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군 문화와 산행.

대구광역시 군위군 군위읍에 자리하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 생가를 다시 찾으면서.

용암2000 2024. 1. 29. 17:43

2024년 1월 27일.(토요일)

*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를 다시 찾으면서.

대구시 군위군 군위읍에 자리하고 있는 군위민속한우 식당에서 점심식사 시간을 가진 일행은 대구로 돌아가기에 아쉬움이 남아 식당 인접하게 자리하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 생가(金壽煥 樞機卿 生家)' 를 방문하기로 하는데, 나는 2015년 3월 1일에 한번 방문한 장소이다.

김수환 추기경 생가는 군위군 군위읍에서 의성군 금성면으로 넘어가는 927번 지방도로 중간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식당에서 한 10여 분 정도 운전하여 가면 도착이 되는데, 내가 방문한 약 9년 전에는 달랑 생가 한채만 복원이 되어 매우 초라한 공원이었다.

현재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면서 많이 발전 되어진 공원으로써 공원의 명칭을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 이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공원 입구에는 다소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주차장으로 들어가 주차를 시킨다.

<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 공원' 조감도 >

주차장 가장자리에 모자이크로 만든 김수환 추기경의 얼굴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조형물 가장자리에 "그 동안 많이 사랑을 받아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요. 용서하십시오," 이라는 문구와 함께 '김수환 나눔' 이라는 글씨가 쓰여있다.

< 주차장 가장자리 '김수환 추기경' 의 모자이크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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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주차장에서 야산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김수환 추기경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記念館)'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기념관 건물 입구에 바보 김수환 추기경 얼굴과 함께 '김수환 사랑과 나눔 공원' 이라는 명칭이 관광객을 마중한다.

< 김수환 추기경의 '기념관' >

< '기념관'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휴식처 >

지방자치단체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으로 한국 가톨릭(Catholic)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 정신을 실천하고 계승하고자 추기경의 생가를 중심으로 공원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특히 공원 내에 위치한 김수환 추기경 기념관에서는 추기경의 생할 철학(生活 哲學)을 배울 수 있는 산 교육장으로 꾸며져 있는데, 그로 인하여 관람객에게 정신적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는 공원이라 하겠다.

기념관 건물이 야산의 비탈면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반원형 2층의 건물로 지어져 있는데, 건물의 중앙광장에는 다양한 조각품을 비롯하여 옹기들을 전시하고 있다.

< 반원형으로 건축되어진 '기념관' 전경 >

< 건물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중앙광장' >

< 중앙광장 가장자리에 설치하고 있는 '동상과 옹기' >

< '추기경 및 옹기' 에 관련되는 내역 >

먼저 기념관 건물로 들어가면 왼편으로 기념관을 관리하는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으며 오른편으로는 일대기를 설명하고 있는 전시실로 만들어져 있고, 기념관 중앙 벽면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동상이 서 있다.

< 기념관 내부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사무실' >

< 기념관 내부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는 '전시실' 입구 >

벽면 앞에 서 있는 김수환 추기경 동상에는 사람 체온과 동일하게 36.5도의 전류가 흐르고 있는데, 방문자들에게 한번 껴 안아 추기경의 따뜻한 체온을 느껴 보기를 바란다고 기술하고 있다.

< 중앙 벽면에 서 있는 '김수환 추기경' 의 동상 >

오른편에 있는 전시실로 들어가면 김수환 추기경 일대기를 비롯하여 그의 업적을 기록하고 있는데, 일대기에서는 김수환(金壽煥 : 스테파노) 추기경 께서 다섯살 때 이사와 군위보통학교를 마치고 신학교에 입학 하기 전 까지 살았던 곳이다.

< '전시실'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

김수환 추기경 집안은 원래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 지역에서 양반 가문으로 살았는데, 충청도 땅에 천주교가 전파되던 초기 부터 신앙을 받아들인 순교자의 집안이 되었다.

조부이신 '김요안(金要安)' 공은 광산 김씨로 병인박해 때 연산에서 체포되어 서울에서 옥중 순교했고, 조모 '강말손(姜末孫)' 여사는 남편의 순교 후 어린 자녀들과 함께 갖은 고생에도 불구하고 교우들의 뒤바라지를 성심으로 하였다.

당시 유복자로 추기경의 부친이신 '김영석(金永錫 : 요셉)' 이 태어났고, 김영석은 경상도 사목을 담당했던 '김보록 신부(대구교구 설립자)' 의 일을 도왔으며 동학난을 만나 칠곡 장자동 옹기굴로 피산하게 되었다.

이 때 '뮈뗄 및 김보록' 등 두명의 신부로 부터 중매를 통하여 대구에서 유명한 신자 집안이 되는 달성서씨(達城徐氏) '서용서(徐用瑞)' 회장의 딸 '서중하(徐仲夏 : 마르띠나)' 와 혼인하였는데, 서중하 분이 김수환 추기경의 어머니이다.

그후 왜관 평장목, 김천 지대골의 옹기굴, 대구 남산동으로 전진하던 추기경 부모님은 칠곡 신나무골과 선산을 거쳐 1922년 4월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슬하에는 모두 6남 2녀를 두었는데, 군위에 들어온 해가 되는 1922년 5월 8일(음력)에 낳은 막내가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면서 추기경은 외가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추기경이 8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해수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옹기와 포목 행상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 졌지만, 어려운 형편에서도 불구하고 이곳 초가에서 공소를 열었다.

추기경은 군위보통학교를 마치고 지금 대구 가톨릭대학의 전신이 되는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할 때 까지 이 집에서 형 '김동한(金東漢 : 가롤로)' 신부와 함께 살았다.

이곳 군위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신앙과 꿈을 키웠는데, 생전에 가끔씩 생가를 찾아와 어린 시절을 회상하셨다고 한다.

< '김수환 추기경' 일대기를 기술하고 있는 안내문 >

전시실 내부에는 추기경의 업적을 비롯하여 사회생활을 하면서 봉사한 내용을 세부적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동문들이 번개와 같이 살아지므로 할 수 없이 나도 기념관을 떠나기로 한다.

< 김수환 추기경의 '일대기' 설명하고 있는 내역 >

< '군사독재' 에 저항하고 있는 추기경 >

< '추기경이 입었던 '옷' >

< '종교' 의 울타리를 넘어서 >

< '감동의 벽' 을 허물면서 >

< 신도의 '발' 을 씻어주고 있는 추기경 >

< 청년시절의 '추기경' 모습 >

<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그림 >

< 전시실 2층에 전시하고 있는 '사진' >

< 전시실 2층에 진열하고 있는 '사제' 의복 >

기념관 뒤편으로 올라가면 넓은 공원과 함께 생가가 자리하고 있는데, 생가 건물은 13평 정도의 매우 작은 초가로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추기경이 선종(2009년 2월 16일)하기 3년 전 2006년에 구입하여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 '김수환 추기경 생가' 를 나타내고 있는 입간판 >

< 3칸으로 지어져 있는 '생가' >

< 옹기와 함께 하고 있는 '생가' >

< '생가' 앞으로 펼쳐지고 있는 시골 풍경 >

생가는 2칸의 방과 더불어 한칸의 부엌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오른편 부엌에는 솥단지 한개만 자리하고 있으며 큰방과 작은방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업적을 기리는 사진 및 마루에 앉아 망중한을 보내는 사진 등이 전시하고 있다.

< 오른편 부엌에 자리하고 있는 '솥단지' >

< 중앙 큰방에 놓여 있는 '사진' >

< 왼편 '작은방' 의 내부 전경 >

생가 앞에는 옹기가마 한기를 만들어 놓고 있는데, 이곳에 옹기가마를 만든 이유는 추기경의 부모님이 천주교 박해를 피하여 왜관, 김천, 대구, 칠곡, 선산을 거쳐 1922년에 이곳으로 들어와 옹기장수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 생가 앞에 자리하고 있는 '옹기가마' >

또한 생가 뒤편으로 올라가면 두손을 벌리고 있는 '예수의 상' 을 만들어 놓고 있는데, 그 모습이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루에 있는 높이 30m의 거대한 석상을 모방한 것 같다.

< 생가 건물 뒤편에 자리하고 있는 '예수의 상' >

이 밖에도 기념관 뒤편으로 '스테파노 경당(채플 : Chapel)'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나는 지금 까지 천주교에서 신부가 상주하고 있는 성당(聖堂)과 비상주하고 있는 공소(公所)는 알고 있었지만 오늘 처음으로 경당이라 것을 알게 되었다.

< '스테파노 경당' 의 전경 >

< 경당 주변에 만들어져 있는 '예수' 상 >

< 경당 주변에 만들어져 있는 '야외무대' >

< '십자가에서 내림을 당하고 있는 '예수' >

그래서 천주교를 믿고 있는 한 동문에게 문의한 결과 경당은 공소와 다르게 교황이나 주교가 별도로 사용하고 있는 건축물인데, 비정규적으로 주변의 신도들을 위하여 미사도 드리는 건물이라 한다.

어찌하던 경당에 대하여 약간의 의심을 품으면서 김수환 추기경 생가를 떠나기로 하는데, 왔던 길로 되돌아 군위읍사무소로 지나 6.25 때 '다부동 전투' 로 유명한 칠곡군 방향으로 달려간다. - 끝 -