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문화와 산행.

야유회 세번째 장소는 대구 달성군 화원읍에 있는 '남평문씨 세거지' 를 관람하며.(3)

용암2000 2023. 10. 26. 11:45

2023년 10월 22일.(일요일)

3. 남평문씨 세거지의 관람.

마비정(馬飛亭) 벽화마을에서 떠난 버스는 중산간 도로 따라 한 10여분 정도 내려오면 '남평문씨 본리 세거지(南平文氏 本里 世居地)' 앞에 도착하는데, 마을 앞으로 조성하고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한다.

주차장 가장자리에는 이곳 남평문씨 세거지 및 사문진 나룻터를 포함한 화원읍(花園邑) 누리길 조감도와 더불어 영화 '달의 연인' 의 촬영지 이라는 안내판 붙어있고. 또한 주차장 주변으로 아름다운 연못이 만들어져 있다.

 

< '화원읍' 의 누리길 조감도 >

< '남평문씨 세거지' 에서 촬영한 영화 >

< 주차장 주변으로 조성하고 있는 '연못' >

주차장 뒤편으로 '문익점(文益漸 : 1329-1398)' 선생님 동상과 함께 거대한 목화(木花) 밭을 만들어 놓고 있는데, 목화 밭에는 아직도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있는 목화와 솜으로 변한 꽃이 혼합하여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 주차장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문익점' 선생님의 동상 >

< '문익점' 선생님의 행적을 기술하고 있는 안내문 >

< 동상 뒤편에서 피고 있는 '목화' 밭 >

< 문익점 선생님이 가지고 온 '목화' 에 관련되는 안내문 >

함께 동행하고 있는 여성 해설사는 이곳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에 남평문씨 본리 세거지로 자리를 잡은 과정을 설명하는데, 이곳 세거지에는 '남평문씨(南平文氏)' 들이 약 200여 년간 삶의 터로 자리를 잡고 살아온 곳이다.

문익점 선생님의 9대 손(孫)이 되는 통덕랑 '문세근(文世根)' 선생님이 지금으로 부터 약 500여 년 전 경기도 파주지역에서 대구지역으로 이거(離居)하였다. 

이후 헌종 6년(1840년) 문세근의 9세손이 되는 인산재 '문경호(文敬鎬)' 선생님이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은 이래로 남평문씨들만이 대(代)를 이어 살고 있는데, 세거지 규모가 약 3,600여 평이 된다.

남평문씨들이 정착한 인흥(仁興)마을에는 원래 '인흥사(仁興寺)' 이라는 큰 절이 있었던 명당 터였는데, 인흥마을의 입향조가 되는 문경호 선생님이 남평문씨들이 대대로 살 수 있도록 장기 계획을 수립하여 마을을 건립하였다.

집들의 배치 형태가 흥미롭게 '우물 정(井)'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사람이 거주하는 주택이 모두 합하여 9동과 별당(別堂) 양식의 정자 2동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9동 모두가 우물 정자와 같이 가로와 세로로 줄을 맞추어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수봉정사(壽峰精舍)' 및 '광거당(廣居堂)' 을 중심 축으로 하면서 질서 정연하게 배치하고 있는데, 그래서 여기의 건축 양식에 있어 한국 건축사(建築史)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 '남평문씨 세거지' 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

 

먼저 마을로 들어가면 마을 입구 오른편으로 이곳 인흥마을로 처음 입향한 문경호의 후손 수봉 '문영박(文永撲)' 선생님이 살았던 수봉정사가 자리하고 있는데, 현재 이 집에는 옛 서울신문사 사장을 역임한 '문태갑(文胎甲 : 향년 94세)' 선생님이 거주하고 있는 한옥이다.

< '수봉정사' 로 들어가는 출입문 >

수봉정사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수백당(壽白堂)'  앞의 솟을대문과 안채로 들어가는 협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협문을 이용하여 안채 옆에 있는 또 다른 쪽문으로 들어가면 넓은 마당과 함께 하고 있는 수백당 건물을 만난다.

 

< '수봉정사' 안채로 들어가는 협문 >

수백당 건물은 정면 6칸에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건축물인데, 2칸의 방과 중간에는 대청 2칸이 있고 우측으로 1칸의 온돌방과 누마루 1칸을 두고 있다.

툇마루를 온돌방 앞과 뒤 그리고 측면에 깔고 난간으로 멋을 내고 있는데, 이 건물에는 손님을 맞고 문중의 대소사를 의논하던 곳으로 건물의 격조와 품위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건축물이라 하겠다.

< 수봉정사 내에 자리하고 있는 '수백당' 건물 >

마당 중앙에 2그루의 소나무와 함께 수백당으로 들어오는 솟을대문에서 문 빗장의 잠금 장치가 되는 양쪽 걸고리가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는데, 많은 방문자들이 걸고리를 만지면 장수한다는 소문에 따라 거북이 등이 반질반질하다.

< 수백당 앞에 자리하고 있는 '솟을대문' >

< 문 빗장의 장금 장치가 되는 '걸고리' >

수백당 오른편이며 안채 앞에 인수문고(仁壽文庫)가 자리하고 있는데, 인수문고는 문중의 서고(書庫)로 규장각 도서를 포함한 책 1만여 권을 소장하고 있으며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으나 후에 크게 늘려 지었고 도서열람을 위한 좌우측 별도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 수백당에서 '인수문고' 로 들어가는 쪽문 >

< 수 많은 책을 보관하고 있는 '인수문고' >

또한 수백당 왼편으로 작은 정원과 함께 다양한 나무와 더불어 식물이 자라고 있는데, 많은 나무 중 수령 약 200여 년이 되는 향(香) 나무 한그루가 완전하게 땅으로 떨어져 살고 있다.

문제는 이 향나무 줄기가 완전하게 꺽어져 죽었지만 땅으로 떨어져 있는 나무 가지와 잎에는 푸른색을 띄면서 왕성하게 살고 있는데, 집을 관리하고 있는 주인장이 나무 전문가에게 진단한 결과 휘감고 있는 두줄의 나무 겁질을 통하여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 하여 준다.

< 완전하게 껵어지면서도 살고 있는 '향나무' >

수백당을 나와 본격적으로 마을 안길을 걸어보는데, 마을 입구에는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전 대구시장을 역임한 '문희갑(文喜甲) 시장의 한옥이고 그 앞으로 흙과 돌로 쌓은 기다란 담장이 마을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 전 대구시장 '문희갑' 시장의 한옥 >

특히 계획된 도로망과 격조 높은 흙담이 건물을 에워싸면서 주위의 산야(山野)와도 잘 조화되고 있는데, 당내친(堂內親)인 대소가(大小家)가 큰집의 앞과 좌우에 새집을 지어 분가한 건물 배치는 매우 이채롭다.

< 계획에 따라 만들어져 있는 '흙담' >

총 연장 약 1Km 남짓한 흙담이 흐드러짐 없이 매우 정교하게 쌓여 있는데,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한밤마을에 있는 담장과 더불어 성주군 성주읍 한개마을과 함께 ‘대구권에서 명품 돌담 길’로 주목을 받고 있는 골목이라 하겠다.

< 대구 인근에서 3대 담장이 되는 '명품 돌담' >

< 돌담 사이를 거닐고 있는 '관광객' >

마을 안길 따라 남쪽으로 걸어가면 마을의 제일 앞에 '광거당(廣居堂)'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정문을 통과하면 넓은 마당의 중앙에 'ㄱ' 자 형태의 광거당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 '광거당' 으로 들어가는 솟을대문 >

일행은 광거당 건물 앞에서 기념사진 한장을 남기고 나서 건물을 돌아보는데, 광거당은 1834년에 지어진 용호재(龍湖齋)를 허물고 그 터에 후손들에게 학문과 교양을 가르치고 문중의 공식적인 행사를 거행하는 재실(齋室)로 지었다.

< '광거당' 건물의 전경 >

< '광거당' 앞에서 기념사진 한장 >

건물의 오른편 툇마루 위에는 '수석노태지관'(壽石老苔池館)' 이라고 쓴 추사체 현판에 걸려 있는데, 이는 '수석과 묵은 이끼와 연못으로 이루어진 집' 이라는 뜻으로 당시 광거당을 다녀간 문인들의 멋과 향기가 가득 담겨 있는 글이다.

< 오른편 툇마루 위에 붙어있는 '수석노태지관' 의 글 >

지금은 아쉽게도 묵은 이끼와 연못은 메워지고 없어졌지만 뒤뜰의 대나무 숲과 담장 밖에 수백 년이나 묵은 소나무들이 여전히 남아있는데, 세상을 훌쩍 벗어나 있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재실이라 하겠다.

< '광거당' 주변으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 >

광거당의 솟을대문을 나와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면 인흥마을 전경을 구경할 수 있는데, 우물 정(井)자 모양과 함께 상호 머리를 맞되고 있는 지붕들이 마치 한폭의 동양화 같이 머물고 있다.

< 광거당 뒤편에서 바라보는 '남평문씨 세거지' 전경 >

< 지붕과 지봉을 연결하고 있는 '한옥' >

마을 앞으로 나오면 여기가 '인흥사지(仁興寺址)' 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3층석탑 한기가 서 있는데, 인흥사의 창건과 내력은 장확하게 알 수 없으나 만년에 11년 동안 인흥사에서 주석하였다는 일연(一然)스님의 비문에 기술되어 있다.

또한 고려 말의 문장가인 '이숭인(李崇仁)' 선생님의 시(詩)와 '신증동국여지승람' 에 따르면 절은 아주 오래된 고찰로 그 규모도 대단하였다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곳 탑과 함께 옛 인흥사의 쌍탑으로 여겨지는 3층석탑 1기가 현재 경북대학교 박물관 앞 뜰에 옮겨 있는데, 탑은 통일신라 말에 조성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고 한다.

 

< 수봉정사 뒤편 인흥사지에 자리하고 있는 '3층석탑' >

 

< 3층석탑 주변에 만들어져 있는 '붓과 목화' 조형물 >

이곳 남평문씨 세거지는 1995년 5월 12일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는데, 주변으로 대구수목원, 인흥서원, 이상화 선생님의 기념관이 같이하고 있어 연계 관광이 가능한 지역이라 하겠다.

남평문씨 세거지 바로 앞에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명심보감(明心寶鑑)의 저자 '추적(秋適)' 선생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인흥서원(仁興書院)' 이 자리하고 있지만, 주어진 시간으로 인하여 다음 방문지가 되는 '디아크(The ARC) 강 문화관' 으로 달려간다. - 3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