니과" 에 속하는 나무에서 잎과 열매를 따서 그것을 분말화하여 "노니" 라는 상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곳으로 노니로 만든 음료수와 술을 제공하여 줌으로 많은 시음회를 가져본다.

 

< "노니" 제품을 판매하는 곳의 있는 시음장 >

 

노니의 중요 효력은 면역기관을 자극하므로써 비정상적인 세포기능을 원 상태로 돌려놓고 손상된 세포를 재생시켜 주는 역활 함으로 상처부위나 항암치료에 특효의 효능 가지며, 더불어 정력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면서 한 때 한국에서 다단계 회사에서 선풍적 인기를 누리면서 판매를 성행한 식품이라고 한다.

건강에 좋다고 하니 참 별 것도 다 상품화하여 무식한 사람을 현혹시키고 있으니, 후진국으로 한번 관광하면서 시음회만 참석하여도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 천수를 누리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 같다. 

이어 버스는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하노이 시가지로 달려가는데, 고속도로 길에는 오트바이와 자전거 및 역주행하는 차량들로 인하여 사망 고비를 몇 번이나 경험하면서 약 1시간 정도 달려 번잡한 시내로 들어와 베트남의 혁명 영웅 "호찌민" 영묘가 안장된 "바딘광장" 으로 도착한다.

 

< 수도 "하노이" 에 있는 "바딘광장" 으로 들어 가는 길 >

 

베트남 국민은 호찌민 주석을 자기의 부모나 조부모보다 더 존경하는 인물인데, 이것도 모르고 호찌민을 우습게 보다가 큰 코 다친 나라가 많다.

대표적으로 세계에서 최대의 강대국이라고 자칭하고 있는 프랑스, 미국, 중국을 차례로 격파한 나라가 베트남의 호찌민이 세계에서 유일한 사람이라 하겠다.

먼저 베트남을 식민지로 지배하던 프랑스가 베트남 사람을 우습게 보다가 1946년부터 1954년까지 벌어진 전투에서 14만 8천명의 사상자를 내고, 1954년 5월 1만명의 프랑스 군이 꼼짝없이 항복하게 만들면서 전 세계에 수치스러운 모습을 만방에 보여주면서 철수하게 만들었다.

그 때 호찌민은 "너의 나라에서 1명의 군인이 죽고 우리나라가 10명의 군인이 죽는다고 하여도 우리나라를 이기지 못한다" 라고 일침 놓은 대화가 유명하다.    

이어서 미국이 남쪽 월남의 "고딘디엠" 정권을 지지하면서 북쪽 월맹과 싸움 한번하면서 1,300만 톤이라는 어마한 포탄 투하하는데, 그 량을 원자탄으로 비교하면 일본 "히로시마" 에 투하한 원자탄의 450배가 된다고 한다.

그래도 1975년 4월 29일 사이공의 미 대사관 옥상에서 마지막 헬리콥터로 탈출하는 모습이 전 세계 Top News로 방연된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그 때 희생한 미국의 병사가 자그만치 88,000여 명이 된다고 한다.

중국도 1979년 2월 크메르 루즈와의 역학 관계에서 발생하는 국경 분쟁에서도 결코 손과 발 모두 들고 철수하는 모습 보았던, 그 베트남 중심 "하노이" 에 있는 호찌민 발자취를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본다. 

주석궁이 있는 "바딘광장" 에 들어서면 1945년도 이 광장 앞에서 독립선언을 하였던 역사적인 장소가 눈 앞에 있는데, 광장 중앙에 호찌민의 시신을 보관하고 있는 4각 건물 앞에는 2명의 군인이 보초를 서면서 출입 통제하고 있다.

 

< "호찌민" 의 영묘가 있는 4각 건물 앞에서 >

 

베트남에서는 방부처리 기술이 미흡하여 매년 10월에서 12월까지 약 2개월 정도 호찌민 시신을 "러시아" 로 보내 새롭게 방부처리를 하게 하므로 그 기간 동안 관람을 제한 한다고 한다.

살아생전 호찌민 유언은 자기가 죽으면 화장하여 베트남 남쪽과 북쪽 지방에 분산하여 뿌려 달라고 유언하였으나 그의 추종 세력들이 유언의 내용에 따르지 않고 이곳에 모시고 있다고 하는데, 죽어서도 매년 러시아 여행을 하여 보는 행운의 사나이다. 

넓은 바딘광장 앞에는 베트남의 심장부가 되는 "국회의사당" 과 공산당 본부, 정부청사 건물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우측편에는 이제 베트남도 개화의 물결을 따르려고 하는지 현대식 아파트 건물을 신축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 바딘광장 앞에 있는 "독립 선언문" >  

 

< 바딘광장 앞 좌측에 있는 "국회의사당" 건물 >

 

광장 오른쪽 대나무 숲 옆으로 들어가면 매표소에 이르고, 입장료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노랗게 건축된 3층의 주석궁 건물이 보이며 그 주위로 호찌민이 평시에 살았던 사저와 집무실이 있는 공원이 펼쳐진다.

 

< 새롭게 건립한 "주석궁" 건물 >

 

울창하게 꾸며진 숲속 정원 통과하면 "망과나무" 거리가 나오고 그 옆에 있는 연못으로 돌아가면 2층으로 된 소박한 건물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호찌민이 사용하였던 집무실이다.

 

< 주석궁 내에 있는 "망과나무" 거리 >

 

< 호수가에 있는 "호찌민" 집무실 전경 >

 

2층으로 올라가 집무실 내부를 보니 그 분이 얼마나 검소하게 살았는지 잘 나타내고 있는데, 내부에는 간단한 침대와 더불어 전화기가 놓여 있는 책상과 더불어 신문 몇 장이 전부이고 이 집무실 옆에 북한이 만들어준 지하 방공호가 있지만 문이 잠겨져 있어 관람이 불가능하다.

 

< 호찌민이 근무한 2층 "집무실" 의 관광통로 >   

 

연못을 돌아서 사저에 도착하니 현재 내부 수리 중이라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안내 팜플릿에 의하면 그곳도 침대 한개와 간단한 식기류 몇 점 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살아생전 나라를 통치하는데 소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으며 사후에 그가 남긴 재산을 조사하여 보니 현금은 고사하고 땅 한평도 없이 청빈하게 살다가 돌아 가셨다고 하니, 한국의 지도자와 대비하여 보면 너무나 차발화가 빌생한다.   

사저 옆에 거대한 나무가 한그루 서 있으면서 그 나무의 이름이 "두물나무(?)" 라고 하며 그 나무 속으로 야자수 나무가 자라고 있어 2중으로 공생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러한 나무 형상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궁궁하다.

우리나라 영동군 천태산 영국사 절 앞에 있는 "은행나무" 속에 작은 애기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지만, 이곳에서 자라는 야자수 나무는 키가 훨씬 더 커 아무리 먼 곳에서 사진 한장 찍을 려고 해도 렌즈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 두물나무(?) 속에 자라고 있는 "야자수 나무" >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연리지" 나 "연리목" 나무는 많이 보았지만, 여기에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연리근(根)" 나무 등 이색나무가 볼 수 있으며 곳곳에 망과나무, 멜론나무 등이 자라고 있어 친환경적 자연에 부합한 식물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는 공원이라 떠나기가 싫다.

 

< 공원 내부에 있는 "연리근" 나무 >

 

< 뿌리가 하늘로 치솟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괴상한 나무" >  

  

< 공원 내에 있는 "멜론나무" 에 달린 열매 >

 

이어 후문 방향으로 나오면 바로 인접하게 연못 속에서 한 개의 기둥으로 지어진 조그마한 사찰이 있는데, 이 사찰이 일주 "연화대(蓮花臺)" 라는 사찰로 1049년도 "리따이또" 왕이 건립하였다고 한다.

 

< 일주의 기둥으로 건립된 사찰 "연화대" >

 

왕은 아기를 앉고 있는 꿈을 꾼 후 한 소수민족의 여인으로 부터 아들을 얻은 것에 대하여 고마움의 표시로 이 연못에 하나의 기둥으로된 일주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하는데, 계단에 올라서면 10개 손을 가진 부처님의 인자한 모습으로 중생 내려다 보고 있다.

그래서 현재 베트남에서 결혼한 여성들이 방문하여 아기를 많아 가져달려는 소원성취(所願成就)를 비는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 사찰 내부에 모시고 있는 "10손 부처님" >

 

이 사찰을 돌아서면 "호찌민 박물관" 으로 들어가는 계단에 이르는데, 입장표를 구입하여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박물관입구에 거대한 동(銅) 조각품을 만난다. 

 

< "호찌민 박물관" 입구의 전경 >

 

< 박물관에 들어가면 제일 처음 만나는 "동" 으로 만든 제품 >

 

박물관 1층은 대부분 사무실 및 휴게실 등 일반적인 공간으로 활용함으로 불거리가 없어 2층으로 바로 올라가니 "호찌민" 의 거대한 동상이 인자하게 서 있는데, 우리나라 농촌 할아버지와 같은 순박한 모습을 하고 있어 저분이 그렇게도 카르스마 같은 정치를 한 분인가 의심이 들게 만든다.

 

< 2층 입구에 있는 "호찌민" 동상 >

 

동상 주위에 호찌민이 강대국 사이에 살아남기 위해서 행한 치적을 기록하여 놓았지만, 영어와 베트남어가 멍통이라 이해도 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만 가야 하는 초라한 신세이다.

박물관 2층과 3층 전부는 베트남의 보편적으로 생활하는 민족의 민속 자료와 더불어 현대의 작품 등 몇 점만 진열하고 있어 볼 것이 너무나 빈약한 박물관이 된다.

 

< 3층 입구에 있는 "조형물" >

 

비록 베트남은 아푼 역사를 가진 민족이지만, 호찌민의 잘못된 역사관 또는 베트콩의 활약상 등 전쟁에 관한 내용이 사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호찌민의 선행만 부각시키고 있어 실망이 매우 큰 박물관이다. 

 

< 박물관 내부에 전시하여 놓은 일반적 "역사물" > 

 

그런데 일반적으로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호찌민은 미국의 적군이므로 당년하게 우리나라의 적으로 간주하여 평가를 하다 보니 이곳을 돌아보고 나서는 그것이 잘못된 역사관이고, 강대국 미국이 억지로 만든 역사이라는 것을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사실적인 내용을 공부하지 않고, 단지 편견적인 생각만 가지고 덜렁 덜렁 Guide의 뒤 꽁무니만 따라 다니면서 건성으로 보고 나오는 내가 잘못인 것을 알게한다.

이어 배트남의 명물이 되는 "씨클로" 를 타고 시가지를 관광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베트남 시내는 한국에서 상상도 못하는 오트바이와 자전거 및 차량이 혼합하여 달리는 거리를 보고 있으니 숨이 꽉 막혀 온다.

 

< "씨클로" 타고 도로 중앙을 무질서하게 주행하는 일행 >

 

씨클로는 사람이 앉는 마차를 뒤에서 자전거가 밀고 가는 운반 대차이지만 복잡한 거리에서 교통 흐름을 방해하면서 운행하는 것이 씨클로 인 것 같은데, 이렇게 교통질서를 무시하고 거리 무법자로 부각하여도 국가에서 아무렇게 통제하지 않는 이유는 씨클로 사업주들이 베트남 전쟁참전 용사들이 모인 단체로 구성되다 보니 누구도 간섭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노이의 최고 번화가 거리와 아름다운 "호안 키엠(Hoan Kiem )" 호수 주변을 달리는데, 이것은 완전히 목숨을 저당하고 매연만 실컨 마시면서 달리는 관광 상품이라 씨클로를 타고 여행한다는 것은 미친짖거리가 된다.

 

< 오트바이와 자동차가 함께 호수가를 달리는 "씨클로" >

 

< 오트바이, 자전거, 자동차가 함께 병행하는 "거리" >      

 

그래도 씨클로 타는 여행을 계획한다면 "호암키엠 호수" 주변 만 돌아보는 관광이 이루어 진다며 참 좋은 여행코스의 가치를 가지겠는데, 그렇게 운행하는 코스가 없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어둠이 내리는 하노이시가지 번화가와 호수를 돌아보면서 오트바이 물결과 같이 움직이면서 Tour 즐기다가, 한인이 운영하는 한 식당에 들어가 저녁식사를 즐기면서 여정의 마지막으로 달려간다.

 

< 자동차와 오트바이와 함께 퇴근하는 "하노이" 야경 > 

 

충분하게 휴식을 취하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베트남에서 유명한 "라텍스" 공장을 마지막으로 방문하여 보는데, 라텍스 장점과 체험을 통하여 제품의 우수성 이야기를 들어본다.

여기 사장님은 태국 제품이나 베트남 제품은 안심하고 구입하여도 좋지만 중국 제품은 거의 함량 미달의 제품이므로 구입 자제하여 달려는 이야기로 설명을 마치고, 물건을 판매하기 위하여 흥정을 하여 본다.

마지막 손님들이라 정가 100불 짜리 베게 1개 65불까지 Discount 하여 주는데, 일행들이 60불로 고집하다가 결국 흥정이 깨여져 쓰라린 실폐의 쓴잔도 마셔본다. 

 

< 하노이 "라텍스" 제품 진열장 전경과 흥정에 실폐하고 나오는 현지 Guide >

 

공항으로 가기 위하여 시내를 벗어나는 한 길목에서 현지 Guide를 하차 시키고, 깊어가는 하노이 야경을 바라보면서 1시간 정도 공항로를 달려 10시 경 하노이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제반 출국수속 마치고 공항 면세점에 들어가 Shopping 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면세점에는 대부분 한국으로 떠나는 사람들로 시끌 벅쩍한데. 수 많은 사람 중 인천 국제공항으로 들어가는 한국인 인솔자 1명이 5-60명의 베트남 산업 연수생들 돌보고 있다.

한국-베트남 국기가 그려진 명찰을 가슴에 달고 무표정하게 기다리고 있는 애띤 얼굴의 소년들이 두려움이 가득한데, 비록 지금은 이국 땅으로 기술과 돈을 벌기 위하여 가고 있지만 내가 본 너희들 나라는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다. 

광활한 땅과 풍부한 지하자원 및 8,500만 명이라는 적지않은 인구로써, "도이모이(Doimoi)" 정책이라는 기치 아래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습과 생동감이 넘치는 시가지 모습을 나는 단편적이고 순간적으로 보고 간다.

하지만 너희 조상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굴복하지 않은 의지력과 투쟁심을 가진 민족이라, 반듯히 성공하고 세계를 Leader 할 것이라는 것 가슴으로 느끼는 여행이다.

김해공항으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만 남다 보니 면세점도 일찍 문을 닫고 철수하므로 적막이 내리는 공항에 머물다가 새벽 1시 정각 하노이 하늘을 박차고 올라 김해공항에 도착하니까, 한국시간 아침 6시가 되면서 대기하고 있는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싣고 대구로 향한다. -종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